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Betraying the History
건물이 통째로 경련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움직이는 듯한 벽에 갇힌 레너드 맥코이는 무거운 가구들을 잡으면서 휘청거리는 몸을 다잡았다. 그의 손이 허공을 내저으면서 의자가 빙글 돌았고, 등받이에 걸려 있던 하얀 상의가 밑으로 조금 처졌다. 맥코이는 끈질긴 몸부림 끝에 상의를 붙잡았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통신기를 찾아낸 그는 책상의 모서리를 아슬아슬하게 움켜쥔 것을 신호 삼아 앞으로 튀어나갔다. 맥코이가 나가고 나서 땅의 포효를 가장하는 강렬한 진동을 이기지 못한 유리창이 터졌다.
단단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복도는 그나마 안정적이었다. 맥코이는 환상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의 다리가 사지에 남아 있는 모든 떨림을 흡수한 듯 바들거렸다. 맥코이는 이를 악물고 통신기의 플립을 열었다. 연결음이 공허했다.
—망할!
맥코이의 외침은 진동에 섞여 아련하게 흩어졌다. 맥코이는 달리면서 몇 번이고 플립을 젖혔다 닫으면서 누군가에게 닿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아무도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맥코이는 신경질을 내면서 얕은 바지 주머니에 통신기를 구겨 넣었다. 이제 누군가 맥코이에게 전화를 걸더라도 그가 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맥코이는 바깥의 울림과 멀어졌다. 그러나 그곳은 그 울림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그가 밟는 바닥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음에도 맥코이는 몇 번이나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가 자신의 온 힘을 양 손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맥코이는 유난히도 무언가를 짚고, 누르고 잡으려고 했다. 그 노력은 결국 맥코이를 지하의 자료 보관실로 안내했다. 소수의 신뢰와 다수의 불신이 힘을 다투며 쌓아 올린 공고한 창고였다. 맥코이는 넘어질 듯한 자세로 입구를 파고들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자신이 어쩌면 스타플릿의 영웅 중 한 명으로서 사람들 입에 회자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매우 짜증나고 무거운 생각이었다.
내부의 서랍장들을 모조리 헤집어 놓을 기세로 움직이던 맥코이는 파일 하나를 손에 쥐고 비로소 안도했다. 김빠진 한숨이 플라스틱판으로 보호된 파일의 앞면에 순간의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맥코이의 행동이 낳은 결과 그 어디에도 찰칵 소리를 생성할 만한 여지는 없었다.
맥코이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페이저건이 출력 모드를 변경하면서 낸 소음은 맥코이의 귓가에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광선을 튕겨내는 기능 따위는 전혀 없는 평범한 파일이 맥코이의 가슴을 가렸다. 그 무엇을 뚫고 나오든지 자신의 피부에는 흔적을 묻히지 않는 치밀한 범죄자가 총과 몸으로 단 하나의 출입구를 막고 있었다.
맥코이는 페이저건의 상단을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살렸고 치료했고 가뒀으며, 또 다시 살리고 치료하다 결국엔 풀어준 자신의 환자를 보고 있었다. 파일이 천천히 그의 다리 사이를 향해 미끄러졌다. 말을 모르는 자는 없었지만 모두가 침묵했다.
“…결국 넌 나를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
의사는 때로 자신의 환자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그러한 상황을 부르는 몇 가지 흔한 이유가 있었다. 의사의 조치가 너무 늦었거나, 의사의 조치가 잘못되어 화를 불렀거나, 의사가 취할 수 있는 조치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때 생명을 살리는 이들은 좌절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씁쓸한 것은 마지막이다. 의사와 환자 모두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치료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축적된 기술이 환자를 치유하는 데 부족한 데에 숨어 있는 것은 오직 역사의 불찰이다.
맥코이는 아직 인간이 강화인간을 완벽하게 보듬을 수 있는 기술은 발명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했다. 페이저건의 눈빛이 순식간에 맥코이의 시력을 빼앗았다. 총에 맞으면서 맥코이는 안고 있던 파일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칸은 총을 내리고 레너드 맥코이를 향해 걸었다. 맥코이는 칸이 인간들에게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수준의 윤리 의식과 사명감을 보여준 적은 있었지만 그가 강화인간이듯이 레너드 맥코이는 인간이었다. 자신은 얼마든지 튕겨낼 수 있는 불빛 한 번에 기울어진 몸을 칸은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칸은 맥코이가 찾아낸 파일을 조용히 회수했다. 맥코이가 그를 연구하면서 세심하게 다져올렸고, 지금은 강화인간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구성하는 가장 굳건한 기반이 된 정보들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자연의 재앙을 흉내 내고 있는 일군의 무리들이 그것을 원하는 중이었다. 칸은 파일에서 종이뭉치만을 꺼낸 뒤 일어섰다.
그는 무뚝뚝하게 옆으로 걸어가 은색의 투박한 기계 하나를 작동시켰다. 기계는 싸구려 레이저 프린터가 장치를 굴릴 때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칸은 기계의 틈 안으로 종이들을 집어넣었다. 분쇄기는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뒤에야 겨우 정립된 강화인간과 보통 사람 사이의 다리를 끊어놓았다. 칸은 그것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레너드 맥코이가 남들의 요구에 밀려 부랴부랴 만든 녹슨 철근이었다. 칸은 그 위험천만한 이음새를 없애고 더 진정한 것을 남겨두기로 했다.
분쇄가 끝났다. 칸은 이제 반쯤 아래로 기울어진 레너드 맥코이 옆에 총을 내려놓았다. 페이저건의 출력을 나타내는 작은 공간에는 한 줌의 붉은색도 없었다.
레너드 맥코이조차도 칸이 300년의 역사를 배신한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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