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검은 가슴 위에 붉은색 점들이 찍혔다. 그 위는 살짝 바랜 석고상에 빛에 약한 보석이 박혀 있는 듯하다. 그의 눈이 저절로 붉은 광선이 쏟아지는 지점을 따라갔다. 진회색 난간에 붙어 그것보다 진한 옷과 장비로 몸을 가린 저격수들이 보였다. 안정적으로 눈길을 둘 곳을 찾지 못한 듯 살짝 두리번대던 눈동자가 다시 붉은 점들이 모인 가슴을 응시했고, 차례로 그의 손이 녹음기와 필기구를 꺼냈다. 무의식적으로 상대편을 마주하려다 차가운 푸른 안구를 보고 흠칫했다.
검은색, 붉은색, 푸른색, 하얀색, 다양한 색깔이 조합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가지는 특징은 통일되어 있었다. 냉혹한 무심함과 기묘한 차분함이 꼿꼿하게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레너드 맥코이 박사는 그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신분석학에 능통하지 않았더라도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해리슨 씨, 라고 해야겠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사의 머릿속엔 여러 정보들이 떠다녔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매번 패턴을 바꿔 살인을 즐겨온 범죄자.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 범죄 경력. 숱하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변호인 없이 판사가 사형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 자체가 보여주는 그의 비정상적인 특출함. 남자를 이름만으로 칭하기엔 버거웠다. 끔찍한 별명들을 여럿 가지고 있지만 분명히 존 해리슨이기도 한 남자가 기계처럼 눈을 깜빡였다.
“판결대로 당신은 일정 기간의 정신 분석에 응해야 합니다. 비협조적일 시에는 당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나는 당신을 담당하게 된 맥코이 박사라고 합니다.”
맥코이가 대신 경고하는 말을 읊었을 때, 존 해리슨은 슬쩍 자신의 심장에 모여든 레이저 빛을 보았다. 여러모로 별난 곳, 은밀한 기관에 출입해 본 경험이 많은 맥코이 박사였지만 이번에는 유독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비밀리에 진행된 재판에서 저 살인마는 무슨 언변으로 판사를 설득한 것인지, 그를 살려 놓기로 했으면서도 스나이퍼 다섯을 배치해 그를 조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냥 대학 병원에서 노인들이나 돌볼 걸. 박사는 십 년도 전에 내렸던 결정을 공연히 탓했다. 얼음송곳으로 긁어대는 것 같은 살인자의 시선이 거북했다.
“이름이 뭐죠?”
그 자리에 앉아 존 해리슨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당황한 맥코이가 되물었다.
“..뭐라고 했어요?”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요.”
“내 소개는 이미 했는데.”
“성만 밝혔을 뿐이잖아요. 이름이 뭐죠?”
순간 맥코이는 아직 녹음기를 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포개고 있던 손을 움직여 녹음 버튼을 눌렀다. 존 해리슨이 그걸 보고 친절하게 다시 말했다.
“당신의 이름을 듣고 싶어.”
느릿하게 글자를 말하는 목소리에서 자연스러운 권위가 묻어났다. 맥코이는 그 느낌을 어서 종이에 적고 싶었지만, 저격수들의 스코프에서 나오는 빨간빛보다 거슬리는 푸른 안구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레너드.”
스르륵, 책상의 좁은 옆면에 무거운 수갑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드러난 존 해리슨의 창백한 손이 맥코이의 움직임을 따라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맥코이는 펜을 잡지 못했다. 한 줄짜리 상념 정도를 기억 못할 머리는 아니었다.
“나는 이제부터 당신을 레너드라고 칭할 거야.” 낮고 부드러운 음성은 듣기 좋기도 했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날 불러요. 해리슨이라고 할 필요 없어. 살인자라고 불러도,” “나한테 선택권을 준 건 고맙지만 사양해요, 해리슨 씨.” 주도권을 뺏기기 싫어 맥코이는 그렇게 답변했지만, 불쾌할 것도 없이 도리어 흥미롭다는 듯 으슬하게 하얗고 파란 해리슨의 입가엔 잠깐 미소가 지나갔다.
“나는 타인을 뭐라고 부르는 지에 대해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인데, 레너드는 아닌가 보군요. 아마 나의 다른 부분을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겠죠?”
반말과 경어를 오가는 화법과, 속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중하게 말하지만 그 안에 숨을 쉬듯 당연하게 배는 어떠한 이질적인 감정. 맥코이의 머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늘었다. 그는 시작부터 녹음기를 켜 놓는 걸 잊어버렸을 때처럼 지금 녹음기의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존 해리슨이 레너드라는 단어를 부드럽게 발음했다는 게 오싹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요?”
자신이 생각해 보기에도 굉장히 많은 요소들 중에서 존 해리슨은 엉뚱하지만 정확한 한 가지를 짚어냈다.
“내 목소리.”
“.....뭐?”
존 해리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던 특징을 뺏어버린 듯, 사람을 닮지 않은 파란 눈동자에 부드러움이 섞였다. 맥코이는 그걸 알 수 있었고 그 사실을 존 해리슨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은색의 티셔츠 위에 모인 붉은 점들과, 그 바로 위에 솟아 있는 목은 이상하게 하얗고 그 기괴함의 절정에 올라 있는 안구에 대해서는 더 이상 형용할 길도 없었다. 맥코이가 책상을 보다가 작동하고 있는 녹음기를 껐다.
“오늘 예정된 시간은 여기까지네요.”
맥코이가 일어났다. 존 해리슨이 손을 내리면서 수갑이 찰랑댔다. 맥코이의 속마음대로, 해리슨의 입술이 아니라 눈이 말했다. 당신이 애정을 붙여야 할 목소리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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