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 Written by. Jade


성자와 죄인Saint and Sinner

Chapter 6.인간으로서의 통합Integration Under the Name of Human

(The Finale)






  에드윈 디케이는 빠져나갈 틈도 없이 묶였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 에드윈이 대규모의 무질서를 조성하고자 했음은 록시의 녹취 자료가 증명했고, 발렌타인에게 위성을 빌려주어 그의 재앙을 지원했다는 건 멀린이 조합한 기록이 입증했다. 여기에 제퍼슨이 그간 에드윈이 범죄 조직들에게 후원금을 대준 사실을 폭로하니 디케이 코퍼레이션의 창립자는 순식간에 사법 기관들의 표적으로 전락했다. 에드윈이 자신의 또 다른 프로젝트를 위하여 강제로 소집했던 전직 히트맨들은 혐의 없이 그들의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반면 해리 하트의 위치는 그보다 애매했다.


  일단 그는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다. 해리는 미국 내 의학 리서치 기관에서 치료 겸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이태까지 수술이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던 멀린도 백기를 들면서 해리는 다소 실험적인 수법을 동원한 뇌수술을 통해 남아 있던 불필요한 파동을 없앴다. 디케이가 멋대로 행한 정신적 충격 요법으로 인해 상처 입은 뉴런의 경우, 치료법이 그야말로 연구 단계에 놓여 있어 당장 조치를 취하긴 어려웠다. 해리는 돌아가는 대로 신경줄기세포 연구 기관에 후원금을 내야겠다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나마 시간의 힘으로 이전보다 기억을 찾았다는 게 해리로서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제퍼슨이 서명을 받아낸 내용대로 해리는 복역이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자신의 죗값을 청산할 예정이었다. 해리 하트가 입은 피해는 누구라도 무시할 수 없으며 조작할 수도 없는 종류였으므로 담당자는 상상보다 강력한 걸 만났다는 낯짝을 띄우며 돌아갔다. 


  제퍼슨과 멀린은 사소하게 남은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자주 바깥으로 나돌았다. 록시는 때아닌 뉴욕 주의 부동산 시세와 씨름을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가격에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언제나 해리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에그시였다.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던 에그시는 이동 침대의 헤드가 등장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원이 해리가 누워 있는 침대를 빈자리에 잘 맞춘 뒤 방을 벗어났다. 해리가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둥글게 눌렀다.


  “도대체 이건 익숙해지질 않는군.”


  에그시가 조심조심 해리에게 근접했다.


  “기분 많이 이상해요?”

  “음, 뭐라고 설명하긴 어렵구나. 어쨌든 별로 권장하고 싶지는 않아.”


  에그시는 혀를 내밀면서 웃었다. 해리가 벗으려 하는 안경을 굳이 대신 받으면서 그가 말했다.  


  “쉬세요, 해리.”


  에그시는 해리의 옆자리에서 다시 잡지를 펼쳤다. 신경학 학술 잡지는 표지부터 눈이 팽글팽글 돌아갈 만한 복잡한 문장들로 뒤덮여 있었다. 


  “에그시,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니?”

  “물론이죠.”


  에그시는 반사적으로 웃는 낯을 둘렀다. 해리는 그런 에그시의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내 머리와 기억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지 않아서인 탓도 있겠지만… 너의 호의가 내게는 조금 과분한 것처럼 여겨지는구나. 나는 너에게 의례적으로 내 몫이어야 하는 응답을 주었을 뿐이고 너를 후보생으로 추천한 것밖에 없어. 그런데 너는 언제나 나를 보듬어주며 구하려고 해. 현실에서도, 무의식에서도.”

  “…부담스러우세요?”

  “아니다, 에그시.”


  어찌된 일인지 해리는 이전보다 에그시가 풀이 죽거나, 기분이 상했다는 뉘앙스를 더 민감하게 감지하게 되었다. 에그시의 말꼬리가 내려가자 해리는 금방 손사래를 쳤다. 


  해리는 이제 에그시가 끼어 있는 기억들은 대략 회상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에그시는 참 다양한 외양의 소유자였다. 그는 연약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양심을 일깨우는 사자이기도 했고 자신이 보호할 대상이기도 했다가, 때로는 자신에게 혼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빛을 주는 인도자로 다가오기도 했다. 


  해리가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너에게 그냥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구나. 정말 고맙다, 에그시.”


  에그시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누가 봐도 눈물을 억누르고 있음을 광고하는 움직임이었다. 해리는 목이 아플 수준으로 머리를 털어대고 있는 에그시의 몸짓에 웃음을 흘렸다.


  야단스럽게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린 에그시가 해리를 보았다. 자신이 그렇게도 되찾고 싶었던 신사의 맑은 눈동자가 그에게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주고 있었다. 에그시야말로 고마워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불신에 가득 찬 침묵도, 발렌타인이나 디케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족속들과 부정한 살기도 없는 놀라운 일주일이 지나갔다. 


  해리가 그동안 연구소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 덩달아 외출을 자제했던 에그시는 목이 뻐근해질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석조 건물을 올려다보며 어딘가 못마땅하다는 티를 감추지 못했다. 이거 다 시민들 세금 들였을 거 아니냐면서 엉뚱한 비판을 늘어놓는 통에 킹스맨만의 슈트가 주는 고급스러움이 3할이 깎여 나갔다.


  해리가 가볍게 에그시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몇 번의 험악한 대치 상황을 겪으며 해리가 갖고 있는 단 한 벌의 방탄 슈트에는 군데군데 손상이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갔다 오마.”


  사법 기관 관계자들과의 최종 대질을 앞둔 아슬아슬한 운명의 당사자가 냈다고는 믿기 어렵도록 정감 어린 음성이었다. 에그시는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이따 봬요.”


  해리가 품위 있게 법무부의 출입문을 젖혔다. 로비에서 나타난 제퍼슨이 해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옆, 킹스맨들은 연못을 끼고 있는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 있었다. 해리는 차분하게 마지막 단계를 거쳐 확정된 사항들을 늘어놓았다. 멀린은 어깨를 으쓱했고 제퍼슨은 불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기색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반응을 보여준 건 에그시였다.


  “해리가 무슨 노예에요?!”


  에그시는 흥분한 나머지 의자를 연못 밑바닥으로 밀어버릴 기세였다. 에그시가 최고급 용지가 사용된 문서를 쿡쿡 찔렀다.


  “이거 해리를 갖다 미국 놈들 맘대로 써먹겠다는 거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진짜!”

  “죽인 만큼 살리라는 거지. 속셈 하고는.”


  멀린이 찻잔을 홀짝이며 거들었다. 분개하는 영국인들 무리에 낀 제퍼슨의 옆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릴 듯했다.


  “나는 만족스러운데? 적어도 내 죄에 눌려서 무력하게 신음할 일은 면했잖나.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는 이상 은퇴는 먼 옛날 얘기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당신 얘기라고요, 해리. 농담이 나와요?”


  허나 졸지에 미 사법기관과 정보기관에 ‘대여’된 꼴이 되어버린 킹스맨 요원은 태평하게 커피를 내린 직원의 실력을 칭찬했다. 에그시가 소리 나게 이마를 테이블에 박았다. 이에 해리는 움찔하면서 애꿎은 이마에 고통은 왜 주냐는 눈초리를 보냈다. 에그시는 새삼 해리가 다 회복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그나저나 자네 둘은 이제 영국으로 돌아가겠지?”


  해리가 차례대로 멀린과 에그시를 보았다. 두 사람이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해리는 제 자리에서 천천히 주위 풍경을 망막에 담았다. 하얗고 큼직한 글씨가 여행객들을 안내하고 있었고 근로자가 작은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수거했다. 간이 식수대와 공중전화는 화장실과 단짝처럼 붙어 있었다. 바퀴 달린 가방과 커다란 보스턴백이 그 틈새를 헤쳐 나갔다. 


  지극히 공항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이었다. 


  해리는 영구적인 나락이 아니라 잠깐의 이별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신이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서 있다는 걸 아주 느릿하게 받아들였다. 쫓겨나있어야 마땅했던 것들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그의 현실을 점령했었기에, 해리는 뒤늦게 되찾은 균형 속에서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에게 누구보다 믿음직한 아군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에그시가 뒤쪽으로 손을 깍지 낀 채 도리질을 했다.


  “안 가요?”


  해리가 희미한 미소로 응했다. 멀린과 록시를 배웅한 두 사람은 터미널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리, 그 연구소에 있을 때 무의식 얘길 한 적 있었잖아요.”

  “그래.”

  “해리 무의식이랑 제가 무슨 관련이 있어요?”


  센서가 두 사람의 동작을 읽어 문을 개방했다. 여행 가방을 한두 개씩 손에 붙든 이들이 택시 정류장에 줄 서 있었다. 


  “옳은 것들은 모두 너를 통해서 나타나더구나. 덕택에 나는 극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온전한 형태를 얻을 수 있었어.”


  에그시가 입가에 힘을 주었다.


  “음… 좋은 뜻이죠?”

  “네가 여태까지 나에게 들려줬던 말들과 같은 뜻이지.”


  빈 택시들이 손님을 받고자 유턴을 하며 인도에 붙었다. 승객들을 줄 세우는 택시 회사의 직원이 둘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해리가 에그시 대신에 대답했다.


  기사보다 먼저 해리가 뒷좌석 문을 열면서 에그시에게 들어가라고 친절하게 지시했다. 에그시는 맨 처음 하이퍼루프에 탑승할 당시가 떠올라서 생글거렸다. 에그시는 자신이 영원한 동행인이 되어주기로 결심한 신사를 바라보았다. 만약 랭글리에서마저 해리 하트의 이성을 더럽히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진땀을 뺄 각오를 해야 하리라.


  해리가 에그시의 눈길에 반응했다. 두 사람은 공허하지 않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