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with Henry Hart
- Written by. Jade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02. 두 가지 헌신
발렌타인이 차마 앞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가젤을 향해 말했다.
“죽었어?”
그 물음에 가젤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니, 총 쏘면서 목표를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젠장, 피가 튀잖아! 내 눈으로 그딴 역겨운 걸 볼 수는 없어. 빨리 놈이 죽었는지 확인해봐.”
발렌타인은 총을 쥐고 있는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가젤에게 다급한 동작을 전달했다. 가젤이 피를 흘리고 있는 해리 하트 옆에 쪼그려 앉아 귀를 세웠다.
“으이구, 아직 숨이 붙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잘 쐈어야죠. 마저 죽여 놓으면 되는 거죠? 총 줘 봐요.”
발렌타인이 넌더리를 내면서 가젤에게 총을 건네려다 멈칫했다. 가젤이 팔을 더 길게 뻗자 발렌타인은 아예 총을 가슴팍 앞에 붙여버렸다. 가젤이 갸웃했다.
“왜요?”
“안 죽었다고?”
“네. 알아서 마무리하고 싶으시다면 안 말려요.”
“미쳤어? 다신 이런 짓 안 해! 내 말은 저 놈 숨을 완전히 끊어놓자는 게 아니야. 생각해 보니까 꽤나 아깝잖아. 일단 건드리지 말아봐. 어디 피 좀 가릴 거 없어?”
가젤이 방금 전까지 그들이 숨어 있었던 집을 눈짓으로 가리키자 발렌타인이 냉큼 수락했다. 발렌타인은 혹시라도 흐르는 피가 자신의 멋진 운동화에 묻을까봐 범죄 현장에서 줄행랑을 쳤고 가젤은 천을 구하러 갔다. 총상을 입은 해리 하트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그의 미약한 움직임을 본 것은 발렌타인을 호위하고 있던 경호원들뿐이었는데, 그들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무심하게 총을 내린 채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
기발한 재능과 그것을 뒷받침할 재력만 있다면 핸드폰에 꽂혀 있는 작은 칩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신경 호르몬을 조정할 수도 있는 기술이 존재하는 시대였다. 급소를 빗겨간 총상을 입은 해리 하트가 살아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리치몬드 발렌타인의 천재성이 의학까지 닿지는 않았던 지라, 발렌타인은 호기심과 실력을 두루 갖춘 학자들을 섭외했다. 발렌타인은 그들에게 해리 하트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개조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차라리 발렌타인이 원하는 해리의 자질을 뽑아낸 인형을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고 답했다. 발렌타인은 그들의 창조적 의지에 박수를 보냈다.
발렌타인은 그들에게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의뢰금을 쥐어주었다. 자금과 장비를 손에 얻은 학자들은 그 이후로 발렌타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자신들의 실험체에 몰두했다. 그것이 리치몬드 발렌타인의 사망 이후에도 그들이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었다.
비틀린 천재성들이 낳은 결과물은 아직 자신이 탄생한 장소에 머물고 있었다.
남자는 메인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곳은 본래 남자의 요람이었으나 지금은 은혜를 모르는 배덕한 학살의 현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남자는 사후 경직으로 인해 더욱 거추장스러워진 연구원들의 시신을 발로 치워내면서 선반을 뒤적거렸다. 그는 투명한 약물이 가득 찬 비닐팩 하나를 꺼냈다.
남자는 자신이 조성해 놓은 폭력적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깨어나자마자 분노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반짝거리는 눈동자들 중에서 본능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너무도 화가 나서 그는 인간의 또 다른 성취를 만져보려는 이들의 손을 전부 잘라내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남자는 타인의 피를 흘리면서 자신의 위태로운 공허함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그 당시 남자는 거울을 보지 않아 자신의 얼굴을 몰랐다. 남자가 해리 하트에게 몸을 숙인 건 어떤 동질성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해리 하트의 존재가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 때문이었다.
남자는 어떤 작가의 책 표지를 보고 그의 이전 작들을 떠올리듯 서 있다가 두 눈을 좁혔다. 그가 물론 문단속을 잘 할 것이었지만, 위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나자빠진 껍데기들이 남자의 신성한 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그는 조만간 거주지를 옮기기로 했다.
남자는 다시 해리 하트에게로 가서 해리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약품을 보충해주었다. 그는 외출할 일이 없다면 언제나 해리의 옆을 지켰다. 그는 조금만 움직이면 해리의 피부와 호흡을 마주할 수 있는 곳에 앉아서 노트북을 폈다.
그는 발렌타인의 소프트웨어를 옮겨 닮아온 USB를 포트에 꽂았다. 프로그램은 곧장 실행되지 않았다.
/음성 암호를 입력해주세요./
남자가 노트북의 마이크 쪽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해리 하트.”
/승인되었습니다./
단 한 개의 버튼과 더불어 안정적인 보랏빛을 띠고 있는 지도가 등장했다. 남자가 터치패드와 닿아 있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남자는 해리에게 죄를 덮어 씌웠으며, 하마터면 해리가 그것에 대해 속죄도 변명도 할 수 없게 만들 뻔했던 타락의 결정체를 어떠한 거리낌 없이 작동시켰다.
⁂
작지만 꾸준한 기계음이 자꾸만 에그시의 고막을 찔렀다. 에그시가 실눈을 뜨고 침대 옆을 더듬었다. 퉁퉁 제자리 뛰기를 하던 안경이 간신히 에그시 손에 들어왔다.
“오늘 휴가라면서요….”
에그시가 콧잔등에 대충 안경을 올리고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쳤다.
—휴가 타령을 하는 걸 보니 너는 영향을 받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드물게 멀린의 목소리에서 음의 고저가 두드러졌다.
“에? 왜요?”
—발렌타인의 USIM 칩이 작동을 재개했어.
놀란 에그시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제대로 쓰지 않았던 안경을 양손으로 받친 그가 이불 바깥으로 뛰어나왔다.
“어, 잠깐만. 저 움직여도 돼요? 그 파동에 휘말리지 않겠어요?”
—방법을 강구중이다. 발렌타인이 죽은 마당에 대체 누가 그 시스템을 켰는지 모르겠군. 일단 조심히 본부로 오도록 해라. 발렌타인의 회사가 무너지고 있는 추세라 많은 사람들이 카드를 교체해서 아직까지는 피해가 크지 않다.
“금방 갈게요.”
통신을 마친 멀린이 모니터를 보았다. 커다란 몇 개의 땅덩어리로 간소화되어 표현된 세계의 색깔은 아직까지 평화로웠다. 무료로 지급받은 USIM 칩을 내버릴 수 없는 저소득층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들에서 소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멀린은 틈틈이 칩을 분석해놨던 자료를 뒤적거렸다.
멀린의 앞에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지도는 남자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무료한 듯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벌써 지루함이 몰려왔다. 그는 지도를 확장시켜 도시들의 세부적인 상태를 훑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아예 칩의 영향권에 속해 있지도 않았다. 그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USB가 산성도 높은 용액이 든 비커 속으로 빠졌다. 거품이 일면서 저장 장치가 녹아갔다. 남자는 노트북을 닫고 지금까지 한 치도 움직인 적 없는 해리 하트에게 슬프고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발렌타인의 손까지 구해가면서 남자가 그의 시스템을 활용하려고 했던 것은 순전히 해리 하트가 깨어나지 못해서였다. 남자는 되도록 해리의 곁에서 오래 떨어져있고 싶지 않았다. 그에겐 자신에게 선사할 경이로운 빛과 소리를 아껴두고 있는 해리를 보호할 의무도 있을뿐더러, 해리 하트가 눈꺼풀을 올렸을 때 밋밋한 천장이 아닌 자신을 마주하고 보일 반응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남자는 튜브와 테이프 자국이 난 해리의 팔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남자는 빠른 시일 내에 해리에게 의식을 찾아줄 의사를 수소문하겠다는 의지를 자신의 입맞춤에 실어 해리에게 전했다.
해리의 병실은 그 무엇과도 관계없이 적막하고 깨끗했다.
⁂
에그시가 매듭이 엉킨 넥타이를 이리저리 고쳐보면서 하이퍼루프에서 내렸다. 멀린은 루프 근처 컴퓨터 앞에서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멀린, 그래서 해결책은요?”
“…필요 없어졌다.”
“네?”
“신호가 끊겼어. 추적해 볼 틈도 주지 않아서 어디서 그 신호가 발원했는지도 알 수 없게 됐고.”
에그시가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그럴 듯한 가설을 세워보려 했다.
“기계장치의 오작동인 건가요, 그럼?”
“그랬다면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칩이 작동했겠지. 이건 누군가의 제어 하에서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거다.”
멀린의 책상 위에는 어떤 회로도로 보이는 그림과 각종 기계 언어가 쓰인 쪽지가 어우러져 있었다. 아쉽게도 그 고차원적인 내용들 안에 발렌타인식 학살을 꾀했던 자에 대한 단서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배후를 잡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가벼운 것부터 해치워야지. 칩들을 수거해. 란슬롯이 30분 뒤에 온다고 했으니 합류하도록 하고.”
에그시가 군말 없이 새 임무를 수락했다. 누구도 겉으로는 분노를 표현하지 않았다.
⁂
보스턴의 주택가에서 색이 빠진 초록색 지붕이 달린 집은 주목 받을 이유가 하등 없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그 집의 주된 거주자 역시 이따금씩 학술지나 방송국 등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기자들만 아니라면 조용하게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는 인물이었다. 그는 대중들이 노벨 문학상이나 평화상이라면 모를까 생리의학상 수상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걸 늘 천운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늘 밤 그의 고요한 운세에 금이 갔다.
“오셨습니까, 로스먼 박사님.”
로스먼 박사가 화들짝 놀라 현관의 문고리를 잡았다. 총의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핸드폰 이리로 던지시죠.”
침을 꿀꺽 삼킨 박사가 겉옷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좀도둑들이 들끓고 있다는 주변 소식을 듣고 설치해 놓은 경보기는 얄밉게도 잠잠했다.
“어, 어디 있는 거요.”
“거실 소파에 있습니다. 핸드폰 주세요.”
로스먼 박사가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으로 밀었다. 검은색 구두를 신은 발이 그것을 탁 잡아 세우더니 구두 굽으로 전화기의 액정을 내리찍었다. 로스먼 박사는 냉혹하게 핸드폰을 박살내는 굽을 보면서 자신의 손목도 그러한 꼴이 날지도 모른다는 현실성 높은 상상을 그렸다.
“다니시는 병원의 출입증, 가지고 계십니까?”
“…목에 걸고 있소.”
“그것도 주세요.”
박사는 드레스 셔츠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목걸이 형태의 출입증을 잡아 뺐다. 핸드폰처럼 목걸이 역시 멀찍이서 던지려고 했던 로스먼 박사는 갑자기 등장한 팔이 출입증을 낚아채면서 총구로 목선을 짓누르자 헛기침을 뱉었다.
“박사님 정도면 그가 바라는 세상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나도 당신을 그다지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워, 원하는 게 뭐요.”
“사람 하나 살려달라고요. 그게 당신 직업이잖아.”
침입자는 총으로 박사의 피부를 밀어대면서 그가 숨을 쉬는 통로를 완벽하게 확보한 다음 몸수색을 단행했다. 로스먼 박사는 다소 크고 긴 손이 자신의 목 구석구석을 더듬는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침입자의 중지에 걸려 끌려나온 박사의 자동차 열쇠가 그의 떨리는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몇 분 뒤 로스먼 박사가 운전대를 잡았다. 박사의 눈동자가 자꾸만 뒷좌석에 덜미를 잡혔다. 상식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봉합 자국을 이마 위에 달고 있는 남자가 소음기가 달린 총을 까딱거렸다.
미국의 각종 사법 기관들은 발렌타인이 주마다 깔아 놓은 지사들을 폐쇄하고 증거물을 모으며, 그의 재산을 몰수하러 다니는 데 인력을 쏟아 붓는 중이었다. 혼란이 또 다른 혼란을 먹어치우는 일이 거듭되기만 했다.
⁂
나의 소중한 해리, 정말이지 지겹도록 잠만 자네.
해리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지칭어에 눈꺼풀을 떨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그동안 멍청하게 있었음을 갑자기 깨달았어. 당신이 날 처음 봤을 때 당신이 발음해 줄 내 이름조차 생각해 놓고 있지 않았다니. 내가 해리 하트일 수는 없잖아. 그 이름은 당신 것이니까.
해리는 무의식적으로 긍정했다. 자신은 해리 하트였다. 그러나 해리는 자신에게 어딘가 불안정한 설렘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화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당신과 나를 연결 지을 수 있고, 나의 근본이 당신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어떤 문학 작품에서 해리라는 왕자가 제위를 하면서 왕명을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헨리라고 정하더라고. 물론 내가 왕이 되겠다는 건 아니야.
해리는 의문을 가졌다. 그가 영국 왕실과 아예 동떨어져 있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왕위를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해리를 간질였다.
이렇게 생각해 봐요. 해리 왕자는 헨리가 되지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아 그의 토대와 함께한 정체성은 해리라는 말 안에 있어. 헨리 왕의 본질은 해리야. 그래서 내가 당신의 헨리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나는 당신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껍데기야. 실체 없는 언어뿐인 왕명을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해리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은 의식이 현기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느꼈다. 해리는 이대로 계속 가라앉고 싶었다.
일어나, 해리.
그걸 모르는 화자는 계속해서 해리를 불러댔다. 해리는 앞을 볼 수 없는 눈을 떴다. 어떠한 중심적인 색채 없이 오로지 퍼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흐름이 그를 높은 곳으로 올려다놓으려 했다.
해리.
해리는 이제 화자를 알았다.
“…헨리?”
해리는 실제로 자신이 그 이름을 읊조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애썼던 이미지가 차츰 실제적인 양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끔찍한 흉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자신과 똑같은 남자를 발견한 해리의 동공이 팽창했다.
로스먼 박사가 부활한 악마를 목격한 양 도망치듯 방에서 나갔다. 헨리 하트가 살아난 자신의 근원을 끌어안았다.
'- Kingsman > Full-length' 카테고리의 다른 글
[Kingsman/해리에그시헨리] Frankenstein 04 (0) | 2015.08.03 |
---|---|
[Kingsman/해리에그시헨리] Frankenstein 03 (0) | 2015.08.03 |
[Kingsman/해리에그시헨리] Frankenstein 01 (0) | 2015.08.03 |
[Kingsman/해리에그시] Saint and Sinner 12 (The Finale) (0) | 2015.08.03 |
[Kingsman/해리에그시] Saint and Sinner 11 (0) | 2015.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