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James Kirk
- Theme from 'Bleeding out' by Imagine Dragons
- Carefully
- Written by. Jade
Bleeding out
너를 위해서 피를 흘릴 것이다.
칸은 실제로 자신의 혈청을 만드는 데 일조하였으므로, 제임스 커크를 위해서 이미 한 번 피를 흘린 셈이었다. 시제의 오류만 있을 뿐 낯선 내용은 아니었지만 커크는 그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했었다. 정신이 아니라 꿈틀대고자 하는 육체의 의지로 각성한 강화인간의 미소에서 빙하의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너를 위해서 피를 흘릴 것이다, 그래서 내 피부를 벗기고 나의 업들을 세면서 눈을 감고 그 모든 것들을 감내할 것이다.
제임스 커크는 위기일발의 상황 속에서 칸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내려왔던 대원들은 조금의 대화도 없이 그들을 적으로 인식해 버린 외계 부족들에 의해서 추격당하고 있었다. 선원들의 책임자인 그는 함선에게 서둘러 구조 요청을 보내야 했다. 커크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커뮤니케이터를 들고 있었었다. 그러나 짙은 그림자가 그를 완전히 덮쳐 바위의 뒤편으로 구르는 바람에 커크는 커뮤니케이터를 놓쳤다. 커크는 자신의 빈손을 멍하게 바라보았다가 자신의 위에 겹쳐진 검은 형체를 보았다.
칸이 고통을 머금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커크를 안고 있었다. 커크는 눈을 크게 떴다. 칸의 피가 노란색 셔츠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 피를 흘리겠다는 말을, 칸은 기어코 이뤄내고야 말았다.
커크가 서둘러 칸의 허리춤을 뒤적여 통신기를 찾아냈다. 커크가 다급하게 외쳤다. 엔터프라이즈! 당장 우리를 워프해줘, 어서! 바위의 거대한 음영이 아직까지는 둘을 가려주고 있었지만 커크는 마음이 급하기만 했다. 큼직하게 박힌 폭발물의 파편과 끔찍한 조각들이 칸의 피부와 싸우고 있었다. 커크는 입술을 떨었다.
내 피를 받음으로 인해 너는 네 순수함을 잃었지. 옳았던 일이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나?
제기랄! 너 안 죽을 거 알거든? 너처럼 괴물 같은 놈이 어떻게 죽어. 커크는 아무렇게나 내뱉었지만 칸은 여전히 차가운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워낙 태연한 때가 많아서 저런 미소를 짓고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커크가 필사적으로 엔터프라이즈를 불렀다. 몇 십초 전부터 그들의 몸은 미립자에 휩싸여 있었다. 커크가 칸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내가 너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있군, 커크.
칸이 목소리를 내서 커크가 그를 바라보았다. 워프는 거의 완료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칸의 심장이 멎었다.
내 심장이 아직도 박동을 계속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이 뛰는 곳을 찾아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 것이다. 내가 할 마지막 일이 있다면 너를 그 아래로 끌어오는 것이지. 내 심장이 뛰는 지점으로.
전송실에서 숨을 쉬지 않는 칸을 보면서 커크는 또 그가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순간 그 이후를 기억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잔혹한 시를 읊는 것처럼 이어지는 칸의 목소리는 기어코 커크의 무의식적인 회상을 매듭지었다.
내가 복수를 위해서 움직이는 그 곳까지 말이야.
칸을 바라보고 있는 커크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호출을 받고 맥코이가 몇몇 의학 장교들을 동반해 전송실로 뛰어 들어왔다. 제일 먼저 칸의 맥박을 확인한 맥코이는 놀라면서도 의사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눈치 빠른 전송실의 엔지니어들이 들것을 비롯하여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가져왔고, 맥코이가 촉진제가 들어 있는 주사기를 단번에 찔러 넣었다. 커크의 등 뒤에서 숨 쉬고 있던 칸이 죽어있다. 커크는 칸이 자신을 위해 흘린 피가 묻어있는 셔츠를 가만히 훑어보았다.
맥코이는 마치 벽에 박힌 뭉뚝한 못처럼 튀어나와 있는 파편을 보고 고개를 젓다가 이내 간단한 수술 도구들을 꺼냈다. 간호사 한 명이 붙어 환부 주변의 옷을 가위로 잘라내고 다친 피부를 닦았다. 함교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스팍이 커크의 상태를 살폈다. 커크는 반사적으로 스팍을 향해 눈동자를 올렸다가 다시 칸을 보았다. 지독하게도 그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겠다는 말이 저주처럼 섬뜩했다.
피부가 상처를 덮으려고 꾸물대고 있었으나, 심정지가 발생한 판국에 자가 회복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맥코이는 지체하지 않고 칸을 수술실로 옮기라고 했고 칸이 들것에 올려졌다. 커크가 더듬더듬 일어섰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스팍이 비틀거리는 커크를 부축했다. 짐? 괜찮다고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들이 마신 공기에 칸의 피냄새가 섞여 커크는 그만 경련하고 말았다. 오, 옷을 갖다 줘. 제발…. 함장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챈 스팍이 즉시 다른 승무원에게 새 옷을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커크는 칸 누니엔 싱이 자신을 위해 흘린 피가 묻은 옷을 어떻게 해서든 벗어야 했다. 지금 당장은 그의 유언인 그것을 벗어야만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겠나? 커크는 자신의 환청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절대로 칸의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칸은 죽지 않았다. 그의 재생 능력은 맥코이가 제세동기와 약물을 동원해 심장을 깨운 즉시 되살아났다. 맥코이가 박혀 있던 조각들을 모조리 빼내고 소독에 봉합까지 거행해 주었다지만 그는 너무나 쉽게 살아났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곁을 얼마 오래 지키지도 않았던 제임스 커크를 볼 수 있었다. 칸이 말했다.
어땠나? …뭐가. 내가 널 보호하면서 죽지 않았나. 그 때 기분이 어땠지? 고통스러웠나? 죄책감을 느꼈나? 커크가 표정을 굳혔다. 뭐라고? 안타깝군, 네 양심이라든가 감정이라면 내가 전에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괴로워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 당시에는 분명 죽어 있던 자가 자신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커크는 오싹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겠나, 커크? 칸이 웃었다. 이번엔 환청이 아니라 그의 실제 목소리였다. 나를 희생해 네 목숨을 연장시켜 주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간 너에 대한 나의 가장 큰 고통이자 복수라는 것이다. 네가 나를 대신해 살아남는 거야. 또 다시, 내 피를 입고서. 칸의 얼굴에 커크를 지켜주면서 지었던 냉소가 가득했다.
커크는 두렵다는 감정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커크는 자신이 절대로 견딜 수 없는 칸의 말을 굳이 듣고 있었다. 나는 너를 위해서 다시 피를 흘릴 거다. 그 한 마디가 자신의 희생과 함께 커크의 죄책감을 더럽혔다. 커크는 도망치듯 칸의 병실을 나왔다. 이유도 없이 머리가 아프고 눈가가 뜨거웠다.
커크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엔터프라이즈의 여정 중에, 자신이 얼마나 더 그의 피와 복수를 떠안아야 할 지 짐작하기를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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