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The Unopened

- Kingsman 2015. 8. 31. 12:47 posted by Jade E. Sauniere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Written by. Jade


The Unopened






  해리는 또 죽어 있었다. 에그시는 울지 않았다.


  해리의 슬픈 시신은 썩지도 않고 오히려 숫자를 불리는 모양이었다. 에그시는 기찻길 옆 덤불에서도 죽은 해리를 보았고, 음료를 사기 위해 들어간 카페의 창문을 통해서도 이마가 빨갛게 뚫린 해리를 보았다. 에그시가 밟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해리의 시신이 나타났다. 해리의 죽음을 똑똑히 목격했던 에그시는 단번에 그것이 어이없이 잔인하기만 한 환상이라는 걸 알고 한 번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았다.


  해리의 시신은 에그시가 자신을 무시하는 게 화가 난다고 시위라도 하듯이 현실감을 키워갔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에그시는 한적함에 묻혀 있는 한 주택의 야외 테이블에 거의 꺾인 채 누워 있는 해리를 본 적이 있었다. 아래쪽에 고인 물웅덩이에는 붉은색이 약간 섞여 있었고, 해리의 옷깃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환상은 비가 오는 날에 시신이 방치되면 어떤 모습을 갖게 되는지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에그시는 고개를 돌렸다.


  에그시가 테이블을 걷어찼다면 환상은 옆으로 구르면서 찌그러졌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에그시는 그걸 알았고, 자신은 해리의 죽음을 보았으나 그의 시신은 육안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테이블과 주택과 해리를 지나갔다.


  에그시는 점차 모든 걸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가 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벽면 한 쪽을 빨갛게 칠하고 신문지를 붙이는 일이 갤러해드가 아닌 해리 하트의 방법론이었으며 자신이 그걸 따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척했다. 심지어는 환상을 경시하느라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다는 현실에게도 어떠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에그시는 침대 위에서 한창 늑장을 부리다가 일어났다.


  그의 집은 필요와 절망으로부터 탄생한 온갖 소홀함들이 살림을 차려 놓은 집합소였다. 에그시는 졸음이 쌓인 눈을 반쯤 뜨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음식을 먹었다. 그는 양치를 한 후에 거실에 와서는 다시 누웠다. 해리의 시신은 거부와 탈진으로 쌓아올린 그 외벽을 뚫지는 않았다. 에그시는 그나마 자신이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환상이라는 것은 정말로 얄팍하며 형체조차 없는 것이었다. 에그시는 임무를 다녀온 뒤 절차적으로 받는 검진을 늘 통과했다. 본부의 의료 장비는 에그시의 머릿속을 평온하다고 인식했다. 아무도 에그시가 해리의 시신을 건너 다니는 걸 알지 못했다. 매번 에그시 앞에 나타나는 해리조차 그걸 모를 게 분명했다.


  안경이 반짝거렸다. 에그시는 멀린의 통신을 받았다. 그는 휘적휘적 자리를 옮겨서 노트북 화면으로 멀린이 보낸 자료를 더 자세히 확인했다. 주소지를 검색하는데 아래에 연관 검색어로 낯선 마을 이름이 나왔다. 에그시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을 눌러보았다. 그곳은 유명 작가가 말년을 보낸 것으로 유명한 일종의 관광지이자 휴양지였다. 에그시는 고즈넉해 보이는 마을의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다. 에그시는 근처에 더 머물고 싶다면서 멀린에게 비행기 표의 날짜를 조정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에 에그시는 공항으로 갔다. 공항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긴 의자들 위에 해리가 누워 있었다. 에그시는 가방을 끌고 다니는 여행객 사이에 끼었다. 사람들이 해리의 시신을 가려주었다. 에그시는 정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나 참,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 다니든가.’ 참으로 엉뚱한 생각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고, 그래서 에그시는 자신의 푸념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에그시는 냄새가 나지 않는 시신을 하나의 이정표처럼 보고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에그시는 건물을 등지고 불편하게 누워 있는 해리의 자세를 고쳐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에그시는 하나의 연출처럼 고인 피를 베고 누워 있는 해리를 넘어서 버스를 탔다. 터미널은 크지 않았고 내부를 돌아다니는 승객들은 열 명쯤 있었다. 그 사람들이 전부 에그시와 같은 버스를 탄 건 아니었다. 에그시는 버스 안에서 다소 쾌적한 공기를 맡았다. 버스가 부르르 떨더니 앞으로 나아갔다.


  90분을 달리니 마을 이름이 달라졌고 새로운 표지판이 등장했다. 정류장에 내린 에그시는 가방을 들고 여관 간판이 달려있는 집들을 몇 차례 돌았다. 에그시는 어렵지 않게 방을 얻었다. 멀린이 제공해준 호의는 비행기 표의 날짜를 바꾸어준 게 다였다. 에그시는 가판대에 비치되어 있는 지도를 들고 혼자서 돌아다녔고, 본부의 자금이 아닌 자신의 돈으로 투숙비를 냈으며 음식들을 사서 먹었다.


  에그시는 성인 남성이 스무 걸음만 투자하면 다 걸을 수 있는 짧고 아담한 다리를 만났다. 그는 훌쩍 다리를 건너서 그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냇가라는 이름은 붙일 수 있을 정도의 폭을 가지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 에그시는 바지를 살짝 걷고 발로 풀들을 치워내면서 물가로 내려갔다. 


  누군가가 소유하지 않기에 도리어 관리되지 않는 물가 근처에는 잡초들이 높게 자라 있었다. 홀씨만큼 작은 곤충이 이파리 위를 기어 다녔고 습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곳곳에서 풍겼다. 에그시는 신발을 갈아 신은 자신의 선택을 기특하게 여기면서 딱딱한 땅까지 도달했다. 물이 깊지 않았는데도 그런대로 맑아서 밑바닥을 볼 수 있었다. 에그시는 녹색 안개처럼 낀 이끼와 가라앉은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물은 끊길 듯 말 듯 흘렀다.


  에그시는 다리를 동굴처럼 끼고 자신의 앞으로 흘러 들어오는 해리를 응시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해리의 옷은 바짝 말라 있었으며 물은 투명하게 맑기만 했다. 환상은 꼭 에그시의 현실로 편입되는 걸 포기한 듯했다. 단 하나 존중된 부분은 해리의 닫힌 눈동자였다. 해리는 눈을 뜨지 않았다. 에그시의 시선과 물의 흐름이 그를 위에서 아래로 밀고 있을 뿐, 해리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


  에그시는 눈을 깜빡였다. 해리의 시신은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아서, 그의 옷자락에 이끼와 나뭇잎이 묻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다리의 둥그런 그림자를 벗어나 에그시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에그시가 갑자기 자신의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뒤늦게 에그시는 압도적인 비현실성을 가진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보는 환상보다 더 슬프고 가혹한 것임을 깨달았다. 허상 속에서도 해리는 눈뜨지 않는다. 해리 하트는 영원히 죽었다. 그래서 에그시는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