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헨리] Frankenstein 01

- Kingsman/Full-length 2015. 8. 3. 16:16 posted by Jade E. Sauniere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 & Eggsy with Henry Hart

- Written by. Jade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01. 장례와 탄생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면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극단으로 치달았으나 간신히 추락의 위기를 면한 세계는 목숨을 부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발렌타인의 감옥에 갇혀 있던 명사들을 제외한 각국의 기득권층이 상당수 목숨을 잃고, 국가들은 그야말로 한 유명 사회학자가 주장했던 무질서 상태를 체험해야 했다. 선거에 나설 수 있는 인원 자체가 부족한 탓에 의회에 무혈 입성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한편 세계를 뒤흔드는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새로운 인재들이 고개를 들었다. 


  일주일 내내 대로변에서 장례식을 위해 꾸며진 차량을 볼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수축하던 세상의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자들은,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공간이 무사한 탓에 이어가게 된 숨을 내쉬면서 거리를 어둡게 만드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검은 옷과 검은 차들이 온 대륙을 돌아다녔다. 


  사실 그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우산을 끌면서 집에서 나온 에그시는 하얀 띠를 두른 운구차를 쳐다보았다. 무거운 관을 끌어야 하는 차량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현대에서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고 평가받을 만했다. 


  발렌타인과의 일을 정리하고 스웨덴 공주를 위로해주는 일까지 마친 에그시는 뒤늦게 교회 앞에 쓰러져 있을 자신의 은인을 떠올렸다. 에그시는 잘린 넥타이와 탄환 자국이 남은 슈트를 벗지도 못하고 켄터키의 작은 마을을 가로질렀다. 적막한 교회에서는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햇빛에 말랐다가 밤공기에 차가워지기를 거듭한 불우한 남자의 흔적도 없었다.


  에그시와 멀린은 끝내 해리 하트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추모주를 들었다. 


  에그시는 걷다가 자신의 발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런던의 판판한 인도가 그를 떠받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에그시는 반이 잘려나간 틈으로 자신의 오른발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환상적인 심연을 볼 수 있었다. 멸망하지 못해 지속되어야만 하는 건 에그시의 기반도 마찬가지였다.


  시신이 없어서 해리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에그시는 운구차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주 느릿하게 걸었다. 해리 하트가 그에게 준 것들이 무색하게도, 에그시는 해리를 위하여 국화꽃 한 송이 놓을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뀌는 각종 정치적 벽보들이 런던의 벽면에 끈적끈적한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저 왔어요, 멀린.”

  “에그시.”


  멀린은 중앙의 좌석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그것이 아서의 자리임을 알았고, 남아 있는 신사들은 멀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멀린이 왕이 아닌 마법사의 이름을 고수하는 이유를 존중했다. 에그시도 그 일원 중에 하나로서 그를 멀린이라 불렀다.


  해리 하트의 비극을 나름의 방식대로 소화하고 있는 멀린이 앞에 놓여 있던 타블렛을 만졌다. 에그시가 그의 오른편에 착석하며 안경을 썼다.


  “런던에서 극우파들이 일부 과격한 근본주의자와 힘을 합쳐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킬 거란 첩보가 들어왔다. 날짜는 이틀 뒤.”

  “옥스퍼드 백작의 연설 날짜로군요?”

  “정확해. 집단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백작을 납치 및 암살할 위험도 있어 각별히 주의가 필요한 임무다.”


  에그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멀린이 타블렛 밑에 있던 봉투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저 혼자 해요?”

  “란슬롯은 리옹으로 파견 갔어. 새로운 요원들을 뽑아야 하는데 훈련생들을 받을 여유도 없어서 인력난이 가중되는군.”

  “이해해요. 뭐 고생스러워도 보람찬 일 하려고 여기 들어온 건데요. 또 다른 용건 있으세요?”

  “아니. 그만 가 봐도 좋아.”


  에그시가 일어나기 전 봉투를 슥 열어 내용물의 양을 확인했다. 척 봐도 두툼한 자료들에 그가 반 정도는 진심을 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그시가 만찬장을 나섰다.


  멀린은 에그시가 떠난 자리를 응시했다. 중앙에 위치한 의자의 오른쪽은 기사 퍼시벌의 것이다. 그리고 에그시는 자신이 부여받을 코드네임을 알고 있었다. 멀린은 모두가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갤러해드의 의자를 거쳐서 출구로 걸어갔다.





  사원증을 목에 건 일군의 사람들이 한 곳을 힐끔거렸다. 한 면을 강화유리로 덮어 캘리포니아의 정경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빌딩의 노른자위가 양복 입은 무리들 때문에 혼잡했다. 꽉 찬 종이 박스들이 바닥에 쌓여갔다.


  “더 없는 거 맞아?”

  “뒤질 곳은 다 뒤졌는데요.”


  또 다른 남자가 박스들을 실을 수 있는 수레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따금씩 까치발을 들어가면서 내부를 엿보던 사람들이 푸념 한 줄기를 흘리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대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조만간 이 사원증을 버리게 될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을 담고 있었다.


  리치몬드 발렌타인의 사무실을 통째로 상자에 구겨 넣은 경찰들이 복도로 나왔다. 


  “다음엔 또 어디야?”

  “가장 가까운 데는 말리부 별장.”

  “확실히 그 양반이 차원이 다른 억만장자이긴 했나 보구만. 대체 돌아야 할 군데가 몇인지, 원. 이렇게 몰수하러 다녀도 분명 빠지는 게 한 두 개쯤은 있을 걸?”


  남자의 추측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가 수레를 밀면서 말했다.


  “그렇게 한두 개 빠지는 재산만 챙겨도 인생이 달라지겠어.”

경찰들이 씁쓸하게 키득거렸다. 캘리포니아 외에 다른 3개 주에서도 경찰관들이 그들과 비슷한 잡담을 나누었다. 


  한편 발렌타인의 해외 계좌를 보유하고 있던 4개 국가에서는 인터폴 요원들이 은행 직원들에게 잔뜩 신경질을 부려대고 있었다. 발렌타인이 가장 엄격히 관리했다는 계좌들이 머리 없는 시체들이 대규모로 발생한 그 날을 기점으로 서서히 정리되었다는 소식은, 요원들과 은행 측을 모두 당황케 했다. 





  드레스 셔츠와 바지만을 걸친 남자가 살아 있는 자 없는 길을 걸었다.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은 육체들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고 악취를 풍겨대고 있었다. 깨끗하게 뜯겨진 목에서는 심지어 벌레도 자라나지 않았다.


  남자는 무대를 내려다보는 전망대처럼 조성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다가 멈춰 섰다. 그가 찾는 것은 예상 외로 위쪽이 아니라 바닥에 있었다. 그는 길고 뾰족한 침에 가슴을 찔린 리치몬드 발렌타인의 시신을 무심하게 뒤집었다. 남자가 발렌타인에게 박혀 있던 칼날과 침을 한 번에 빼냈다. 날카로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있어서 발렌타인의 몸에 보기 거북한 반달 모양의 상처가 났으나, 남자는 무표정하게 그것을 무시하고 발렌타인을 다시 똑바로 눕혔다. 그가 굽은 칼날로 발렌타인의 오른손을 잘랐다.


  남자는 발렌타인의 오른손만을 챙겨 위로 올라갔다. 상층부와 연결된 통로는 의외로 깨끗했다. 남자는 목적지에 도착해 자신이 훼손한 시신의 일부를 테이블 겸 스크린 한쪽에 던지듯 놓았다. 남자는 누구나 껄끄럽게 생각할 듯한 이물질이 약간 묻은 손으로 스크린을 켰다.


  /생체 보안 시스템 작동 중. 해지하겠습니까?/


  남자가 발렌타인의 손을 끌어와 기이하게 굽은 손가락들을 세심하게 폈다. 죽어버린 발렌타인의 오른손이 스크린 위의 손바닥 모양과 만났다. 발렌타인의 조각이 쓸모를 다했다.


  남자는 팔로 스크린을 휙 닦아내듯 문질렀다. 진즉부터 생명력을 잃었던 살덩이가 맥없이 추락했다. 이후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시스템을 이것저것 조정하기 시작했다. 


  /설정 변경. 새 생체 정보를 입력하시겠습니까?/


  남자는 혼자서 고개를 저으면서 화면을 넘겼다.


  /음성 인식 보안 시스템. 암호를 녹음하시겠습니까?/


  남자는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해리 하트.”

  /설정 완료/


  다음으로 남자는 한 손으로는 바지 주머니에서 이동 저장 장치를 꺼내고, 다른 손으로는 테이블 밑을 더듬어 장치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곧 테이블 중심부에 작고 길쭉한 홈이 파여 있는 게 느껴졌다. 남자가 저장 장치를 꽂았다.


  /소프트웨어 복사 중/


  남자가 잠시 서서 스크린을 내려다보았다. 


  /복사 완료/


  남자는 기괴함이 가득한 장소에서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취하고 밖으로 나갔다. 발렌타인의 실종된 잔고들을 비롯한 몇몇 사소한 사건들과 같이, 수많은 시신들은 아무런 호의도 받지 못하고 다시 처참하게 버려지게 되었다. 





  그의 움직임은 대체로 차분했으므로 남자의 하얀색 셔츠는 그다지 구겨지지 않았다. 남자는 누구나 가질 만한 미묘한 균열을 몸에 담은 채 문을 열었다. 의료 기기에서 나는 건조한 기계음이 그를 반겼다.


  남자는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담은 표정을 지으면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그는 남자와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며칠 전보다 조금 길어졌다는 걸 확신할 수 있는 머리카락을 넘겨 또 다른 남자의 이마를 가리는 방해물들을 치워냈다.


  남자가 그의 이마에 경건하게 입술을 맞댔다.


  남자는 주삿바늘을 꽂은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또 다른 남자의 미간과 눈꺼풀, 콧잔등까지 조금이라도 입맞춤을 위해 마련된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위에는 모두 자신의 입술을 바쳤다. 남자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것은 영락없이 병상에 누운 왕에게 변치 않는 충성을 바치는 기사의 자태였다. 


  “일어나요, 해리. 왜 직접 당신이 원하는 걸 나에게 들려주지 않아? 당신이 잠든 상태로 내게 말을 거는 게 서서히 지겨워지려고 하잖아요.”


  남자는 주삿바늘이 박혀 있는 손등에서 자신의 경배를 마무리하기 전 중얼거렸다. 남자는 잠시 그의 손등을 만졌다. 꽤나 오랫동안 물기가 닿지 않은 손이 푸석했다.


  남자는 그것에 자신이 가진 모든 수분을 전해줄 것처럼 깊숙하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내가 당신의 진정한 뜻을 존중할 거니까, 빨리 나를 만나러 와.”


  남자의 의식은 해리 하트의 마른 입술에 성실하게 자신의 호흡을 불어넣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남자가 해리의 가슴에 귀를 대고, 자신과 달리 안정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