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Khan] Narcissistic Cannibal #4

- Star Trek Into Darkness/Novelette 2013. 9. 18. 17:05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Trek Into Darkness, For Khan Noonien Singh

- Written by. Jade




  칸 누니엔 싱의 집단을 만든 연구원들은 그들의 무리에 드물게 소년과 소녀를 섞었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 관찰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20살 이하의 미성년은 딱 두 명 뿐이었는데, 과연 소년 쪽이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행동력을 발휘했다. 아지트에서 몸을 말고 있던 조그마한 유사인간은 그의 리더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만큼이나 재건과 적응도 빨랐다. 전투 도중에 약간은 상했을 도로는 적어도 핏자국은 닦인 채 깔끔했으며 피어올린 서늘한 연기가 화약 냄새와 먼지를 식혔다. 소년은 그들 사이에서는 전투복으로 통하는 검은 강화수트를 입은 이웃들을 지나, 입구가 완전히 으스러진 한 기관의 건물 앞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을 의자로 삼고 있는 칸을 발견했다. 소년이 자근자근 다가왔으나 그는 금방 소년이 왔음을 알아챘다.


  “라이언.”


  그의 목소리는 어느 가족들보다 부드럽고 듣기 편했다. 소년은 그 음성에 자신의 이름이 흘려 담겼다는 것에 흠칫했다가 부서진 돌조각들을 넘어 그의 위대한 지도자에게 다가왔다. 라이언이 칸의 옆에 앉기 전 그가 들고 있는 패드 쪽으로 목을 쑥 내밀었다.


  “그건 뭔가요?”

  “안에서 발견한 것이다. 대개 이런 장치에는 우리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들이 들어 있는 편이지.”


  라이언이 크게 쪼개진 건물 조각을 딛고 일어났다. 칸이 자연스럽게 소년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라이언은 가족이자 이웃인 그들의 정당한 원정에는 아직 참여할 수 없었으나, 모두의 리더에 관해서는 들은 말이 많았다. 칸은 전투에 나서는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수트를 입지 않는다던데,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피에 젖어서 금세 입기가 곤란해진다는 게 그 이유라고 들었다. 라이언은 슬그머니 칸의 눈동자를 살폈다. 타블렛에 나타나 있는 글씨를 읽고 있는 모습 자체는 썩 고압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칸이 고개를 들었다. 라이언은 그의 동작에 힘입어 말을 들었다.


  “저는 사실 이 정도 되었으면 인간들도 저희에게 호의나 친절을 베풀어 줄 것 같거든요. 인간들이 저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라이언은 고민하다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누굴 죽이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잖아요.”


  라이언이 부지런히 눈동자를 굴리며 칸의 안색을 살폈다. 아직 소년은 지도자의 수많은 면모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칸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소년의 얄팍하지만 순수한 희망을 존중했으므로 유연한 표현을 고심했다. 그가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라이언이 차츰 얼굴을 숙였다.


  “지금부터 내가 왜 이런 잔혹한 여정을 선택했는지 설명할 거다.”


  라이언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족들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들을 접할 기회가 훨씬 많았다. 그 중에는 나를 가르치려 하는 인간도 있었고 나를 질투하는 인간도 있었으며, 나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숱한 시간들 중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부류를 만나지 못했다.”

  “어떤 부류요?”

  “우리를 동정하거나 도와줄 사람들.”


  라이언은 냉정하고 견고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지도자가 입에 담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단어들을 듣고 잠시 얼떨떨했다. 소년은 감히 그의 청록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어떠한 변화도 찾을 수 없었다.

  

  “존재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우리들과 그들이 사회 속에서 자주 그러는 것처럼, 동등하고 너그러운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들은 우리를 가르쳐서 자신의 발밑에 두려고 애쓰거나, 질투와 두려움을 앞세워 우리가 사라지길 소망하거나 억지로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싶어 했다. 결국 나는 그들과의 공존을 단념했지. 이런 이들은 우리와 화해를 약속해도 결국엔 그것을 어기고 만다.”


  칸은 무릎 위에 내려놓았던 패드를 집었다.


  “애초부터 인간의 호의는 우리와 어울릴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기억해라.”


  살짝 일그러지는 그의 눈썹과 눈동자 사이에서, 라이언은 칸 누니엔 싱의 진득한 우울함을 본 것만 같았다. 칸은 떠났으나 소년은 그 자리에서 이젠 지도자가 앉았던 콘크리트의 한 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언은 내심 경우의 수에 포함시켰던 그의 원한이라든가 허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칸의 정제된 명분에 사로잡혔을 뿐이었다.


  한편 칸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도 막을 수 없이 인간들이 심어 놓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뿌리채 뽑아버리고 파괴하면서, 자신이 그린 폐허를 감상하며 쾌감을 느끼고 싶은 은밀한 본성을 감췄다. 모든 걸 밝히지 않아도 그는 일부의 진실만을 응용하는 데에 능했다. 칸은 그들의 거처로 들어가면서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소년을 힐끗 보았다.


  언젠가는 소년에게도 복수를 이해시킬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무인 행성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하지 않은 그들은 사실 시작부터 죄를 품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었다. 집단의 유일한 소년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을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을 소멸시킬 권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