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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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Jade


The Guide of White Night




'Gute Nacht' from Die Winterreise (D. 911), composed by F. Schubert

Sung by Ian Bostridge & Piano by Julius Drake





  작가들이 불면증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인 백야가 자주 발생하는 곳에 마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독자들의 잠을 뺏어가는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어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돈이 하나도 들지 않으면서 재미나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장소는 도서관밖에 없었다. 지루한 책을 잡고 만 불운이 발생하는 일도 두렵지 않았다. 책상에 엎드려서 자면 그만이었으니까. 사실 내 딴에는 공부에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집에 있기는 싫은데 밖에서 쓸 돈은 없는 가난하고 불행한 청소년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취한 것이었다. 그래도 책을 읽는 게 골목에서 약을 파는 일보다는 나았다. 덕분에 글재주라는 게 생겼고 몇 줄짜리 지식들도 머리에 쌓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가 걷는 걸 지겨워하지 않았고, 도서관이 집에서 50분 정도만 가면 나오는 위치에 세워져 있었다는 점들 따위가 나를 풋내기 기자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편집장은 처음에 나를 맹금류의 눈초리로 쳐다봤었다가 이제는 나를 애용했다. 편집장은 내가 왕년에 철판 좀 깔아봤다는 걸 금방 알았고, 과연 기자가 될 재목이라며 나를 어쭙잖게 띄워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늘 한 번 다뤄보고 싶었던 소재가 있다는 얘기를 슬슬 풀어놓았다.


  “백야와 작가들의 마을이요?”

  “끝내주는 별명이지? 진짜 이름도 멋져. 북쪽의 지평선North Horizon! 딱 듣기만 해도 문장이 술술 나올 것 같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편집장이 과장된 몸짓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편집장은 특종을 귀띔해주듯이 소곤거렸다.


  “해리 하트의 책이 다 거기서 나왔다고.”


  그건 내 기준에서 진짜 특종이었다. 


  이야기에 목을 맨다고 나서는 인간들 중에서 해리 하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면 그 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가 쓴 페이지에는 추적한 하늘이 숨을 쉬고, 은밀하게 형성된 웅덩이들이 흐르며 마지막에는 번쩍이는 섬광이 독자의 정수리를 깨뜨려버리기 위해 대기한다. 게다가 이따금씩 쓰는 첩보 스릴러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몇몇 사람들은 해리 하트가 MI6의 부국장 정도는 지내봤을 거라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나 역시 그의 소설들을 재미있게 보았다.


  편집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마을에 작가들이 몰려든 게 된 것도 해리 하트 때문이야. 그 양반의 트레이드마크인 5분 인터뷰 있잖아, 거기서 그가 그랬나봐. 밤하늘이 하야면 그만큼 잠드는 게 힘들다는 걸 아니까 뒤척일 시간에 자판을 붙잡고 있다 보면 글이 나온다더라고. 그 뒤로 몇몇 소설가들이 그를 따라 노스 호라이즌에 머물렀지.”


  “그런다고 해리 하트 같은 글이 나오겠어요?”


  “내 말이. 그래서 거기 아예 눌러앉아 사는 작가들은 없어. 해리 하트를 제외하면 말이야.”


  어쩐지 말썽쟁이 꼬맹이에게 할머니가 들려줄 법한 동화 같으면서도 오싹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팔짱을 꼈다. 


  “편집장님은 정말 그 마을의 백야와 불면증이 그가 가진 필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건 네가 알아봐야지.”


  편집장의 눈썹이 음흉하게 으쓱거렸을 때 재빨리 퇴근을 외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기차표를 받고 말았다. 정확히는 기차표 위에 있는 법인 카드를 낚아채려다가 기차표까지 덤으로 떠안게 된 것이었다. 편집장은 역까지는 데려다 주겠다면서 꼬리를 쳤다. 백야가 발생하는 마을이라면 극지에 가까울 테니 무척 추울 게 분명했다. 나는 통장에 돈이나 꼬박꼬박 넣으라면서 푸념 같은 협박을 뿌렸다. 


  문득 까만 기차가 하얀 밤 사이로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책에 나올 것 같은 모양새이긴 했다. 





  노스 호라이즌은 말도 못 하게 추웠다. 3월을 코앞에 앞둔 시기였음에도 영하 20도 언저리에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 온도는 눈물이 나게 가혹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아껴두려고 했던 마스크를 양 귀에 끼우고 역을 가로질러 마을로 나왔다. 역 내부에 음료수를 파는 자판기와 신문 가판대가 비슷한 숫자로 설치되어 있다는 게 하나의 특징처럼 보였다. 


  나는 일부러 해리 하트가 머문다는 집 주소를 검색해오지 않았다. 대신 한 대밖에 없다는 마을버스의 기사에게 그가 사는 곳을 물었고, 기사는 아예 그 집 앞에 정류장이 설치되었으니 창밖을 잘 살피다가 내리기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나는 기사의 충고를 받들어 바깥을 보았다. 녹지 않은 눈을 모으면 지나가는 행인들을 다 파묻어버릴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정류장에서 내린 뒤 대뜸 문부터 두드렸다. 그것은 편집장의 가이드라인이었다. 


  ‘하트는 사람들이 자기한테 설설 기는 데 질렸을 거라고. 그러니 네 나이에 걸맞는 신선함을 선사해봐.’


  “하트 씨, 인터뷰 약속을 잡고 싶어서 찾아왔는데요!”


  혹시나 마스크 때문에 소리가 묻힐까 나는 목청을 높였다. 그랬더니 안에서 또박또박한 말씨가 들려왔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자네? 약속을 먼저 잡고 난 뒤에 현장에 오는 게 정석 아닌가.”

  “세상엔 악독한 편집장이 많거든요! 스케줄이나 좀 알려주시죠!”


  내가 들어도 내 목소리는 급박했다. 비록 나를 뒤쫓고 있는 게 악마의 꼬리를 흔들면서 날 노려보고 있는 편집장이 아니라 눈송이 섞인 강풍이라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덕분에 절박함이 도드라졌다. 날씨는 정말 견딜 수 없이 추웠다. 나는 서둘러 일정을 받아내고 이불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안쪽에서 금속들이 찰칵거렸다. 곧 보드라워 보이는 스웨터를 입은 해리 하트가 저녁 모임을 주최한 신사처럼 나타났다. 그는 내가 간신히 몸을 밀어 넣을 수 있을 정도만 문을 열었다.


  “들어와서 얘기하지.”

  “어후, 감사합니다.”


  따뜻한 공기를 만나니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부끄러웠으나 해리 하트가 태연하게 넘어가줘서 그를 따라 입을 씻었다. 


  편집장은 나에게 2주는 머물러야 성과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한 번에 5분 이상의 인터뷰를 받아들이질 않으니, 하루에 5분씩 12일은 버텨야 내실 있는 인터뷰가 나온다는 게 편집장의 계산이었다. 나는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거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달력을 찾고자 눈을 굴렸다. 


  좀처럼 달력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엉겁결에 해리 하트의 거실을 관찰하고 있었다. 창문은 작았고 커튼은 두툼했으나 소파의 팔걸이에 머리를 눕히면 충분히 네모난 빛에 의해 잠을 방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외에 스탠드와 촛불, 랜턴 등 온갖 종류의 빛들이 곳곳에 도사리듯이 놓여 있었다. 하늘에서부터 넘치는 빛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끝내 달력을 찾지 못하고 소파에 앉았다. 해리 하트가 따뜻한 음료를 가져왔다.


  “이 시기엔 날 찾아오는 기자가 없네.”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정말요?”

  “아직 여긴 겨울이야. 그리고 겨울에는 날씨가 더 험해지니까.”


  그가 컵을 들었다. 커피보다 고상하고 우유를 넣은 차보다는 풍미가 깊은 향이 났다. 그가 내 컵에도 똑같은 걸 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해리 하트를 따라 컵을 들고 슬며시 향기를 맡았다. 두 개의 향기가 위로 올라가다가 천장에 부딪히며 꽃가루 같은 잔향을 남겼다. 


  “편집장이 성미가 고약하긴 해도 안목이 있는 양반인가보군. 나와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나?”


  나는 거기서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기차 안에서 외운 질문은 두 개밖에 되지 않았다. 해리 하트가 이처럼 여유와 아량을 베풀 줄은 몰랐다. 숙소로 돌아가면 당장 편집장에게 전화부터 걸어서 그의 온화함에 대해 설파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몸이 근질거렸는데, 정작 이 순간 제일 필요한 임기응변은 솟아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식으로 차를 탄 건지 향기는 계속해서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 가운데 작가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는 달력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그것은 삽시간에 기자가 파헤쳐야 하는 가장 긴급한 안건이 되었다. 나는 슬그머니 녹음기를 켜고 운을 뗐다. 


  “왜 주변에 달력을 놓지 않으시죠?”


  해리 하트는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설명을 덧붙여서 재차 물었다.


  “작가들은 보통 숫자에 목을 매요. 분량이라든가 판매량, 마감 일정 같은 것에 관심을 안 둘 수가 없으니까요. 제가 인터뷰를 많이 나가본 건 아니지만 보통 작가들은 달력을 두 세 개씩 갖고 있어요. 대개는 정신없는 일정들 때문에 묻히는 사적인 안건들을 두 번째 달력에 표시하기 때문이지요.”


  “나에게 그런 검은 글씨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몇 가지 답변을 옮겨 적으려던 내 손이 무안해졌다. 검은 글씨가 무의미하다면 진정한 가치를 가진 건 아마 인간의 얼굴과 살갗일 것이었다. 나는 작가의 몸이 가지고 있는 양감에 집중했다. 자세히 보니 해리 하트도 나와 같은 행동에 몰입하고 있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살아 숨 쉬는 것이지, 탄생부터 죽어있는 것들이 아니네.”


  그는 주민이 100명도 되지 않은 극단의 지방에 살면서 생명을 운운했다. 그 탓에 해리 하트는 그 자체로 의문점이 가득한 한 쪽의 책장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하트 씨에게 살아있는 것이란 뭐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거지. 난 수수께끼를 내고 있는 게 아니라네, 청년.”


  그렇게 말하고 그는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인터뷰어의 이름도 모르는군.”

  “에그시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래, 에그시. 나는 자네에게 별로 숨기고 싶은 게 없어.”


  나는 그 발언을 믿고 잇따라 질문을 해댔다. 수첩은 뒤집혔고 뚜껑이 닫힌 펜이 굴러다녔으며 컵이 위아래를 오갔다. 녹음기의 빨간 불빛은 한참동안 켜져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불빛을 낼 수 있는 그 많은 물건들 중에서 정작 빛나는 건 없었다. 거실은 오직 바깥에서 들어오는 하얀 빛무리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것은 사람의 신경을 무디게 만드는 영속성으로 나와 해리 하트를 소파에 묶어두었다. 나는 지친 머리가 그에게 물어볼 질문을 떠올려내지 못했을 때에야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세 개의 숫자들이 저녁 6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시간을 내주실 줄은 몰랐어요.”    

  “자네가 찾아온 시기가 적절했을 뿐 내가 굳이 호의를 발휘한 건 아니야.”


  해리 하트는 자신을 굳이 치켜세우려 하지 않았다. 내가 솔직한 감상을 표현하니 자신도 객관적인 사실을 진술해주겠다는 태도였다.


  “다음에 제가 또 와도 괜찮을까요?”

  “악랄한 편집장을 만족시켜주기엔 아직 모자란가?” 

  “기삿거리에는 욕심이 많으신 분이거든요.”

  “오늘 밤까지 나와 이야기를 해 보고 한 번 생각해보게나.”


  나는 간신히 그의 말에서 수상한 점을 잡아냈다. 


  “밤이라니요?”

  “저녁 6시가 되었으니 마을버스의 운행 시간이 끝났네. 저녁 6시가 지나면 낮에 녹았던 자리들이 얼어붙기 시작해서 버스가 다니기 어려워. 대도시처럼 잘 포장된 길도 아니니까. 이렇게 된 이상 오늘 하루는 여기서 묵지.”


  해리 하트가 자연스럽게 두 개의 컵을 수거하며 말을 이었다. 


  “이곳의 하늘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내 잘못도 있어. 부담 갖지 말고 따라오게.”


  나는 그 와중에도 하늘이 어두워지는 정도로 시간을 직감하는 행위를 하늘을 해석한다고 표현하는 소설가의 감각에 감탄하고 있었다. 편집장이 기자 주제에 중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서 혀를 차는 게 눈에 아른거렸다. 어쨌든 편집장의 잔소리가 나에게 침상을 마련해주는 건 아니었으므로, 나는 양손을 허벅지에 붙인 자세로 해리 하트를 따라갔다.


  그가 열어준 방은 놀랍게도 그의 서재였다. 나는 당황했다.


  “침대는 아니지만 매트리스가 있는 방은 여기밖에 없네.”

  “그렇지만 여기는 하트 씨의 작업실 아닌가요?”

  “작가들이 다 서재에서 글을 쓰지는 않아.”


  나는 해리 하트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봐도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한다거나 외로움을 앓을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무료함까지는 그런대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공연한 황송함을 예술가 특유의 변덕과 지루함으로 가렸다. 크기도 맞지 않아 다소 지저분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속이 덮였다. 


  책상과 책장이 있고, 장소를 옮길 것 없이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도 있는데 타자기나 컴퓨터가 없는 이상한 서재였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방에서 나왔다.


  진실로 하늘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하얀 밤에 대해서 도가 튼 작가는 오늘 밤은 유별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설렜다. 괴팍하지 않은 요리가 숙소로 가지 못한 내 불우한 처지를 한 차례 달래주었고, 새로운 광경을 등 뒤에 업고 해리 하트에게서 말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성가신 낯설음을 불어 날렸다. 


  해리 하트는 저녁 식사 이후에도 자신을 인터뷰해도 좋다는 뉘앙스를 남기긴 했지만 그것은 내 쪽에서 더 부담스러웠다. 그에게 말을 거는 대신 나는 그를 관찰했다. 그가 무엇을 물어도 고개를 끄덕였던 건 가장 자연스러운 해리 하트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냉장고를 정리했고 살림에 필요한 물품들을 메모하는 것 같았다. 이후 그는 음악을 틀었다. 묵직한 음성을 자랑하는 남자가 부르는 가곡이었다. 나는 슬쩍 노트를 펴서 한 줄을 적었다.


  해리 하트는 식사를 마치고 잠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멋진 가곡을 들으면서 보냈다. 하얀 밤을 등진 채 음악을 들으며 그는 어떠한 글감을 얻고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밝아질 수도 있네.”


  갑자기 그가 말을 걸었다.


  “한번 잠을 청해보게나. 음악은 한동안 계속 흐를 테니.”

  “아, 하트 씨는 주무시게요?”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면서 그가 마주하고 있는 방을 잽싸게 훑었다. 그의 침실이었다. 그런데 해리 하트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일을 해야지.”


  그는 음량을 약간 낮춘 뒤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역으로 사라졌다. 해리 하트는 침실에서 그를 쓰는 스타일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직접 타자를 치는 걸 볼 수 없음에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스피커 속 남자는 계속 노래하고 있었다.


  밤 10시도 안 된 시각에 나는 최초로 잠을 청했다. 


  남자가 읊조리는 가사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 독일어나 이탈리아어인 것 같았다. 나는 내부가 탈진한 듯한 머리로 음악을 주르르 흘려보냈다. 그리고 서재는 늦은 오후처럼 끝없이 밝았다. 


  나는 맨 처음엔 이불을 덮었다. 그랬더니 5분 만에 숨이 막혀서 이불을 올려야 했다. 하필 사람의 이목구비 중에서 눈이 가장 위쪽에 위치해있는지라, 코로 숨을 쉬든 입으로 헐떡이든 이불로 눈을 가릴 수는 없었다. 서른 번쯤 뒤척인 것 같자 매트리스에 누워있는 게 괴로워졌다. 나는 아랫입술을 뒤집어서 머리카락이 팔락이게 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밝다는 게 이토록 끔찍한 일인 줄 몰랐다.


  몸을 조금이라도 피로하게 만들자는 속셈으로 방 안을 돌아다녔다. 해리 하트의 책장을 구경하는 기회도 누렸다. 의외로 소설책은 많지 않고 한 가지 학문을 깊게 다루는 전문 서적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본인의 책을 꽂아두었다는 게 꽤나 귀여웠다. 글 쓰는 일조차 무심하게 해치우는 것만 같은 해리 하트도 본인의 작품에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와서 나는 괜히 으쓱해졌다. 내가 본 인터뷰들에서 해리 하트의 책장을 소개한 건 없었다. 잠을 못 잔 게 기삿거리를 챙겼다는 걸로 위안이 되는 듯했다.


  나는 한 번 커튼을 젖혀보았다. 커튼의 감촉이 예상외로 얇았다. 그리고 하늘에는 어두움이라는 것이 너무도 완벽하게 소거되어 있었다. 계속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단번에 불면증이 생길 것 같아 서둘러 커튼 뒤로 대피했다. 영하 20도의 대지에서 맞는 바람만큼 혹독한 환경이었다. 문득 해리 하트는 이것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슬그머니 거실로 나갔고, 곧장 문이 열려 있는 그의 침실을 발견했다. 


  자판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정말로 이 시간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또렷한 정신에 깔끔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귀에 꽂히니 커피를 들이켠 기분이 났다. 


  “잠을 자기 힘든가?” 


  내 그림자가 어느새 방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와, 진짜 여기서 살면 불면증 안 걸리고는 못 배기겠는데요.”

  “익숙해지면 알아서 수면을 보충하게 돼. 잠이 오지 않는다면 여기 있다 갈 텐가?”


  백야는 생애 처음으로 겪어보는 것이었고, 해리 하트의 친절은 신비로운 향을 가진 차로 이미 맛 본 바가 있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나에게 익은 것을 택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궁금하지만 보면 안 되겠죠?”

  “안타깝지만 그렇네. 침대에 앉아서 쳐다보고 있으면 글자가 보일지도 모르겠군.”

  “담당 편집자가 알면 거품 물을 소리에요, 그거.”

  “다른 사람이 원고 몇 쪽 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해리 하트에겐 그것 역시 일종의 사실적 진술이었다. 나도 그것에 동의했고, 그렇다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침실은 작가가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를 빼면 고요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세상이 창조되면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소음이었다. 그가 소리를 내고 나는 그걸 듣는 시간이 길어졌다.


  해리 하트가 예고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수면 유도에 효과가 있는 차가 있네. 한 번 마셔볼 텐가?”


  유일하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던 청각이 편안하게 늘어져 있는 뇌를 땅땅 때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 박자 느리게 의식을 회복했다.


  “아… 예. 주시면 감사하죠.”

  “기다리게.”


  나는 몇 분 뒤에 그가 돌아올 때까지 침대 위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내 딴에는 고마움에 비례하는 신의를 표현하고 싶어서 취한 행동이었다. 해리 하트는 말없이 나에게 새로운 컵을 건넸다. 


  문장이 떠오르는 속도가 더뎌진 모양이었다. 그는 느릿하게 자판을 쳤다. 마지막 줄을 친 그는 손을 밑으로 내려놓고 쉬었다. 나는 그의 등 뒤에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차에서는 향을 닮은 맛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며 무미건조한 액체가 내 목구멍을 스치기만 했다. 혼자 서재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다만 내가 피곤한 탓에 그것은 한층 무겁고 둔했다. 


  정말로 느렸다. 나는 생전 처음 직면하는 속도에 맥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해리 하트가 나를 한 번 쳐다본 것 같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꺼져 있는 해리 하트의 노트북이었다. 기어코 굼뜨게 있다가 그의 침대에서 쪽잠을 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진득한 부끄러움을 뒤집어쓰고 있는 얼굴을 차분히 잡아당기면서 나를 혼냈다. 침구 위의 주름을 손으로 싹싹 펴는 일이라도 했다는 걸 나름대로의 위로 거리로 삼았다. 


  “일어났나.”


  해리 하트는 우유를 데우고 있었다. 


  “…어, 어제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


  그가 무척이나 단호하게 내 말을 부정해버려서 나는 얼굴을 숙이려던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겹도록 하얀 창가가 마침 눈에 띄었다. 


  “세상에, 언제 이렇게 눈이 많이 왔대요?”


  어제 걸었던 길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고 마을이 하나의 커다란 눈덩이가 되었다. 나는 입술을 축 늘어뜨렸다. 


  “그 한 대뿐이라는 마을버스는 오늘 아침부터 운행을 안 하겠네요. 어이구.”

  “나 또한 곤란하게 됐군. 식료품을 사러 가야 하는데.”


  그다지 절박함이 담겨 있지는 않은 말투였다. 확실히 집 안에 우유는 다 떨어진 듯했다. 나와 그가 한 컵씩을 나눠 마시자 우유가 동이 났다. 나는 주방에서 일종의 환기구 역할을 하는 창문으로 바깥을 다시 살폈다. 


  “자네, 사냥을 해본 적은 없겠지?”


  나는 하마터면 내 귀를 후빌 뻔했다. 


  “…먹을 게 없다고 잡으러 가시겠다는 거예요?”

  “따라오겠나?”


  그 순간 성능 좋은 카메라를 빌려오지 않았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냉큼 고개를 휘둘러대듯이 끄덕였다. 


  그는 내 무릎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긴 부츠를 내주었다. 척 봐도 나보다 발이 큰 양반이었는데, 어디서 나에게 꼭 맞는 사이즈의 신발을 구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안쪽에 얇게 털이 덧대진 부츠는 열심히 내 발이 동상에 걸릴 위험을 막아주었다. 평범한 운동화를 신고 왔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나는 지평선으로 이루어진 정육면체에 갇힌 듯한 착각에 빠졌다. 땅도 하얬고 하늘에는 아예 색깔이 없었다. 흰 털을 가진 동물만 아니라면 조준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나는 해리 하트를 힐끗 훑었다. 그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의 어깨를 대고 비스듬히 누워 있던 사냥용 장총이 날렵하게 머리를 들었다. 나는 황급히 눈을 굴렸다. 지평선은 여전히 평온했고 수풀이 서로 부대끼는 마찰음도 나지 않았다. 과연 해리 하트도 지상을 겨누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냉정하게 하늘을 쏘았다. 나는 순간 옆에서 칼바람이 분 것은 아닌지 고개를 돌려봐야 했다.


  작가는 새를 잡았다. 매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조류학에 관해서는 손톱만큼도 모르는 내 눈에는 조금 덩치가 큰 새일 뿐이었다. 사실 내 관심은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해리 하트의 사격술에 쏠려 있었다. 목표가 꺾이는 것에 관하여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서늘한 시각을 가졌다는 것부터 그가 훌륭한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었다. 어쩌면 그는 때때로 인간을 인간이 아닌 무엇으로 대해야 하는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경험을 숨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즈음에서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중시한다는 그의 발언을 기억해냈다.  


  “총을 되게 잘 쏘시던데, 사냥 자주 하세요?”

  “아니. 그렇지만 연습은 하지.”

  “사격 연습을요?”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무엇으로 살아있는 걸 놀리는 건 불쾌한 행위야. 적어도 그런 건 지양하고 싶네. 언제나 깨끗한 죽음을 주는 게 옳아.”


  “은퇴한 암살자가 나오는 소설에 등장하면 딱일 말이네요.”


  해리 하트는 잠깐 웃기만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일이 훗날의 특종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장담했다. 가장 깔끔한 살인만을 추구한다는 킬러의 우울한 서사와 철학이 해리 하트의 이름을 달고 등장하면, 나는 그 날로 해리 하트와 이 에그시가 사냥을 나간 것으로부터 이 대작이 꿈틀대기 시작했다며 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죽음 이전에는 누구보다 냉혹한 고문관은 어떠….”


  별안간 내 몸이 휘청거렸다. 눈 속에 묻혀 있던 수풀 같은 것이 발목에 엉켰다. 나는 상체가 기우는 걸 똑똑히 느끼고 있었지만 눈이 나를 받쳐줄 거라고 생각했다. 장애물의 정체도 모르는 와중에 경솔하게 움직였다간 볼썽사나운 꼴을 당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나는 차갑지만 폭신한 감촉이 닿기를 기다렸다.


  놀랍게도 나를 받아준 것은 아주 따뜻했다. 나는 사냥감을 내던지고 날 안기를 택한 해리 하트를 응시했다.


  “잡초에 발이 걸렸나.”


  그는 직접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그 다음에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가 완고한 악력으로 눈을 치워냈고,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휴대용 나이프로 부츠에 엉킨 풀들을 끊어냈다. 해리 하트는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설원의 관리인이었다. 


  “아픈가?”

  “아니요. 걸을 수 있어요.”

  “조심히 따라오게.”


  해리 하트는 사냥감을 챙겨도 비는 손으로 나를 잡았다. 짙은 색깔의 옷을 입고 검은색 총을 든 그는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군청색의 밤을 닮아 있었다. 


  나는 해리 하트의 집으로 돌아갔다. 





  “자네도 내 작품의 단짝이 있다고 생각하나?”

  “예?”


  그 때 나는 한창 현관에 쭈그리고서 부츠에 묻은 눈을 털고 있었다. 해리 하트는 낮엔 진짜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하게 잡아온 새의 깃털을 손질하면서 말했다. 


  “꼭 여기까지 찾아오는 기자들마다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해대더군. 영감을 주는 요정이나 뮤즈가 없냐고 말이야.”


  “이곳의 밤이 하트 씨의 뮤즈가 아닌가요?”


  “세상에는 자네처럼 생각하는 이가 많이 없어. 아쉬운 일이지.”


  “그 양반들은 사실 하트 씨에게 애인이 있냐고 묻고 싶은 거일 걸요? 막상 애인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민망하니까 에둘러 말하는 거죠.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가 많잖아요. 연인과 나눴던 교감이나 추억이 예술 작품의 원천이 된다거나.”


  “그런가. 하지만 거기서 뭐가 민망하다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가볍게 받아쳤다.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하트 씨에게 좋아하거나 사귀는 분이 있냐고 물어보면 저도 화끈거리고, 하트 씨도 당황스럽죠.”

  “제대로 물어보게. 과연 그런지.”


  칼이 날카롭게 새의 피부에 상처를 내는 소리가 해리 하트의 음성 뒤에 이어졌다. 참 신기하게도 그의 손은 말끔한 빛깔을 내고 있었다. 나는 부츠를 현관 깊숙한 곳에 밀어 넣고 일어났다. 나로서는 해리 하트에게 민감할 수 있는 구석을 찌르기에 앞서 모든 예의를 다 갖춘 것이었다. 


  “…하트 씨는 좋아하거나 사귀는 분 있으세요?”


  해리 하트는 가장 강렬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냥을 나간 뒤부터 그가 벗지 않고 있는 안경이 적절한 순간마다 반짝이면서 그의 눈동자를 가렸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오늘의 밤도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릴 전망을 나타내는 중이었다. 



⁂ 



 

 에그시의 머리가 방바닥 끝을 향하여 부지런히 꺾이고 있었다. 해리는 그의 뒷목을 받친 부드러움과는 대비되는 힘으로 에그시를 쓰러뜨렸다. 에그시의 몸이 통째로 침대에 달라붙었다. 에그시의 오른쪽 눈은 거의 감겨 있었다.


  해리는 에그시의 눈꺼풀을 거칠게 잡아 올렸다. 망막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반쯤은 인식하지 못하게 된 눈동자는 그저 반사적으로 앞에 들어온 사물을 파악하고자 동공을 넓혔다. 해리는 자신의 얼굴이 청년의 눈 안에 가득히 담긴 걸 주시하고 있다가 천천히 혀를 내밀었다. 에그시는 미동도 없었다. 해리 하트가 자신의 입술을 핥아먹으면서 귓바퀴를 만지고 있는데도, 그는 전혀 뒤척이지 않고 의식보다 굳건한 반사 신경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기어코 해리 하트의 혀가 에그시의 입 안으로 침범했다. 에그시의 다리가 들렸고 해리의 얼굴이 은밀하게 비틀렸다.


  에그시의 새로운 라운드 티셔츠가 아래로 쭉 늘어나 있었다. 그는 멍하니 해리 하트가 자신의 목덜미를 섭취하는 걸 방관하고 있었다. 게걸스러운 소리가 에그시의 귓구멍 지척에서 주저앉았다. 오직 맛을 보는 용도로만 혀를 놀리고 있던 해리 하트가 처음으로 언어라는 걸 내뱉었다.


  “날 안아봐라, 에그시.”


  해리가 그렇게 명령하기 전까지, 에그시의 양 팔은 기력 없는 하나의 막대기와 다름없었다. 이제 그것은 기력과 의지를 맞바꾼 덩어리가 되었다. 에그시는 자신이 안아야만 하는 대상이 권위를 가졌으며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오른 자라는 것만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에그시는 꾸물꾸물 팔을 움직여서 해리의 등에 둘렀다. 팔을 조작하니 눈은 더욱 흐릿해졌다. 해리 하트는 웃으면서 에그시의 배를 쓸었다. 그가 내려다보는 각도에서 에그시의 입 안은 검고 또한 붉었다.



  나는 눈을 떴다. 몸이 침대를 두 동강 낼 수 있을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이 진정한 불면증이었다. 기계장치로 엮인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너무도 무의미하게 다가왔을 때, 나는 내가 어느새 하얀 밤에 물들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해리 하트를 찾았다. 내가 더 이상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아도, 그는 백야의 안내인으로서 내 곁에 있었다. 






- 배경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썸니아>에서 일부 차용.

- 삽입된 슈베르트의 가곡 모음집 [겨울 나그네]의 1번 곡 제목은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