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칸캐롤] Family the Chain

- Star Trek Into Darkness 2013. 11. 24. 13:31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Carol Marcus

- Written by. Jade

 

Family the Chain



 

 캐롤은 언제부턴가 단화를 신었다. 제임스 커크 함장이 그의 부함장과 논의하여 칸 누니엔 싱이 다뤄질 재판에 제출할 증거에 마커스 제독과의 대화록을 포함시키게 되면서 부터였다. 제독이 테러리스트와의 전투 도중 사망했다고 어영부영 발표해버렸던 스타플릿의 입장을 뒤흔들 만한 자료가 출현한 뒤, 캐롤은 또 한 명의 마커스로서 벌떼처럼 모여드는 기자들의 습격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녀에게는 달리기 편한 낮은 굽이 필요했다.

 

  캐롤은 며칠 전에 모친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장 한 번 보러 나가는 게 힘들구나. 당분간 집은 멀리 하는 게 좋겠다. 그래도 스타플릿 본부는 벽이 좀 높을 거 아니겠니. 그 이후 캐롤은 죽은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며칠을 살았고, 일주일을 넘겨 열흘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있어서 온전하게 지켜진 제독의 방이었다. 그곳에서 캐롤은 한참을 창틀을 붙잡고 서 있었다. 이중 창문 사이의 작고 평평한 틈에 놓인 커뮤니케이터의 플립은 올라가 있었다. 캐롤이 전화를 받지 않자 커크는 문자를 남겼다. 칸의 공개 재판 날짜가 정해졌어. 갈 생각 있으면 다 같이 가자.

 

  두 개의 메시지가 캐롤의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월리스의 작아진 그림자와 마커스의 불어난 압박감이 예쁘게 섞이지 않는 수채 물감처럼 엉켰다. 캐롤은 커뮤니케이터를 그대로 놔두고 창가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상한 곳에서 허점을 보였다. 사실 그것은 캐롤에게만 허점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제독의 컴퓨터를 분해할 각오까지 하고 결연하게 패스워드를 몇 번 눌러 보았던 캐롤은 세 번 만에 허탈해졌다. 그녀 딴에는 생각나는 순서대로 입력했던 것인데, 부녀가 제일 자주 읽었던 작가의 이름으로 컴퓨터의 봉인은 풀렸다. 캐롤에게 끝까지 아버지라는 흔적을 남긴 알렉산더 마커스는 그 뒤에도 어렵지 않게 숨겨져 있던 자료들을 다 내주었다.

 

  존 해리슨은 고작 로봇 한 대와 함께 일했었다. 스타플릿에 있으면서 캐롤도 한 번씩 혀를 내둘렀던 고급 무기들을 만들면서, 존 해리슨은 이따금 저주가 걸린 피를 쏟아낼 듯한 눈동자로 감시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최초의 드레드노트 급 함선이라는 완제품에 가려져 있던 크고 작은 그의 노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자료들은 안타깝게도 마커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캐롤은 일단 데이터들을 USB에 옮겨 담았다. 꺼진 모니터에서 그것만큼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었던 존 해리슨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아 캐롤은 의자에 앉았다. 단화를 신어도 캐롤의 다리는 자주 지쳤다. 맥코이가 한참 전에 붙여준 다리는 지금도 가끔씩 아렸다.

 

  캐롤은 집무실을 바라보았다. 딸과의 추억 중 하나로 잠가 두었던 컴퓨터 안의 자료 말고는 특별히 악랄해 보일 것도 없는 방이었다. 책장에는 캐롤도 제목을 아는 책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캐롤은 눈가에 바람을 훅훅 불어 넣었다.

 

  몇 시간 뒤 커크는 캐롤의 답장을 받았다. 저랑 가시면 복잡할 거예요. 법원에서 뵙겠습니다.

 

 

 

* * *

 

 

 

  늦은 밤 어떤 남자가 골프장의 카트를 연상케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다. 날짜가 지난 일간지를 수거해 가면서 그 자리에 새 신문을 놓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캐롤은 근래 날짜가 다른 신문의 차이점을 쉽게 파악하지 못했다. 신문은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마커스와 칸에게 얽매여 있었다.

 

  법원 입구에는 막 교대 시간을 맞아 자리를 잡은 듯한 청년이 나와 있었다. 캐롤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청년은 당연하게도 그녀를 알아보았다.

 

  “이 시간에 법원은 무슨 일이십니까?”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혹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법원의 문지기는 의외로 눈치가 빨랐다.

 

  “칸의 재판은 고작 내일 오전부터 시작되지 않습니까. 그 때 만나도 괜찮으실 것 같은데요.” 

 

  캐롤은 슬며시 웃었다.

 

  “그렇다고 법정에서 그 놈 뺨을 때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전 재판장을 존중하는 사람이거든요.”

 

  몇 번의 말이 오가고 나서 캐롤은 기어코 법원의 내부로 입성했다. 청년은 간단히 길을 일러주면서 스타플릿에서 나온 무장 요원에게 잘 부탁을 하면 칸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 캐롤은 곧장 승강기로 향했다.

 

  재판 날짜가 목전에 놓인 범죄자들에게 그럭저럭 있을 만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던 법원의 하층부는 단 한 명을 위해서 통째로 해당 구역을 비워놓고 있었다. 캐롤은 하프 코트를 더욱 여미고 안으로 들어갔다. 끝없이 빈 방만 나왔다.

 

  찰랑, 하고 멀리서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캐롤이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었다. 그녀는 바삐 걸어서 300m 정도의 통로를 통째로 막고 있는 장교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에게 지급된 라이플이 최신식 모델이라는 게 캐롤의 눈에 들어왔다.

 

  “캐롤 마커스 대위입니다. 수감자를 만나러 왔어요.”

  

  장교들은 잠깐 침묵했다.

 

  “…그 수감자가 누구를 뜻하는 건지 확실히 알고 계시길 바랍니다.”

  “물론이죠. 나는 내 아버지를 죽인 놈을 보러 온 거에요. 잠시만 안으로 들어가게 해 줘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마커스라는 이름이 부끄럽다는 선언일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아버지의 방과 영원히 작별하면서도 USB 말고 다른 걸 챙겨오는 게 불가능했다. 제독의 잔인함은 그곳에, 알렉산더 마커스의 유품은 그녀의 집에 있었다. 캐롤은 압박감에 시달려 자주 깜빡이게 되는 눈으로 장교들을 번갈아 보았다.

 

  “혹시 총은 갖고 오셨습니까.”

  “…그런 건 없는데.”

  

  장교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창살에는 절대 손대지 마십시오. 강한 전류가 흐르고 있어 잘못하면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캐롤의 시야에 이태까지 그녀가 걸어왔던 복도와 별로 다르지 않은 어둑한 통로가 열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동안은 구두를 신고 뛸 수 없는 발을 한 뼘 내딛었다. 빛이 많이 사라진 길은 벤전스호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는 까만 벽과 발판 같았다. 캐롤이 멀어졌을 무렵 장교들은 한 가지를 더 알려주는 걸 까먹었다는 사실에 머리를 긁적였다. 

 

 

 

* * *

 

 

 

  캐롤을 들어가면서 점점 커지고 다양해지는 알파벳의 나열을 보았다. 손전등이 없어 그녀는 커뮤니케이터를 열고 날개 모양의 불빛으로 앞을 비췄다. 흔들거리는 빛이 닿지 못한 곳에서 누군가는 차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캐롤은 점차 벽에 파인 홈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신은 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혈관으로 퍼지는 독처럼 목소리가 캐롤을 마비시켰다.

 

  “왜냐하면 진실은 어디에나 존재하거든.”

 

  캐롤은 입술을 깨물며 심호흡을 했다. 전류가 터진다는 창살 저편에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있는 칸이 엉망이 된 정면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칸은 이단적인 복음서를 읽는 것처럼 노래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게 그토록 멀리 있는 듯 보이는 거지. 불쌍한 일이야. 어떤 존재도 저 진리를 지울 수는 없어. 괴롭다면 자기 자신을 지워야지. 네 경우라면… 마커스라는 고통이 너를 삼키기 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되겠군.”

  

  칸의 발밑에는 그가 숱하게 끊어버렸던 강철 사슬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들은 이후 칸이 감옥을 꾸미는 데에 사용된 게 분명했다. 캐롤은 빛나는 커뮤니케이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무릎은 자꾸 구부러져 주저앉고 싶어 하는데 상체는 기묘하게 식어가 그녀의 눈가를 완전히 말려버렸다. 

 

  “당신은 내일 사형 선고를 받을 거야.”

  “그러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나?”

 

  칸은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다.

 

  “나는 마커스를 꽤나 고통스럽게 죽인 것 같은데도 만족하지 못하겠더군. 너는 나처럼 네가 미워하는 대상을 직접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칸이 다리를 돌려 땅바닥에 닿게 했다. 공연히 캐롤의 다리가 움찔거리면서 그 긴 다리에 조각났었던 고통을 떠올렸다.

 

  “내가 사형수가 되는 꼴로 만족할 수 있을까?”

 

  캐롤은 적어도 칸의 잔혹한 성미 말고, 그에게도 다른 명분이 있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모든 게 들어 있는 USB를 주머니 끄트머리까지 꺼내 올렸다. 재판 전날까지도 증거물로 제출하겠다고 신고하지 못한 물건이었다.

 

  칸은 점차 걸어와 캐롤과 눈을 맞추었다. 창살 근처에서 스파크가 튀었으나 그는 눈썹을 살짝 굽혔을 뿐이었다. 캐롤이 두 눈동자에 바짝 힘을 주었고 칸은 곁눈질로 주머니 안에서 경직되어 있는 캐롤의 손을 훑었다. 

 

  “내 손을 부러뜨릴 기회를 주는 건 어떻겠나?”

 

  칸이 옷깃을 걷었다. 캐롤이 시선을 치켜 올렸다.

 

  “전깃불에 타죽을 지도 모르는 두려움보다 나에 대한 복수심이 더 강하다면.”

 

  캐롤이 기어코 USB를 주먹에 감춘 채 손을 빼냈다. 칸이 거리를 좁히자 번쩍거리는 스파크가 심해졌다. 캐롤은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칸이 하얗게 내놓은 손목과 부드럽게 하늘거리는 손가락을 보고 말았다.

 

  “난 너에게 아무 것도 감춘 적이 없다.”

 

  칸의 감옥이 그녀의 옆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너는 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세상에 널린 모든 게 다 진실이야YOU CAN'T HIDE FROM THE TRUTH BECAUSE THE TRUTH IS ALL THERE IS그 때문인지 칸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런데 너는 무엇을 가리려 하는 거지?”

 

  전류가 갈수록 거세게 요동쳐 캐롤은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 상태에서 캐롤은 말문이 막히는 따끔거림을 느끼면서 쓰러졌다. “아악!”

 

  칸이 홱 팔을 뻗어 캐롤이 주먹 쥐고 있던 손을 끌어당긴 것이었다. 창살 사이를 직접적으로 통과했던 부분은 칸의 두꺼운 피부에 덮여 있었는데도 캐롤은 팔을 부여잡고 뒷걸음질쳤다. 그 수치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강한 전류를 맞은 칸의 옷이 타들어가고, 보이는 살갗에서는 하얀 스파크가 번쩍대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비명을 들은 장교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캐롤은 너무 놀라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오… 오, 맙소사.”

 

  캐롤은 칸에게 잡혔던 손을 펴 보았다. 그 사이에 USB는 칸의 감옥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타들어간 곳 없이 멀쩡하게 벽면에 부딪혀 회전을 멈추었다. 캐롤이 입술을 벙긋거렸다.

 

  “나는….”

 

  불가피했던 내출혈로 인해 입가로 피를 내보내면서 칸이 말했다.

 

  “아마 너는 내 얼굴을 보면서 나에 관한 판단을 확실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장교들 둘이서 캐롤을 일으켜 세웠다. 칸은 전류가 잦아들지 않고 있는 오른쪽 눈가를 눌렀다. 하얀 불꽃과 붉은 피와 청록색 안광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다신 잊지 못할 정도로 선명하고 짙었다.

 

  “내가 너를 증오하듯이 너 또한 나를 미워하면 된다. 너도 결국엔 마커스니까.”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피를 다시 삼킨 칸이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캐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에 의해 상처받은 온 몸을 장교들에게 내맡긴 채 그 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칸의 몸은 회복되었다. 그는 입 안에 남아 뭉친 피를 혀로 긁어내었다.

 

  캐롤은 다음 날 재판장에 가지 못했다. 칸이 마커스 제독의 자료를 폭로해 사형 선고를 받지 못했다는 소식만 침상에 누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너는 진실로부터 숨을 수 없어, 진실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행복하다는 시간들이 너무 적고 멀리 있는 것 같다고 해도
우리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봐 왔던 것들을 지울 수 없어
원한다면 차라리 사라져버려
네가 고통에 삼켜지지 않았던 시절로 가는 거야

지금 네 상황이라면 여기에 아예 오지 않는 게 나았을 텐데
너는 두꺼운 가장을 두르고서 바로 네 자신으로부터 숨고 있지
우리를 봐, 우리는 추락을 향해 나아가고 있잖아

BGM : The Truth by Handsome Boy Modeling 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