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man/해리에그시] On the Primary of Life

- Kingsman 2015. 8. 31. 12:46 posted by Jade E. Sauniere

- Kingsman: The Secret Service, Harry Hart/Eggsy

- 테토님의 팬비드에 헌정.

- Written by. Jade


On the Primary of Life





Stride La Vampa, from the soundtracks of the movie Stocker





  노을이 아름답게 들어오는 강의실에서 지적인 교수와 열정 가득한 학생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삶에 있어서 가장 명백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니?”


  “가장 명백한 것이요?”


  “명백한, 확정적인, 더 나아가서는 본질적인 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흔들리지 않는 무엇을 의미하는 형용사만 붙여준다면 어떠한 단어를 고르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럼 한 번 말해보겠니?”


  “글쎄요. 사람이 사는 인생에 확정된 무언가가 있나요?”


  “훌륭한 대답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더 좋은 답을 할 수 있을 거야.”


  학생이 턱을 잡고 답을 고심했다. 교수는 참을성 있게 학생이 사고를 진전시키는 걸 지켜봐주었다. 학생의 안면에 솔직한 고민의 흔적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교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글쎄요. 정말 모르겠는데요. 하루마다 주어지는 시간을 살다가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 말고 사람이 인생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죠?”


  “네가 방금 말한 그것이 정답이란다, 에그시.”


  교수는 권위와 명성을 가진 뒤에도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총명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 이에게 칭찬을 받은 에그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어떤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죽음이야말로 흔들릴 수 없는 진리야.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 더 독창적인 생각을 해볼까. 무언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기반이 튼튼해야 하지.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굳건한 기반, 혹은 기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혹시 죽음인가요?”


  “그래. 재밌는 사실이지 않니? 나아가서는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지. 모든 것의 종말로 여겨지는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지반이야. 여기서 이성을 가지고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끌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확고 불변한 명제가 있단다.”


  “뭔지 알 것 같아요.”

  “대답해 보렴.”


  “죽음에 기초한 삶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인생이겠군요? 가장 훌륭한 땅에 지어진 건물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에그시의 책상 앞에 걸터앉아 있던 교수는 더 참지 못하고 영특한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자신의 머리를 만져준다는 것은 에그시를 무척이나 기쁘게 했다. 


  “바로 그거다, 에그시.”


  교수의 손이 내려가면서 하나의 절차적인 스침이 발생했다. 에그시는 자신의 뺨을 지나간 그의 피부를 선명하게 느꼈다.


  “이제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알고 있어야 할 전제들을 모두 습득했구나.”


  에그시가 눈을 반짝였다.


  “교수님을 이해하고 싶어요.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교수님은 굉장해요. 언제나 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주시면서, 저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를 상기시켜 주세요.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고급한 지식들을 배우기 위해 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나요. 그래서 더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저는 교수님을 존경해요. 여태까지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언급해 주셨던 책은 전부 읽었어요.”


  교수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석양이 꼭 그를 위해 짜인 옷감 같았다. 에그시는 그 완벽한 우아함에 넋을 잃었다. 교수의 눈동자가 잠깐 장난스러운 빛을 띠더니 에그시를 향해 귀를 가까이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에그시의 심장이 뛰었다.


  “학자의 본분은 의외로 충격적일 수 있어.”


  그는 그렇게 속삭였다. 에그시의 몸에 있는 털들이 모두 곤두섰다.


  “그거야말로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일 거예요.”


  교수가 에그시의 어깨를 톡톡 쳤다.


  “따라오너라.”


  에그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면서 교수를 쫓아갔다. 품위 있게 빛이 바랜 가죽 가방이 흔들리는 모습마저 멋스러웠다. 그를 따라가는 걸음들이 모두 황홀했다. 유연하게 학생들과 교직원들 사이를 빠져나간 교수는 먼저 자신의 승용차 앞에 도달해 에그시를 기다렸다. 에그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타렴.”


  에그시는 자신이 그와 동승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에그시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교수님이 저를 차에 태워주시다니, 굉장해요!”

  “너는 특별한 학생이잖니.”


  에그시가 고개를 퍼뜩 들고 교수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너는 진리를 소유할 자격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감동적인 말이었다. 에그시는 행여나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될까봐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눈이 가려지니까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졌다. 에그시는 눈을 압박하는 동안 차 안에서 나는 각종 오묘한 향기들을 맡았다. 깨끗한 알코올 냄새와 오직 그를 위해 조향된 듯한 향수 냄새, 길이 잘 들은 가죽 냄새도 났다. 에그시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는 아주 매끄럽게 달렸다. 에그시는 굳이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그와 함께하는 여정 자체의 가치도 컸다. 에그시는 그저 자신이 내릴 곳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왜 눈을 감고 있니, 에그시?”


  교수가 물었다. 에그시는 팔을 내린 뒤에도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면 향기에 집중하기 좋아요. 차 안에서 좋은 향이 나요. 그리고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향기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감각을 실감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교수님이 운전을 하시면서 어느 발로 페달을 밟는 지까지 희미하게 느껴져요. 정말 놀라워요.”


  “너는 정말 똑똑한 아이야.”


  그러면서 교수는 에그시의 손을 잡아주었다. 


  차가 멈췄다. 에그시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앞에 있는 서랍을 열어주렴.”


  에그시는 시키는 대로 했다. 몇 장의 손수건과 테이프, 공업용 칼과 권총이 나왔다. 에그시가 조금 놀랐다는 게 눈에 보이자 교수는 에그시의 팔을 쓸어주면서 그를 안정시켰다.


  “먼저 손수건을 손바닥에 붙인 뒤에 총을 나한테 건네주면 된단다. 총에 네 지문이 묻으면 안 되니까. 급하게 굴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단다. 천천히, 차분하게 하도록 해.”


  말을 마치고 교수는 장갑을 꼈다. 에그시는 새파란 색의 손수건을 골라서 오른손을 감은 다음 신중하게 총을 집었다. 교수는 에그시의 손가락에 흐르고 있는 떨림을 목격했지만 절대로 에그시를 나무라지 않았다. 마침내 교수의 검은 손바닥으로 총이 떨어졌다.


  “잘 했다.”


  “…총은 무슨 필요가 있죠?”


  “이것이야말로 학자의 본분을 잊지 않은 자들만이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성물이란다.”


  “총이 성물이라고요?”


  “내가 가르쳐준 진리를 기억해라, 에그시. 결코 부정될 수 없는 단 하나의 것이 무엇이지?” 


  “죽음이요.”


  “그래. 그러니 죽음, 진리로 인간을 인도해주는 건 성스러운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내리렴. 무른 땅을 밟지 않도록 잘 보면서 다니고.”


  에그시가 바짝 긴장했다. 에그시는 움푹 들어간 게 눈에 보이는 땅은 밟지 않았다. 교수는 몇 발자국 걷다가 에그시가 잘 따라오는지를 확인했다. 에그시가 어느 쪽의 땅을 밟아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교수는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에그시는 그의 방향을 따랐다. 


  두 사람이 걷고 있었으나 꼭 한 사람이 걷는 것처럼, 혹은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


  에그시는 눈을 크게 뜨고서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코밖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부자연스러운 빛을 받으며 앉아 있었다. 에그시가 더듬더듬 물었다.


  “교, 교수님.”


  “소수가 점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두려운 법이란다. 왜인 줄 아니?” 


  그는 태연하게 총을 쥐고 있는 팔을 들어올렸다.


  “역사적으로, 또 진화적으로 그것이 보통 사람들과 너무나 유리되어 있었기 때문이야.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건 두려움이 아니야. 일종의 낯설음이지. 마치 처음 보는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눈앞에 두고서 쉽게 포크를 잡을 수 없을 때 맛보는 그런 기분과 같단다. 그렇지만 단 한 번의 경험만 있으면 누구든 계몽될 수 있어.”


  그가 빈 팔을 까딱했다. 에그시가 떨면서 그의 등 뒤에 섰다. 


  “잘 봐라, 에그시. 이것은 특권적인 충격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백색이 아닌 다른 빛을 띠고 있는 공간에 피가 튀기는 장면은 몹시도 전위적이었다. 에그시는 딱 한 번의 총격으로 사망해 옆으로 쓰러진 시신을 보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교수는 입김으로 총구를 식히고 있었다.


  “에그시.”

  “이건….”

  “숨김없이 말해보렴.”


  “이것은 교수님이 교수님이기에 정당한 것인가요?” 


  “그렇단다. 가장 위대한 배움은 살인으로부터 나오니까.”


  그는 이번엔 앞장서서 걷지 않았다. 교수는 에그시의 어깨를 끌어안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멈춰 있는 차에 거의 다 도착할 때 즈음 그가 열쇠를 건네면서 말했다.


  “한 번 네가 운전해 보거라. 그리고 이제 너는 내 이름을 불러도 좋아.”

  “…어떻게요? 하트 교수님이라고요?”

  “아니. 해리라고 불러도 좋다는 뜻이란다.”


  에그시는 자신이 훌륭한 이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마력에 지배당했다. 에그시가 천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딱딱한 땅을 달리는 차는 타이어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그 지역을 빠져나갔다.


  “다른 곳에서는 교수님을 해리…라고 부르면 안 되겠죠.”

  “아직은 안타깝게도 너와 나 사이를 ‘하트’라는 것이 가로막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는 많이 배운 이답게 가끔 현학적인 어투를 사용했다. 에그시는 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네가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없어질 거니까.”


  해리 하트가 그렇게 설명하니 에그시는 더 의문을 갖지 않았다.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이 금세 희미해졌다. 두 사람은 다시 진리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그시의 머릿속에서 죽음은 갈수록 경이로운 것이 되어갔다. 그것은 전복될 수 없는 완전함이었으며, 그 어떠한 침입도 허용하지 않는 요새였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한 유일의 진실이었다. 때로는 지성의 도움을 받아 그것은 아름다워지기도 했다. 해리 하트는 꼭 눈부시게 석양이 지는 오후에 에그시를 강의실로 불러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받아냈다. 무작위적인 건 하나도 없었다. 다 그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견고하기 때문이었다.  


  노을은 매일 눈이 부셨다. 에그시는 갈수록 진정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곳은 아주 다양한 색채를 가진 곳이었다.


  에그시는 두 발짝 정도 물러나서 해리 하트가 누군가의 목에 둘러진 밧줄을 힘 있게 당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 남는 줄을 다른 곳에 묶어서 대상을 완벽하게 속박했다. 다음에 그는 칼날을 꺼내 테이프를 넉넉히 잘랐다. 날카로운 물건을 잡는 손길이 분필을 집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에그시는 해리 하트가 칠판에 필기를 하는 걸 아주 좋아했다.


  해리 하트가 물러났다. 그는 에그시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에그시에게 무대를 넘겼다. 에그시는 해리 하트가 사용하는 총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무서워요.”

  “그 표현이 아니지, 에그시?”


  에그시가 머리를 털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지금 낯설어 하고 있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에게 한 번도 허락된 적이 없는 거니까요.”


  “그래. 하지만 이제 너에게도 자격이 있어.”


  “맞아요.”


  “궁극적인 배움을 원하는 자는 진리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네.”


  해리 하트가 친절하게 팔을 뻗어서 에그시에게 방향을 지시했다. 에그시의 몸이 자연스럽게 그가 원하는 곳으로 기울었다. 


  “방아쇠를 당겨라.”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영원한 진리가 공유됨을 선언하는 절차는 아주 짧았다. 에그시가 스르르 총을 내렸고 해리가 에그시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잘 했다, 내 아들.”


  둘은 진리 그 이상의 무엇을 음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