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For Khan Noonien Singh
- Written by. Jade
박사는 오래 전에 바닥에 처박힌 그녀의 가운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가운을 끌어 당겨 주머니에서 밴드를 찾아내 느슨하게 머리카락을 묶었다. 아무리 책상을 옮겨 다녀도 연필이나 펜, 숱한 종이들밖에 없다. 박사는 오늘도 영광스러운 하얀 가운을 자신의 예민해진 살갗을 가리는 데 썼다. 어떤 자극이 이어져도 조각상의 재료처럼 하얗기만 한 타인의 다리에도 그녀가 볼 수 없는 안구가 붙어 박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잔뜩 흐트러진 박사와는 달리 감쪽같이 깔끔한 남자는 사실 그녀의 가운이 그렇게 사용되는 것을 즐겼다.
“여전히 당신은 사랑 없이 사랑을 나눠.”
책상에 기대어 있는 남자가 자신의 박사를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정교하게 깎인 보석 같은 그의 청록색 안구를 마주하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흥미롭다는 아찔한 미소가 지나갔던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 더불어 그것보다 적나라하게 목젖을 드러내면서 자랑스럽게 풀어 헤친 머리를 흔들던 자신의 모습이 거의 무감했던 남자의 눈동자를 가렸다.
“이건 당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야.”
그녀가 가만히 가운을 끌어 올렸다. 그녀의 이름은 역사상 유명한 여왕과 같다. 그녀는 인간을 뛰어 넘은 존재를 창조한 집단의 일원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을 담당하는 박사였다. 닥터 엘리자베스 헤렌은 그러한 자신의 특성을 일종의 설득력 있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표현대로 부탁하듯 자신을 의탁하는 피조물을 향해 풀죽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보고 배울 수는 있잖아요.”
“자신이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당신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동화되길 원했다. 난 당신에게 배울 것이 없어.”
자신이 망설임 없이 지배자의 칭호를 붙여준 남자의 머리가 모를 리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갈색 머리칼에 애써 묻히는 다양한 향기에서 시작하여, 대개는 가운으로 덮고 있어야 하지만 날을 거듭할수록 다채로워지는 상의에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더 근원적인 것을 바라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칸에게서 살짝 물러나 자신의 옷을 모았다.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지.”
엘리자베스가 손을 멈췄다. 칸은 자정이 지난 뒤에는 박사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들이 사랑할 수 있는 건 그들의 DNA에 그러한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 깊이에 상관없이 인간들은 사랑의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니까.”
잠시간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으므로 연구소는 인큐베이터들이 작동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소리도 숨결도 빛도 모자란 공간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가운의 가슴팍 부분을 저도 모르게 꼭 쥐었다.
“당신들은 나와 같은 존재들을 만들면서 무엇을 생각했지?”
각기 다르게 빚은 유전자들이 맞물리면서 혹시 부적합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그녀를 비롯한 모든 연구원들이 노심초사하던 시기에, 다른 기술자들은 강화인간들의 눈동자라든가 머리카락의 색깔을 고민했었다. 엘리자베스는 어느 엔지니어가 칸 누니엔 싱에게 청록색의 동공을 부여할 결정을 내렸는지 몰랐다. 그의 창조자 중 하나면서도 그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다는 것은 자주 엘리자베스가 칸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가 대답할 마음이 없어보이자 칸이 대신 냉정하게 결론지었다.
“당신이 나를 애정하여 만들지 않았기에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
모든 연구원들이 그러했었다. 그들 개개인의 독특한 기질을 모조리 삼켜버린 중대하고도 역사적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연구원들은 사소한 감정과 연관된 것들은 전부 뒤로 미루어 두었었다. 그 특별한 피조물은 자신의 창조자를 모욕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며, 마침내는 절망으로 몰아넣기에 이른다.
“오늘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일은 전부 끝낸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겠다.”
칸은 책상에서 벗어나 그의 인큐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엘리자베스는 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의 속내를 추측하려 애썼다. 처음부터 자신이 인큐베이터에 갇혀 살아갈 존재는 아니라는 것은 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엘리자베스는 얌전한 칸의 등에서 묵과할 수 없는 위선을 느꼈으나 곧 애틋해져버렸다. 순간적인 충동에 그녀는 박사의 가운을 던져버리고 자신의 몸을 보았다.
인큐베이터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돌려 칸을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잠들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칸 누니엔 싱이 순종적인 자세를 포기하게 되면, 자신은 함부로 그를 빚고 그를 마음에 품었던 인생을 포기하게 되리란 예감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뒤 엘리자베스는 칸과 딱 한 번의 자정을 더 보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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