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Kylo Ren & Rey
- Written by. Jade
Pistorious
Inspired by works of Hermann Hesse
레이는 뚝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는 정말로 레이가 들은 시각, 레이가 들은 바로 그 장소에 앉아 있었다. 레이는 남자가 참 지독하다는 생각에 홧김에라도 발을 한 번 더 떼고 싶었지만 다시 멈칫하며 제자리에서 발만 굴렀다. 소녀의 유약함이 그녀의 어깨를 슬금슬금 잡으려고 했다. 레이는 자신이 왜 이런 복잡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
레이는 이제 대학에서 첫 번째 겨울을 맞이하게 된 신입생으로, 학문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녀의 먼 친척뻘 되는 남자가 그녀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공부를 할 것을 추천해 줬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먼 친척이라는 남자가 꽤 혜안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아무도 레이가 고작 5년 전에 처음 소설책이라는 걸 읽어봤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입학하면서 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으나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녀의 선택에는 사실 그녀의 학문적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소양이 높았다는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레이는 되도록 그를 닮고 싶었던 것이다. 레이가 선택한 전공과목 외의 수업들이 다른 어문학과 예술에 치중되어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므로 레이는 독문학을 다룬다는 교양 수업을 클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문학과의 전임 교수 중 한 명이라는 담당 교수는 키는 멀대 같이 컸지만 나이는 상당히 많았다. 딱 다섯 명의 작가만 알고 가라는 말과는 다르게 첫 주부터 괴테를 꺼내 들어서 학생들을 당황시키기는 했어도 그 교수의 수업은 유익한 편이었다. 레이는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다가올수록 그 수업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날은 레이가 모자를 거의 벗지 못할 정도로 이상하게 추웠다.
문턱에 키 큰 그림자가 걸렸다. 레이는 음료수 병을 놓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많은 남학생들을 키로 제압해버리던 그 노교수보다도 더 길쭉한 다리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교수가 아니었고 레이가 학교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목덜미를 덮는 까만색 곱슬머리를 가졌고 전방을 향해 다소 서늘한 눈빛을 흘렸다.
“저번 주말, 이 수업을 담당하던 교수님이 평소 지병으로 인해 급히 병원에 가셨다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레이가 눈썹을 크게 올렸다. 남자는 꼭 보고를 하는 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회복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수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해당 수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된 바, 앞으로 남은 4주간의 수업은 내가 맡기로 했다. 여기까지 질문이 있는 학생은 말하도록.”
남자는 평상적인 자세로 학생들을 향해 말했지만, 학생들은 공연히 경직되어서 입을 뻐끔거리지도 못했다. 남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러한 긴장들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지. 이번 주부터 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헤세에 관한 내용을 다루게 된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책장을 펼치는 소리가 났다. 레이도 그 소음에 휩쓸려 책을 펼쳤다. 사라락거리는 소리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자 남자는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헤세는 대중들에게 소설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지만 본래 그가 꿈꿨던 것은 시인이었고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낭만적인 치열함과 서정적인 성숙함은 소설과 시를 구분하지 않고 헤세의 작품에 적용되는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지.”
레이는 펜을 한 번 굴려 손에 똑바로 쥐었다. 그녀는 남자가 어떠한 교수법을 보여줄지 집중했다.
이윽고 남자는 풍부한 성량을 가진 목소리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목표도 없이 떠도는 것은 젊은 날의 즐거움이다.”
레이는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젊은 날과 함께 그 즐거움도 나에게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목표나 의지를 의식하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남자는 감성에 젖지도 않은 듯 보였고 시를 기억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는 그의 큰 키가 하나도 줄어들거나 구부러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한 채 눈을 뜨고 계속 시를 외웠다. 얼핏 기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자세로 남자는 진실하게 시를 읊었다. 문학 수업을 듣는 게 본분인 레이조차도 쉽게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목표만을 좇는 눈은
떠도는 재미를 알지 못하고
여로마다 기다리고 있는
숲과 강과 갖가지 장관도 보지 못한다.
나는 떠도는 비결을 계속 배워 나가야 한다.
순간의 순수한 빛이
동경의 별 앞에서도 바래지지 않도록.
여행의 비결은 이것이다.
세계의 행렬에서 함께 몸을 숨기고
휴식 때도 사랑하는 먼 곳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
남자의 목소리가 끊겼다. 눈을 깜빡이고 입술을 움직이는 걸 보니 잠시 나름의 휴식을 취한 모양이었는데, 그것이 학생들에게는 시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격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은 무뚝뚝한 인상의 남자가 툭 던진 대문호의 시를 얼떨떨하게 받아든 채 눈을 굴리고 있었다.
한편 레이는 남자가 참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단히 젊어보이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높게 쳐 주어도 30대를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남자가, 노교수를 대신하여 선 자리에서 젊음을 이야기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것으로 남자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가진 것을 깨달으라고 일침한 거나 다름없었다.
“방금 말한 시의 제목은 ‘여행의 비결’이다.”
레이는 정면을 보면서 시의 제목을 적었다. 누구라도 레이처럼 종이를 내려다보지 않고 그것을 적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친 건 레이밖에 없었다.
남자가 눈을 좁혔다. 레이는 하마터면 고개를 갸우뚱할 뻔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강의실에 들어와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남자가 발을 뗐다. 그는 레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영감이 되는 것이 있다. 젊음이 그 중 하나지. 그 시기에 인간이 겪는 모든 일들은 인생을 위한 가장 비옥한 양분이며 다신 얻을 수 없는 원석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챙기고 싶다면 그만큼 떠돌아야 해. 모두가 멈추고 있을 때 움직이고, 한편으로는 멈추면서 동시에 움직여야 하기도 하는 것이다.”
펜이나 연필이 달싹거리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말은 종이에 기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레이는 거의 뒷모습이 되어가려고 하는 남자의 까만 옆모습을 부지런히 눈으로 쫓았다.
“어떤 목표에 정착한다는 것은 인생에 안정성을 가져다주지만 그만큼 인생을 폐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목적지를 정한 이상 나의 인생은 그것을 향해 가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옆을 보는 것을 일종의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허락하지 않게 되지. 게다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은 인생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대가로 자신의 자유를 조금씩 반납해야만 하니까.”
레이는 자신이 쓴 영화의 각본이 큰 인기를 얻어서 초빙 교수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의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을 때는 각색과 사실을 구분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것은 어쩌면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공통된 특징인지도 몰랐다. 냉소와 진리 사이를 오가는 언어가 그녀의 머릿속에 가라앉았다.
“나머지 시간은 이에 대해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
말을 마친 남자의 시선은 굉장히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레이는 그가 고개를 숙이고 책상에 잠시 걸터앉았을 때야 그가 처음에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
돌이켜 보면 남자는 기본적인 몇 가지를 밝히지 않았다. 가령 본인의 이름이라든가, 자신이 들려주었던 시가 어느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랬기에 레이는 헤르만 헤세의 시 한 편을 찾기 위하여 도서관으로 뛰어들었다.
레이의 은인은 도서관을 생각의 사원이라고 지칭했었다. 그는 틀림없이 아주 유명한 필명을 가진 작가일 것이었다. 그는 레이의 첫 번째 문학이었고,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면이었고 그녀가 얻지 못했을 거라 여겼던 깨달음이었다. 레이는 그가 이끌어준 곳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안에서 헤세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레이는 시보다도 강의실의 남자를 먼저 발견하게 되었다.
수업 하나를 더 듣고 오느라 레이가 도서관에 온 시각은 남자의 독문학 수업이 끝나고 2시간이 지난 후였다. 레이는 입술까지 내밀면서 남자의 발길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남자가 앉은 자리는 이미 어지러웠다. 레이는 그가 수업 하나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다음 주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하여 도서관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레이는 책장 뒤편으로 조금씩 몸을 숨기며 남자를 관찰했다. 남자는 어떤 불가피한 싸움에 돌입한 것만 같은 눈빛을 띠고서 책을 읽고 무언가를 메모했다. 그 모습은 레이에겐 아주 이상하게 비춰졌다. 그녀는 강의실을 결투장으로 여기는 교수를 본 적이 없었다. 눈으로 거의 책을 찢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남자의 심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조차 꺼려졌던 나머지 레이는 헤세의 시집을 찾는 일에 허겁지겁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작은 책이 레이의 손에 쥐어졌다. <고독한 사람의 음악>이라는 제목의 시집이었다. 레이는 자신이 당연히 알게 되리라 예상했던 것은 알려주지 않고, 그녀의 은인이 난데없이 그녀에게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속삭였듯이 너무도 거대한 걸 툭 던져주고 자신을 외면해버린 검은 머리의 남자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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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는 자신이 알아내야 하는 두 번째 이름에 대한 힌트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친구 한 명을 만났다.
“핀! 어서 와.”
핀은 레이에게 예의 유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음, 사실은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보자고 했어.”
“나한테?”
“맨 처음 여기 입학했을 때는 독문과였다고 하지 않았어? 맞지?”
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 말이야, 그 때 키 크고 곱슬거리는 까만 머리의 교수 본 적 없었어? 잘 안 웃을 것 같은 인상에 목소리는 좀 굵고. 교수 치고는 되게 젊어 보이는 사람.”
핀이 미간을 좁혔다. 레이의 어깨가 점차 앞으로 기울었다. 레이의 상체가 앞으로 쏟아질 것 같아서 핀은 더 뜸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교수는 아니지만, 꼭 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렌? 이름이 렌이야?”
“그리고 그 사람, 아직 교수 아니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들었어. 뭐 학위만 따면 여기저기서 모셔가려고 벼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니, 그럼 교수가 아닌데 수업에 들어왔다는 거야? 아무리 교양이라도 그렇지!”
그 말에 핀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공지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업 일수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일당으로 수업료를 받는 강사들이 그 노교수의 자리를 대체해주길 꺼려했다는 것이었다. 전공 수업은 그런대로 박사 학위를 가진 강사들을 끌어왔지만 몇몇 수업에서는 석사 학위자들에게 수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레이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갑자기 렌에 대해서는 왜 물어봐? 미리 조심하려고?”
이번엔 핀이 레이에게 몸을 내밀었다. 레이가 슥 뒤로 등을 기댔다.
“…조심해야 해?”
“성격이 재앙 수준이라던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나올 것 같은 인간이래.”
레이는 애매하게 고갯짓을 했다. 핀의 눈썹은 음표가 되어 금방이라도 날아갈 모양새였다.
“독문학 교양 수업 듣는다더니, 설마 렌이 네 수업에 들어온 거야?”
“응.”
“세상에! 딱 한 달만 운 없다 생각하고 조용히 있어. 그럼 별 일 없을 테니까.”
핀은 재능 좀 있는 족속들은 성격이 참 이상한 경우가 많다며 궁시렁댔다. 레이는 렌이라는 남자에 대하여 몇 가지를 더 물었지만, 핀도 그를 직접적으로 대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레이는 결국 그가 전형적으로 괴팍한 천재라는 이미지로 유명하다는 사실만 건졌다. 두 사람은 그 뒤로 다른 이야깃거리들을 넘나들었으나 레이는 탐색을 거부하는 수수께끼 같았던 두 시간을 다 떨쳐내지 못했다.
“아, 얘기 안 한 게 있다. 그 사람을 조심하고 싶다면 꼭 피해야 하는 곳이 있어.”
레이가 눈을 깜빡였다. 핀은 대대로 독문학과에 내려온다는 고급 정보를 레이에게 귀띔해줬다.
╳
렌은 25분 전부터 명상을 멈추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온갖 소문과 이미지에 휩싸여 있는 자신을 지나가는 눈길들이 낯설지는 않은지라 렌은 그것이 지나가길 기다렸었다. 렌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를 찾아간다는 건 칸트의 일화만큼이나 유명했다. 한데 그의 등 뒤에서 움찔대고 있는 하나의 시선은 그저 움찔대기만 하면서, 발바닥이 땅에 딱 달라붙기라도 한 듯이 렌의 뒤를 떠나지 않았다.
렌은 자신의 시간이 낭비되는 게 싫었으나 그것만큼 자신이 먼저 행동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는 대화를 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태까지 자신이 지켜왔던 시간이 다 흐르면 그냥 일어날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뒤편의 시선이 움직였다. 렌은 눈을 감고 인상을 찡그렸다.
한편 레이는 자신이 걸음을 옮기고도 놀라서 머리를 번쩍 들었다. 양 다리가 이리저리 계산만 복잡하게 하고 있는 사고가 어지간히 답답했던 게 틀림없었다. 레이는 나무가 잔디가 자란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는 꼴이 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대단한 선물이라도 가져왔나?”
강의실을 벗어난 곳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풍부하게 울렸다. 레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향해 냉소를 던지는 그에게 느닷없이 화가 났다.
사실 레이는 자신이 아직 다 감당할 수도 없는 메시지와 함께 자신을 내던진 그에게 본래부터 화가 나 있었다. 그녀의 은인과 비교하면 렌이라는 자는 품위도 인정도 없었다. 그리하여 레이는 말했다.
“…뭐가 문제에요, 당신?”
렌이 드디어 몸을 돌렸다. 렌은 레이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말을 들었어도 놀랄 수가 없었다.
Original Date 2016. 01. 15.
뒷내용은 포스타입에 유료 발행되었었으나 현재는 삭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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