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커크] The Doll Filled with Radiation

- Star Trek Into Darkness 2013. 9. 18. 19:58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James Kirk
- Theme from 'Radioactive' by Imagine Dragons
- Slowly and Carefully
- Written by. Jade

The Doll Filled with Radiation 



  까만 하늘 위로 불꽃이 터졌다. 탁자를 정리하던 제임스 커크는 깜짝 놀라서 얼른 창밖을 바라보았다. 화염의 붉은색만이 공중으로 솟아오르고 있었을 뿐 그것은 찬란한 불꽃놀이가 아니었다. 커크는 주저 없이 간단하게 입고 있던 티셔츠 위에 재킷을 걸쳤다. 불꽃은 치솟고 건물의 잔해는 아래로 추락한다. 그는 타오르는 건물이 스타플릿의 헤드쿼터라는 걸 단번에 눈치 챘다.

  자신의 모든 생각을 충실하게 따르자면 커크는 누구에게라도 이 사실을 알리고 동행을 요청하고 싶었다. 스팍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고 맥코이도 괜찮다. 믿음직한 술루도 좋고 알게 모르게 아는 게 많은 스콧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체콥 역시 무섭지 않을 거라고 살살 달래면 제 역할 쯤은 거뜬히 해치울 수 있는 훌륭한 동료였다. 하지만 커뮤니케이터마저 압수당한 지 오래였으므로 제임스 커크는 혼자서 모터사이클에 시동을 걸었다. 몇몇 사람들이 폭발음에 놀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제 막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타플릿의 폭발 안에 있는 누군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노란색 셔츠가 아니라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특색 없는 옷을 입게 되었지만, 누구보다 본부로 향하는 지름길을 잘 알았다. 커크는 페달을 힘있게 밟아 속력을 높였다. 불덩이들이 춤추는 축제는 계속되고 있었다. 헤드쿼터에 가까워질수록 열기가 느껴졌고 검은 연기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모터사이클을 거의 내팽개치듯 세워 놓고 제임스 커크는 허겁지겁 달렸다. 자신이 한때 입었던 제복과, 자신의 동료들은 아직까지 입을 수 있는 제복을 입은 장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본부의 중앙 시설은 거의 불길에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스타플릿의 심장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으나 이 와중에도 폭발은 나름의 미학을 지켜가며 터졌다. 불꽃은 한꺼번에 교양 없이 뿜어져 나오지 않았고, 건물들은 일면 여유롭게 붕괴했다. 

  순간 커크는 커뮤니케이터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피하고 있는 장교들을 붙잡아 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커크는 저 안에 혹시 자신이 아는 얼굴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단지 그 작은 통신기가 없어서, 그리고 그는 더 이상 헤드쿼터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과거의 동료들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럼에도 엔터프라이즈의 전(前) 함장은 안으로 들어갈 궁리를 짜내려 애썼다.

  제임스 커크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지만, 분명히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연락 수단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는 이제 누군가와 같이 발을 움직였다.

  마른 바람이 불었다. 커크는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 불꽃은 두터운 건물의 파편에 붙어 그것을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었으나 대신 재와 먼지가 바람을 타고 휘날렸다. 동시에 커크는 놀라운 풍경을 목격했다. 우주 정거장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마땅한 스타플릿의 함선들이 꼭 별똥별처럼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커크의 푸른 눈동자가 확 커져서 수축될 줄 몰랐다. 스타플릿의 생도였고 또한 함장이었던 그는 조각나는 함선의 이름을 전부 떠올릴 수 있었다. 

  한 때는 제임스 커크의 것이었던 엔터프라이즈가 하얀 동체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함선들과는 다르게 속절없이 추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커크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어떻게 하나로 짜 맞춰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의 뒤로 빛나는 함선을 그대로 감쌀 수 있는 거대한 실루엣이 밤하늘보다 더 진한 잔영을 남겼다. 그것은 표현 그대로 엔터프라이즈를 부드럽게 안을 것처럼 보였다. 커크는 스타플릿의 헤드쿼터가 터져 나가는 와중에 유유히 공존하고 있는 엔터프라이즈와 벤전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건물에서 더 이상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엔터프라이즈와 벤전스를 눈으로 쫓고 있는 제임스 커크는 그를 무시한 채 살아남으려 애쓰던 이들이 사살되는 광경을 놓쳤다. 뒤이어 그의 시선을 화염을 뚫는 그림자가 있어 커크는 유유자적하게 이루어지는 스타플릿의 멸망을 보지 못했다.

  엔터프라이즈와 벤전스는 나란히 멈춰 섰다. 그리고 지상의 두 존재 역시 나란하게 멈춰 있었다. 하얀 함선의 옛 주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불길에 살짝 상한 코트를 걸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잠깐이나마 검은 함선의 주인 노릇을 했었다. 아니, 벤전스는 원래 그의 것이어야 했다. 제임스 커크는 그의 선원들이 분명해 보이는 석고상 같은 인물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칸 누니엔 싱을 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 즈음 커크는 비로소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스타플릿의 옷을 입고 있는 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커크처럼 밋밋한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조금씩 계단을 올라왔다. 커크는 숨을 쉬기가 불편했다. 제임스 커크만이 그 곳에서 산소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주변이 화염과 재와 먼지에 오염되긴 했지만 그가 들이 마실 공기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제임스 커크는 다가오는 칸 누니엔 싱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엔터프라이즈가 5년의 탐사를 마치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도중에 어떤 행성의 에너지가 제임스 커크에게 있던 칸의 피를 자극하고, 끝내 그것을 구실 삼아 커크가 함장직을 박탈당하는 상황을 지나온 시간이었다. 그에겐 견딜 수 없이 긴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칸의 얼굴은 그것을 모조리 한여름 밤의 꿈으로 치부해 버릴 것처럼 평온하고 하얬다. 서서히 하강하고 있는 엔터프라이즈와 벤전스의 불빛이 어두운 땅에 차차 내려앉았다. 칸은 계속 커크에게 오고 있었다.

  칸은 잠시 커크가 입고 있는 셔츠를 바라보았다. 얼핏 그의 옷은 밤에 섞여 검게 보였다. 물론 커크의 셔츠는 검은색은 아니었지만 칸이 보기에 그것은 충분히 진했다. 칸은 희미하게 웃으며 커크의 가슴팍에 무언가를 달아 주었다. 제임스 커크가 뺏겼던 함장의 상징이었다. 

  “네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이것이 세상의 종말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일 수도 있지.”

  리더의 부활과 그들이 지배해야 할 땅을 자각한 존재들이 허리를 곧게 폈다. 커크의 눈에 그들은 꽤나 비슷비슷해 보였다. 그들을 통해 무언가를 원했던 인간들에게 중요한 건 실험의 결과지 그들의 외관은 아니었으리라. 300년을 침묵하고 마침내 각성한 그들의 벅찬 에너지가 아직도 폭발하고 있는 불꽃으로 시각화된 것 같았다. 제임스 커크는 칸이 달아준 뱃지를 한 번 보고 칸의 청록색 눈동자를 그보다 더 길게 바라보았다. 칸 누니엔 싱의 뒤에서 터지는 화염은 곧 그의 날개였다.

  “무엇을 선택하겠나, 캡틴?”

  이미 두 함장의 머리 위에서 하얗고 검은 함선들은 하나로 뭉쳐 있었다. 칸이 커크의 가까이에서 직책을 붙인 그의 완전한 이름을 불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