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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WarsⅦ/카일로레이] Integration of Dreams

- Star Wars 2016. 8. 31. 16:09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Rey

- Written by. Jade


Integration of Dreams





    그곳은 육지와 바다가 똑같은 넓이로 펼쳐진 행성이었다. 


  레이는 다리를 끝까지 뻗은 채 발끝으로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바닷물이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발가락을 적셨다가 물러나길 반복했다. 레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발을 흔들었다. 그녀는 언제나 지금과 같은 일을 꿈꿨다. 작은 게가 서슴없이 모래사장 위를 굴러다니고, 둥근 자갈들이 맑은 바닷물 아래 깔린 그곳은 레이의 소원 그 자체였다.


  레이의 작대기를 빌려갔던 츄이는 그것을 가지고 낚시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츄이는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작대기를 한 번 바닥에 꽂고 울었다. 레이가 그걸 보고 악의 없이 웃는 순간 츄이가 들어 올린 작대기 끝에 물고기 한 마리가 대롱대롱 걸린 채 나타났다. 레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츄이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레이는 바닷가에 왔으니 생선을 먹는 게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 안 할래?”


  핀이 레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핀은 당장에라도 물속으로 들어가도 좋을 듯한 차림새를 갖추고 있었다.


  “나 수영 못 해.”

  “진짜?”

  “사막에서 자란 애가 수영을 배울 일이 있었겠어? 나 정말로 수영 못 해.”

  “그럼 오늘부터 배우면 되겠네!”


  핀이 레이의 손목을 잡고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가는 바람에 레이도 덩달아 몸을 일으키게 되었다. 기우뚱거리는 다리가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바닷물을 밟았고 튀어 오른 물방울은 레이의 허리 위까지 올라왔다. 핀이 뛰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레이는 핀에게 붙잡힌 팔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볼썽사납게 물속에 빠졌다. 


  핀이 위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나 수영 못 한다니까…!”


  핀은 우스꽝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더니, 레이가 수영을 못 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영으로 레이를 따돌렸다. 분한 마음에 레이는 몇 번 물장구를 쳤다. 그러나 레이는 정말로 수영을 못 해서 핀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발랑 넘어갔다. 레이가 가라앉은 자리에 작은 물거품이 남았다.


  물을 젓는 레이의 팔이 나타나지 않자 핀은 곧장 레이가 걱정되었다. 핀이 한달음에 물거품이 사라져가는 지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레이? 레이, 괜찮아?”


  그 순간 레이의 양 팔이 위로 솟구치더니 핀의 뒤통수를 내리눌렀다. 핀의 다리가 중력을 거슬렀으며 요란하게 물이 찰박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분 뒤 바닷물을 쪼르르 토해내며 핀이 고개를 들었다.


  “한, 저 잘 했죠?”


  레이가 지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레이는 자신의 발 가까이에 있는 바닷가를 그리듯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칭찬을 기대하는 일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한 솔로가 레이를 향해 씩 웃었다. 그곳은 육지와 바다가 똑같은 넓이로 펼쳐진 곳이면서 동시에 레이가 행복할 수 있는 장소였다.


  느리게 모래 위를 걷는 한 솔로의 등 뒤에는 숲이 모래사장과 아슬아슬한 경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카일로 렌은 숲과 모래밭에 모두 발을 걸치고 서 있었다. 그는 해변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적어도 얼굴을 가리거나 망토를 두르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렌의 발은 몇 번 태양이 내리쬐는 모래밭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으나, 그늘을 벗어나면 너무 눈이 부셔서 렌은 금세 숲의 안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렌은 레이와 한 솔로가 있는 밝은 곳을 응시했다.


  그때 묵직한 바구니 하나가 렌의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같이 들어주지 않겠니?”


  레아 오르가나가 부드럽게 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척 보기에도 양이 많아 보이는 열매들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렌은 반사적으로 그녀가 감당하고 있던 무게를 가져갔다. 


  “다른 사람들이랑 나눠먹자.”


  레아가 빛나는 땅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렌은 더듬더듬 자신의 어머니를 따라갔다. 


  츄이는 어느새 잡은 물고기들을 줄로 꿰어서 어깨에 메고 있었다. 많은 것들이 풍족했다. 레이와 핀이 물을 털어내고 있었고 한 솔로가 낚시에 취한 듯한 츄이를 불렀다.


  “잠깐만 기다리렴. 껍질을 벗길 만한 도구가 있을 거야.”


  렌이 천천히 열매들을 내려놓았다. 레아가 가방을 뒤적거렸다. 소매를 전부 걷어 올린 레아의 옷차림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게다가 아무도 그녀를 장군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렌은 덜 익은 부분도 없이 구석구석 빨간 열매 하나를 매만졌다. 


  물 위로 올라오는 츄이의 그림자가 유독 길었다. 레이와 핀은 츄이의 몸이 물 밖으로 다 나왔는데도 끝없이 이어지는 물고기들의 행렬을 보더니 입을 쩍 벌렸다. 렌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이 많은 걸 혼자 다 손질하려고?”


  한 솔로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그가 한쪽 눈썹을 올리고 렌에게 물었다. 


  “그건….”

  “그럼 당신도 좀 거들든가요.”


  어느새 나타난 레아가 당당하게 한에게 주머니칼을 건넸다. 마침 그녀가 챙겨온 칼은 세 개였다. 그리하여 한 가족은 당분이 가득한 과즙이 흐르는 열매의 껍질을 벗겼다. 


  렌은 미묘하게 표정을 찡그렸다.


  세 사람 중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기사 수련을 받은 경험을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껍질을 빠르고 섬세하게 깎아내고 있던 렌은, 문득 자신이 세 사람을 고려한 생각을 해냈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렌은 늘 혼자였다. 수련생들 중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벗어날 마음을 먹었던 것도 그가 유일했고 빛과 어둠을 나란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과제를 받은 사람도 역사를 통틀어 그를 빼면 존재하지 않았다. 렌은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니었다.


  칼을 쥔 렌의 손이 열매의 측면을 긁었다. 과육이 조금 붙은 껍질이 모래밭에 떨어졌다. 렌은 괜히 쑥스러웠다.


  “…하나 정도는 맛을 봐야 하지 않아요?”


  부지런히 껍질을 까고 있던 한과 레아가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렌은 슬그머니 열매를 돌려서 약간 패인 부분을 손으로 가렸다. 그가 묵묵히 열매를 잘게 조각냈다.


  “맞는 말이군. 여기에 이상한 독이라도 들어있으면 어쩌려고.”

  “내가 설마 그런 걸 당신이랑 아들한테 먹이려고 하겠어요?”

  “당신이 야생 열매에 대해서까지 잘 아는 건 아니잖아. 잘 먹으마.”


  한이 열매를 입에 넣었다. 레아가 발끈하면서 뭐라 반박을 하려는 입모양을 만들자 그가 검지를 들었다. 레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숨을 탁 뱉었다. 


  렌은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로 열매의 껍질을 계속 깠다. 확실한 건 렌이 지금 슬프거나 화를 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레이와 핀은 츄이가 잘 꿰어 놓은 물고기들을 줄에서 하나하나 분리하고 있었다. 츄이는 바닷가에서 레이의 작대기를 씻었다. 작은 일이지만 꼼꼼하게 협동하는 모습은 레이의 꿈이 이루어지고, 렌이 분노하지 않는 이 행성과 참 잘 어울렸다.


  그 곳에서 레이와 렌은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벤 솔로라고 언제나 그의 가족을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레이 역시 처음부터 혼자였던 게 아니었다. 얼핏 현실이 역전된 것 같아도, 사실 또 다른 진실이기도 한 환상 속에서 두 사람은 시선을 움직이지 못했다.





  카일로 렌이 눈을 떴다. 그가 머리 위로 손을 내젓자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전등에 천천히 불이 들어왔다. 렌은 눈을 깜빡이면서 전등이 완전히 밝아지는 걸 지켜보았다.


  자신이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소녀의 머릿속을 뒤지다가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들키게 된 사건 이후로, 렌은 여전히 자신이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소녀와 때때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렌은 그것을 아직까지 자신의 스승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 막연한 연결이라는 걸 끊어버릴 이유가 확실하게 없다는 게 그의 이성적인 설명이었다.


 렌은 불을 켰던 자신의 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의 손에서는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그가 단맛 나는 열매의 껍질을 깠던 건 모두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레이는 렌보다는 조금 야단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상체를 세우자마자 머리를 양쪽으로 털었다. 그러나 흩날린 것은 레이의 머리카락이었다. 이미 눈을 떴으니 레이가 방금 전까지 꾸었던 꿈은 사라졌다. 내실 없는 행동을 한 레이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갔다.


  무의식을 공유해버린 두 사람은 침묵했다.


  레이가 곧장 루크에게 달려가지 않고, 렌이 으르렁대면서 처음부터 한껏 불쾌감을 표출하지 않은 이유는 같았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미련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막을 벗어난 레이는 한동안 섬에서 살기까지 했으나 그녀가 진정으로 바랐던 바다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고독한 렌은 어쩔 수 없이 영원히 지나가버린 단란함을 그리워한다. 


  레이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카일로 렌의 흔적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거의 웃을 일이 없어서, 웃는 법을 잊어버릴 지경까지 몰린 그의 미묘하지만 편안한 표정이 기억날 뿐이었다. 레이가 가만히 자신의 입술을 한 번 말았다.


  렌은 하얀색에 가까운 상의 위에 검은 옷을 걸쳤다. 기사의 복장이 하나씩 그의 몸 위에 쌓일 때마다 그가 맨 처음에 입고 있었던 하얀빛 옷은 흐릿해지고 다른 것에 의해 감춰졌다.


  렌은 가면을 쓰기 전에 조금 주저했다. 정녕 그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자신의 순수한 목소리로 그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레이가 말없이 베이지색 재킷을 걸쳤다. 그녀도 이제는 저항군의 표식이 달린 재킷을 입었다. 카일로 렌도 다른 방도가 없어 가면을 썼다.


  카일로 렌이 수련실로 향하는 동안 레이는 그녀의 방을 나섰다. 저항군의 회의실에서는 벌써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StarWarsⅦ/카일로렌&레이] Religion and Reality

- Star Wars 2016. 6. 23. 15:32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 & 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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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Jade


Religion and Reality




  레이는 입술을 깨물면서 라이트세이버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푸른빛 라이트세이버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맞대고 있는 붉은빛 광선은 열기를 내뿜으면서 용암처럼 이글거렸다. 


  “꽤나 훈련을 잘 받았군 그래.”


  레이는 불꽃만큼이나 뜨거운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를 마주하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당신이 포기한 덕분이지.”


  레이가 팔을 힘차게 들어 라이트세이버를 내리쳤다. 공간과 공간이 접붙여진 사이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퍼졌고, 레이의 일격을 막아낸 카일로 렌의 망토가 세차게 휘날렸다. 그의 라이트세이버는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스카이워커는 널 배신할 거다.”


  레이는 그 말에 화를 내고 말았다. 


  “당신이 그를 배신한 거잖아!”

  “세상에 정말로 제다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둠에 자기 자신을 잡아먹히고, 자신의 뿌리까지도 부정한 주제에. 당신의 헛소리는 나한테 안 통해!”


  레이는 카일로 렌의 손목을 내려치기 위해 라이트세이버를 틀었다. 그렇지만 붉은빛 가드가 그녀의 시선을 확 옭아매었고 레이는 멈칫하면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카일로 렌은 계속 건재한 상태로 자신과 검을 함께 불태우고 있었다. 


  “스카이워커가 너에게 아마 제다이란 어떤 존재들인지 말해주었을 테지. 우주의 섭리가 그 자신의 보존을 위해 만든 것 같은 균형의 화신들이자 빛의 기사들. 평화가 생겨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 것 같은 집단. 제다이는 언제나 옳은 것을 추구하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우주를 위협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거야. 그렇지 않나?”


  레이는 어떻게 대답하는 게 영리한 것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카일로 렌의 검을 막고만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성서가 아니야.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도록 빚어진 존재다.”


  두 사람의 거리가 멀어졌다. 레이는 검을 완전히 내리지 못하고 라이트세이버로 자신의 미간을 가리며 카일로 렌을 바라보았다. 카일로 렌의 검은 레이의 것보다 조금 더 땅을 향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그의 발 옆에 있는 흙과 풀이 녹아내렸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다른 누군가의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추상적인 신념의 사자로 간택 당했으나 동시에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인 사람의 모습을 시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제다이라는 건 어떤 종교적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인간이 자신의 모든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직 정의와 균형이 의인화된 것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성과 교육, 사회와 규율과 같은 그 온갖 합리적 기제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언제나 감정과 본능에 굴복한다. 제다이는 결국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부정하는 비현실적인 허상이다. 인간이 완벽히 제다이가 되는 건 불가능해. 그건 스카이워커도 마찬가지였다.”


  “루크는 그 누구보다 훌륭한 제다이야.”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레이는 그저 자신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레이는 곧장 카일로 렌을 공격할 수 있도록 어깨와 손에 힘을 주고 라이트세이버를 가까이 하고 있었다. 반면 카일로 렌의 검 끝은 아직도 땅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레이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만 카일로 렌은 레이보다 평온했고 초연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위치를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한 번 읽어보지 그래? 그럼 내가 거짓을 말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


  붉은 빛이 꿈틀댔다.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는 줄곧 그렇게 꿈틀대고 있었으나 레이는 비로소 그것을 느끼고 거기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카일로 렌이 알고 있는 것들이 그의 붉은 라이트세이버와 함께 천천히 레이의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현실을 선택한 거다. 마지막 제다이라는 자도 스스로 지키지 못한 제다이의 법칙 따위가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거지? 제다이라는 건 결국 인간에게서 인격을 빼앗고 그를 단 하나의 문장밖에 말하지 못하는 책으로 만드는 일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해. 그렇지만 다크사이드는 현실이다. 적어도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아.”


  카일로 렌과 그의 검이 천천히 레이의 시야를 점령했다. 아직 그의 내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레이는 눈동자만 이리저리 떨고 있었다. 이전에 잠깐 보았던 카일로 렌의 머릿속은 온갖 색이 섞여 있어서 다소 혼란스러웠다면, 지금은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붉은 살빛이 가득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레이는 지나친 야생성은 혼돈보다도 버거울 수 있음을 깨달았다.


  카일로 렌이 서서히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레이에게, 다크사이드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인간적인 가르침이라고 속삭였다. 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당신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당신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붉은 라이트세이버가 그의 유구한 광기를 폭발시키듯 치솟았다. 레이는 그것에 베어져 두 동강이 나는 것이 그녀 자신인지, 루크 스카이워커인지, 아니면 제다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Original Date 2015. 12. 20.

[StarWarsⅦ/카일로렌] The First Order

- Star Wars 2016. 6. 23. 15:31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Ⅶ : The Force Awakens, for Kylo Ren

- Written by. Jade


The First Order





  세상에는 존재하는 인간의 숫자만큼 본디 하나여야 하는 이른바 ‘첫 번째 규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있어 첫 번째 규율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다시 생겨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겐 더없이 소중하며, 우주의 이치를 따져보아도 역시 중요한 인물이 흔들리고 타락하는 것이 세상과 사람 모두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그는 온 인생을 통하여 체감했다. 만약 루크 스카이워커가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첫 번째 규율로 그것을 선택했다면, 그는 결과적으로 그것을 저버리게 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레아 오르가나의 첫 번째 규율이란 이 은하에서 제국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워내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제국은 악이며, 곧 포스의 어두운 면모에 취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인간의 또 다른 운명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생이 다 하는 날까지 누군가의 부모나 아내라기보다는 모두의 공주, 혹은 장군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어쩌면 진정한 악과 싸우는 방법을 체득하고 실현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으므로,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첫 번째 규율로 삼지 않았더라도 언제나 장군으로 남들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숙명을 가진 건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한 솔로가 가슴에 품은 첫 번째 규율은 아들과 친우의 귀환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한 솔로는 어떻게 해서든 밀레니엄 팔콘호에 올랐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은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사람의 법칙은 카일로 렌에 의해서 모두 무너졌다. 스카이워커이자, 오르가나이자 또한 솔로인 그가 자신의 피와 이름을 하나씩 부정하면서 또 하나의 ‘첫 번째 규율The First Order’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일로 렌은 정작 자신의 첫 번째 규율을 눈앞에 두고 그것을 자꾸만 다잡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가 고개를 숙이기도 했고, 어깨를 부르르 떨다가도 심장이 멈추기라도 한 듯 조용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검은 껍데기 하나가 카일로 렌의 몸부림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카일로 렌은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규율을 공고히 해줄 하나의 기억을 또 더듬고 있었다.


  —왜 반박을 하지 못하시죠?


  벤 솔로는 점차 자신을 잃어가는 표정을 지으며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쏘아붙였다. 


  —당신만큼 그 진실이라는 걸 잘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제 말에 반박하지 않으세요? 말씀해보세요, 당신이 당신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당신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루크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벤 솔로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 순간 루크의 마음을 읽었다. 루크는 자신이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죽음과 어떠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영영 다스 베이더로 남을 수 있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자극했고, 그것이 아나킨으로 하여금 자신의 변질된 생을 놓아버리게 만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였다. 루크는 벤 솔로에게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벤 솔로는 결국 죄를 저지른 기사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의 스승을 비웃었다. 그것이 벤 솔로와 루크 스카이워커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자신을 기만하려고 든 루크 스카이워커에 대한 분노를 다시금 키우며 자신이 아는 진리를 또 곱씹었다. 다스 베이더는 황제를 죽여 은하제국이 붕괴되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나 시스의 법도를 따른 그의 행동은 존중받아야 했다. 그가 잘못한 점이라고는 결국 그를 배반하게 될 루크 스카이워커를 제자로 삼으려고 했다는 것밖엔 없었다. 다스 베이더는 그런 점까지도 시스와 다크사이드의 모든 점을 아우르고 있었다. 


  카일로 렌은 다스 베이더의 투구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자신이 한 솔로를 죽인 것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타락을 저질렀음에도 최후의 제다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귀에 들어가 그의 마음을 찢어놓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카일로 렌은 투구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세 사람의 규율이 무너지고, 한 사람의 규율은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스노크의 첫 번째 규율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꿈틀대고 있었다. 


  그는 카일로 렌이 다스 베이더를 만나고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법칙을 위해 포획한 일종의 열쇠나 다름없는 그 청년은 자신의 거짓을 너무나도 잘 흡수하고 있었다. 스카이워커이면서 오르가나이고, 솔로이기에 강하지만 그 모든 잠재력을 한꺼번에 짊어지기에 어린 솔로의 감성은 얇은 유리처럼 연약해서 스노크는 한 번 그가 다크사이드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심지어 그는 수련을 통해 포스를 키우면서 매듭이 풀리려고 하는 스노크의 거짓말을 스스로 조이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이 아직 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영리함이 불러온 부작용이자, 스노크에겐 폭소를 터뜨리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작용이었다.


  스노크는 그만 즐거운 상념을 거두고 자신의 약하고 소중한 제자를 불렀다.


  아직 다 잡히지 않은 카일로 렌의 첫 번째 규율이 우뚝 서는 순간, 스노크의 규율은 은하 전체에 뿌리를 내릴 것이며 세상에는 진실로 최초이자 마지막 규칙이 정립될 것이었다. 스노크는 자신의 부름을 느끼고 눈앞으로 다가온 카일로 렌에게 말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너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투구 뒤편에서 카일로 렌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네 손에 의해 죽어야 한다.


  스노크는 카일로 렌의 내면을 주시했다. 다 메워지지 않은 균열이 그에게 약간의 충격을 주었다. 스노크는 자신의 제자가 답변을 내놓는 데에 시간이 걸릴 줄 예상하고 의자에 등을 조금 기댔다.


 그 때 카일로 렌이 말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마스터.”


  레이가 땀을 닦으면서 라이트세이버를 거두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그녀에게 짧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스노크는 자신의 암흑으로 카일로 렌을 안았다. 빛과 어둠의 규율이 은하의 양 끝에서 움트고 있었다.




Original Date 2015. 12. 20.



[StarWarsⅦ/카일로레이] The Horse of Light

- Star Wars 2016. 6. 23. 15:30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Rey

- Written by. Jade


The Horse of Light 




  레이는 두 가지 사실을 들었다.

 

  한 솔로가 사라지자 그녀에게 나타난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녀가 몹시도 바랐던 연대감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주었다. 레이는 그 모든 것들에 만족했지만 한 가지를 더 원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포스를 깨달았던 그 강렬한 순간과 뗄 수 없는, 한 남자가 안고 있는 혼돈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악의 기사가 숨기고 있는 심연 속에는 억지로 빛을 빨아들이려고 하지만 그것을 없애지도 못하고 종국에는 자신의 깊숙한 곳에 저장하고 있는 꼴인 고장난 블랙홀이 있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레이가 두서없이 늘어놓은 표현들에 이미 카일로 렌의 본질이 녹아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몫으로만 남게 된 것을 카일로 렌의 진실과 함께 레이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이 레이가 들은 첫 번째 진실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과 상충되는 두 번째 진실을 들었다.


  레이는 스카이워커로부터 이어받은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쩍쩍 갈라지는 공기가 휘날리는 행성 위에 섰다. 카일로 렌이 홀로 파괴했다는 마을은 공중에서 대규모의 습격이라도 받은 것 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그 마을은 저항군들과 줄이 닿아 있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보급 기지 같은 곳에 불과했다. 혹자는 드디어 완전히 다크사이드에 빠진 카일로 렌이 시간을 죽이기 위하여 그 마을에 내려온 거라고 얘기했다. 레이는 완전히 베어져 재생조차 되지 않는 땅의 균열을 바라보며 루크의 말을 떠올렸다.


 "아주 먼 옛날, 어떤 사람들이 적진에 목마를 투입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일화가 있어. 들어본 적 있니?"


  레이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아뇨."


  "그들은 아주 큰 목마를 만들어 놓은 다음 갑자기 퇴각했지. 적군들은 그 목마가 자신들에게 바치는 전리품인 줄 알고 요새 안으로 들여 놓았는데, 사실 그 안에는 병사들이 가득 들어있었어. 결국 목마에서 뛰쳐나온 병사들에 의해서 적군은 궤멸되었지."


  레이는 눈을 조금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릎을 접은 상태로 앉아 있었는데, 산봉우리처럼 솟은 두 무릎 위에는 레이와 루크의 라이트세이버가 올려져 있었다. 

 

  "벤은 이를테면 그 목마와 같단다. 빛의 목마지."

  "네?"


  "제다이와 다크사이드, 이 두 개를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갈라 놓고 이 두 가지만 충돌시키는 걸로는 다크사이드를 완전히 궤멸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런 방법을 고수하는 한 우리는 끝없이 억압 받으면서, 고통스럽게 투쟁하면서 또 누군가가 힘없이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할 게 분명했어. 그래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제다이와 다크사이드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 수 있지만, 절대 어두운 곳으로 치우치지 않을 사람을 찾아내야 했어."


  "그게 카일로 렌이라고요?"


  "그는 유약하지만 그의 본질은 분명한 빛이다, 레이. 그의 겉은 까맣게 칠해져 있지만 그걸 벗겨보면 새하얀 빛이 자리잡고 있지. 단지 그 검은 칠이 너무나 오래 되어서 그의 피부에 달라붙고 있을 뿐이야. 그래서 그 조차도 자신이 영원한 빛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말이다."


  그러면서 루크는 레이의 어깨를 잡았다. 루크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무슨 부탁을 할지 직감한 레이는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루크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의 증오만을 키우는 존재다. 그는 현재 다스베이더를 신봉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너는 다를 거야."


  너도 그 아이의 본질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잖니. 레이는 차마 거기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레이의 머리 위에서 인공적인 바람이 불었다. 레이는 반사적으로 무기를 손에 쥐고 고개를 들었다. 날카롭게 날개를 세운 그림자가 하늘과 땅을 양분했다. 그것은 한동안 레이를 응시하듯이 고도를 조금 낮추고 가만히 떠 있었다. 레이는 날개를 보았고, 더 나아가서 그 안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렌 기사단의 비행선이 서서히 하강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언제나 그녀가 거부할 수 없는 현명함으로 그녀에게 일렀다. 짙고 두꺼운 장막만 내리면 빛은 그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 같지만, 또한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또한 빛이라고 알려주었다. 루크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한 자였으므로 레이는 그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비행선의 밑바닥이 열리고 경사로가 내려왔다. 레이의 라이트세이버가 빛났다. 동시에 비행선 안쪽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루크가 은신하고 있던 절벽에는 바닷바람에 날아가지 않은 게 신기해 보일 정도로 허름한 집밖에 없어서, 레이는 루크가 이야기한 목마를 머릿속으로 상상해야만 했다. 검은색으로 두껍게 칠해진 목마. 입맛대로 무언가를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도 아주 넓은 데다가 자신들의 패권을 상징하는 색깔을 번쩍이고 있는 그 거대한 선물은 누구에게나 몹시도 유혹적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목마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숨 죽이고 있어야 하는 생명들에게는 가혹함을 더할 게 분명했다. 어둠이 조성될 수 있는 특정한 여건이 있듯이 빛도 그 자신이 빛이기 위해서는 작은 여유가 필요했다. 


  레이는 푸른색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카일로 렌을 마주했다.


  그는 처음부터 투구를 벗은 채 지상으로 내려왔다. 레이는 그의 눈동자에 아주 예리하게 균열이 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양쪽에서 어둠을 명령받은 그는 정말로 새까맸다. 


  "너를 찾고 있었다."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는 평상적인 형태로 기울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그것이 지나가기만 해도 대지는 큰 상처를 입고 자신의 맨살을 벌렸다. 레이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레이는 카일로에게서 빛을 찾으려 애썼다. 그녀가 라이트세이버를 들면서 자신의 앞을 비추었다.


  "나도."


  레이의 푸른빛은 카일로에게도 살짝 닿았다. 그것은 루크의 또 다른 제다이였던 그가 어둠 속으로 침투했던 것처럼, 카일로 렌의 검은 옷자락 위에 어렴풋이 내려앉았다. 


  "너를 만나려고 했어."


  카일로 렌이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빛의 목마에 달라붙은 검은 때를 벗겨내야 할 시간이었다. 




Original Date 2015. 12. 24.



[StarWarsⅦ/카일로레이] (Untitled) (for practice)

- Star Wars 2016. 6. 23. 15:29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 & Rey

- Written by. Jade




  그는 꿈을 꾼다. 붉은빛이 번뜩인다. 자신만의 독재를 성립하면서 비틀린 희열을 느끼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앞질렀다는 것에 만족해한다. 어둠은 냉정하지만 다른 이들을 더욱 차갑게 만듦으로써 열기를 생성할 수 있다. 그것은 고급스럽지만 해로운 술처럼 매혹적이고, 바닷물을 모두 들이키는 것처럼 위대하나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남자는 처음으로 푸른색이 아니라 붉은빛이 넘실거리는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희열과 혼돈 사이를 오가다가, 자신의 눈앞에 쏟아지는 장애물 같은 것들을 있는 대로 베어 넘겼다. 그의 눈앞을 지나갔던 건 인간들이었다. 그는 죽은 이들의 피와 그림자를 뒤집어썼다. 라이트세이버와 피와 불길이 질서 없이 넘실거렸다.


  그의 꿈은 과거였고 현실이었다. 그저 잘게 쪼개졌다는 것밖에 확신할 수 없는 조각들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실금과 같은 상처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는 그가 몇 번이고 걸었던 길에서 몇 번이고 똑같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몇 번이고 그것이 단순한 방해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동작들로 그것들을 동강냈다. 빛과 어둠은 나란히 화르륵대면서 그의 샤이를 어지럽혔다. 그에게 때때로 그 두 가지는 똑같은 것으로 보였다. 모두 완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고, 그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자신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불편한 사슬들이었다.


  그가 가장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고, 그 어떤 상항에서도 분별이 가능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뿐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죽는 꿈을 꿨다. 그가 분명히 의도했으나 한편으로는 갑작스럽게 치솟는 것 같은 붉은색 라이트세이버는 그의 아버지를 찌르기에 앞서 그의 눈부터 찔렀다. 그는 꿈속에서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면서 왜 고맙다고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죽음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의 라이트세이버는 꿈속에서 제일 격렬하게 타올랐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 또한 똑같은 처지가 되었다는 것만 되풀이해서 인식했다. 그는 어둠의 중력에 이끌려 낙하하고 있었다. 자신의 무기가 아버지를 찔렀다. 그가 갈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낙하했다.  


  그러나 레이가 카일로를 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이는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를 잡은 것이었다. 간신히 가드 부분을 잡긴 했지만 양 옆과 위쪽으로 이글대고 있는 광선 때문에 레이는 표정을 찡그렸다. 각도가 조금만 틀어지면 손잡이 부분의 광선이 레이의 손등을 짓이길 게 분명했다. 카일로 렌은 자신의 무기를 뺏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검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녀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네가 행운아인 줄 모르지?”


  레이는 그의 악몽을 다 보았음에도 그렇게 운을 뗐다. 카일로가 고개를 틀었다.


  “네가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네가 한 번 돌아서기만 하면 언제든 너를 받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게 행운인 줄 알지 못해.”


  그 말에 카일로는 반사적으로 반박했다.


  “나를 반겨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내가 돌아갈 곳은 어둠뿐이다.”

  “루크가 너를 기다려.”


  그 순간 카일로의 머릿속에서 너무나 강렬한 스파크가 튀는 바람에 레이도 움찔해버렸다. 뚝뚝 잘려나간 제다이들의 흔적 가운데에서 웃는 것도 아니고, 포효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를 루크 스카이워커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으면서 동시에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표정들을 다 안고 있었다. 레이는 카일로가 제다이들을 죽인 걸 절대 즐기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서서도 꿈을 꾸었다. 그는 서 있어도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였으며,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빛에서 어둠을 찾는 역설을 끊임없이 범하는 유약한 존재였다. 


  “너는 어머니도 있지. 그 분도 너를 기다려.”


  레이는 점점 자신의 손등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그녀는 조금 더 카일로 렌의 검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릴 수는 있어.”


  살아 있는 자가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다면, 반대로 죽은 자가 누군가를 기다릴 수도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레이는 그것을 믿었다.


  카일로가 순간적으로 손목을 힘 있게 비틀었다. 레이의 손등에 길게 그을린 자국이 남으면서 레이는 끝내 카일로의 라이트세이버를 놓게 되었다. 


  카일로는 레이의 손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 분명히 그것을 베어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레이의 손을 자르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카일로는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

  “그것 참 부럽네.”


  레이가 미간을 찡그리면서 손을 털었다. 이전보다 강화되기라도 한 건지, 레이의 피부는 깊게 찢어져 종이의 끄트머리가 동그랗게 타들어가듯이 부서진 가루를 날리고 있었다. 레이는 카일로가 자신의 생각을 들춰보려 한다는 걸 직감했으나 굳이 막으려 하지 않았다.


  “정작 넌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널 기다려주니까.”


  그것을 끝으로 카일로 렌은 침대 옆 협탁을 잡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여태까지 카일로는 자신의 꿈을 관람하는 한 사람의 관객이었다. 그의 과거는 꿈속에서 그저 상영되는 하나의 영상처럼 그를 객관적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었고, 그는 무의식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카일로는 지금까지 그것을 자신이 발전하고 있는 증거라고 여겼다. 죄악에 무감해지는 과정이야말로 다크사이드를 잇는 기사의 자질이었다. 카일로는 드디어 자신을 조금씩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젠 행방조차 묘연하게 된 소녀가 스스로를 상처 내면서 그것을 대가로 그의 의식을 깨우고 있었다. 


  통신기가 작은 기계음을 내면서 반짝였다. 장교 한 명이 토벌이 예정된 행성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는 간단히 응답을 보내고 기사의 복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너는 네가 행운아인 줄 모르지?


  카일로는 슈트를 입고 장갑을 꼈다.


  —부럽네.


  그는 힘껏 자신의 몸을 조였다. 벨트와 라이트세이버를 장착하고 나니 남는 것은 투구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널 기다려주니까.


  카일로가 레이의 목소리에게 답했다.


  “너도 날 기다려야 할 거다.”


  최후의 빛을 섬멸하기 위한 집착 어린 말살전이 시작되었다. 카일로 렌은 오늘 한층 더 잔인해질 것이었다. 그것이 빛을 잡아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Original Date 2015. 12. 24.


[StarWarsⅦ/카일로레이] Foundation of the Moonlight

- Star Wars 2016. 6. 23. 15:29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Rey

- Written by. Jade


Foundation of the Moonlight





  천 일이 넘는 시간을 혼자 벽을 긁으면서 생활했던 레이가 자쿠에서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점은 하늘이 맑다는 것이었다. 인구 자체도 많지 않고 기술 따위는 완전히 죽어버린 땅에는 공해랄 것이 없었다. 덕분에 자쿠에서는 가장 또렷하게 태양과 달과 별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깨끗한 하늘 아래는 먼지 같은 모래만 깔려 있어서 거주자에게 전혀 아늑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조차 길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레이는 그래도 때때로 여명이나 월출을 감상했다. 하늘에도 대지에도 아무것도 없는 와중에 거대하게 떠오른 무언가는 레이를 압도하는 어떤 힘을 갖고 있었다. 


  쓸 만한 쇠붙이를 구별하는 법이나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외에는 거의 배운 게 없는 레이는 천문학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자쿠에서 살 때 레이는 태양의 빛과 달의 빛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몰랐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밤에 달이 뜨는 이유가 태양이 떠나간 자리를 메워서 하늘이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가끔 레이가 달빛을 따뜻하게 여겼던 건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제 레이는 자신이 한때 따뜻하게 생각했던 달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았다. 달의 마음씨가 온화해서 밤하늘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 빛을 발했던 것이 아니었다. 달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빛을 반사할 뿐이었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사원에서 생활한 지 8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앉아서 하늘 위를 올려다보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온 스카이워커에게, 레이는 어째 자쿠에 있을 때보다 달이 작게 보이는 것 같다고 혼잣말을 한 적이 있었다. 스카이워커는 그렇게 보이느냐며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주었는데 레이는 공연히 움찔해서 자쿠에 있었던 때가 그리워서 한 말은 절대 아니라고 덧붙였다. 제다이는 웃었다. 새로 제자를 맞아들이고 나서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카이워커는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레이에게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레이는 아예 풀밭에 누워서 달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하늘도 충분히 맑았다. 


  스카이워커가 그 때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는 왜 그가 자신에게 태양과 달에 대한 얘기를 했는지 우연찮게 느껴버렸다. 아마 몇 가지 변화가 제다이의 마음을 조금 촉촉하게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당시에는 레이가 거의 조절하지 못했던 포스가 여려진 기사의 내면으로 흘러들어, 루크 스카이워커가 달을 보면서 그가 구원하지 못한 제자를 생각하고 자신은 태양도 달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기에 혼자서 태양이 되려고 애쓰는 자신의 여동생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레이에게 반사시켰다. 레이는 갑자기 발밑에 쿵 떨어진 원석 덩어리를 만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레이는 그것을 옮길 힘도 없었고 그것을 작고 아름답게 깎을 수 있는 기술도 없었다.


  여하튼 레이는 본의 아니게 스승의 속내를 훔쳐본 것 같아서 더욱 열심히 포스를 제어하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 그리고 이제 레이는 스카이워커의 내면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레이는 잠깐 고개를 돌려서 스카이워커가 있는 사원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 레아 장군이 밀레니엄 팔콘으로 연락을 넣었다. 스타킬러 베이스가 파괴된 이후로 잠잠한 듯 보이던 퍼스트 오더가 대(對)행성계 장비가 아니라, 카일로 렌과 그의 기사단을 앞세워 은하를 유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의 신속하고 무자비한 살육에 벌써 저항군을 지원해주던 몇몇 행성의 기지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분명히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사원에서 나와 다시 한 번 어둠을 마주하고, 다시 한 번 티끌 없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누군가와 맞서 싸우라는 부름이었다. 스카이워커는 그런 레아의 말을 듣고서도 알았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레이는 달을 마주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피하는 하늘과 바람과 빛이 그녀의 사방을 건드렸다. 달은 커다랗고 새하얬다. 창백하고 투명할 정도로 하얘서 움푹 패인 자국들이 보일 것만 같았다. 레이는 자신의 스승이 정말 모든 것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검고 붉게 보이지 않아도 달은 카일로 렌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달은 유독 큰 것 같구나.”


  레이가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스카이워커가 로브의 앞을 묶은 채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는 머리카락이며 등에 붙은 풀들을 떼어내고 스승을 맞았다. 스카이워커는 레이의 옆에 서서 오른쪽에 붙어 있는 풀잎사귀를 하나 가져갔다. 레이의 볼이 쪼그라들었다. 


  “같이 구경해도 될까?”

  “그럼요.”


  레이는 자신이 한 번 누워 있었기에 맨질맨질한 자리를 가리켰다. 그렇지만 스카이워커를 다른 곳에 엉덩이를 붙였고 레이를 그녀가 있던 자리에 앉혔다. 레이의 눈썹이 한 번 솟았다가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는 아직도 스카이워커를 지나치게 다양한 표정으로 마주하곤 했다. 


  루크 스카이워커 본인이 스스로 자신과 선을 긋고 그 사이에 고통과 비극을 세웠던 달빛이 그의 얼굴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빤히 보았다. 실제로 달빛은 해롭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서 스카이워커의 얼굴은 그저 은은하게 빛날 뿐 그 위에 어떤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레이는 문득 스카이워커가 보는 항성계가 궁금해졌다. 그의 세계에서 태양은 태양 같지 않고, 달은 달 같지 않으며 대지는 전혀 따뜻하지 않아서 그 위에 존재하는 것조차 힘겨운지 물어보고 싶었다. 누구도 루크 스카이워커가 가진 무게를 짊어지면서 살지 않았다. 레아 장군이 그나마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곁에는 그나마 그녀를 도와주는 누군가들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스카이워커의 은둔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시에 비난하지도 않았다. 


  스카이워커가 말했다. 


  “그 때의 일은 네가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단다.”

  “네?”

  “내 마음속을 들여다봤던 일 말이다.”


  레이의 어깨가 크게 요동쳤다. 


  “아, 알고 계셨어요?”

  “포스가 나를 뚫고 지나가는 걸 느끼지 못할 리가 없지. 다만 그걸 네 자신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란다.”


  레이가 조금 고개를 숙였다. 이미 온몸으로 유감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레이는 그래도 입을 열었다. 


  “…그래도 죄송해요.”


  스카이워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도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뒤로 스카이워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 달이 가득했다. 그의 위대함은 그토록 많은 일을 겪고도 그가 아직 제다이이고 스카이워커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그의 가치를 세우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심연을 끊어 놓는 비극들이었다. 평범한 감수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끌리게 되는 그 숭고함 탓에, 레이는 어쩔 수 없이 변절한 벤 솔로 같은 달을 한가득 눈으로 끌어안고 있는 스카이워커의 심경을 헤아려보려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빛을 반사하는 달에겐 아무래도 스카이워커가 주는 빛이 성에 차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불현듯 레아 장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슬픈 소식이 날아오는 행성마다 생명을 태운 라이트세이버의 뜨거운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제어되기를 포기한 듯한 그 강렬함이 때로는 진짜 불꽃을 피우고 간다는 말도 했다. 설원에서 쓰러졌던 카일로 렌은 그렇게 불길에서 부활한 것 같았다. 


  “달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렴. 우주에 두 개의 태양이 있었다면 달은 어땠을까?”


  레이는 스카이워커의 가정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두 개의 태양이 나란히 달에게 속삭이는 거야. 내가 빛을 주겠다고. 네가 만약에 달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니?”


  스카이워커는 뻔한 은유를 쓰고 있었다. 레이는 그것을 고려하면서 조심스럽게 답변을 만들어보았다. 달이 두 태양을 모두 품을 수 없다는 건 현실에서도 비유에서도 명백했다. 레이가 천천히 대답했다. 


  “…선택을 해야 했겠죠. 두 개의 태양빛을 다 받아들였다간 제 몸이 타버릴 수 있잖아요.”


  “그래. 만약 우주에 태양이 두 개 있었다면 달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을 해서 하나의 태양을 선택했을 거다. 자신이 그 빛을 끌어안을 대상을 말이야.”


  레이는 잠자코 있었다. 자신이 먼저 그 선택의 기반이 되었던 판단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스카이워커는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 달로부터 외면당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네가 이곳을 떠나면 그는 다시 두 개의 태양을 만나게 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네가 달의 태양이 되어라, 레이.”


  “장군님은 저만 부르신 게 아니에요.”


  “그는 옛날에도 나를 부르지 않았단다. 그의 목표에 비해 내가 줄 수 있는 건 너무도 작았으니까. 내가 여길 벗어나서 저항군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어쩌면 여기서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작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너는 다르단다, 레이. 그가 너를 부르고 있으니까. 적어도 나보단 너에게 더 가능성이 많을 거야.”


  “루크!”


  스카이워커는 레이가 이름을 부를 때 가끔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달을 담은 스카이워커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삶 자체보다 더욱 버겁고 끝없는 불운과 비극에 시달리는 그를 마주하자 레이는 어깨를 내렸다. 스카이워커는 조용히 제다이와 사원을 지키는 일만 맡아도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레이가 루크 스카이워커의 짐을 덜어주는 누군가가 되어야 했다. 


  “달빛의 근원이 되렴. 그게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다.”


  레이는 기어코 눈을 글썽였다. 스카이워커는 그녀를 안아주는 것조차 하나의 위선으로 여겼으므로 그녀를 그저 인내심 있게 바라봐줄 수밖에는 없었다. 그 행동만이 레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였다. 


  그 밤 내내 달은 차갑게 빛났다. 


  스카이워커는 자신이 맞게 된 마지막 제자가 될 소녀의 허리에 자신의 라이트세이버를 잘 묶어주었다. 밀레니엄 팔콘호의 엔진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며 열기를 발산했다. 츄이가 이륙 준비가 다 되었다고 울었다. 레이는 있는 힘껏 팔콘호에 올라서 레버를 위로 당겼다. 우주선의 그림자 아래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의 옷깃이 흩날리고 있었다.


  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부턴가 몹시도 예민해진 그녀의 적이자,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업보이자, 귀환을 재촉해야 하는 기사는 밀레니엄 팔콘의 상승을 첫 순간부터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이 하달 받은 하찮은 말살 명령을 해치워버리고 그곳으로 향하고 싶었다. 밀레니엄 팔콘은 그에겐 일종의 무덤이었다. 그 우주선에는 언제나 그가 죽여야만 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한 개의 태양을 받들고 있는 달에게 더 이상의 빛은 필요치 않았다.


  레이는 밤이 자신을 통째로 흡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목소리를 들었다. 레이는 끝까지 레버를 놓지 않았다. 그녀는 상처 깊은 스카이워커가 감당하지 못했던 그 변화무쌍한 유약함을 정면으로 받아칠 것이었다. 


  밀레니엄 팔콘은 서서히 빛처럼 날기 시작했다. 곧 우주선은 빛이 되었다.




Original Date 2016. 01. 03.

 

[StarWarsⅦ/카일로레이] Pistorious (Sample)

- Star Wars 2016. 6. 23. 15:28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 & Rey

- Written by. Jade


Pistorious

Inspired by works of Hermann Hesse




  레이는 뚝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는 정말로 레이가 들은 시각, 레이가 들은 바로 그 장소에 앉아 있었다. 레이는 남자가 참 지독하다는 생각에 홧김에라도 발을 한 번 더 떼고 싶었지만 다시 멈칫하며 제자리에서 발만 굴렀다. 소녀의 유약함이 그녀의 어깨를 슬금슬금 잡으려고 했다. 레이는 자신이 왜 이런 복잡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는 이제 대학에서 첫 번째 겨울을 맞이하게 된 신입생으로, 학문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녀의 먼 친척뻘 되는 남자가 그녀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공부를 할 것을 추천해 줬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먼 친척이라는 남자가 꽤 혜안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아무도 레이가 고작 5년 전에 처음 소설책이라는 걸 읽어봤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입학하면서 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으나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녀의 선택에는 사실 그녀의 학문적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소양이 높았다는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레이는 되도록 그를 닮고 싶었던 것이다. 레이가 선택한 전공과목 외의 수업들이 다른 어문학과 예술에 치중되어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므로 레이는 독문학을 다룬다는 교양 수업을 클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문학과의 전임 교수 중 한 명이라는 담당 교수는 키는 멀대 같이 컸지만 나이는 상당히 많았다. 딱 다섯 명의 작가만 알고 가라는 말과는 다르게 첫 주부터 괴테를 꺼내 들어서 학생들을 당황시키기는 했어도 그 교수의 수업은 유익한 편이었다. 레이는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다가올수록 그 수업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날은 레이가 모자를 거의 벗지 못할 정도로 이상하게 추웠다.


  문턱에 키 큰 그림자가 걸렸다. 레이는 음료수 병을 놓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많은 남학생들을 키로 제압해버리던 그 노교수보다도 더 길쭉한 다리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교수가 아니었고 레이가 학교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목덜미를 덮는 까만색 곱슬머리를 가졌고 전방을 향해 다소 서늘한 눈빛을 흘렸다.


  “저번 주말, 이 수업을 담당하던 교수님이 평소 지병으로 인해 급히 병원에 가셨다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레이가 눈썹을 크게 올렸다. 남자는 꼭 보고를 하는 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회복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수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해당 수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된 바, 앞으로 남은 4주간의 수업은 내가 맡기로 했다. 여기까지 질문이 있는 학생은 말하도록.”


  남자는 평상적인 자세로 학생들을 향해 말했지만, 학생들은 공연히 경직되어서 입을 뻐끔거리지도 못했다. 남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러한 긴장들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지. 이번 주부터 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헤세에 관한 내용을 다루게 된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책장을 펼치는 소리가 났다. 레이도 그 소음에 휩쓸려 책을 펼쳤다. 사라락거리는 소리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자 남자는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헤세는 대중들에게 소설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지만 본래 그가 꿈꿨던 것은 시인이었고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낭만적인 치열함과 서정적인 성숙함은 소설과 시를 구분하지 않고 헤세의 작품에 적용되는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지.”


  레이는 펜을 한 번 굴려 손에 똑바로 쥐었다. 그녀는 남자가 어떠한 교수법을 보여줄지 집중했다.

이윽고 남자는 풍부한 성량을 가진 목소리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목표도 없이 떠도는 것은 젊은 날의 즐거움이다.”


  레이는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젊은 날과 함께 그 즐거움도 나에게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목표나 의지를 의식하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남자는 감성에 젖지도 않은 듯 보였고 시를 기억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는 그의 큰 키가 하나도 줄어들거나 구부러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한 채 눈을 뜨고 계속 시를 외웠다. 얼핏 기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자세로 남자는 진실하게 시를 읊었다. 문학 수업을 듣는 게 본분인 레이조차도 쉽게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목표만을 좇는 눈은

떠도는 재미를 알지 못하고

여로마다 기다리고 있는

숲과 강과 갖가지 장관도 보지 못한다.


나는 떠도는 비결을 계속 배워 나가야 한다.

순간의 순수한 빛이

동경의 별 앞에서도 바래지지 않도록.


여행의 비결은 이것이다.

세계의 행렬에서 함께 몸을 숨기고

휴식 때도 사랑하는 먼 곳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


  남자의 목소리가 끊겼다. 눈을 깜빡이고 입술을 움직이는 걸 보니 잠시 나름의 휴식을 취한 모양이었는데, 그것이 학생들에게는 시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격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은 무뚝뚝한 인상의 남자가 툭 던진 대문호의 시를 얼떨떨하게 받아든 채 눈을 굴리고 있었다.


  한편 레이는 남자가 참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단히 젊어보이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높게 쳐 주어도 30대를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남자가, 노교수를 대신하여 선 자리에서 젊음을 이야기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것으로 남자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가진 것을 깨달으라고 일침한 거나 다름없었다.


  “방금 말한 시의 제목은 ‘여행의 비결’이다.”


  레이는 정면을 보면서 시의 제목을 적었다. 누구라도 레이처럼 종이를 내려다보지 않고 그것을 적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친 건 레이밖에 없었다.

 

  남자가 눈을 좁혔다. 레이는 하마터면 고개를 갸우뚱할 뻔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강의실에 들어와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남자가 발을 뗐다. 그는 레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영감이 되는 것이 있다. 젊음이 그 중 하나지. 그 시기에 인간이 겪는 모든 일들은 인생을 위한 가장 비옥한 양분이며 다신 얻을 수 없는 원석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챙기고 싶다면 그만큼 떠돌아야 해. 모두가 멈추고 있을 때 움직이고, 한편으로는 멈추면서 동시에 움직여야 하기도 하는 것이다.”


  펜이나 연필이 달싹거리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말은 종이에 기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레이는 거의 뒷모습이 되어가려고 하는 남자의 까만 옆모습을 부지런히 눈으로 쫓았다.


  “어떤 목표에 정착한다는 것은 인생에 안정성을 가져다주지만 그만큼 인생을 폐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목적지를 정한 이상 나의 인생은 그것을 향해 가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옆을 보는 것을 일종의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허락하지 않게 되지. 게다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은 인생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대가로 자신의 자유를 조금씩 반납해야만 하니까.”


  레이는 자신이 쓴 영화의 각본이 큰 인기를 얻어서 초빙 교수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의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을 때는 각색과 사실을 구분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것은 어쩌면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공통된 특징인지도 몰랐다. 냉소와 진리 사이를 오가는 언어가 그녀의 머릿속에 가라앉았다.


  “나머지 시간은 이에 대해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


  말을 마친 남자의 시선은 굉장히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레이는 그가 고개를 숙이고 책상에 잠시 걸터앉았을 때야 그가 처음에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돌이켜 보면 남자는 기본적인 몇 가지를 밝히지 않았다. 가령 본인의 이름이라든가, 자신이 들려주었던 시가 어느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랬기에 레이는 헤르만 헤세의 시 한 편을 찾기 위하여 도서관으로 뛰어들었다.


  레이의 은인은 도서관을 생각의 사원이라고 지칭했었다. 그는 틀림없이 아주 유명한 필명을 가진 작가일 것이었다. 그는 레이의 첫 번째 문학이었고,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면이었고 그녀가 얻지 못했을 거라 여겼던 깨달음이었다. 레이는 그가 이끌어준 곳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안에서 헤세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레이는 시보다도 강의실의 남자를 먼저 발견하게 되었다.


  수업 하나를 더 듣고 오느라 레이가 도서관에 온 시각은 남자의 독문학 수업이 끝나고 2시간이 지난 후였다. 레이는 입술까지 내밀면서 남자의 발길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남자가 앉은 자리는 이미 어지러웠다. 레이는 그가 수업 하나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다음 주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하여 도서관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레이는 책장 뒤편으로 조금씩 몸을 숨기며 남자를 관찰했다. 남자는 어떤 불가피한 싸움에 돌입한 것만 같은 눈빛을 띠고서 책을 읽고 무언가를 메모했다. 그 모습은 레이에겐 아주 이상하게 비춰졌다. 그녀는 강의실을 결투장으로 여기는 교수를 본 적이 없었다. 눈으로 거의 책을 찢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남자의 심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조차 꺼려졌던 나머지 레이는 헤세의 시집을 찾는 일에 허겁지겁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작은 책이 레이의 손에 쥐어졌다. <고독한 사람의 음악>이라는 제목의 시집이었다. 레이는 자신이 당연히 알게 되리라 예상했던 것은 알려주지 않고, 그녀의 은인이 난데없이 그녀에게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속삭였듯이 너무도 거대한 걸 툭 던져주고 자신을 외면해버린 검은 머리의 남자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레이는 자신이 알아내야 하는 두 번째 이름에 대한 힌트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친구 한 명을 만났다.


  “핀! 어서 와.”


  핀은 레이에게 예의 유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음, 사실은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보자고 했어.”

  “나한테?”

  “맨 처음 여기 입학했을 때는 독문과였다고 하지 않았어? 맞지?”


  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 말이야, 그 때 키 크고 곱슬거리는 까만 머리의 교수 본 적 없었어? 잘 안 웃을 것 같은 인상에 목소리는 좀 굵고. 교수 치고는 되게 젊어 보이는 사람.”


  핀이 미간을 좁혔다. 레이의 어깨가 점차 앞으로 기울었다. 레이의 상체가 앞으로 쏟아질 것 같아서 핀은 더 뜸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교수는 아니지만, 꼭 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렌? 이름이 렌이야?”

  “그리고 그 사람, 아직 교수 아니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들었어. 뭐 학위만 따면 여기저기서 모셔가려고 벼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니, 그럼 교수가 아닌데 수업에 들어왔다는 거야? 아무리 교양이라도 그렇지!”


  그 말에 핀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공지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업 일수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일당으로 수업료를 받는 강사들이 그 노교수의 자리를 대체해주길 꺼려했다는 것이었다. 전공 수업은 그런대로 박사 학위를 가진 강사들을 끌어왔지만 몇몇 수업에서는 석사 학위자들에게 수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레이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갑자기 렌에 대해서는 왜 물어봐? 미리 조심하려고?”

 

  이번엔 핀이 레이에게 몸을 내밀었다. 레이가 슥 뒤로 등을 기댔다.


  “…조심해야 해?”

  “성격이 재앙 수준이라던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나올 것 같은 인간이래.”


  레이는 애매하게 고갯짓을 했다. 핀의 눈썹은 음표가 되어 금방이라도 날아갈 모양새였다.


  “독문학 교양 수업 듣는다더니, 설마 렌이 네 수업에 들어온 거야?”

  “응.”

  “세상에! 딱 한 달만 운 없다 생각하고 조용히 있어. 그럼 별 일 없을 테니까.”


  핀은 재능 좀 있는 족속들은 성격이 참 이상한 경우가 많다며 궁시렁댔다. 레이는 렌이라는 남자에 대하여 몇 가지를 더 물었지만, 핀도 그를 직접적으로 대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레이는 결국 그가 전형적으로 괴팍한 천재라는 이미지로 유명하다는 사실만 건졌다. 두 사람은 그 뒤로 다른 이야깃거리들을 넘나들었으나 레이는 탐색을 거부하는 수수께끼 같았던 두 시간을 다 떨쳐내지 못했다.


  “아, 얘기 안 한 게 있다. 그 사람을 조심하고 싶다면 꼭 피해야 하는 곳이 있어.”


  레이가 눈을 깜빡였다. 핀은 대대로 독문학과에 내려온다는 고급 정보를 레이에게 귀띔해줬다.





  렌은 25분 전부터 명상을 멈추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온갖 소문과 이미지에 휩싸여 있는 자신을 지나가는 눈길들이 낯설지는 않은지라 렌은 그것이 지나가길 기다렸었다. 렌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를 찾아간다는 건 칸트의 일화만큼이나 유명했다. 한데 그의 등 뒤에서 움찔대고 있는 하나의 시선은 그저 움찔대기만 하면서, 발바닥이 땅에 딱 달라붙기라도 한 듯이 렌의 뒤를 떠나지 않았다.


  렌은 자신의 시간이 낭비되는 게 싫었으나 그것만큼 자신이 먼저 행동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는 대화를 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태까지 자신이 지켜왔던 시간이 다 흐르면 그냥 일어날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뒤편의 시선이 움직였다. 렌은 눈을 감고 인상을 찡그렸다.


  한편 레이는 자신이 걸음을 옮기고도 놀라서 머리를 번쩍 들었다. 양 다리가 이리저리 계산만 복잡하게 하고 있는 사고가 어지간히 답답했던 게 틀림없었다. 레이는 나무가 잔디가 자란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는 꼴이 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대단한 선물이라도 가져왔나?”


  강의실을 벗어난 곳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풍부하게 울렸다. 레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향해 냉소를 던지는 그에게 느닷없이 화가 났다.


  사실 레이는 자신이 아직 다 감당할 수도 없는 메시지와 함께 자신을 내던진 그에게 본래부터 화가 나 있었다. 그녀의 은인과 비교하면 렌이라는 자는 품위도 인정도 없었다. 그리하여 레이는 말했다.

 

  “…뭐가 문제에요, 당신?”


 렌이 드디어 몸을 돌렸다. 렌은 레이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말을 들었어도 놀랄 수가 없었다.




Original Date 2016. 01. 15.

뒷내용은 포스타입에 유료 발행되었었으나 현재는 삭제됨.


[StarWarsⅦ/헉스카일로?] After 'Undercover Boss'

- Star Wars 2016. 6. 23. 15:27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The Force Awakens, General Hux & Kylo Ren

이것과 이어짐.

- Written by. Jade




After the event...



  카일로 렌의 머리카락이 다시 보들거리는 검정색 곱슬머리로 돌아온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이제 함선이나 기지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기술자 맷이나, 카일로 렌의 라이트세이버를 의기양양하게 내던졌던 주인공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카일로가 자신의 이름을 적어서 장교에게 보낸 엽서가 아직 남아있긴 했지만 카일로는 그것 정도는 남겨두기로 했다. 어쩌면 그게 그 장교로 하여금 더욱 퍼스트 오더에 충성하게 만들지도 몰랐다.


  역시나 문제는 헉스 장군이었다. 카일로는 자신이 가장 시급했던 문제, 즉 맷을 목격한 승무원들의 기억을 지우는 일을 처리하고 다니는 동안 헉스가 다른 쪽으로 머리를 굴렸다는 걸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헉스는 가장 먼저 그 날의 CCTV 자료를 모두 수거했을 것이었다. 렌 기사단의 단장과 퍼스트 오더의 최상급 장교는 서로 다른 영역에 존재하나 위치가 비슷하여 어느 한 쪽을 공식적인 권력을 사용하여 누를 수가 없었다. 


  카일로 렌은 다시 헉스 장군의 방문 앞에 섰다. 


  “…문 열어.”


  서로를 억압할 수 없는 대신 서로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다는 게 그나마 카일로에게 만족스러운 점이었다. 헉스는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카일로 렌에게 언제나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뭐야.”

  “용건이 있다.”


  헉스의 표정이 더 뚱해졌다. 그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뭔데.”

  “그 날 카메라 영상, 네가 가져갔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헉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까지 찡그렸다. 헉스 장군과 마주하고 있을 때는 제다이 수련생이었던 시절 배웠던 가르침이 꽤 도움이 되었다. 그는 평정심을 끌어올린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헛소리.”

  “아니, 정말로. 내가 보관하고 있는 영상이 한 두 개가 아니라서.”


  렌은 그 순간 헉스가 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치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물론 그것이 렌 본인의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일인, 이를테면 라이트세이버로 함선을 망가뜨리거나 누군가를 심문하거나, 명상실로 들어가는 등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면 마음을 놓을지도 몰랐다. 물론 헉스 장군의 치밀하고도 괴상한 구석에 혀를 찰 수도 있었다.


  아무튼 당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건 자신이었기에 카일로는 순순히 말했다. 


  “…내가 위장한 모습으로 기지에 출현했던 날 말을 말하는 거다. 분명히 갖고 있을 텐데.”

  “아, 그거. 당연히 갖고 있지.”


  헉스는 아예 침대에 편안하게 앉아 카일로를 바라보았다. 


  “내놔. 아니면 지우든가.”

  “싫어.”

  “…나를 시험하길 원하나? 죽이지는 못 해도 사지 한 구석은 잘라버릴 수 있어.”

  “스노크 님이 원하지 않으실 텐데.”

  “그 분께서 너에게 필요로 하는 건 네 몸뚱이가 아니다. 나와 더 맞서려 하지 말고 내놓도록 해.”


  투구를 쓰고 있어 카일로의 목소리는 살짝 왜곡된 형태로 헉스의 귀에 흘러들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헉스는 렌이 꽤나 날카롭고 충동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았다. 퍼스트 오더는 냉정한 집단이어서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가 오래 발을 붙이고 있을 만한 곳이 못 되었다. 그런 상황이 본의 아니게 헉스로 하여금 카일로 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경험과 시간을 제공했다.


  헉스는 침대에서 일어나 작은 서랍을 뒤적거렸다. 그가 카일로를 등진 자세로 말했다. 


  “좋아. 그럼 그것만 지워주면 되나?”

  “…무슨 소리지?”

  “그 날의 영상 하나만 지워주면 되냐고.”


  헉스가 서랍 안에서 검정색 USB를 찾아 건넸다. 그것은 헉스의 눈앞에서 붉은 광선에 의해 세밀한 가루로 변해버렸다. 무시무시하고 고압적인 광경이었지만, 카일로 렌은 일단 속으로 굉장히 안도했다. 헉스가 무엇을 보관하고 있든 노란 곱슬머리의 소유자인 기술자 맷이 스톰트루퍼를 상대로 포스를 운용하고 라이트세이버를 던져버리는 장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카일로가 헉스의 말을 곱씹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내심 헉스가 또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심리전에서 거의 패배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카일로는 반대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아주 일반적인 심리적 수 싸움에는 약한 경향이 있었다.


  “갖고 있는 게 또 있나?”


  헉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교는 이런 분야에서는 기사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것이었다. 


  “내 팔다리를 자르는 걸로 협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렌. 평소에 언행을 주의했다면 나에게 그런 즐거운 게 굴러들어오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


  헉스의 발이 움직이면서 카일로가 베어버렸던 USB의 흔적이 흩어졌다. 카일로는 투구 뒤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사실 그가 얼굴을 가리는 건 다스 베이더를 기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보다 실용적인 이유에 기대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어보겠나?”


  헉스는 다시 침대에 앉아 카일로를 올려다봤다. 


  “그럼 가면 벗어봐.”





  한편 카일로 렌이 헉스 장군의 방에 찾아가기 5분 전, 캡틴 파스마의 개인 컴퓨터로 전송된 파일 하나가 있었다.


  [이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 것. 더불어 이 파일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말 것.]


  파스마는 속으로 물음표를 그리며 파일을 열어보았다. 기지에 있는 휴게실의 일상적인 장면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파스마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안경 쓴 곱슬머리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그녀가 눈을 좁혔다.


  잠시 후 그가 머리칼을 흩날리면서 카일로 렌의 소유물인 라이트세이버를 내던졌다. 파스마는 단번에 헉스 장군이 왜 이 파일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 안 되는지 깨달았다. 


  “…그런데 대체 저런 짓은 왜 하신 거지.”


  파스마는 턱까지 붙잡으며 심각한 자세로 영상을 감상했다. 그녀는 카일로 렌이 일종의 수련을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광선검을 휘두르는 기사들의 세계는 그녀로서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이었다. 파스마는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뒤에 컴퓨터 내에 검색되지 않는 폴더를 만들어 파일을 그 안에 보관했다. 





  “젠장.”

  “기사가 입이 그렇게 험해도 되는 건가?”

  “모르면 가만히 있어.”

  “뭐가 그렇게 싫은데.”

  “…그래서 대체 가지고 있는 게 뭐지?”

  “아, 그거?”


  잠시 후 귓가에 담기는 헉스의 말을 들은 카일로가 친히 자신의 손을 사용해 헉스의 목을 졸랐다. 




Original Date 2016. 0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