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Oblivion
그는 하루만 지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면서도, 그 24시간 안에 나를 꿰뚫는다.
온갖 구속구와 유리관, 불길한 욕망처럼 움트는 가스등과 새파란 불빛에 휩싸여 있는 그는 마치 동화 속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려야 마땅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금발을 휘날리는 공주처럼 구조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자신의 힘으로 그 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며, 나는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날개처럼 꽂힌 튜브들이 버튼을 한 번 누르는 동작에 곧바로 그의 생명을 빼냈다. 파란 불빛에 물들었지만 피는 여전히 붉다.
그는 하루만 지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에 나는 그의 앞에서 굳이 표정을 숨기려 애쓰지 않는다. 그가 24시간 만에 나를 꿰뚫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에게서 나를 숨기는 것을 포기했다. 족쇄처럼 그의 피가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불빛에 거의 하늘색으로 탈색된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는 꼭 거울 같다. 한 치도 다르지 않게 나를 그 곳에 담고, 내가 언제나 바라는 눈물을 일깨운다.
나는 그를 안타까운 눈길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가 묻는다. 나를 동정하나? 이 말을 들으면 나는 그가 기억하지 못해도, 늘 그랬듯 고개를 저어준다. 수십 번의 망각 속에서도 불씨를 잃지 않는 그의 날카로움이 말을 정정한다. 나를 사랑하나? 고개는 한 번 내저은 걸로 끝이다. 이제는 나의 눈동자, 혹은 나의 눈물이 대답할 차례다. 침묵과 미동도 하나의 응답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그는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내 모든 것을 사랑해라.
행성 몇 개를 동시에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남자가 여기에 묶여 있으면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점은, 도무지 그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새로 죽었다가 깨어나는 그의 머리는 컴퓨터와 다르지 않다. 깨끗히 청소되어 돌아가는 지점은 언제나 한 곳이다. 나는 오늘로써 50번도 더 들었을 그의 문장을 다시 경청했다.
여전히 인간과 연방을 증오하며, 무엇보다 너를 증오하며, 너희들의 불행에 책임이 있으나 그것보다 나의 고통을 우선하는 내 일면까지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에겐 언제나 처음이고 나에겐 50번의 횟수를 넘긴 말 뒤에 나는 보통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인간이 억지로 묶어둔 신물(神物)처럼 묶여 있는 그의 모습은 충분히 그가 이기적인 자세를 취할 만한 근거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역할은 매번 나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그의 증오 또한 정당하다. 그 모든 것을 안고 내가 다소 씁쓸하게 웃으면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반복적으로 그가 뒷말을 이어 주길 상상했다. 망각으로 인한 회귀와 자발적인 회귀 사이에 차이점이 없다. 나는 그의 피를 가져가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인간들에게 그것은 생명수의 진액과도 같은 귀중한 물건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나는 그것을 견디기가 버거웠다. 헤아리기도 어려운 망각의 반복 속에서 당신이 한 번이라도 이렇게 말해줬다면. 이를테면….
내 모습이 가진 모든 무게를 견딜 수 있다면, 부디 나를 사랑해 다오, 라고.
그는 나의 사랑을 읽어내지만 그것을 연장시키지는 않는다. 나는 그의 거절을 학습하면서도 그것을 전복시키려 하지 않는다. 말없이 자신의 피를 가지고 돌아서는 등을 날카롭게 뒤쫓는 안구의 시선이 느껴졌다. 가스등이 타오르는 소리, 튜브를 순환하는 액체가 작게 보글거리는 소리, 그것들이 내는 음파 하나하나가 나를 거세게 찔렀다. 내가 그에게 작별했다. 부디 잘 있어요.
24시간 안에서 수도 없이 맴돌았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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