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d on Interstellar by Christopher Nolan
Khan Noonien Singh & Joseph Cooper Crossover
Written by. Jade
The First and Last Favor
세계가 종잇장처럼 펼쳐졌다. 칸은 100년간 준비한 자신의 망명이 성공했음을 알았다.
아직 그의 위치는 애매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살고 있는 세계로부터 탈출했으면서도, 그의 본질까지 일반적인 생명이 살아가는 근본을 벗어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칸은 모호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화인간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으로도 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덩어리(bulk) 안에서 그는 발을 움직였다. 무언가를 밟는다는 느낌은 나지 않았다. 시공간을 발바닥으로 지그시 눌러본다는 것은 언어의 형체 없는 힘을 빌리지 않으면 표현도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당연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깔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듯이, 모든 시간과 공간이 응축된 그곳은 새까만 색이었다. 칸은 자신이 이 공간이라도 할 수도 없는 거대함에서 얼마나 생명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추정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인류와 영영 헤어진 것이 맘에 들 뿐이었다. 인간은 그 대상이 자신보다 미개하든 우월하든 상관하지 않고 소모해버릴 수 있었다.
증오와 애정, 압도적인 다수 속에서 존재하는 단 몇 가지 예외를 겪으며 지친 강화인간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마음으로 공허를 걸었다.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지평선(Eventual Horizon)이었다.
그곳에서 칸은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소리를 들었다.
칸은 그저 인간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얻게 된 자유와 상실감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혹시 자신의 사유가 이 덩어리에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지평선을 꾸준히 따라갔다. 어차피 사방은 모두 까만색 무기질로 뒤덮여 있었으나 칸은 자신이 이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칸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검은색에 묻혀 있던 색채들이 프리즘에 의해 갈라진 것 같았다. 그는 지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칸은 조심스럽게 건너편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아직 추상적인 암흑보다는 색깔과 면이 존재하는 곳에 자신이 속하는 게 옳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칸은 자신이 그토록 멀어지려고 했던 인간을 보고 걷기를 멈추었다. 하얀 슈트를 입은 사람이 색채들 위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칸은 이제 이곳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엔 인간이 아니라 사각형 모양의 로봇이 블록을 사지처럼 움직이며 말을 걸고 있었다.
—혹시 ‘그들’ 중 하나인 겁니까? 쿠퍼는 어디 있죠?
칸은 습관대로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것만 말했다.
“…저 인간을 말하는 건가?”
칸은 고갯짓으로 면을 붙잡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강화인간의 눈에는 연약해 보이고, 덩어리의 시선에서는 무한히 허망할 수도 있는 몸짓으로 그는 손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로봇은 칸이 가리킨 지점을 확인하고 다시 공간 속을 헤엄쳤다. 칸은 어둠과 색채가 한 조각의 기계로 이어질 듯한 환상을 보았다.
“잠깐.”
—뭐죠?
“저 인간은 왜 이 곳에 왔나?”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죠.
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는 인류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영역이야.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인류를 구할 방법을 찾아, 그걸 구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전달할 수 있겠나?”
—그건 저도 알 수 없군요. 쿠퍼가 아마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쪽도 혹시 블랙홀로부터 얻은 양자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면 알려줬으면 좋겠군요.
칸이 로봇이 알려준 정보를 다 흡수하기도 전에 가장 인간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지 마! 칸은 몸을 틀었고 동시에 인간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 멍청한 놈아, 네 딸을 버리고 가지 말라고! 그 소리에 반응한 것은 로봇이었다. 로봇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둠과 색의 경계에 걸쳐져 있었다.
인간의 목소리에 의해 덩어리는 순식간에 친숙한 곳으로 변모했다.
면으로만 명명할 수 있었던 관념들은 이제 두 사람을 가로막은 실체적인 벽이었고, 시공간이 어떤 미지의 방법을 통해 결합되어 있는 배경은 블랙홀이라는 다소 낯익은 무언가로 격하되었다. 세계라고 지칭하기도 어려웠던 이 세계는 인간 남자가 딸을 그리워하는 사적인 장이 되었다. 칸은 로봇과 함께 가시화된 절망에 매달려 있는 쿠퍼를 응시했다. 그러면서 칸은 40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중력을 이용해보지 그러나.”
로봇이 즉각 본체를 돌렸다.
—뭐라고요?
“시공간이 응축된 환경에서 유일하게 작용 가능한 힘은 중력뿐이야. 그러니 기댈 수 있는 것도 중력밖에 없지.”
—중력에 데이터를 실어 보낸다고요?
“중간에 매개물을 두면 되지 않나. 실존하는 모든 것들은 중력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참고하지요.
로봇이 색채의 밑바닥을 타고 올라갔다. 로봇은 더 이상 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두 사람 사이에는 통신기가 있고, 그걸 통해서 진행되는 대화는 칸의 귀에 잘 들리지 않을 지도 몰랐다. 로봇이라 하더라도 이곳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인간 남자를 많이 안정시킨 모양인지, 그는 더 이상 크게 소리치지 않았다.
칸은 경계를 건너지 않고 인간 남자와 로봇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의 모든 것과 멀어지고 싶어 선택한 탈주에서 그는 처음으로 인간을 위해 거짓 없는 해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것이 타자와 유착되길 원하는 인간의 증오스러운 특징에서 비롯되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사실 칸은 자신의 망명을 더럽힌 인간을 굳이 돕고자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칸은 중력을 빌어서도 만날 수 없는 자신의 동족을 기억했다. 그는 자신의 탄생과 진화와 비극에 모조리 기여한 인간을 더 이상 무엇이라고 한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개를 다시 똑바로 드니 색채가 어둠에 빨려들고 있었다. 어쩐지 인간 남자와 로봇이 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칸은 시공간에 대고 자신은 이 끝없는 추상에 머물게 해달라고 속삭였다. 덩어리는 그에게도 호의를 베풀었다.
사건의 지평선은 끝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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