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Written by. Jade
Viscosity of the World
에그시의 목덜미는 시원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에그시의 목은 뻣뻣하고 빈틈없는 칼라에 억눌려 있었다. 에그시는 자유로워진 목을 뒤쪽으로 한 번 젖힌 다음 앞을 보았다. 해리 하트가 그에게 얼굴과 몸을 맡기고 있었다.
에그시는 오직 살의로 빚어진 붉은 자국이 남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울도 그의 상흔을 뒤집어엎지는 못했다. 세상에서 쉽게 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죽는 일은 물론이고 자신이 날선 고함을 받아내야만 했던 상황들부터 시작하여 아주 작은 호의와 은혜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쉽사리 쓸려가지 않았다. 에그시는 말없이 어깨로 해리를 받아내면서 그가 이빨로 자신을 뜯어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세상의 점성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에그시는 의식적으로 아래쪽에서 해리의 손을 잡았다. 그는 머릿속에서 문법에 맞게 조합한 단어들을 순서대로 발음했다.
“괜찮아요, 해리. 저 안 죽었잖아요.”
해리의 입은 말하지 않았다. 에그시는 또 곰곰이 생각했다.
“큰일 난 거 아니잖아요.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해리의 눈이 대답을 흘렸다. 에그시는 자신의 티셔츠에 늘어진 모양의 웅덩이가 생기는 걸 목격했다. 에그시의 위치가 모호해졌다. 한 팔로 해리의 손과 머리를 동시에 잡을 수 없었으니 만약 그를 꼼꼼하게 안아주려면 에그시는 몸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에그시가 움직이면 해리는 거울과 창문이 버티고 있는 투명하나 매정한 공간에서 눈물을 쏟을 만한 그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었다.
에그시는 난처함을 이기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꺼내버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 잘 우나 봐요, 해리.”
해리의 얼굴이 에그시의 어깨 바깥으로 조금 밀려났다. 에그시는 현장 요원 생활을 겪은 자신의 눈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냐면서 해리가 설교를 통해 민망함을 표출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해리는 에그시의 손을 더 강하게 잡을 뿐이었다.
“…방법을 찾을 거란다.”
“무슨 방법이요?”
“내가 널 해치지 않도록 해주는 방법 말이다.”
해리 하트가 그림자를 치워냈다. 물기 때문에 속눈썹이 서로 붙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해리는 그럭저럭 멀쩡했다. 그는 에그시에게 옷을 망쳐놓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사실 그것은 에그시가 전혀 사과를 받고 싶지 않은 부분 중 하나였다.
에그시는 새 옷을 입고 밴드 두 개를 나란히 목에 붙인 뒤에 깃을 최대한 위로 뺐다. 간밤에 해리가 에그시를 해코지했다는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현관으로 내려간 에그시는 우산 손잡이를 잡고 있는 해리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에그시는 해리의 손을 주시했다. 튀어나온 혈관과 주름진 피부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이 요동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도무지 쉽게 지워지는 것이 없었다.
본부에 도착하고 나서 해리와 에그시는 멀어졌다. 에그시는 왼쪽 복도로 들어가면서 멀린이 해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맙소사. 당신 울고 온 겁니까, 해리? 진심으로요?”
에그시는 뒤를 돌아보았으나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놀랍게도 눈물 역시 노력해야만 닦아내고 지워낼 수 있는 종류에 속했다. 에그시는 몇 번씩 자신의 어깨를 힐끗거리면서 세탁물을 넣어두는 통에 들어간 윗옷의 젖은 부위를 떠올렸다. 해리 하트의 눈물은 드물다. 반면에 해리 하트의 살욕은 흔하다.
에그시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밖에서는 아마 비가 한창 쏟아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해리 하트가 계속 우산을 끼고 다니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에그시는 검은 장우산을 파는 곳을 수소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게와 천을 잘 살펴보고서 아무런 기능도 없는 평범한 우산을 해리의 집 우산꽂이에다 은밀히 넣어야 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고 나서 에그시는 해리 하트가 우산을 갖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에 깔린 전제의 얄팍함을 깨달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얄팍했지만 동시에 끈적거렸다. 에그시가 입술을 씹으면서 머리를 더 세게 털자 옷에서 피어오른 먼지들이 공중을 떠돌았다. 에그시가 떨쳐낸 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먼지들이 전부였다.
멀린에게 물어보니 해리가 본부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하여, 에그시는 양복점까지 나가 해리를 기다렸다. 에그시는 택시가 오는 방향만 보고도 해리가 그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려고 애를 쓰고 있음을 알았다.
“날 기다렸니?”
“그럼요. 같이 가야죠.”
에그시가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내려오려 하자 해리가 우산을 펼쳐 들었다. 우산의 갈색 꼭지는 하늘을 마주하고 있었다. 에그시는 곁눈질로 그것이 자신의 옆구리나 심장을 찌르려 하지는 않는지 빠르게 살폈다. 에그시의 몸짓은 완벽했다.
해리는 어쩐지 평소보다 느릿하게 우산을 접었다. 에그시는 끝내 자신이 우산을 사러 가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다.
습기를 지울 수 있는 태양은 하늘에 부재했다. 해리는 부지런히 에그시가 비를 맞지 않도록 노력했다. 오늘은 자신이 저녁을 준비할 거라는 말도 했다. 에그시는 어째서 다른 레스토랑에 예약을 잡지 않은 것이냐며 물으려다가, 그 말에 담긴 미묘한 잘못을 눈치 채고는 거실에서 해리가 내는 작은 소음들을 감상했다.
칼날과 도마가 자주 부딪혔다. 에그시는 그때마다 시계를 돌렸다. 불이 켜지고 물이 끓는 소리가 오히려 에그시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에그시가 마침내 울상을 지었다.
“에그시?”
“…네, 해리. 갈게요.”
시계 표면에 떠 있던 글자가 사라졌다.
자리를 옮겨서도 에그시의 손은 입술 대신 계속 움직거렸다. 에그시는 식탁 앞에서 해리에게 혹시 실수로라도 기억을 지우는 다트를 맞아본 적이 있는지, 혹은 그러한 경험이라도 갖고 있는 요원들은 없는지 무척이나 물어보고 싶었다. 에그시는 아마 그의 몸에 언제까지고 남아 있을 예법을 발휘하면서 수저를 들고 있는 해리를 바라보았다. 저런 것은 그나마 건설적인 딱지였다.
세상에는 기어코 쓸려나가지 않는 것들이 참으로 다양하게 존재했다.
에그시는 감촉이 아주 좋은 시트가 깔린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의 파자마에는 대개 사랑의 향기가 배어 있어 오묘한 감각을 자아내었고, 침실의 불빛은 아늑했으며 무엇보다 해리 하트가 에그시를 안아주고 있었다. 해리는 의식적으로 에그시의 목 주변에 다가가지 않으면서 그의 손등이라든가 허리를 통하여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끈기를 에그시에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그는 에그시가 몸을 떨고 있다는 걸 지적하지 않았다. 에그시의 머리카락은 비극에 의하여 흔들렸다.
에그시는 기어코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에그시가 발가락까지 떨고 있어도 반응을 내비치는 일을 피해왔던 해리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해리가 멀어지자 에그시는 해리보다 더 당황해했다. 에그시가 해리를 붙잡고 목 뒤쪽을 향해 팔을 계속 잡아당겼다. 에그시는 그렇게 해서라도 해리가 자신을 빠짐없이 어루만질 수 있게 만들려고 애썼다. 다행히도 해리의 팔은 곧잘 에그시에게 끌려왔다.
마지막 그림자를 통과할 즈음에 해리는 자신의 손을 휙 회수하고 에그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에그시가 황망히 해리를 바라보았다.
“…자렴.”
에그시는 그 간단한 단어를 복잡하게 이해했다. 에그시는 그제야 도처에 존재하는 점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해리는 이미 통째로 에그시에게 방을 양보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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