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전에 못 했던 얘기를 계속 하고 싶은데요.” 해리슨이 웃었다. “내가 무슨 악기를 다룰 수 있는지 궁금하기라도 한 건가요?” “그런 사항도 나쁘진 않죠.” 맥코이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펜을 돌리던 손가락을 멈춰 세우며 청자의 태도를 보였다.
“당신이 나에 관해서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와 동시에 존 해리슨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하지 않냐는 커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맥코이는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냐며 눈썹을 움찔하려다 공연히 펜을 한 번 돌렸다. 아직은 얌전한 사슬 같은 눈빛을 보이는 해리슨의 눈동자가 다시 돌아갈 듯, 그러나 더 이상 회전하지 않는 맥코이의 펜을 쳐다보았다. 마치 잠깐의 준비운동을 거친 것처럼 이후 맥코이를 보는 해리슨의 눈은 약간의 호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게 변해 있었다. 물론 맥코이는 제일 먼저 그 자신의 모든 걸 완벽하게 조종하는 해리슨에게 어떤 오싹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상대방이 던지는 기회는 받아 채야 하는 게 옳았다.
“전에 했던 말의 뜻을 알고 싶어요.” 해리슨은 급히 묻지 않고 기다렸다. “살인이 당신이 찾은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일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해리슨이 얼굴을 찡그렸다. 언짢아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의 주먹을 맞았을 때의 간질간질함이 만연한 찡그림이었다. 그의 반응에 맥코이가 오히려 기분이 상해버렸다. 오, 그거 정말 괜찮은 질문인데요, 레너드? 뜻하지 않은 환청 따위가 들렸다.
“첫 번째로 매력적이라는 건, 정말로 재밌고 그 끝이 없어서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이 ‘건설적’ 이라고 하는 것들을 전부 시도해 봤지만 그 깊이가 턱없이 얕더군. 그것들이 가진 자극과 지속력은 너무나 얄팍해서 금세 질려버렸지. 올바른 목적지를 찾기 위해서 먼 길을 돌아야 했던 여정이라고나 할까.”
맥코이가 처음으로 접하는 긴 문장들에서, 존 해리슨은 자유자재로 단어를 강조하고 비웃음을 집어넣고 시를 외우는 듯 음악적으로 읊조렸다. 그의 낮은 음색은 두려울 만치 풍성했다.
“그리고 생산적이라는 뜻은―” 그 순간 맥코이는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고 있었다.
“나를 위한 가장 적합하고 가치가 높다는 것. 그래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을 마친 존 해리슨이 극적인 효과를 유도하고 싶은 것처럼, 싸늘하고 잔인한 눈매로 맥코이를 바라보았다. 맥코이는 쿵쿵 뛰는 가슴을 붙잡지 못해 바지자락을 끌어 모았다.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레너드.”
맥코이의 고개가 부자연스럽게 삐걱거렸다.
“..나한테요?”
“레너드 말고 내 눈에 낯익게 된 사람, 저 밖에 자주 서 있는 사람의 이름을 가르쳐줘요.”
맥코이는 엉겁결에 너무 시시한 거 아니냐며 반문할 뻔했다. 그는 어렵지도 않은 질문에 침묵하면서 생각했다. 추상적인 표현이 가득하긴 했지만 존 해리슨은 어쨌든 꽤나 중요한 요소를 고백했는데, 그에 대한 대가로 원하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단순했다. 맥코이는 일단 대답을 미뤘다.
“이름에 집착하는군요.”
“언제나 중요한 건 이름이에요.”
맥코이는 밖에 아직 서 있을 지도 모르는 커크의 반응이 궁금했다. 역사적으로도 손에 꼽힐 악질의 살인마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다고 하면 몸서리를 칠까. 하지만 이 정도의 거래도 지키지 못하면 그는 이후 해리슨에게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할 것이었다.
“제임스 커크, 라더군요.”
그러면서 맥코이가 해리슨을 살폈다. 다행히도 그의 손 근육이 경련한다든가 눈에 매서운 살기가 맺히지는 않았다. 실제로 해리슨은 제임스 커크에게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눈치 빠르고 실력도 좋은 맥코이 박사는 그것을 읽어내고도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오늘은 내가 먼저 가도 되죠?”
해리슨이 일어나면서 잠시 밑으로 내려갔던 붉은 레이저가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그 와중에 맥코이가 ‘이름’ 이라고 쓴 글씨에 동그라미를 표시해 둔 부분이 보였다. 잠깐의 변덕이지만 존 해리슨은 조건 없이 한 가지를 더 내주고 싶었다.
“내 마지막에 남은 이름을 찾아봐요, 레너드.”
존 해리슨은 일부러 그 말을 달콤하게 했다. 맥코이는 그렇게 확신했다.
제임스 커크가 굳이 공무원이 되려고 했다면 그는 아마 경찰이라든가 FBI를 선택했을 것이었다. 그는 누군가의 비밀에는 관심이 많아도 자신이 지켜야 할 비밀에 대해서는 세심한 자각이 부족한 성격이었다. 커크는 그의 아버지 역시 비밀을 지키기엔 마음이 무겁고 입은 가벼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격과 엇나가는 특수 요원으로서의 재능만 아니었으면 그는 기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 커크를 부추겼다 할지라도.
이지적인 형태로 세워진 건물은 누군가에겐 감옥과도 같을 지도 모른다. 커크는 그에 해당되는 인물을 셋이나 알고 있었다. 한 사람에겐 정말로 감옥 대신이고, 한 사람에겐 집이 아니라 감옥마냥 답답할 것이고, 마지막 사람에겐 감옥이라는 낱말만이 남았을 뿐 그 의미는 희미해진 상태였다. 커크는 바로 그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더 이상 달력에 적어 놓지 않아도 되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라서, 커크는 핸드폰을 만지면서도 어렵지 않게 방향을 찾아갔다. 커크가 타이핑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존 해리슨의 마지막 희생자에 대해서 알아봐줘.
그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의 책임자이자 그에게 남은 유일한 외연(外緣)이었음에도 거쳐야 하는 절차라는 것이 커크를 가끔 한숨짓게 했다. 긴 통로와 관문을 지난 커크는 파일에 면회 시각을 적었다. 무채색의 문 뒤에 펼쳐진 풍경은 큰 특징 없이 밋밋한 방이었다.
“안 자는 거 알아, 스팍.”
그러자 이불이 스르르 내려오면서 햇빛을 잘 받지 않는 티가 역력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눈썹은 대단히 독특했으며 무엇보다 귀가 동화 속 등장인물마냥 뾰족했다. 가장 평범한 검은색 눈동자가 데굴 구르며 스팍이 상체를 일으켰다.
“요새 바쁘다고 해서 오늘 안 올 줄 알았어.”
아버지 조지 커크의 기록에 따르면 스팍의 목소리에 처음부터 억양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성대는 아주 좁은 음역에 갇혀 버렸고, 눈썹의 모양이 틀어졌으며 무엇보다 귓바퀴가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길 바랐던 기관은 제임스 커크에게 스팍을 맡겨버렸다. 먼저 스팍을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커크는 그를 만나지 못했으리라.
여러 재능을 갖고 있는 커크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과학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고, 스팍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으므로 스팍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더 이상 사회에 나갈 수 없어 이 방에 박혀버린 가여운 친구에게 웃음을 보이는 게 전부였다.
“사실 나보다 바쁜 사람은 따로 있는 걸.”
그리고 그 작은 호의가 스팍이 누릴 수 있는 타인의 모든 것이었다.
딩동. 누구세요- 여인의 발랄한 한 마디에 응답한 것은 사람의 육성이 아닌 총소리였다. 검은 코트를 그림자처럼 걸친 남자는 나무 문짝과 함께 여자의 다리를 동시에 쏴 버린 뒤 집 안으로 들어섰다. 고통과 공포로 초점을 잃은 여자가 우연히 그와 눈이 만났다. 그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눈동자를 겨눴고, 그녀의 부모님인 것 같은 남녀가 허겁지겁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침착하게 나이 든 여인을 정확히 즉사시킨 다음 남은 타깃의 무릎을 쏘아 맞췄다. 평범한 가족이 살던 집은 이제 피냄새와 화약의 매운 냄새에 먹혔고,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중년 남성은 뚫린 무릎을 붙잡고 신음했다.
“이름이 마커스지?”
그의 눈은 푸른색이었지만 이상하게 피와 잘 어울렸다. 마커스라 불린 남자는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 즉답을 하지 못했고, 그것이 살인자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가 몸을 낮추며 관통당한 무릎을 총으로 비벼 눌렀다. 어마어마한 비명이 눈앞에서 터졌지만 그는 눈꺼풀 한 번 떨지 않았다.
“마커스.”
끄덕끄덕.
“당신이 옛날에 일했던 곳의 자료를 아직도 갖고 있을 거야. 몰래. 그렇지?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마커스는 놀라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있는지 말해.”
“..다, 다락방에...”
마커스는 시야를 가득 메운 하얗고 새파란 괴물의 얼굴이 살짝 풀어지는 걸 보면서 최면에 걸린 듯 안도감을 느꼈다. 아마도 마커스는 그 때 자신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검은 옷의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손에 들려 있던 총은 잠잠했다. 마커스가 두 팔을 지지대삼아 엉덩이를 뒤로 빼려고 했다.
그 때 마치 총알만으로 다리를 절단하려는 듯 남자가 쉼없이 마커스의 상처 입은 무릎에 대고 총을 쐈다. 마커스의 외침보다 총성이 더 빨랐다. 한계점까지 한 인간의 피가 밖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다리를 보며 마커스는 쓰러졌다. 존 해리슨이 차분하게 계단을 오르며 다락방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존 해리슨은 정말 오래간만에 물질적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마커스의 노트북을 통해 확인한 USB 안에는 그가 간절히 바라던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너무나도 확실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형제의 사진과 관찰 기록, 조지 커크라는 과학자가 하나씩 작성하고 서명한 서류의 스캔본들은 해리슨의 형제가 아직 기관 어딘가에서 살아 있음을 알려주었다. 해리슨은 USB를 빼고 그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것이 15년 동안 이어진 존 해리슨의 마지막 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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