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Montgomery Scott
- Written by. Jade
Captain's Shadow
그 딴에는 누군가 분명히 없을 시간이라고 생각하여 발걸음을 결심한 것이었다. 그것은 수갑처럼 서로 연결된 사슬만 없을 뿐 안쪽에 손목뼈를 가루로 만들 수 있는 바늘이 장착되어 있는 두꺼운 팔찌를 두르고, 목 뒤에는 GPS 장치가 달린 칩을 이식당한 대가로 얻은 약간의 자유를 소모하겠다는 뜻과도 상통했으니 그야말로 신중한 결정이었다. 굵직한 쇠줄과 기둥으로 고정된 함선이 드리우는 그림자로 그는 걸어 들어갔다.
그의 입가로부터 마치 내출혈의 증거처럼 차가운 숨이 흩어졌다. 딱 하루를 잡아 코가 비뚤어질 정도의 일탈을 결심한 자들도 비틀거리며 들어온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던질 새벽이었다. 밤에서 멀어진 어둠 속 그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린 채 고정되어 있는 해치를 올라 내부로 들어갔다.
의외로 그의 행동의 첫째가는 원칙은 본능이거나 감정적 반응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단지 그것을 합리화하는 이유들이 워낙 견고하고 짜임새가 있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가 하나의 기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열정(Passion)으로 태어난 그에게는 지옥보다 붉은 불꽃이 태워버릴 대상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
큼직한 전등은 대부분 꺼졌고 희미한 빛의 줄들이 복도 끄트머리를 휘감고 있었다. 그는 이 하얀 함선에 두 번째로 들어온 경험을 치르는 중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아갔다. 마무리가 덜 된 철판들과 아직 시커멓게 갈라진 균열들이 곳곳에서 그를 날카롭게 쏘아보는 듯했다. 감수성을 키우는 훈련 따위는 받은 적도 없는데, 그는 이따금씩 사물에게서도 자신을 향하는 분노를 느꼈다.
지금까지 그는 예상대로 한 명의 인간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제 몇 분만 다리를 움직이면 목적지라 그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어유, 추워 죽겠다.”
그 때 사람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미간을 좁혔다.
“담요 좀 더 갖고 올 걸 그랬네.”
두 번째였다. 그는 각각 길지도 않은 누군가의 혼잣말 때문에 일그러지는 안면 근육을 붙잡지 않았다. 그는 마저 걸어가 엔진실의 컴퓨터 앞 의자를 연결해 놓은 조촐한 간이침대에서 콧등을 비비고 있는 빨간 셔츠의 남자를 만났다.
“…아니, 당신이 왜 여깄어?”
재조선에 가까운 수리를 거치는 중인 함선의 곁도 떠나지 못하는 열혈 엔지니어는 추위를 불평하던 몸을 퍼뜩 펴서 다짜고짜 삿대질을 해댔다.
“여기가 네 놈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엔터프라이즈의 기관실장인 스캇 소령은 애써 동여매고 있던 담요마저 옆으로 치워내고 일어섰다. 신장도 체격도 월등히 차이가 나는지라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로 눈앞의 남자를 막을 순 없겠지만, 스캇은 붉은색 셔츠와 엔지니어의 배지를 걸고 눈을 부라렸다.
“당장 여기서 나가.”
스캇은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두꺼운 팔찌와, 그것에도 굴하지 않고 핏줄을 드러낸 손이 보여 스캇은 속으로 자신의 직함을 다시 새겼다. 스캇이 쓰는 컴퓨터는 늘 대기 모드인 상태로 버튼만 눌러주면 즉시 가동되어 스팍 부함장이나 다른 동료들에게 연락할 수 있다는 점도 상기했다.
물론 스캇이 무엇을 떠올리고 중얼거리든 남자는 관심이 없었다.
“이 곳은 내 이동 범위에 해당되는 장소다. 너네들도 이건 보장해 주기로 하지 않았나.”
누가 들으면 스타플릿의 딱딱한 관료로 착각할 말투였다. 실상은 스타플릿에 절대 소속될 수 없는 인간 아닌 인간은 옆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캇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듯 그를 보았다.
“그래도 말이야, 양심상 피해 갈 곳이 있는….”
스캇은 말하다가 뚝 입을 닫았다. 이름과 얼굴, 전적 모두가 시민들에게 기가 막힐 대항마로 기억된 범죄자 앞에서 양심을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스캇의 속내를 제대로 지적해냈다.
“나에겐 그러한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나보군.”
거짓말에는 도무지 재주가 없는 스캇은 차마 대답을 지어내지 못했다. 칸은 그 때 스캇의 옆을 지나쳐 기관실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저, 저 인간이!”
스캇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몇 초나마 무기 구실을 할 수 있는 물건을 바쁘게 찾았다. 페이저건은 없었고 나사를 조이는 드라이버 하나가 겨우 발견되었다. 스캇은 급한 대로 그걸 들고 칸의 뒤를 쫓았다.
“저 망할 놈이, 허튼 짓 하면 가만 안 놔둬…!”
스캇이 번쩍 든 드라이버와 더불어 높아졌던 목소리는 동시에 사그라들었다. 어쩐지 따라 들어가는 길에서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 싶었더니, 코어의 핵심이 방사능 에너지와 함께 봉인되어 있는 장소로 향하는 통로였다. 스캇은 닫혀 있는 게 미덕인 문으로 접근하며 혹시 칸이 저 안으로 들어가 온 주변에 방사능이라도 뿌리려고 하는 건 아닐까 추측했다. 스캇으로선 그것이 열릴 가능성조차 생각해 본 적 없는 투명한 문이 칸의 검은 등에 가려졌다. 스캇이 칸의 뒤에서 멈춰 섰다.
“여긴 왜 왔어.”
제임스 커크가 여전히 코마 상태로 일주일가량을 넘긴 무렵이었다. 칸은 스캇의 말을 무시하고 근처의 모니터와 계기판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캇은 더욱 세게 드라이버를 쥐었다.
“저 문을 열겠다는 멍청한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밖에서 아예 가둬버릴 테니까.”
“왜 그걸 멍청한 생각이라도 단정하나?”
칸의 답변은 늘 인간들이 고려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튀어나왔다. 이태까지 미묘하게 스캇을 벗어나 있던 칸의 시선이 순식간에 모여들었고 스캇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그의 언어와 눈빛 모두 스캇이 들고 있는 드라이버보다 괜찮은 무기였다.
“…뭐라고?”
결국 스캇은 되묻고 말았다.
“내게는 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이 차라리 영광스러울 것 같군.”
말하면서 칸은 냉소했는데 그것이 스캇을 겨냥하지는 않았다. 스캇이 눈썹을 위로 올렸고 칸은 다시 투명한 문을 응시했다.
그 순간에 스캇은 살며시 발을 옮겨 칸과 조금 엇나간 자리를 차지했다. 문에 칸의 얼굴은 완벽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칸은 제임스 커크가 명예롭게 주저앉았던 유리문 너머를 바라보았고 스캇은 그가 했던 말과 불분명한 눈길을 함께 곱씹었다.
스스로 저 안에 들어갔던 커크도 마지막에는 두려워하며 눈물 한 방울을 떨궜었다. 칸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인 스캇은 저 안에서 칸은 과연 눈물이 아니라 웃음을 자아낼 수 있을지 상상해보았다. 비록 스캇이 석회굴을 가장 오랜 친구로 두고 있고, 한때 직장에서 거의 쫓겨나는 신세를 당하기는 했어도 누군가의 생명에 대해서만큼은 상식인이었다. 스캇은 절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사능에 타죽는 게 영광스러울 것 같아?”
문득 스캇이 물었다. 칸은 예상을 깨고 답했다.
“그래서 내 동료들에게 생명의 자유를 줄 수 있다면.”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은 총 700명이 넘어가는 반면 칸이 거느리던 숫자는 72명이 전부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허나 양적인 숫자가 모든 우위를 결정하는 건 아니리라. 스캇은 소령이었고 코어 다루는 일이 제일 쉬운 기관실장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스캇은 언젠가 커크의 주변에서도 발견한 적 있었던, 당당하나 위독한 그림자를 칸에게서도 찾아내었다.
칸은 끝까지 그 문에 손조차 대지 않았다. 어느 함장이 함선과 승무원을 위해 죽었던 자리에 들르는 일로 자신의 짧은 자유를 다 써버리고 그는 몸을 돌렸다. 스캇은 저도 모르게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다. 칸이 계단을 내려갔다.
스캇이라고 그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엔터프라이즈의 무덤이기도 했으며 의자도 담요도 없는 추운 구역은 여전히 반갑지 않았다. 몇 시간이라도 더 눈을 붙이려면 서둘러 칸의 뒤를 쫓아가는 게 맞았다. 그러나 자신이 불현듯 잊고 있으면 스쳐 지나가고, 때로 자신을 감싸고 마는 함장만의 의식이 남아 있어 스캇은 발을 떼지 못했다.
닫혀 있는 문은 안타깝게도 계속 닫혀 있었다.
'- Star Trek Into Darkn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ID/커크스캇] Fix Your Heart (0) | 2013.11.25 |
---|---|
[STID/칸캐롤] Family the Chain (2) | 2013.11.24 |
[STID/존본즈] The Example about Falling (2) | 2013.11.14 |
[STID/존본즈] Doctor's Ideal (2) | 2013.10.30 |
[STID/존본즈] Knocking on Heaven's Door (0) | 2013.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