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맥코이가 방문을 잠갔다. 아래쪽만 걸어 잠그는 것도 석연치 않아 문에 달려 있는 모든 걸쇠들로 입구를 막았다. 그가 가방에 넣을 겨를도 없었던 소형 녹음기를 쥐었다.


  재킷과 가방을 대충 침대에 던진 뒤 맥코이는 의자에 앉아 USB 형태를 띤 녹음기를 위험한 물건마냥 쳐다보았다. 적어도 자신의 정신은 피폐하게 할지도 모른다며 맥코이는 속으로 혼잣말했다. 점수를 매기는 게임이라는 생각, 지금까지 숱하게 쌓아 왔던 지식과 경험적 사실, 밀리지 않겠다는 고집보다도 레너드 맥코이를 존 해리슨에게 접촉하게 하는 것은 학구적이지만 그보다 더 인간적인 궁금증이었다. 맥코이가 결국은 재생하게 될 녹음기를 홰홰 던졌다. 문득 구석으로 밀려 있던 커튼을 펼쳤다.


  짧은 순간 맥코이의 모든 움직임이 정지했다. 그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 이어폰을 준비하도록 해요, 레너드.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내용을 들려줄 테니까.


  바로 근처에서 존 해리슨이 말을 거는 것 같아 맥코이는 흠칫 놀랐다. 그가 급하게 가방을 뒤적여 이어폰을 잡아 뺐다. 조금 엉킨 줄을 풀고 녹음기에 이어폰을 연결하자 타이밍 좋게 해리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에요. 물론 당신도 원했겠죠. 하지만 지금부터 말해주는 사실을 아는 건 당신이 될 겁니다. 아마 제임스 커크로 대표되는 계약자들이 당신에게 요구했던 것.


  얼굴을 마주대고 얘기할 때보다 더 낮아진 그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맥코이의 두 귓가로 모여들었다.


  - 어렸을 때 나는 여신의 품에 있었어요. 시적 표현이 아니고, ‘클로토(Clotho)’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아이들에게 연구원들이 주입시키듯 하던 말이었지. 운명의 실을 잣는 여신의 이름에서 명칭을 따왔으니까. 나는 아마 그녀의 마지막 실패였을 거예요. 내가 속한 그룹이 프로그램에 합류되고 나서, 한 박사가 온갖 암호를 만들면서 그 일이 기밀이라고 거의 소문내듯 하던 프로젝트의 내용을 언론에 폭로했거든. 연고도 거의 없는 어린 아이들을 유혹해다가 온갖 실험을 하는 데 써먹었다는 사실이 대중과 정치인들을 들끓게 만들었지. 나는 기억하는데. 그 박사가 아니었다면 평생 들어볼 일도 없었을 아이들의 이름을 천에 새겨 흩날리고, 윤리와 생명의 가치를 부르짖으며,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돌멩이 하나 던지지 못할 거면서 다수의 흐름에 이끌려 멍하게 행진하던 그 광경들. 그 덕분에 클로토는 우리를 버렸지. 인간의 한정된 능력을 극한까지 풀어보겠다는 시도는 그렇게 끝나버렸어.


  그의 말투에서 높임말은 사라져버렸지만 그게 오히려 옳은 것처럼 느껴졌다. 맥코이가 집중력을 다해 해리슨의 말을 들었다.


  - 박사가 공개한 건 프로젝트에 실험체로서 참여했던 아이들의 본명과 나이, 출생지였어.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대중의 보호 아닌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기관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쉽게 처치할 수는 없었지. 물론 그들은 어쨌든 다 죽어버렸어. 어설픈 생명공학에 기대 비틀린 유전자들이 하나씩 파괴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가장 나이가 많았던 애가 13살이었으니 프로젝트 속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는 애들을 죽음으로 몰기에 충분했지. 증거들은 자살하거나 혹은 사살됐어. 물론 총 맞아 죽은 놈들이 있었다는 건 아니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진실을 은폐하는 일은 너무도 쉬워.


  클로토의 마지막 실패였던 나는 여러모로 이점이 많았지. 존 해리슨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특이하지 않았고 조금밖에 손대지 못한 실험쥐, 길가에 풀어 둬도 상관없는 존재였지. 솔직히 내가 어떤 의사와 과학자들한테 놀아났는지 기억이 안 나. 나를 연구하는 사람은 내 자신이 되어야 했으니까. 그들의 유산을 받아먹고 시시각각 팽창해가는 몸과 마음을 제어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었으니까.


  자비 없는 여신이 나한테 남긴 흔적은 세 가지. 특별해지는 육체와 복수심, 그리고 폭력적인 충동이었어. 처음에는 나도 고상하게 이 실들을 끊어내려고 노력했지. 당신이 전에 나한테 언급했던 것, 미친 듯이 공부를 해 보기도 하고 음악에 몰두한다든가 마구잡이로 몸을 굴리는 일 그 모든 걸 다 해봤어. 보통 사람들이 하나같이 무서워하는 가치들을 씻어내야 나도 그럭저럭 모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잖아. 하지만 불가능했어. 화가 나서 들고양이를 죽였는데, 그 살상이라는 게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더군. 그래서 사람들을 죽였다. 누구도 날 찾을 수 없게 매번 수법을 바꿔가면서. 어차피 내가 아니면 모두 나와는 달라, 내 논리 속에서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인간 모두를 내 복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으니까.


  귓구멍을 덮고 있는 이어폰 덕분에 맥코이는 꼭 존 해리슨이 잔인한 무기를 들고 자신을 조롱하듯 얘기하는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긴장한 가슴이 멋대로 뛰어서 맥코이는 잠시 녹음기를 멈춰 놓으려다가 굳어버렸다.


  - 오, 레너드. 아직 버거워하면 안 돼. 이것으로 당신의 호기심을 다 충족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나?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존 해리슨의 영역이야. 더 보고 싶지 않아?


  맥코이가 황급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감시 카메라라도 설치된 건 아닌지. 하지만 텅 빈 천장보다 먼저 존 해리슨의 목소리가 그를 홱 잡아 세웠다. 끝까지 들어.


  - 복수라는 개념에 대해서 좀 설명해야겠군. 내가 단지 사람을 미치도록 죽이고 싶어서 살인을 한 건 아니야. 일종의 명분이 있었지. 하나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 폭력성을 어느 정도 충족해 줘야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어. 기관에서 증거 인멸을 아주 기가 막히게 해 놓은 덕분에 프로젝트에 관한 어떠한 사항도 찾을 수가 없었고 당연히 거기에 가담한 연구원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래서 죽이기 전에 물어봤지. 당신의 이름이 뭐야? 혹시 존 해리슨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내가 언제나 중요한 건 이름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할 거야.


  이쯤에서 당신은 그런 행위들에서 얻은 게 있냐고 묻고 싶겠지. 15년이 걸리긴 했지만 확실히 성과는 있었어. 당신 역시 나에게 꽤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어.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가 나름대로의 대접을 해 주는데, 안타깝게도 거기에 당신이 포함되지는 않을 것 같아. 당장 당신을 죽이기엔 내가 좀 바빠질 테니까.


  아마 당신이 이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진 않을 것 같군. 혹시 내 말에 대한 반발심으로 제임스 커크를 떠올렸나? 차라리 신문사에 익명으로 투고를 해 보는 게 어때. 제임스 커크는 더 이상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없을 거라서.


  녹음기가 멈췄다. 바이올린은 끝내 연주되지 않았다. 그리고 째깍째깍, 오싹하게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났다. 존 해리슨이 처음으로 호칭을 달리했다. 달려야지, 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