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 존 해리슨을 분석적이고 이론적으로 감정하는 일은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의 트라우마는 내가 배운 학문을 넘어서는 영역에서 비롯되었으며, 사실은 여러 사례들과 개념들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그의 성격이 변질된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부터 살인을 벌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몇 년간 시도해 본 것으로 미루어 보자면, 본래 냉정한 성미가 깔려 있기는 했으나 반사회적 성향은 없었을 걸로 판단된다.


  사실 모든 면모에서 우수하도록 개조된 그에게 이 세상은 일면 어리석게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죽인다는 극단적인 자극이 아니고서는 모조리 시시하고 얄팍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인은 존 해리슨을 차라리 ‘탈사회적’ 인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가 썼다고 하는 복수의 학술 자료들과 논문들은 어떠한 연구소나 대학의 지원도 받지 않은 그의 독자적인 활동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이 주위 사람들과 절대로 섞일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또한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외상과 유전적 형질을 남긴 집단으로부터 복수해야 한다는 폭력적이지만 본질적인 욕망도 그를 탈사회적 위치에 머무르게 한 요인이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여기서 존 해리슨이 타인과 접촉해야 할 근거가 생긴다. 1차적으로 그는 복수에 성공했으며 더 이상의 강도를 강화하려고 해도 그에게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년기에 그에게 심어졌다는 폭력성은 복수라는 형태로 발현될 수 없으며, 짐작하건대 15년간 살인을 행했다면 그것 또한 존 해리슨에게 만족스러운 안정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존 해리슨이 본인과 만나려 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의 입장에서는 명확하며 확고한 것이다. 떠올리기 쉬운 상대라는 점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본인의 입장에서는.. ]




  똑똑, 들리는 노크 소리에 맥코이는 화들짝 놀라서 등을 돌렸다. 맥코이는 재빨리 집 안 곳곳의 형광등을 켜고 커튼을 걷었다. 오로지 이 날만을 위해서 설치해 놓은 비상 단추(panic button)은 맥코이가 앉을 자리 앞 테이블에 달려 있었고, 최대한 빨리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오늘은 핸드폰의 잠금 장치도 다 풀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미처 정리하지 못한 노트북을 끄려는데 달칵 하고 문이 열렸다.


  순간 다리가 후들거려 맥코이가 반쯤 주저앉았고, 태연하게 혼자서 잠긴 현관문을 열어버린 존 해리슨이 미간을 좁히며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맥코이가 책상 모서리를 붙잡은 채 부르르 떨었다.


  “...뭐야. 노크 해놓고 문을 따고 들어오는 심보는.”


  “당신이 안 열어줬잖아, 레너드.”


  그나마 붙잡혀 있을 때는 경어를 쓰던 존 해리슨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맥코이를 하대했다. 아직도 평균 박동수를 넘어가는 심장을 추스르며 맥코이가 열려 있는 워드 파일을 저장했다. 젠장, 하고 저절로 거친 말이 나왔다. 해리슨이 순간 맥코이를 향했다.


  “일단 앉아요, 아니, 앉아. 아니, 음..”


  제 아무리 짜증이 났어도 자타공인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범에 이제는 테러리스트라는 타이틀까지 추가한 인물에게 단번에 말을 놓기는 어려웠다. 이 집에 들어온 경력이 있는 해리슨은 알아서 의자를 골라 앉았다. 착석하면서 그는 용도가 뻔히 보이는 빨간색 버튼을 발견하고 코웃음을 흘렸다.


  “날 만날 준비를 착실히 하셨군.”


  “당연하지. 당신을 어떻게 믿으라고.”


  “그래도 나 덕분에 다친 곳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잖아.”


  맥코이가 멈칫했다. 기껏 잊어가고 있던 궁금증을 찔린 기분이었다.


  “..대체 왜 날 보자고 한 건지 이유나 묻죠.” 맥코이는 이미 컴퓨터에 존 해리슨의 방문을 정당화하는 문장들을 썼으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사실 그에게 중요한 건 아까 미처 끝맺지 못한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존 해리슨은 맥코이를 협박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니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어쨌든 나는 당신에게 매번 진실을 말했으니까.”


  “매번?”


  “..사소한 부분은 넘어가지.”


  집이라는 환경 덕분인 건지 맥코이는 당당히 존 해리슨에게 다시 짜증을 부리려다가 해리슨이 꺼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나와 다시 대화할 의도는 있나?”


  며칠 전에 커크와 스스로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그를 알고 싶어 했던 나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겠지. 맥코이는 자신의 직업과 이렇게 궁합이 잘 맞았었나 싶었다. 여러모로 환자는 마음에 걸리는 법이었다. 맥코이가 해리슨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새파란 안광이 전보다 사그라진 것 같았다.


  “받아들인 걸로 알겠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차 같은 건 대접해 주지 않는 건가?”


  “...나 대답 안 했는데?”


  그러자 해리슨은 기꺼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맥코이가 기가 찬다는 듯 눈을 좁혀 떴다. 상대가 상대다보니 살갑게 대할 기운이 뚝뚝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이즈음에서 상담자이자 집주인으로서의 예의를 발휘할 의향은 있었다.


  “뭐 마시는데. 커피?”


  설탕은 넣지 말고— 해리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검은 재킷을 벗었다. 그의 얼굴 위로 조금은 낯선 햇빛이 퍼졌다.




  [ 본인을 그의 주치의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존 해리슨을 교화시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만들겠다는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끝내 그를 다시 받아들인 데에는 많은 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존 해리슨과 같은 존재는 한 명 뿐일 것이다. 그가 조금씩 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여정도 오로지 하나 뿐이다.


  .....덧붙이자면 그와 보내는 시간마다 우주를 엿보는 것 같았다. 인간이 최후까지 미뤄둬야 하는 목적지. 본인은 아마 존 해리슨을 탐험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1차 기록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