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For Khan Noonien Singh
- Written by. Jade
줄리안에게,
아직까지 내가 하는 일이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가 오랫동안 꿈꿔 왔던 목표였는데. 내가 밝히고자 하는 생명의 비밀은 언제쯤 내 손에 들어올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연구소로 돌아왔어. 이 짧은 편지를 내 방에서 쓸 여유도 없어서.
줄리안에게,
아직도 너한테 마땅히 말해 줄 내용이 없네. 그래도 저번에 편지를 보냈던 때보다는 힘을 내고 있어. 내가 이따금씩 편지를 보내는 걸 잊어버려도 이해해 주길 바라. 이 망할 연구소에는 보고서 용지만 날아다닐 뿐 마땅한 편지지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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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나 곧 시간이 날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어도 틈을 내고 말 거야. 이건 편지로 얘기할 수가 없어. 조만간 만나. 대신 근사한 곳을 예악해 준다면 좋고!
“일생의 업을 달성한 위인들이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까?”
정말로 성공한 거야? 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누리고 있는 것들 중 수많은 부분은, 전에는 모두 말도 안 되는 거였어. 예전에 누가 두렵기만 한 태양빛을 끌어 모아 동력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겠어?”
그럼 우리가 더 만나기 힘들어지는 거 아냐? 앞으로 너는 최고의 과학자로 대우받으면서 온갖 러브콜을 받을 텐데. 아마 거기에는 나보다 훨씬 말도 잘 통하고 매력적인 남자가 있을 지도 모르지.
“오, 줄리안. 나보고 과학자를 애인 삼으라고? 난 절대 그런 짓은 못 해. 걱정하지 마.”
하지만 네가 그… 만들어낸 인간에게 정이 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 어머니 같은 감정을 품을 지도 모르고, 다른 쪽일 수도 있겠지.
—줄리안은 지금 집을 비운 상태입니다. 남기실 말이 있으시다면 삐 소리가 난 이후에 말씀해주세요.
“바쁜 거야? 그동안 내가 편지도 잊어버리고, 전화도 잘 받지 않았지. 미안해. 네가 이 시간에 집에 없을 줄은 몰랐네…. 어, 일단 먼저 알려줄 게 있어. 더 이상 연구소 앞으로 편지를 쓰거나 보내는 일은 어려울 것 같아. 갈수록 보안 등급이 높아져서 우편물 하나 밖으로 넘기는 데도 이것저것 거쳐야 하는 일이 너무 많거든. 내가 자주 쓰는 메일 알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기로 보내 줘. 정말 급한 일은 핸드폰을 통하면 되지만, 꼬박꼬박 받지는 못할 거야. 줄리안, 정말로 미안해. 조만간 어떻게 해서든 휴가를 내 볼게. 너랑 샴페인을 마시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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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띠링. 발신자 이름 줄리안. 띠링, 띠링. 조용히 벨소리가 낮아진다.
…내 조롱이 정당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벨소리는 없이, 핸드폰의 불빛이 반짝. 엘리자베스가 눈물을 흘리며 웃는다.
줄리안에게.
너에게 내 마음을 주고, 그것보다 더한 걸 너에게 주고 이제야 그걸 가져가려 하는 건 분명 나의 잘못이겠지. 혹시 전에 내 편지를 받고 테탱저를 사 놓기라도 했다면, 정말로 미안해. 나보다 그 샴페인을 더 멋있게 즐길 수 있는 파트너를 머지않아 만나게 될 테니까. 내가 앞으로도 영영 연구소에 묶여서, 행여나 너를 만나 상처주는 일이 없기를. 너를 감히 사랑하지 못하는 엘리자베스가.
…줄리안….
닥터.
차라리 이걸 누구한테 보내면 좋을 텐데, 그래서 누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나누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너에게 보내진 않을 거지만 정말로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너에게 이걸 감당하게 하진 않을 거야, 줄리안. 그래도 만약 이 세상에서, 이 끔찍한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아마 너일 거야. 그래서 너의 이름을 함부로 빌려서 고백을 하려고 해.
나는 영영 이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게 되지 못할 거야. 첫째로는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고, 둘째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면서, 마지막으로는 적어도 나의 반은 여전히 이렇게 묶여 있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야. 오류가 난 보고서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게 그렇게 손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래도 나는 욕심 많은 과학자로서 너무 긴 시간을 산 것 같아. 이곳에 와서 지나간 계절의 변화가, 너에게 편지를 보냈던 횟수와 비슷해지고 있지. 그 시간동안 현미경과 핀셋으로 세운 왕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봤어. 내가 채우려 하던 궁금증과 못된 속내에 뒤섞이게 된 공포도 봤고. 너는 자주 내가 머리가 좋아서 부럽다는 말을 했지만 이건 전혀….
엘리자베스 헤렌이 다이어리에 어렵게 적었던 메모 뒤에 펜으로 그은 줄이 길게 남아 있다. 펜을 놓쳤거나 누군가가 펜을 잡은 손을 밀어낸 것 같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것 같군.
그 순간 칸은 여자에게 속삭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고, 인간들은 자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존재의 머리가 잔인하게 으깨지는 것을 목격했다. 아주 작은 소음에 지나지 않았을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잔뜩 증폭되어 그들의 귀에 꽂혔고 여자의 머리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가장 기괴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납작해진 여자의 윗부분이 스르르 내려앉았다.
칸이 자신이 첫 번째로 죽인 여자와의 기억을 떠올린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막 그가 정복한 지역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인간들이 우수수 끌려나왔는데, 그 무리에 이름이 적힌 ID카드를 목에 걸고 있는 남자의 이름이 익숙했다. 엘리자베스 헤렌이 그의 앞에서 언급하길 피하면서도 가끔 죄를 짓는 듯한 눈빛을 보내던 인물과 똑같은 이름이었다. 칸은 줄리안의 얼굴을 몰랐으므로 눈앞의 남자가 엘리자베스의 줄리안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엘리자베스 헤렌이 마무리 짓지 못한 메모에 다른 글씨체로 몇 마디가 쓰여 있다.
당신의 운명에는 절망이 예고되어 있었어.
리더의 사살 명령이 늦어져 대원 하나가 칸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칸은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줄리안에 대해서 더 알고 있는 사실이 있던가? 그의 눈동자 색깔이라든가 출신 지역이라든가. 하지만 그는 줄리안에 대해서라면, 엘리자베스 헤렌이 사랑했으며 자신과의 관계를 맺고 난 뒤부터는 죄책감을 가지고 사랑한 인물이라는 것밖엔 몰랐다. 회상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그의 두뇌는 엘리자베스가 줄리안에게 편지를 보내듯이 자신의 업을 토로한 것을 훔쳐본 기억을 끄집어냈다.
결국 칸의 대원이 그에게 심문할 사람이 있느냐며 물어왔다. 칸은 대원을 바라봤다가 자신의 위치와 역사를 따라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무릎이 꿇려진 인간들에게 총격이 쏟아졌다. 처음으로 칸은 자신의 전쟁에 대해 연기처럼 희미한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찾길 꿈꿔왔어요
그것은 생명의 비밀, 나는 왜 또 다른 시도를 위하여 여기 있는 걸까요?
진실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내가 그것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을지,
내가 이 사슬들을 끊고 내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까요?
*
내 심장을, 내 영혼을 당신에게 주었어요.
이제 그걸 돌려주도록 하지. 그건 당신의 잘못이야.
당신의 운명은 황폐했고, 자신의 일을 되돌릴 때까지 살고자 발버둥 치라고 정해져 있었지
나는 나를 당신에게 주었었어요
이제 그걸 돌려줄 테니 나는 내가 가야 할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이야기와 영광이 모두 끝나버렸어요
그건 오래 전에 끝난 거였어
Theme From 'Jillian' by Within Temp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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