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Chapter 5. 그는 소망한다He Wishes
23세기에서 엔터프라이즈라는 배의 함장인 커크는 디스플레이 안에 함께 저장되어 있던 문서를 열어보았다. 공유 폴더를 통해서 레너드 맥코이와 제임스 커크가 공동으로 관리하던 파일이었다.
제임스 커크의 혁명일지, 2525년 59일.
아직 닥터에게 이 멋진 타이틀을 알려 주지는 않았지만, 일단 나부터 시험 삼아 써 본다. 그러니까 오늘이 언제냐면…. 닥터 레너드 맥코이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에 덧붙여 그의 초월적인 계획을 받고 이에 동참하기로 한 지 열흘이 지난 날이다. 리서치에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당장 그를 거들 수는 없었다. 연구원이 되는 일이야 2.5순위 정도로 미뤄두고 있던 내가 곧장 블랙홀을 생성해 보이고 말겠다는 닥터에게 도움을 줄 리가 만무하다.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겠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닥터가 추상적이었던 나의 질문에 이토록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음을 믿을 수 없다. 내 눈으로 블랙홀을 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다시 제임스 커크의 혁명일지, 2525년 62일.
따지고 보니 이거 언젠가는 닥터와도 공유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막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 내가 나름대로 추리해본 닥터의 속마음 등은 과감하게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것만은 독파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섹션의 책들을 거의 다 끝마치고 있다. 블랙홀이라든가 평행 우주라든가 시간 여행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머리가 트이고 있는 듯하니, 조만간 닥터와 전문 용어들을 들먹이며 차원의 문을 열 장소를 논의해봐야겠다. 차원의 문이라니, 표현 한 번 끝내주네.
레너드 맥코이의 혁명일지, 2525년 65일.
액상 형태, 아니면 작은 고체 형태의 촉매제를 연구 중이다. 휴대도 간편하고 숨기기도 쉬워야 한다. 기계 장치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불가능하니까 어딘가에 원래 설치되어 있던 것에 필요한 부품을 덧붙이는 형식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제장을 통해서 마커스의 므네모시아를 중단한 이후의 동태를 파악할 수 없어진 이후로 오히려 이 작업의 속도에 불이 붙었다. 사실 그가 부작용이라고 말할 것이야 사람들이 예술을 감상할 안목을 되찾는 게 다일 테니까.
추신 : 제임스 커크에게, 도대체 나에 대해 얼마나 괴상망측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여기에 제대로 적지도 못해? 조만간 추궁할 것이니 그렇게 알 것.
제임스 커크는 오늘 혁명 일지를 생략하겠음. 닥터 무서워요.
커크는 남겨진 글만 봐도 파일 속의 제임스 커크와 자신이 닮은 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커크는 이따금씩 웃으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레너드 맥코이 혁명일지, 2525년 70일.
커크와의 상의 끝에 발탁된 장소는 화형장이다. 리서치가 아닌 생추어리에 마련된 그 곳에 잠입하는 일은 내 몫이다. 개량 작업에 더욱 힘써야겠다. 커크가 꿈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사제장에게 잡혀가야 할 거라며 옆에서 울상을 짓고 있다. 이제 커크를 설득시킬 거리가 하나 더 남았는데.
제임스 커크도 혁명일지, 같은 날짜.
마커스는 여러모로 골칫덩이에 나쁜 놈이다. 하필이면 닥터에게 온갖 항목에 적용될 수 있는 면책특권을 줘서는 그를 사제장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는가? 덕분에 내가 그 놈 손에 끌려가게 생겼다. 무서운데. 닥터가 옆에서 뭐라고 중얼중얼. 닥터는 어쨌든 그와 얼굴 맞댈 일이 많아 나름 면역이라도 기르신 모양이지만 반역자도 선량한 시민도 사제장의 검은 코트가 무서운 건 똑같다. 그리고 닥터, 일지 봐서 미안해요. 까짓거 블랙홀 탐험도 찬성한 판에 뭐가 더 어렵겠어요? 언제든지 말해요.
이후 촘촘한 간격으로 이어진 일지들은 커크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내용과 정리가 주류여서, 그는 빠르게 디스플레이를 넘겼다. 길게 화면을 채우고 있던 검은 글자들이 사라지고 밑바닥에 한 줄이 남았다.
레너드 맥코이 혁명일지, 2525년 97일.
존 해리슨에게 진실을 말했다. 그와 함께한다.
* * *
커크는 이젠 자신의 선임이기도 한 맥코이에게 또 다시 반론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상상 외로 막무가내시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사제장한테 확답 받은 거 아니죠? 계획의 상세 사항을 말해줬을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이제 해리슨을 보면서 무슨 생각 하는 줄 알아?”
갑자기 화제가 달라져 커크가 눈을 멀뚱히 떴다.
“예전에는 뭐 저런 놈이 있나 싶었지. 어쩌다가 지나가는 헤드라인의 소재에서 그치다가 네 편지 받은 이후로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행적이 가관인거야. 합법적으로 잔혹극을 벌이고 다니는 놈이었잖아? 내가 사제장의 므네모시아를 한 번 뺏은 이유도 너를 내가 제대로 이용해보겠다는 심보였다고. 지금도 참 저런 놈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를 감상하고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린 셈이잖아. 세상의 어휘 중 반은 그에게 쓸모가 없을 거야.”
커크는 특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완벽히 공감하지 못하고, 맥코이는 마커스의 므네모시아를 입에 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존 해리슨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엑소시즘 같은 거 못 해. 그러니까 그에게 새로운 출발점을 줄 거야. 내 첫 번째 희생자에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어차피 혁명의 주체는 레너드 맥코이였다. 커크는 존 해리슨을 개입시키는 데에 찬성했다.
* * *
“…다시는 안 찾아올 것처럼 나가버리더니.”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맥코이는 주방 쪽에서 커피를 젓고 있었다. 사실 그 안에는 설탕이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아 휘저을 이유는 없었다.
“이 임무를 포기하겠다는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주장에 무리가 없다면 순조롭게 수리되겠고 더 이상 리서치에서 당신이 내 얼굴을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첫 번째로는 이걸 통보하려고 왔고, 다음으로는.”
쓱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시집이 사라진 걸 파악한 해리슨이 여전히 커피를 숟가락으로 젓고 있는 맥코이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 책은 생추어리가 보관해야 하니 넘기십시오.”
맥코이는 딴소리를 했다.
“그 때 왜 굳이 시를 읽었지? 이태껏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을 텐데.”
“…원한다면 어디서 책을 얻었는지 추궁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소지할 수 없는 물건을 처리하는 건 생추어리의 소관입니다.”
“그것마저도 궁금해 하지 않는 거야? 당신은 왜 내가 당신이 평생 알 일도 거의 없을 이야기들을 해 줬는지, 그 이유에 관해서도 묻지 않았어.”
실질적으로는 12년을 육체 안에서 왕복운동하고 있던 존 해리슨의 혈액 속 므네모시아가 약간이라도 희석되었다면, 해리슨은 당신의 사정을 고려할 형편이 아니라는 냉소적이지만 진실한 말을 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리슨은 그저 책을 넘기라고 눈으로 요청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자이가이스트의 사제장을 구원하기에 맥코이의 자각은 너무도 늦었다.
맥코이는 종이뭉치들로 가리고 있던 시집을 빼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이름은 전과 같이 빛났다. 맥코이는 시집을 집으면서 의도적으로 페이지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엄지로 책등을 받치는 방식을 취했지만, 해리슨은 다섯 손가락으로 냉정하게 책을 덮었다. 맥코이가 나직이 말했다.
“그거, 제임스 커크가 준 거야.”
해리슨이 끊어지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리서치에서 일해. 그를 찾아가.”
존재 자체가 법전이고 영장과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사제장인지라, 범죄자가 아래에 있다면 곧바로 잡아 성지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인물이 존 해리슨이었다. 해리슨이 평소보다 좀 더 길게 맥코이를 바라보았지만 내 집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나중에 해결하라는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맥코이는 주방으로 돌아가 커피를 저었다.
해리슨은 오전에도 오후에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맥코이의 방으로 침입했었다. 그 나날들 중에서 해리슨은 맥코이가 커피를 끓인 모습을 처음 보았다. 달콤함은 전혀 섞이지 않은 씁쓸한 향이 맥코이가 커피를 휘젓는 움직임에 맞춰 투명하게 피어올랐다. 해리슨은 과거를 조합하는 것에서 그쳤지만 사실 맥코이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해리슨은 인사말도 없이 정중한 동작만 보이고 사라졌다. 맥코이는 해리슨이 자신의 명분을 묻기를 기다리다가 때를 놓쳐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맥코이는 혼자서 웃다가 컵을 비웠다.
그럼에도 그가 존 해리슨을 자신의 블랙홀에 반드시 초대하려고 하는 것은, 맥코이만은 어느 쪽에게 책임을 묻지도 못하고 제 자신의 혼란을 하나의 역사처럼 묻어 놓으려는 해리슨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커크는 맥코이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읽고 방으로 들어갔다. 중요한 연락은 다 이루어졌다. 커크는 방문을 열어두고 책상 앞에 앉아 플레이어의 전원을 켰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을 들었다.
한 토막의 시간이 지나고, 커크는 음악을 짓누르고 현관문이 뜯기는 소리에 놀랐다가 곧 호흡을 가다듬었다. 커크는 남은 재생 시간을 확인했다. 초인종 한 번 누르는 법도 없이 입구를 부수고 들어오는 무리들이 익히 짐작이 가능한지라 돌아볼 필요도 없었으니, 커크는 조금 더 음악을 즐기기로 했다. 커크가 이어폰의 하얀 줄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현관 쪽이 아니라 방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커크는 혼자서 숫자를 세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닥을 밟는 발걸음은 진중하고 깔끔하고, 금욕주의자를 수식할 수 있는 온갖 낱말을 다 가져다 붙일 수 있을 듯했다. 커크는 줄을 아래로 내리면서 이어폰을 빼냈다. 동시에 존 해리슨의 총이 커크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심문을 위해 생추어리로 연행하겠다.”
커크는 대답하지 않고 막 꺼진 플레이어를 어깨 너머로 넘겼다. 무척 낡았지만 72분짜리 CD를 재생시킬 힘은 남아 있는 기기였다. 커크의 아버지가 그를 교육시킬 때 사용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붉은 낙인이 찍히지 않았었다.
“다른 금지 품목도 보유하고 있나?”
플레이어에 연결되어 있던 이어폰이 바닥에 길게 끌렸다. 해리슨이 줄을 끌어 당겨 플레이어 위에 모았다.
“2523년 이전에는 그걸로 베토벤을 듣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그건 아버지가 나한테 남긴 물건 중 하나에요. 내가 보관하는 게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커크가 등을 돌려 해리슨을 바라보았다. 사제 몇몇까지 그의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해리슨이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부지런히 커크의 방을 뒤집어놓기 시작했다.
“레너드 맥코이에게 준 물건도 그와 비슷한 이유로 가지고 있었나?”
사제장 앞에서 커크는 감히 씩 웃었다.
“그냥 연행하시죠.”
커크가 손목을 붙여 해리슨에게 내밀었다. 해리슨의 손가락 마디에 걸린 수갑이 찰랑이면서 한 바퀴를 돌다 단단히 자세를 고치고 커크의 손목을 물었다. 그는 절차대로 커크의 죄목을 밝혔다.
“소유가 금지된 물품들로 부당한 감정이 자극될 수 있는 행위를 저지른 바, 법률에 의거하여….”
“그는 천국의 옷감을 소망하니.”
해리슨의 말을 끊고 커크가 중얼거렸다. 해리슨은 순간 완전히 잠겨 더 이상의 손길이 필요 없는 수갑을 놓지 못했다.
“그 말만 놓고 보면 닥터와 어울려요. 그도 그만큼 굉장하고 절실한 것을 바랐거든요.”
“수색을 마쳤으나 더 압수할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그걸 밟고 나가면 되는 거예요.”
정 반대의 성질을 가진 말들이 해리슨의 양쪽 귀로 흘러들었다. 해리슨은 어느 쪽에도 대답하지 않고 커크에게 나가라면서 고갯짓했다. 성직자들이 아무렇게나 엎어 놓고 넘어뜨린 가구의 일부들을 피하면서 커크는 천천히 걸었다. 사제장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의 뒤에서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존 해리슨은 걸으면서 자신의 발아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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