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 with Kingsman: The Secret Service

- Sherlock Holmes & John Watson meet Harry Hart & Eggsy

- Written by. Jade


Gentleman, Detective, and London Adventure







  존 왓슨은 노트북 자판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입력창의 커서가 그에게 생각을 촉구하면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한참 입술을 오물거리며 머리를 굴리던 존이 조금씩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내가 이 블로그에 올리는 일들은 세상에서 지루한 걸 제일 참지 못하는 셜록 홈즈가 끌어 오는 게 대부분이다. 아마 앞으로도 내가 겪는 온갖 골치 아픈 사건들은 다 그 자문 탐정 때문일 터다. 하지만 오늘 기록하려는 이야기는 그에 대한 아주 드문 예외가 될 수 있겠다. 이번 사건은 나의 작은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었던 데다, 특별한 게스트까지 꼈기 때문이다….


  존 왓슨은 잠시 며칠 전 일을 더듬었다.





  사람들은 존 왓슨이 셜록 홈즈의 플랫메이트이자 그의 조수인 줄 알고 있지만, 그는 아직까지 유효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의사였으며 셜록 홈즈의 파트너라는 건 그의 직업은 아니었다. 이틀 전에 셜록과 폐쇄된 지하철을 누비느라 클리닉에 지각을 하고 말았던 존은 자청하여 야간 진료를 마친 마지막으로 문단속을 하고 있었다. 다소 거친 방법이긴 해도 현실적 감각을 환기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확인 차 문고리를 한 번 당겨본 존이 하품을 하며 돌아섰다. 베이커 가 221B번지로 귀가를 재촉할 때가 된 것이었다. 존이 양 다리에 힘을 불어넣으며 걸었다. 그러나 그의 기운찬 발걸음은 열 번도 이어지지 못했다.


  존은 울타리에 매달려서 거의 쓰러져가는 청년을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드러내 놓고 울타리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려 하는 폼이 수상쩍으면서도 도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저기요?”


  야구 모자를 눌러쓴 청년은 존의 말소리보다 더 크게 헉헉대고 있었다. 청년은 행여나 울타리가 옆으로 기울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거기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할 듯 보였다. 존은 청년이 대단히 탈진해 있다는 걸 간파했다.


  “괜찮아요?”


  청년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존이 탄식했다.


  “오, 세상에.”

  “저기, 저, 조금만 저 뒤쪽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청년은 펜스 안쪽의 수풀들을 간신히 가리켰다. 하지만 존은 그것을 다급히 치료를 요구하는 환자의 손짓으로 알아들었고 그 요청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와요. 자, 날 잡고 일어나 봐요. 걸을 수 있겠어요?”


  청년이 조금씩 길가에서 벗어났다. 청년은 이제 자신을 부축하는 남자에게서 팔을 풀고 수풀 밑으로 미끄러져 숨으려고 했다. 그런데 동글동글한 얼굴의 남자는 의외로 악력이 셌고, 런던의 1/4을 순식간에 가로질러야만 했던 청년에겐 남자의 힘을 이길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청년은 얼떨결에 클리닉으로 들어갔다.


  그 때만 하더라도 청년은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을 했고, 존 왓슨은 의사의 본분이 지나치게 내면화된 자신의 일면을 조금 멋쩍어 했을 뿐이었다.





  “늦었군.”


  셜록 홈즈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일이 좀 있었어.”


  존이 한바탕 눈을 문질렀다. 밤 10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자 갑자기 따뜻한 우유가 절실해졌다. 평온하게 주방으로 향한 존은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셜록을 지나치려다가 뒷걸음질을 쳤다.


  “맙소사, 자네 약도 해?”


  자문 탐정이 식탁 위에 늘어놓은 가루가 설탕이나 소금 같은 평범한 종류일 리는 없었다. 존은 열 가지는 넘는 하얀 물질들의 향연에 입을 떡 벌렸다.


  “지금은 아니야.”

  “…경험은 있다는 소리군. ‘지금은’ 안 한다는 말로 미루어봐선 때때로 즐긴다는 뜻이야?”

  “이건 사건 때문이야. 고약한 신종 마약이 돌고 있다면서 레스트라드가 도움을 청했어. 전에 팔리던 약들에서는 쓰지 않은 성분이 들어가 있으니 경찰이 헤매는 거겠지.”

  “그게 지금 식탁 꼴이랑은 무슨 상관인데?”

  “그 미지의 화합물이란 걸 찾아내야 할 거 아냐.”


  셜록은 숨만 들이쉬어도 약물이 흡입될 것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존은 고개를 모로 저으며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냉장고가 셜록의 뒤편에 있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장 좁아졌던 그 순간 셜록이 머리를 홱 들었다.


  “잠깐만.”

  “응?”


  셜록이 뒤로 팔을 뻗어 존의 손목을 잡았다.


  “약은 내가 아니라 자네가 한 것 같은데?”

  “뭐라고? 아냐.”

  “자네한테서 희미하게 냄새가 나는데.”


  존이 몸통으로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대꾸했다.


  “그거야 자네가 나 없는 동안 이런 이상한 가루들에 코를 파묻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난 마약 안 한다니까?”


  셜록은 존을 붙잡은 상태 그대로 등을 돌렸다. 서늘하고 창백한 피부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빛나는 눈동자가 존을 훑었다. 그의 두뇌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와 온갖 연역적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는 소음이 존의 귓가에까지 닿았다.

 

  “…아까 무슨 일이 생겼었다고 했잖아. 자세히 설명해봐.”


  셜록이 진지한 만큼 존도 진심으로 머그컵을 가지러 가고 싶었다. 존이 팔목을 털었다.


  “잘못 짚었어, 셜록. 난 그냥 다친 데다 탈진으로 거의 쓰러져가는 청년에게 포도당을 놔줬을 뿐이야.”


  그 말에 셜록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누군지 봐야겠는데.”





  “그건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제가 판 건 더더욱 아니에요!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에그시는 목청껏 외쳤다. 전날 밤 힘세고 친절한 남자가 수액을 놔 주고 조촐하게나마 쉴 자리를 마련해 줬었기 때문에 어제보다 몸에 생기는 돌았지만, 그는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에그시는 총알 자국이 잔뜩 나 있는 벽지와 난로 위 해골 따위를 보면서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간밤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방관자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대신 쏘아 붙이는 말투보다 더 정감 가지 않는 인상의 남자가 에그시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럼 그 약은 왜 가지고 있었지?”

  “젠장, 그건 딘 때문이에요!”

  “딘?”

  “제 양아버지에요. 영국에서 구제불능 양아치들의 순위를 매기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이죠. 요새 끝내주는 약이 하나 나왔는데, 마약상이 자기한테는 안 팔겠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했나 봐요. 그래서 놈을 골려주고자 저한테 도둑질을 시킨 거죠.”


  그러자 셜록이 그가 하루에 한 번쯤은 구사하게 되는 말투를 선보였다. 


  “아니, 시킨다고 마약상 물건에 손을 대는 멍청이도 있나?”

  “사정 모르면 가만히 있어요. 누군 좋아서 했나, 빌어먹을.”


  잠깐 투덜댄 에그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에그시는 어젯밤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살기가 가득한 총성을 들었다. 에그시는 그것이 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셜록이 금방 풀이 죽은 에그시를 곁눈질로 훑었다.


  “당분간은 여기 있어.”

  “네?”

  “셜록!”


  오늘도 셜록 홈즈를 향한 청자들의 놀라움은 이어졌다. 그것은 언제나 셜록이 감당해야 할 하나의 수고로움이었으나, 그는 이번엔 ‘목 위에 달려있는 것의 용도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라고 묻는 것 같은 눈빛은 지어내진 않았다.


  “네가 훔친 물건은 내가 경찰서에 넘기겠지만, 너한테 당한 그 마약상들은 그 사실을 모를 테니 계속 널 쫓으려 할 거야. 이럴 때는 그들이 너와 연관점을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게 현명하지. 아마 그들은 네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걸.”


  소파에서 거의 일어날 뻔했던 에그시가 몸을 수그렸다. 그는 입을 비죽이면서도 셜록의 말을 이해했다. 사실 그걸 인정하기까지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조용히 에그시를 관찰하고 있던 셜록이 에그시에 대한 평가를 아주 약간 상향시키게 만들 정도였다. 에그시가 소파에 흡수될 듯한 상체를 꿈틀거렸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 숨어 있어야 하는데요?”

  “내가 범인을 잡을 때까지.”

  “그게 언제일 줄 알고요?!”


  셜록은 대답보다 먼저 의자에 얹어져 있던 코트를 집었다. 지금 자신이 행하는 몸짓이 마치 에그시가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보증과도 같다는 모양새였다. 


  “오래 안 걸려.”


  에그시는 셜록이 바람처럼 핸드폰과 장갑을 챙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그시가 가져온 마약이 든 봉지를 비롯하여 몇몇 물품들이 탐정의 큰 손에 빨려 들어갔다. 존이 이크, 하는 소리가 절로 들리는 인상으로 셜록의 뒤를 쫓아갔다. 


  “딱 봐도 이상하게 보이는 물건들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요.”


  에그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플랫에 혼자 남아 있었다. 





  에그시는 25분 째 한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존이 급하게 던져놓고 간 주의사항은 간단했고 비논리적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에그시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손아귀 힘이 좋은 의사와 온 구석이 비범한 탐정이 거주하는 집이었다. 에그시는 자신이 안전을 확인한 소파 이외에는 어떤 것과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에그시는 소파에 누우면서 모자를 안대 삼아 잠을 청할 준비를 했다. 그는 운동화를 벗고 탐정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을 담요 대신 덮었다. 


  잠시 후 에그시가 모자 속에서 슬그머니 눈을 떴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이 누군가의 발에 밟히면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그시는 탁자 위에 있던 컵을 살며시 끌어온 다음, 그 위로 팔을 축 늘어뜨렸다. 여차하면 침입자의 머리에 그릇 조각을 박아줄 심산으로 에그시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발소리가 멎었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플랫 안으로 들어왔다.


  “…오.”


  대뜸 침입자는 뜻 모를 음성을 흘렸다. 


  “예상 밖인데.”


  에그시가 얼굴을 덮고 있던 모자를 치웠다. 우산을 들고 양복을 입은 남자의 생김새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골목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에그시는 주섬주섬 일어나서 손님을 맞았다. 


  “원래 여기 사는 두 사람은 외출했어요. 언제 들어올지는 모르고요. 메모라도 남겨드려요?”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짧게 손을 저었다.


  “아니, 됐다. 셜록이 여기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 사실은 네가 궁금해서 온 거거든.”

  “저요?”


  가운을 걷다 말고 에그시가 동작을 멈췄다. 에그시가 눈동자를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무기 대신 갖다 놓았던 하얀 머그잔을 앞으로 흔들면서 소리쳤다. 


  “와씨, 진짜 지독한 족속들이네. 저한테 그 물건은 없어요! 그, 어딘가 무시무시한 양반이 경찰서에 제출한댔어요! 그리고 솔직히 제가 좋아서 가져간 것도 아니고!”


  마이크로프트는 언짢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마약 파는 사람처럼 보이니?”


  까맣고 길쭉한 탐정이 한 번 선보인 바 있는 말씨였다. 타인이 주변에 존재하는 사실과 증거들을 제대로 소화할 줄 모른다는 게 정말로 한심하고 비참하다는 감상이 신사의 한 마디에서 뚝뚝 묻어났다. 에그시가 더듬더듬 팔을 내렸다.  


  “그, 그래도 경계는 해야죠…?”

  “난 그런 저급한 범죄자들과는 거리가 있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아.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수단과 정보를 가진 부류들이 있기 마련이지.”


  에그시가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그가 엉덩이만을 살짝 떼서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다시 마이크로프트를 마주했다. 자신에게 명확히 고정되어 있던 신사의 눈빛은 아무래도 경계를 풀라는 의미가 아니었던 듯했다. 에그시가 의아함을 담아 한쪽 눈썹을 올렸다.


  “…메달이 독특하게 생겼구나.”


  대개 안쪽에 걸어두던 펜던트가 상의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에그시는 신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건 어디서 났지?”

  “옛날에 집에 찾아 왔었던 한 남자분이 주셨어요. 잘 간직하라면서. 오, 망할. 그러고 보니 이걸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네!”


  말을 하다 말고 중요한 사실을 상기해낸 에그시가 펄떡 일어났다. 에그시가 전화기를 찾아 테이블과 탁자 위를 더듬었다.  


  “잠깐, 에그시.”


  신사는 이웃에 사는 청년을 부르듯이 에그시의 이름을 발음했다. 기회가 마땅치 않아 아직 플랫의 독특한 두 주인과도 통성명을 나누지 못한 에그시가 딱딱한 동작으로 등을 돌렸다. 책상 위에 있던 두꺼운 책 한 권이 에그시의 손과 밀착했다.


  한편 신사는 틈만 나면 사람을 가격할 만한 물건을 찾아내는 에그시의 긴장한 신경보다는 다른 것에 놀란 눈치였다. 

  

  “내가 따로 연락을 넣을 테니 수고로운 일은 안 해도 될 거다. 존은 아닐 것 같고, 아마 셜록이 여기 있으라고 했겠지? 이유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아이니 잠시간은 그의 말을 들어주려무나.”


  신사가 에그시에게 작별하면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에그시는 이쯤 되니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양반들에게서 벗어나기 전까진 자신의 사고를 꺼놓고 있는 게 좋겠다는 단정을 내리게 되었다.  





  템스 강변은 늘 그랬듯 시끄러웠다. 마이크로프트는 두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굳건히 억누르면서 장우산 끝으로 바닥을 긁었다. 단조롭기만 한 강바닥과 다리를 찬미하는 일군의 관광객들 덕택에 마이크로프트는 더욱 지쳐갔다. 그를 굳이 런던에서 제일 붐비는 장소로 끌어낸 장본인은 이번에도 약속 시간을 제때 지키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가 한 오십 번쯤 바닥을 긁었을 즈음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마이크로프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불러냈다고 시위하는 건가.”

  “사방이 뚫려 있으면서 인파가 많은 장소를 접선지로 고르는 건 기본이야.”

  “나는 자네처럼 스파이가 아니라서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데 말이지.”


  뿔테 안경을 쓴 신사가 마이크로프트에게 짧은 눈짓을 던졌다. 무표정한 가운데 뻔뻔함이 어린 반짝임은 마이크로프트에게 아무런 상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가 앞으로 밀려나 있던 우산을 발 옆으로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자네 조직에서 주는 메달을 걸고 있는 청년을 봤어.”


  신사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 영국 정보부 그 자체를 뒤집어쓰고 있는 자신과 그 복잡성을 겨룰 만한 신사의 위치를 알고 있는 마이크로프트는 흥미롭다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이름도 얘기 안 했는데 벌써 알겠다는 눈치군.”

  “…가장 최근에 그걸 받은 부인의 아들이겠지, 아마도.”

  “그 쪽으로 도움을 청하려고 했었는데 내가 제지했네.”


  신사가 아예 마이크로프트를 향하여 몸을 틀었다.


  “셜록이 그 청년을 붙잡아 두고 있어서 말이야. 그 청년이 필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더군.”

  “자문 탐정이라는 자네 동생? 험하고 어려운 사건들만 도맡는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에그시가 위험한 것 아닌가?”

  “그래서 자네에게 알려주는 거 아닌가, 해리.”


  마이크로프트가 우산으로 땅을 가볍게 밀면서 방향을 바꾸었다. 보통 사람들은 살아가는 내내 접할 일 없는 정보와 사건들을 머리에 가득 쌓아두고 있는 두 남자가, 자신의 동생과 후견인쯤 되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트는 그걸 조금 재미있게 여겼다. 


  “셜록이 자기 플랫메이트가 아닌 사람에게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라서. 일만 끝나면 풀어주겠지만 그 전까지는 자네가 지켜보도록 해. 아무래도 그 청년이 자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 같군.”


  해리는 말을 아꼈다. 마이크로프트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아, 저번 파일 건은 고마웠네.”


  화제는 사회적이지 못한 동생의 성격에서 순식간에 라이베리아에 거점을 두고 있던 불법 무기상을 소탕하게 만들어준 일급 정보로 옮겨갔다. 그 속에서 해리는 현기증 한 줌 느끼지 않고 먼저 강변에서 물러난 마이크로프트를 바라보았다. 주변을 어정쩡하게 서성대고 있던 인원들이 조금씩 마이크로프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해리는 고개를 돌리고 안경다리를 약하게 눌렀다.


  “멀린, 부탁 하나만 하지.”   





  그 날 밤이었다. 모든 건 영리한 이들의 계산을 빗나가지 않았다.


  첫 번째로 들어맞은 것은 범죄자들은 아직도 에그시가 마약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할 것이라는 셜록 홈즈의 예측이었다. 신종 마약을 만든 집단은 심지어 셜록이 작성해 놓았던 목록 안에 포함되어 있는 조직이었다. 뒤이어서 마이크로프트가 의문의 신사에게 에그시가 직면할 지도 모르는 위험을 알려준 행동이 현명했다는 게 밝혀졌다. 마약상들은 집착적으로 에그시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다만 그들의 화가 상상 이상으로 깊었으며, 일개 권총이 아니라 온갖 흉악한 화기들로 무장했다는 건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셜록, 경찰에 연락 안 했어? 왜 안 오는 거야!”

  “핸드폰을 잡고 있을 틈이 있어야지!”

  “망할!”


  그 와중에 셜록이 조준도 하지 않고 뒤편으로 총을 쐈다. 커다란 총들을 하나씩 쥐고 달려오던 마약상들이 멈칫했다. 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번의 발포로 한 놈의 발목을 제압했다. 셜록의 코트 자락이 다시 사납게 나풀거렸고, 존은 셜록을 따라가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저 놈들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저런 바주카포 같은 걸 들고 오면 이쪽에서 어떻게 하라고!”


  한편 혼자서 비무장인 에그시는 운동화 바닥에 불이 붙을 지경으로 뛰고 있었다. 일평생을 살면서 들을 수 있는 총성이 한꺼번에 고막으로 밀려오는 통에 절로 험한 감탄사들이 튀어나왔다. 에그시가 고함을 내지르면서 팔을 저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누가 마약 훔쳐오라고 하면 꼭 무시하도록 해!”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니까요!”


  존은 거의 절규나 다름없는 에그시의 외침을 무시했다.


  “셜록, 어느 방향이야?”


  셜록이 탄창에 들어 있는 총알의 개수를 슥 확인했다. 그가 침착하게 답했다.


  “그게 문제야, 존.”

  “왜?”

  “한 번 방향을 틀고 나면 그 이후로 갈 곳이 없어.”


  셜록은 일단 왼쪽으로 돌았다. 존이 그의 맞은편으로 가 엄호 사격을 준비하듯이 총을 쥔 손을 모았다. 에그시는 그들의 뒤에서 잔뜩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셜록이 코너 밖으로 조금씩 팔을 이동시키면서 다른 쪽 손으로는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지원이 필요합니다. 윔폴 스트리트, 아마도 90번지쯤 될 것 같군요. 마약상들에게 쫓기고 있고 총탄은 10발이 채 안 남았습니다. 서둘러요.”


  셜록은 신속하게 핸드폰을 넣고 양 손으로 단단하게 피스톨을 감쌌다. 


  “아무리 빨라도 5분은 걸릴 거 아냐?”

  “그렇겠지.”

  “그 때까지 버틸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존은 흔들림 없이 적들과의 거리를 재려 힐끗 고개를 내밀었다. 셜록과 존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손잡이 부분을 잡고 있는 셜록이 천천히 손가락을 폈다. 하나, 둘. 셜록과 존이 동시에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에그시가 안면을 잔뜩 찡그리면서 눈을 감았다.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의사 양반이 다급하게 ‘셜록!’ 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에그시가 차근차근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셜록과 존은 그의 곁으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상을 입은 상태도 아닐 듯했다. 에그시는 속으로 물음표를 그리면서 조금씩 넓은 길목을 향해 발을 움직여보았다. 

 

  “세상에, 대체 이게 무슨….”


  소총이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에그시가 멍하니 빛깔 없는 불꽃놀이를 펼치고 있는 화기들을 쳐다보았다. 


  “설마 저 사람이 레스트라드가 보낸 지원군은 아니겠지. 자네 형인가?”

  “…마이크로프트가 이런 일에까지 나서지는 않는데.”


  셜록과 존은 에그시보다 앞서 마약상들의 무기와 몸통이 재료가 되고 있는 구경거리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범죄자들은 마치 태풍의 핵심으로 박치기를 하듯이 한 방향으로 모여들었다가 일제히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약간씩 흩날리는 정장 상의와 불쑥 솟구치는 장우산의 손잡이가 있었다. 


  험악한 목적으로 근육을 키운 마약상들을 제압하는 중인 주인공은 딱 붙는 슈트 때문에 일견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신사였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굽히고 구둣발을 비비며 덩치들 사이를 누볐다. 단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고 있을 뿐 제각각 움직이고 있는 신사의 사지는 한편으로는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나뭇결이 두드러진 우산은 거구들의 팔과 목을 가리지 않고 휘감으면서 그들을 신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집어던졌다. 


  셜록이 천천히 총을 집어넣었다. 우산 꼭지가 손가락 마디를 부러뜨리는 실감나는 소리에 맞춰 존도 들고 있던 총을 갈무리했다. 그 찰나에도 장총의 아랫부분이 분리되었고 신사의 팔꿈치가 한 놈의 명치를 찍었다.


  마무리를 고하며 신사가 팔목에 우산을 걸었다. 그의 정갈한 구두 앞코가 휙휙 총들을 밀어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신사가 세 사람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안녕, 에그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에그시는 탄성 대신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아니 다들 제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모르는 사이에 제가 런던에서 유명인이라도 됐나?”

  “나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을 통해서 들었지. 모두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일세.”


  에그시에게 살풋 호의가 담긴 미소를 짓던 신사는 삽시간에 표정을 바꾸고 셜록과 마주했다. 


  “자네가 셜록 홈즈?”

  “…마이크로프트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일하는 분야가 조금 겹친다고 해두지. 이제 이 청년의 신병은 내가 맡아도 되겠나?”


  셜록이 힐끗 존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눈동자에는 벌써 온갖 추측들이 담긴 피켓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셜록이 소리 나게 팔을 상체에 붙였다.


  “범인을 잡았으니 뭐, 좋으실 대로.”

  “고맙군. 에그시, 함께 가지.”


  에그시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신사의 뒤를 따랐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이번 사건을 해결한 건 셜록 홈즈가 아니라 그 베일에 싸인 신사일 지도 모른다. 그는 나타났을 때만큼 아주 비밀스럽고 빠르게 사라져버려서 이름도 묻지 못한 만큼, 그를 그저 ‘신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존은 잠시 자판을 치던 움직임을 멈추고 입가를 매만졌다. 훌륭한 맺음말을 고민하던 존이 무심코 화면을 보았다.


  “어, 어?”


  존이 2시간 가까이 써내려간 포스트 내용이 멋대로 지워지기 시작했다. 존이 놀라서 양손을 책상 밑으로 내렸지만, 커서는 망설임 없이 문장들을 지워갔고 마침내 노트북의 화면 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


  존이 입을 벌렸다. 그의 손은 여전히 책상 아래에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번 일은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닥터 왓슨의 이해를 바라며, 좋은 밤 되시기를.


  이윽고 인터넷 창이 꺼져버렸다. 





  “진짜 저 구하러 와주셨던 거예요?”

  “그래.”

  “전 오늘 아저씨를 처음 봤는데요?”

  “그것이 우리 사이에 인연이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아.”

  “아저씨 정체가 대체 뭔데요?”


  마침 빨간 불이 켜져 있는 신호등으로 인해 신사가 멈춰 섰다. 그가 안경 너머에서 눈썹을 부드럽게 내렸다. 호기심과 경외감이 청년의 눈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내 이름은 해리 하트, 내가 너에게 그 메달을 줬었단다.”


  두 사람의 눈앞에 처음으로 웨스트민스터로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