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James Kirk
- Written by. Jade
Chapter 4
셋이 함교에 입장하자 그 동안 클링온과 교신을 마친 우후라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예상대로 클링온이 전쟁 상황을 선포했습니다.”
“타이밍 좋네.”
아무렇지도 않게 타종족의 선전포고를 접수한 커크가 함장석에 앉았다. 스타플릿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배경을 등에 지고 얼떨결에 최전방에 배치된 꼴이 된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이 하나같이 함장에게 시선을 모았다.
“전면전은 없을 거야.”
커크는 대뜸 그렇게 서두를 열었다.
“엔터프라이즈가 전투에 최적화된 것도 아니고, 연방에서도 실질적으로는 우리를 도와줄 생각이 거의 없어 보이는 판에 그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으니까.”
스타플릿의 지원이 없을 거라는 대목에서, 맥락 없이 논리적으로밖에 사고할 수 없는 존을 빼고는 모두 씁쓸하게나마 사태를 받아들이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작전을 펼쳐볼까 한다.”
숱한 경험상 통념을 넘어가는 아이디어가 나올 걸 예측하고 있는 스팍이 함장석 쪽으로 한 뼘 더 다가왔다.
“코어를 훔칠 거야.”
엔터프라이즈는 현재 지원군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퇴각했다가는 지구까지 클링온들을 끌어들일 수 있어 마음대로 뱃머리를 돌리기도 불가했다. 이러한 진퇴양난 속 임기응변에 있어서는 함선 내 누구보다 노하우를 쌓고 있을 듯한 제임스 커크 함장의 계획은 이러했다.
“함선이 있으면 워프 코어가 있고, 워프 코어가 있으면 또 그걸 총괄해주고 코어에 동력을 불어넣어 주는 시스템이 어딘가에는 있기 마련이지. 그런 거는 보통 ‘나 본부요’ 라고 우뚝 세워져 있는 건물들에 대부분 있더라고. 모든 함선의 핵심적 동력이나 다름없는 그걸 탈취하면 클링온은 자기네들이 원해도 절대 전투를 오래 끌 수 없어. 우리가 이 정도로 발판을 마련해 두면 연방에서도 마냥 외면할 수는 없겠지. 잘하면 그걸로 원격 조종을 통해 함대들의 코어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을 테고.”
커크가 덧붙였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클링온에겐 없는 트랜스 워프가 있잖아. 지점만 정확히 알면 찾아가는 일은 어렵지 않아.”
“건물에 접근하는 것은 1차적인 목표일뿐입니다. 선전포고에 따라 병력이 다수 외부로 빠져나가도 해당 시설을 지키는 부대는 있습니다. 함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최소 인원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상당히 가능성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네 명이야. 너, 나랑, 스카티도 가야 할 거고, 또….”
커크가 승강기에서 나온 그 자리에 서 있는 존을 가리켰다.
“…중령까지.”
그 손짓 한 번에 자신의 몫으로 떨어진 어마어마한 임무에도 존은 무감한 포커페이스였다. 마찬가지로 존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커크가 술루에게 일렀다.
“이번에도 함장석을 맡아줘야겠어, 술루. 실드 올리고 최대한 시간 끌면서 버티면 돼. 함대 싸움으로 진행되기 전에 반드시 수를 쓸 테니까.”
술루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신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커크는 이번엔 우후라에게 어려운 지령을 내렸다.
“어떻게 해서든 스타플릿 함대 하나는 꼬셔놔야 해. 알겠지?”
“…네, 함장님.”
스팍이 함장에게 바짝 붙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한번만 재고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함장님.”
“달리 방법이 없잖아. 대책 없이 붙으면 우리는 끝장이야.”
“현실적인 가능성이 떨어지지만 함장님의 제안은 이 상황에서 저희들이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발한 방책이긴 합니다. 제가 염려하는 건….”
스팍은 이어 하는 말은 한 글자도 새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듯이 약하게 입술을 열었다.
“이런 때에 칸의 폭력성이 그를 자극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변수가 생길 겁니다.”
영락없는 존 해리슨의 형상을 목도했던 스팍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커크도 이해하는 바였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와 승무원들의 목숨을 등지고 선 함장은 이번만큼은 그가 혀를 차는 스타플릿과 똑같이, 존의 가치를 극한으로 이용해야만 했다.
“그가 없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어.”
커크가 시선을 비껴 돌리며 함교를 빠져나갔다.
* * *
맥코이는 또 고민해야 했다. 아직 크로노스는 낮이었기 때문에 당장 작전을 개시할 수는 없다는 커크의 대답이 그에게 다시 성가신 갈림길을 제시한 것이다. 맥코이는 원칙대로라면 존이 한 번의 임무를 마칠 때마다 그의 기억을 지워야 했다.
“…저기.”
아직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는데 얼떨결에 맥코이는 존을 부르고 말았다. 존이 곧바로 정지했다. 그는 맥코이가 용건을 꺼낼 수 있게 기다렸으며, 그 용건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갈팡질팡하던 맥코이가 아! 하면서 말했다.
“아까 의무실에서 나한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히 맥코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한 기색인데도 존은 빠르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방향을 잡고 맥코이를 지나갈 듯했다.
“내가 물어볼 대상을 잘못 설정했습니다. 잊으십시오, 닥터.”
그것이 맥코이를 독촉했다. 다른 부위는 건드리지 않는 지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를 이루어도 될 정도의 지식을 온전하게 담고 있을 존이 질문을 떠올릴만한 건 하나였다. 검은 등에 신기루처럼 지나가는 체념(滯念)을 외면하면서, 맥코이는 감추고 있던 주사기를 꽉 쥐고 단번에 그의 목 뒤에 찔러 넣었다. 쓰러진 존을 받아든 맥코이가 지나가던 남자 승무원을 불렀다.
“혹시 들것 좀 가져올 수 있을까?”
* * *
우주는 언제나 캄캄하지만 크로노스의 하늘에는 드디어 먹물 같은 어둠이 깔릴 시각이었다. 엔지니어가 체콥이 잡아낸 좌표를 시스템에 입력했다. 많은 장비를 챙겨가지 못하는 건 애석했으나 수송선을 탔다간 언제 격추당할지 몰라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네 사람을 쫓아온 맥코이가,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안색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부지런히 내부로 방송을 보내고 있는 임시 함장의 음성이 들렸다.
가장 끝에서 존은 다시금 자신에게 쥐어진 단 하나의 무기를 내려다봤다. 아직도 시술의 감각이 남아 있는 맥코이는 저절로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려버렸다.
십 년이 훨씬 넘게 의사 활동을 하면서, 실수로라도 이것만큼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배운 마취제나 안정제들을 꼼꼼히 배합해 만든 약물이었다. 제발 시술 도중에 존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 섞었다. 맥코이가 불쾌한 라텍스 장갑을 벗어 버렸을 때도 존은 눈을 감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약물은 자신의 약효를 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왕 그를 잠재우는 거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맥코이는 누워 있는 존의 옆에서 걷다가 그가 소리 없이 눈을 깜빡이는 걸 보고 놀랐다. 5분만 버텨줬어도. 반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존은 가슴이 쓰릴 정도로 유순하게 맥코이를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거의 목소리도 없는 말이었다.
존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물었다. 맥코이는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잘 다녀오십시오.”
본즈가 그 말에 정신을 차렸을 때 워프 게이트는 텅 비어 있었다.
* * *
백금색의 알갱이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회오리는 워프 시에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시각 효과였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이것 때문에 적절한 좌표는 워프에 있어서 더더욱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워프를 이용해 어딘가를 잠입하려고 할 때에는 정말 감쪽같은 사각지대를 선점해야, 빛무리와 효과음에도 남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빛의 소용돌이에서 해방된 커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유용한 엄폐물도 없는 공간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크로노스의 지역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없는 스타플릿에서 입수할 수 있는 좌표는 아무래도 이 정도가 한계인 모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멀지 않은 곳에 목적지가 있었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커크는 기어코 클링온 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동시에 스캇까지 워프를 마쳤다.
“저쪽이야!”
대원들이 잽싸게 총을 꺼냈고 클링온이 뭐라고 고함을 쳤다. 그들이 원뿔 형태를 한 건물을 향해 달렸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동료들을 끌어 모은 클링온 병사가 쇳소리를 냈다. 곧바로 기이하게 굽은 칼을 뽑아든 클링온들이 침입자를 추격했다. 처음에 커크를 본 놈은 그걸로 모자라 비행 중인 정찰기라도 부르는지 통신기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빠르고 반듯하게 달리던 스팍이 일행에게 일렀다.
“건물 앞에 문지기들이 있습니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던 문지기들이 웬 스타플릿의 마크를 단 인간들이 다가오자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대며 무기를 꺼냈다. 순식간에 클링온들에게 둘러싸일 것 같았다.
“일단 입구부터 뚫어야지!”
커크의 말이 마치 주문이 된 듯 입구 근처에 있던 클링온들이 붉은 광선을 맞고 쓰러졌다. 어느새 끼어든 존이 문지기가 들고 있던 기다란 칼을 뺏었다.
어림잡아 한 부대는 되어 보이는 클링온 무리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왔다.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3분 안에 놈들을 피하고 건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서는 찰나, 더운 바람이 불면서 정찰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캇, 먼저 들어가세요!”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한 지식을 갖춘 스캇을 엄호하려는 듯 스팍이 뒤돌아섰다. 그 때 커크는 뒷걸음질치고 있었고, 클링온의 검을 든 존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존이 바리케이드로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던 낮은 구조물을 딛고 날아올랐다.
그가 던진 칼은 조종석을 노출하고 있는 유리를 꿰뚫었다. 조종사까지 심장이 뚫렸는지 맹렬히 다가오고 있던 비행정은 휘청거리며 이내 추락해버렸고, 그러면서 클링온 병사들을 덮쳐 반이 폭발에 휩싸여 나가떨어졌다. 커크는 저 가공할 전투 병기가 정찰기가 떨어지는 위치까지 계산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내 또 다른 기체가 등장했다. 커크가 잽싸게 존에게 말했다.
“이번엔 터뜨리지 말고 저것 좀 온전하게 뺏을 수 없겠어?”
날카롭게 식어가던 눈동자가 무슨 소리냐며 커크를 바라보았다. 애매하게 웃는 함장은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존이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클링온의 무기를 하나 주웠다.
움직이지 않고 있는 커크를 일깨우러 온 수석 기관사와 부함장은 그와 함께 고도를 슬금슬금 낮추며 포를 겨냥하는 정찰기에 비현실적인 도약으로 달라붙는 존을 지켜보았다. 스캇이 짧게 평했다.
“진짜 사람이 아니긴 아니네요.”
스타플릿 소속의 중령이 제어하게 된 기체가 신속하게 잔여병들을 날려버렸다. 잠시 후 목숨이 끊긴 클링온 조종사를 아래로 굴리면서 내린 존이 무뚝뚝하게 커크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커크의 눈빛은 훌륭하게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동료를 바라보는 그것과 흡사했다.
“위에서 건물을 쏴대면 난감해질 거야. 공중 병력들은 내가 유인할 테니 셋이 안으로 들어가.”
“함장님 혼자서요?”
“걱정되면 빨리 끝내 줘.”
후다닥 사라지는 커크에게서 눈을 뗀 일행은 정리된 입구를 열고 건물 안까지 무사히 들어왔다.
“대개 중요한 것들은 가장 높은 곳에, 혹은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는 경우가 흔하더라고.”
건물로 들어선 스캇이 참고할 만한 표지판이 있는지 살폈다.
“극도로 잦은 폭풍에 시달리는 행성의 특성상 꼭대기에 있을 확률은 적을 것 같습니다만.”
존이 툭 덧붙이자 스캇이 오, 하면서 탄성 아닌 탄성을 흘릴 법한 입모양을 만들었다.
“그럼 지하로 가도록 하죠.”
* * *
고요하게 신경을 곤두세운 것 같은 엔터프라이즈의 함교에서 가장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건 우후라의 다급한 말들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브래드버리호를 설득하고 싶은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최대한 절절하고 긴급하게 전달하고자 무의식적으로 마이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통신 장교는 애써 말하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우후라가 안쓰럽다는 감상을 얼굴로 잔뜩 표현했다.
조용히 우후라의 말을 듣고 있던 술루가 일어났다. 온 진심을 다해 애원하는 그녀의 눈이 살짝 젖어 있었다. 술루가 간단한 동작으로 자신이 잠깐 통신을 이어 받아도 되겠냐는 의사를 전달했다. 우후라가 헤드셋을 벗어 술루에게 건넸다.
“함장님, 저는 현재 임시 함장을 맡고 있는 히카루 술루입니다. 들리십니까?”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어 놀랐는지 상대의 답이 한 박자 느렸다.
- 잘 들리네.
“함장님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될까 싶어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의자를 뒤쪽으로 밀어 술루에게 공간을 내준 우후라가 차분하지만 또박또박 말을 잇는 그를 보았다.
“제임스 커크 함장님이 이 배와 승무원들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라는 건 너무도 자명하여 함장님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저희는 그런 함장님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동료이자 벗으로 함장님의 생각과 유지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소리 내는 언어를 실천하듯 그의 태도는 더 침착해지면서 견고해졌다.
“저희는 저 아래로 내려간, 마땅히 엔터프라이즈호에 탑승해야 하는 이들이 귀환하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겁니다.”
술루의 발언에 반응한 승무원들이 하던 일을 멈췄다.
“그렇다면 스타플릿이 이쪽으로 오는 경우만이 남지 않았나 싶군요.”
그것을 끝으로 장비를 내려놓은 술루가 함장석으로 돌아갔다. 연방을 향한 통보와도 같은 그의 한 마디에 동요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뜻을 지지하는 표정들이었다. 두 번 만에 술루는 임시함장 직에게도 부여되는 나름의 책임과 의지를 터득한 듯했다.
* * *
커크는 십 분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그렇게 오만했던 건지 돌이켜봤다.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적군의 수는 슬슬 걱정스러울 지경이었지만, 자신이 벌겠다고 약속한 시간은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함장은 이를 악물었다. 시계가 없어서 몇 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어도 점점 줄어드는 동력은 계기판에 막대 모양으로 똑똑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오, 젠장!”
커크가 야금야금 늘어나는 비행정들을 확인하며 씹어 뱉었다. 미적 감각이 아주 수려하진 않은 클링온들이 여기저기 방치해 놓은 뼈대들이나 철제 구조물들이 레이더에 잡혔다. 커크는 저기서 한 차례 곡예를 하기로 결심했다.
커크는 클링온들의 짜증과 분노가 위협적이지만 몸집이 큰 비행정으로 구현되었다는 걸 이용할 속셈이었다. 수직으로 급강하한 커크의 기체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낮게 날았다. 낮거나 불안정한 구조물들은 여전히 쓸 만한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다. 거대한 날개를 비틀며 클링온들이 커크의 뒤를 쫓았다.
그가 점찍어 두었던 굵고 긴 철제 막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커크가 속으로 타이밍을 쟀다. 긴장한 손이 하얗게 핸들을 쥐었다. 셋, 둘, 커크가 자신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몸을 움츠리면서 기체를 위로 끌어올렸고, 아슬아슬하게 장애물을 피한 그의 뒤로 상대적으로 민첩함이 부족한 추격선이 두 동강이 났다. 커크가 출력을 높였다.
에너지가 모여든 노즐이 뜨거운 빛을 내뿜었다. 두 대 정도를 따돌린 것 같았다. 이제 반도 남지 않은 동력에 마음이 무거워진 커크가 단단히 고정해 놓은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의 플립을 젖혔다.
“스카티, 얼마나 더 걸리는 거야!”
* * *
암호를 입력해준 클링온이 존의 일격을 맞고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부를 지키는 숫자가 적었다고는 하지만 스팍이나 스캇이 끼어들 틈도 없이 족족 클링온들을 처리했던 존은 안색 하나 변함없이 멀쩡했다. 스팍이 잠금장치가 풀린 문을 양 손으로 밀었고 그동안 스콧이 통신기를 들고 답했다.
“시스템에 도달하기 직전이에요. 조금만 버티세요!”
방으로 들어간 스캇이 늘어서 있는 장비들을 눈에 담았다. 낯선 인상이 아니라 그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컴퓨터 옆에 붙어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스캇을 힐끗 본 존이 중앙에 서서 총을 가슴에 붙였다.
“거의 다 됐어요, 함장님!”
우주 공통인 워프 시스템에 능한 스콧은 클링온어를 잘 몰랐음에도 수월하게 중요 기능을 손대고 있었다. 그런데 입술을 꼭 다물고 기계에 집중하던 그가 복병을 만난 듯 멈칫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스팍이 다가와서 모니터를 쳐다봤다. 최후의 관문인 것처럼 화면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는 창은 두 칸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 중 하나에 무언가를 입력해야 하는지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것만 넘기면 될 텐데…. 무슨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나 봐요. 내가 그 정도까지 클링온어를 아는 건 아닌데!”
당황한 스콧의 통신기에서 폭발음이 났다. 그의 손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근원지는 뻔했다.
“괜찮아요, 함장님? 짐!”
* * *
외부 파손과 동력 부족이 함께 찾아오면서 커크의 기체는 급속도로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빨간 불빛과 경보음이 조종사의 위기감을 부추겼다. 커크는 자동 항해 모드를 설정한 다음 뒤쪽으로 가서 낙하산이 있는지 뒤졌다. 급한 마음에 쓸모가 없는 것들은 모조리 등 뒤로 던져버리던 커크의 손에 드디어 낙하산이 잡혔다.
커크는 재빨리 낙하산 슈트를 입고 스콧의 외침에 스피커가 터질 것 같은 통신기를 집었다.
“나 괜찮아! 그런데 난 여기서 내려서 엔터프라이즈한테 워프시켜 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주저 없이 뛰어내릴 준비를 하려던 커크를 사로잡는 풍경이 있었다. 커크가 유리창에 비치는 바깥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막 입을 벌리고 있는 격납고가 곡예비행 중에 시가지까지 벗어났던 그의 시야를 장악해갔다. 그것보다 더 간담이 서늘한 건 조금씩 튀어나오고 있는 전투정들이었다. 육안으로는 셀 수도 없는 수가 격납고에서 쏟아졌다.
* * *
정지해 있던 존이 스캇에게 접근했다. 이어지는 전투로 차갑게 날이 서 있는 그의 분위기를 느낀 스캇이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섰다. 존이 한 손으로 어떤 단어를 입력했다.
“…뭐라고 썼어요?”
대답은 존이 버튼을 누른 뒤 점멸하는 붉은 빛이 대신했다. 그가 아무나 들으라는 듯 말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갔다.
“함선에 연락해 클링온에 통신을 넣으라고 하십시오. 시스템을 자폭시켰으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스캇이 입을 딱 벌렸다.
* * *
“레이더에 다수의 적기가 감지되었습니다!”
“어뢰 배치는?”
“완료되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기운에 술루가 함장석의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그의 심리를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내고 있었다. 이 순간 부함장의 음성이 함교에 울렸다.
“엔터프라이즈, 작전이 성공했다. 클링온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함장님의 위치를 파악해 함선으로 워프시키도록.”
승무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술루가 뒤돌아보기도 전에 이미 우후라는 통신 채널을 확보했으며 체콥은 알아서 좌표를 검색해 해당 엔지니어에게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바쁜 우후라를 대신해 다른 통신 장교가 술루에게 낭보를 전했다.
“스타플릿 함대 일부가 출격했다고 합니다.”
술루가 이 상황을 명쾌하게 요약했다.
“이제 됐어.”
* * *
먼저 엔터프라이즈에 합류한 커크는 게이트에서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무사히 돌아온 자신의 선원들을 보는 일은 가슴이 벅차면서도 진한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게이트를 담당하는 장교는 좌표를 받았으니 곧 워프가 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얀 게이트에 반가운 빛이 어렸다. 함장은 잠깐 헤어졌을 때 보았던 것과 달라지지 않은 모습들에 미소를 지었다. 가장 먼저 스캇이 기관사에 탐험가인 본인이 어째서 이런 살 떨리는 작전에 참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예의 투덜거림을 늘어놓았다. 커크에게는 기분 좋은 너스레처럼 들렸다.
함선만큼이나 커크와 많은 굴곡을 겪은 부함장은 초상화 같은 얼굴로 발을 디뎠다.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하는 성격답게 워프가 끝난 상태에서도 스팍은 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커크는 스팍에게 인사를 건네려다가 두 팔을 모으는 그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클링온을 상대할 때와 화력 모드가 동일했다.
그 아래를 벗겨내도 전혀 다르지 않거나, 너무도 복잡할 것 같은 존은 아무런 의도 없이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의 코앞에 있는 스팍의 총구를 보고 눈꺼풀을 올렸다. 그라면 순간 방어를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존은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군가를 겨누는 것만큼이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이질적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행동을 같이 한 대원을 노리는 부함장보다도 자신만의 추리에 빠진 듯 보였던 그는 페이저건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절차인 줄 알면서도 커크는 따끔거림을 느꼈다. 종이에 베였을 때처럼, 깊진 않아도 성가시면서 잊을 만하면 아픈 그런 느낌이었다. 스팍이 의례적으로 함장에게 목례를 하고 옆을 지나갔다.
벤전스를 위시한 스타플릿 함선들이 하나씩 워프를 마치고 상공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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