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WarsⅦ/카일로레이] Foundation of the Moonlight

- Star Wars 2016. 6. 23. 15:29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Rey

- Written by. Jade


Foundation of the Moonlight





  천 일이 넘는 시간을 혼자 벽을 긁으면서 생활했던 레이가 자쿠에서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점은 하늘이 맑다는 것이었다. 인구 자체도 많지 않고 기술 따위는 완전히 죽어버린 땅에는 공해랄 것이 없었다. 덕분에 자쿠에서는 가장 또렷하게 태양과 달과 별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깨끗한 하늘 아래는 먼지 같은 모래만 깔려 있어서 거주자에게 전혀 아늑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조차 길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레이는 그래도 때때로 여명이나 월출을 감상했다. 하늘에도 대지에도 아무것도 없는 와중에 거대하게 떠오른 무언가는 레이를 압도하는 어떤 힘을 갖고 있었다. 


  쓸 만한 쇠붙이를 구별하는 법이나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외에는 거의 배운 게 없는 레이는 천문학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자쿠에서 살 때 레이는 태양의 빛과 달의 빛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몰랐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밤에 달이 뜨는 이유가 태양이 떠나간 자리를 메워서 하늘이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가끔 레이가 달빛을 따뜻하게 여겼던 건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제 레이는 자신이 한때 따뜻하게 생각했던 달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았다. 달의 마음씨가 온화해서 밤하늘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 빛을 발했던 것이 아니었다. 달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빛을 반사할 뿐이었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사원에서 생활한 지 8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앉아서 하늘 위를 올려다보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온 스카이워커에게, 레이는 어째 자쿠에 있을 때보다 달이 작게 보이는 것 같다고 혼잣말을 한 적이 있었다. 스카이워커는 그렇게 보이느냐며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주었는데 레이는 공연히 움찔해서 자쿠에 있었던 때가 그리워서 한 말은 절대 아니라고 덧붙였다. 제다이는 웃었다. 새로 제자를 맞아들이고 나서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카이워커는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레이에게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레이는 아예 풀밭에 누워서 달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하늘도 충분히 맑았다. 


  스카이워커가 그 때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는 왜 그가 자신에게 태양과 달에 대한 얘기를 했는지 우연찮게 느껴버렸다. 아마 몇 가지 변화가 제다이의 마음을 조금 촉촉하게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당시에는 레이가 거의 조절하지 못했던 포스가 여려진 기사의 내면으로 흘러들어, 루크 스카이워커가 달을 보면서 그가 구원하지 못한 제자를 생각하고 자신은 태양도 달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기에 혼자서 태양이 되려고 애쓰는 자신의 여동생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레이에게 반사시켰다. 레이는 갑자기 발밑에 쿵 떨어진 원석 덩어리를 만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레이는 그것을 옮길 힘도 없었고 그것을 작고 아름답게 깎을 수 있는 기술도 없었다.


  여하튼 레이는 본의 아니게 스승의 속내를 훔쳐본 것 같아서 더욱 열심히 포스를 제어하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 그리고 이제 레이는 스카이워커의 내면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레이는 잠깐 고개를 돌려서 스카이워커가 있는 사원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 레아 장군이 밀레니엄 팔콘으로 연락을 넣었다. 스타킬러 베이스가 파괴된 이후로 잠잠한 듯 보이던 퍼스트 오더가 대(對)행성계 장비가 아니라, 카일로 렌과 그의 기사단을 앞세워 은하를 유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의 신속하고 무자비한 살육에 벌써 저항군을 지원해주던 몇몇 행성의 기지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분명히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사원에서 나와 다시 한 번 어둠을 마주하고, 다시 한 번 티끌 없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누군가와 맞서 싸우라는 부름이었다. 스카이워커는 그런 레아의 말을 듣고서도 알았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레이는 달을 마주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피하는 하늘과 바람과 빛이 그녀의 사방을 건드렸다. 달은 커다랗고 새하얬다. 창백하고 투명할 정도로 하얘서 움푹 패인 자국들이 보일 것만 같았다. 레이는 자신의 스승이 정말 모든 것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검고 붉게 보이지 않아도 달은 카일로 렌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달은 유독 큰 것 같구나.”


  레이가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스카이워커가 로브의 앞을 묶은 채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는 머리카락이며 등에 붙은 풀들을 떼어내고 스승을 맞았다. 스카이워커는 레이의 옆에 서서 오른쪽에 붙어 있는 풀잎사귀를 하나 가져갔다. 레이의 볼이 쪼그라들었다. 


  “같이 구경해도 될까?”

  “그럼요.”


  레이는 자신이 한 번 누워 있었기에 맨질맨질한 자리를 가리켰다. 그렇지만 스카이워커를 다른 곳에 엉덩이를 붙였고 레이를 그녀가 있던 자리에 앉혔다. 레이의 눈썹이 한 번 솟았다가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는 아직도 스카이워커를 지나치게 다양한 표정으로 마주하곤 했다. 


  루크 스카이워커 본인이 스스로 자신과 선을 긋고 그 사이에 고통과 비극을 세웠던 달빛이 그의 얼굴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빤히 보았다. 실제로 달빛은 해롭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서 스카이워커의 얼굴은 그저 은은하게 빛날 뿐 그 위에 어떤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레이는 문득 스카이워커가 보는 항성계가 궁금해졌다. 그의 세계에서 태양은 태양 같지 않고, 달은 달 같지 않으며 대지는 전혀 따뜻하지 않아서 그 위에 존재하는 것조차 힘겨운지 물어보고 싶었다. 누구도 루크 스카이워커가 가진 무게를 짊어지면서 살지 않았다. 레아 장군이 그나마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곁에는 그나마 그녀를 도와주는 누군가들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스카이워커의 은둔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시에 비난하지도 않았다. 


  스카이워커가 말했다. 


  “그 때의 일은 네가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단다.”

  “네?”

  “내 마음속을 들여다봤던 일 말이다.”


  레이의 어깨가 크게 요동쳤다. 


  “아, 알고 계셨어요?”

  “포스가 나를 뚫고 지나가는 걸 느끼지 못할 리가 없지. 다만 그걸 네 자신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란다.”


  레이가 조금 고개를 숙였다. 이미 온몸으로 유감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레이는 그래도 입을 열었다. 


  “…그래도 죄송해요.”


  스카이워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도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뒤로 스카이워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 달이 가득했다. 그의 위대함은 그토록 많은 일을 겪고도 그가 아직 제다이이고 스카이워커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그의 가치를 세우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심연을 끊어 놓는 비극들이었다. 평범한 감수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끌리게 되는 그 숭고함 탓에, 레이는 어쩔 수 없이 변절한 벤 솔로 같은 달을 한가득 눈으로 끌어안고 있는 스카이워커의 심경을 헤아려보려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빛을 반사하는 달에겐 아무래도 스카이워커가 주는 빛이 성에 차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불현듯 레아 장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슬픈 소식이 날아오는 행성마다 생명을 태운 라이트세이버의 뜨거운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제어되기를 포기한 듯한 그 강렬함이 때로는 진짜 불꽃을 피우고 간다는 말도 했다. 설원에서 쓰러졌던 카일로 렌은 그렇게 불길에서 부활한 것 같았다. 


  “달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렴. 우주에 두 개의 태양이 있었다면 달은 어땠을까?”


  레이는 스카이워커의 가정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두 개의 태양이 나란히 달에게 속삭이는 거야. 내가 빛을 주겠다고. 네가 만약에 달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니?”


  스카이워커는 뻔한 은유를 쓰고 있었다. 레이는 그것을 고려하면서 조심스럽게 답변을 만들어보았다. 달이 두 태양을 모두 품을 수 없다는 건 현실에서도 비유에서도 명백했다. 레이가 천천히 대답했다. 


  “…선택을 해야 했겠죠. 두 개의 태양빛을 다 받아들였다간 제 몸이 타버릴 수 있잖아요.”


  “그래. 만약 우주에 태양이 두 개 있었다면 달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을 해서 하나의 태양을 선택했을 거다. 자신이 그 빛을 끌어안을 대상을 말이야.”


  레이는 잠자코 있었다. 자신이 먼저 그 선택의 기반이 되었던 판단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스카이워커는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 달로부터 외면당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네가 이곳을 떠나면 그는 다시 두 개의 태양을 만나게 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네가 달의 태양이 되어라, 레이.”


  “장군님은 저만 부르신 게 아니에요.”


  “그는 옛날에도 나를 부르지 않았단다. 그의 목표에 비해 내가 줄 수 있는 건 너무도 작았으니까. 내가 여길 벗어나서 저항군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어쩌면 여기서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작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너는 다르단다, 레이. 그가 너를 부르고 있으니까. 적어도 나보단 너에게 더 가능성이 많을 거야.”


  “루크!”


  스카이워커는 레이가 이름을 부를 때 가끔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달을 담은 스카이워커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삶 자체보다 더욱 버겁고 끝없는 불운과 비극에 시달리는 그를 마주하자 레이는 어깨를 내렸다. 스카이워커는 조용히 제다이와 사원을 지키는 일만 맡아도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레이가 루크 스카이워커의 짐을 덜어주는 누군가가 되어야 했다. 


  “달빛의 근원이 되렴. 그게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다.”


  레이는 기어코 눈을 글썽였다. 스카이워커는 그녀를 안아주는 것조차 하나의 위선으로 여겼으므로 그녀를 그저 인내심 있게 바라봐줄 수밖에는 없었다. 그 행동만이 레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였다. 


  그 밤 내내 달은 차갑게 빛났다. 


  스카이워커는 자신이 맞게 된 마지막 제자가 될 소녀의 허리에 자신의 라이트세이버를 잘 묶어주었다. 밀레니엄 팔콘호의 엔진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며 열기를 발산했다. 츄이가 이륙 준비가 다 되었다고 울었다. 레이는 있는 힘껏 팔콘호에 올라서 레버를 위로 당겼다. 우주선의 그림자 아래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의 옷깃이 흩날리고 있었다.


  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부턴가 몹시도 예민해진 그녀의 적이자,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업보이자, 귀환을 재촉해야 하는 기사는 밀레니엄 팔콘의 상승을 첫 순간부터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이 하달 받은 하찮은 말살 명령을 해치워버리고 그곳으로 향하고 싶었다. 밀레니엄 팔콘은 그에겐 일종의 무덤이었다. 그 우주선에는 언제나 그가 죽여야만 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한 개의 태양을 받들고 있는 달에게 더 이상의 빛은 필요치 않았다.


  레이는 밤이 자신을 통째로 흡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목소리를 들었다. 레이는 끝까지 레버를 놓지 않았다. 그녀는 상처 깊은 스카이워커가 감당하지 못했던 그 변화무쌍한 유약함을 정면으로 받아칠 것이었다. 


  밀레니엄 팔콘은 서서히 빛처럼 날기 시작했다. 곧 우주선은 빛이 되었다.




Original Date 2016. 01.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