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Inspiration from the music 'Clarity' by Zedd (feat. Foxes)
- Written by. Jade
Indefinite
칸은 늪지대에 둥둥 떠있는 기분을 느꼈다. 적어도 그가 디디고 있는 대지의 반이 외계인의 갈색 피에 젖어 있었으니 반은 논리적인 감각이었다. 습지가 되어버린 딱딱한 바닥이 발바닥에 어설프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근래 자주 피곤해했다. 육체는 대개 멀쩡하니 심리적인 요인일 경우가 컸다. 전투 같은 상황에 집중해 있다 보면, 그는 단지 그 행위를 끝내기 위해서 노력할 뿐 막상 그 원인을 잊어버리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 때 떠다니는 핏방울밖에 기억나지 않는 머릿속에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몸을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질문하는 것이다. 몇 백 년을 살았지만 많은 가치를 입력하지 못한 두뇌의 한계였다.
그는 때로 라이플을 들고 있기도 했고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뺏어 들고 있기도 했다. 칸은 자신의 손에 들린 휘어진 칼날을 버렸다. 그의 빈틈을 온 힘을 짜내 찾으려 애쓰던 개체가 찔끔찔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순간 그가 바닥에 꽂았던 칼을 치켜들어 그대로 개체의 손에 박아 넣었다. 사고가 권태로움을 토로할지언정 그의 육체는 언제나 전투에 최적화되어 있다. 완전히 홀로 남아 칸은 생각했다. 자신이 왜 여기까지 내려 왔던가. 등진 숲에서 인기척이 들려 왔을 때에야 그는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을 위해 입구를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
희귀한 생물들이 조금씩 채집된 상자를 들고 있던 파란 인영이 놀라 다가왔다. 인영은 허겁지겁 상자를 넘기고 언제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동그란 물건을 꺼냈다. 파란 형체가 칸에게 달려왔기 때문에 순식간에 뒤편에 머물게 된 금발 머리가 중얼거렸다.
"저건 고집인지, 자랑인지…."
"젠장, 또 혼자 싸웠냐! 그냥 우리를 부르라고!"
끝없는 밋밋함이다. 물리적 피로함을 핑계 삼아 침묵하고 싶어 하는 사고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그제야 그것은 겨우 파란 인영이 레너드 맥코이 박사라는 인식을 털어 놓았다. 신발의 밑은 여전히 늪지대처럼 미끌거리는데, 거침 없이 그 바닥을 밟고 맥코이가 칸의 가슴팍에 트라이코더를 들이밀었다.
"엔터프라이즈, 워프시켜 줘. 의무실에 베드 하나 깨끗하게 정리해서 비워두고."
못 이긴다는 투로 중얼거린 커크를 향해 맥코이가 살짝 고맙다는 고갯짓을 보냈다. 모두가 한 번씩 제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칸만 조용했다. 그것마저 놓치지 않는 의사의 눈길이 피로한 척 가장하는 강화인간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말로 그는 다른 의미에서 피곤한 지도 몰랐다.
칸은 이제 뜻하지 않게 중력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특유의 검은 셔츠를 벗고 하얀 천조각을 걸치고 있었다. 그가 엔터프라이즈에 탑승한 뒤로 의무실은 급속도로 한산해졌으며, 대개는 그 혼자서 반강제로 병실에 끌려 오는 일이 잦았다.
"…안정제라도 놔 줄까?"
맥코이가 눈앞에서 주사기를 흔들거렸다. 칸이 무심하게 고개를 들다 말았다.
"묵언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반응 좀 해. 대변인을 세우고 싶어도 네 의사를 어느 정도 표현해 줘야 할 거 아냐."
그의 말대로 칸은 엔터프라이즈에서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육체는 무심해지고 사고는 지쳐갔으며 입술은 굳게 잠겼다. 맥코이는 충동적으로 안정제를 주사하려다 제 스스로 고개를 저으면서 주사기를 내려놓았다.
"당분간 너한테 휴식이 필요하다고 할게. 짐이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수석 의료 장교의 권고를 무시할 녀석은 아니니까."
칸이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은, 맥코이 역시 그의 대답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는 뜻과 같았다. 그럼에도 맥코이는 몇 마디씩 낭비하며 칸의 앞에서 중얼거렸다. 한 명의 환자만을 수용하고 있는 의무실이 조용했다.
맥코이는 치료를 위해 벗겼던 칸의 손상된 상의와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기 위해 일어났다. 금속제 물품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들렸다. 칸은 그 의도가 탈색된 눈동자로 맥코이를 보았다. 맥코이가 문득 뒤를 돌았을 때 칸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것은 꼭 일종의 메시지 같았다. 맥코이가 천천히 칸에게 다가왔다.
칸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맥코이가 그것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혹시 말을 꺼내지 않을까 싶어 맥코이는 찬찬히 그의 안색을 살피며 기다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칸은 맥코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가 맥코이를 자신의 시야에 잡아둔 것은, 무감하고 권태롭고 무거워진 그의 모든 부분이 레너드 맥코이 앞에서는 간신히 빛을 회복하기 때문이었다. 의사에 관해서라면 생각할 것이 많았고 기억해 분석할 요소들도 한 두가지가 아니었으며 몸은 그의 앞에서 빠르게 회복되었다. 칸은 생각했다.
인간의 광기와 시대를 엇나간 유물의 오래된 비극이 맺은 세계에서, 하얗게 선명한 것은 오로지 당신 뿐이군.
"…오로지 당신 뿐이군."
"뭐라고?"
엉겁결에 움직인 입술에 의해 속으로만 되뇌이고 있던 말이 튀어나오자, 칸은 조금 당황했다. 물론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맥코이는 칸이 말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 정신이 없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뭐가 나 뿐인데?"
칸은 이제 의식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맥코이는 왜 23세기를 찍고 있는 이 시점에 자백제는 발명되지 않았는지를 한탄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말이 잘못 나오기라도 한 거야? 아무튼 목소리를 잃은 건 아니었네."
맥코이는 반사적으로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았다. 그는 드러내 놓고 칸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곧 혼자서 콧잔등을 찡그린 맥코이는 진료 기록을 작성하기 위해 패드를 가지러 갔다. 칸은 이번에 맥코이에게 별다른 눈짓을 보내지 않았지만, 맥코이는 자연스레 의무실의 유일한 환자의 가까운 곳에 앉아 패드를 두드렸다.
맥코이가 슬그머니 눈동자를 굴렸을 때 칸은 잠이 든 건지, 혹은 명상을 하는 건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Cause you are the piece of me I wish I didn't need
Chasing relentlessly, still fight and I don't know why
If our love is tragedy, why are you my remedy?
If our love's insanity, why are you my clarity?
너는 내가 필요 없기를 바랐던 나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집요하게 쫓으면서 싸우지만 나는 그 이유를 몰라
우리 사랑이 비극이라면 왜 너는 날 치유할 수 있으며
우리 사랑이 미친 짓이라면 왜 너만이 나에겐 선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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