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Relativity
시간을 보내는 행위 자체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가진 괴로움이란 단순히 할 일이 없어서 그저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걸 바라만 보고 있는 무의미한 여유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비롯한 온 세상 사람들의 시간이 똑같이 흘러간다는 걸 매우 언짢아했다. 그는 필멸자의 시간이 불멸자인 자신의 것과 같은 속력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필멸자라는 건 매우 특수한, 그러니까 자연을 빗대어 말하자면 몇 백 년 동안 그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던 까만 백조와 같은 거라서 필멸자 주변엔 당연히 불멸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흔하디흔한 필멸자들 중에서 불멸자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불멸자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몇몇 필멸자들은 사랑이 영원하다는 주문과도 같은 명제를 믿는다. 불멸자에겐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불멸자는 처음에 자신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했다. 특수한 존재는 외롭다.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남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닌, 남들과 같은 점이 하나도 없는 너무도 차별적인 특징이 되어버렸을 때 불사(不死)는 그저 외로움을 끌고 오는 짐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불멸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필멸자가 자연법칙에 따른 이별을 고할 때, 그를 쫓아갈 수 있는 갖은 술수를 시험해보았다. 안타깝게도 성과가 나오진 않았다.
불멸자는 이번에 반대로 필멸자를 죽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그 중에서도 불멸자는 저온 동결을 일종의 필승법으로 여겼다. 그러나 필멸자를 동결에서 깨우는 순간 그는 불멸자의 위치에서 멀어져버리는데, 그렇다고 얼어붙은 이를 사랑할 수 있는 묘책은 존재할 수가 없었으므로 불멸자는 이 시도를 폐기해야만 했다.
불멸자는 의도적으로 필멸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사랑할 만한 가치를 가진 자가 그것보다 더 희귀한 가치를 가지지 못했음을 탓할 수도 없었다. 불멸자는 자신의 절대적인 특수성에 분노했다.
화가 난 불멸자의 애정은 필멸자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그것은 적어도 한 쪽이 깰 수 없는 잠을 자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나았다. 불멸자는 아주 편안한 상태로 10년 동안 필멸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 시간의 간격은 좁혀졌다. 그리고 필멸자 역시 시간을 보내는 일을 힘들어하게 되었다.
2 o'clock
레너드 맥코이는 현기증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땅은 극단적인 것만 선호해서, 가벼운 현기증 따위는 가뿐히 무시할 정도로 무신경했다.
그 땅에서 레너드 맥코이가 현기증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어지러움이 그리워서 흔들리는 바닷물 위로 몸을 맡기기엔 성벽 같은 파도에 묻혀 꼼짝없이 익사할 것이었다.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낮았다. 그 땅은 오직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였다. 혼자서 빙글빙글 도는 행동은 너무나 멍청해보였다. 레너드 맥코이는 입술만 비죽였다.
냉혹한 중력이 시간의 발목을 꾹꾹 짓누르고 있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오래 전에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하려 애썼다.
그는 잠깐 불멸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다.
9 o'clock
칸 누니엔 싱은 방으로 돌아와서 두 번째 시계의 바늘을 조정했다. 아무리 느리게 맞춰놔도 바늘은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가듯 조금씩 빨리 움직였다. 칸은 시곗바늘을 힘차게 뒤로 돌렸다.
그는 사랑하는 필멸자를 시간이 게을러지는 곳으로 보내고 나서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것은 필멸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 그가 감당해야 하는 일종의 조건 같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만큼 그의 깊은 습관으로 자리 잡은 행위이기도 했다. 칸은 자신이 좀 더 오래 죽음의 가능성을 계산해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확인한 다음, 정확히 세 시간 뒤에 자신의 필멸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불멸자는 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 자체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3 o'clock
불멸자는 왜 자신이 사랑하는 이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필멸자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었었을까?
시간이 지연되는 구렁텅이 속에 빠진 필멸자는 속절없이 내려앉은 우주선을 바라보았다. 아직 엔진이 다 식지도 않았을 저 셔틀을 다시 하늘 끝까지 띄워 올린다고 해도 그동안 필멸자의 필멸자들은 놀라운 속도로 죽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불멸자와 강제로 시간을 공유하게 된 필멸자는 이토록 비참했다.
필멸자에게 남은 것은 그가 어떻게 조종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중력과, 불멸자보다는 죽음을 더 잘 안다는 필멸자의 본질적 위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필멸자는 그 두 가지를 붙잡고 매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필멸자는 중력으로 불멸자를 죽음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구멍을 만들게 되었다.
4 o'clock
[내 시간이 느리게 가도, 내가 언제 죽을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당신이야말로 시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여기엔 한 번도 온 적이 없네. 영상은 지겹다.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는 내 시간마저도 아까워서 애써 잡아주려는 작자가 왜 정작 나를 만나러 찾아오지 않는 거야?]
12 o'clock
불멸자와 필멸자는 모두 그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았고 또 죽기를 원해서 불멸자와 필멸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근원을 쫓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게 너무 당연한 사계절과 비슷하다.
매번 겨울이 오는 것을 원망하는 일에는 아무런 영양가도 없다. 사실 불멸자라면 어떤 행동을 취해도 상관없겠지만, 일 년마다 찾아오는 겨울을 탓하고 앉아 있기에는 시간도 생명도 짧은 필멸자들은 망설임 없이 겨울을 대비하는 일을 선택한다.
그 누구도 필멸자의 그러한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불멸자 또한 그러했던 것 같다.
5 o'clock
하늘이 더 좁아진 것 같았다. 중력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가? 레너드 맥코이는 쉽게 확신하지 못했다. 아주 확실하게 다가오는 느낌은 몸 어느 구석이 계속 삐걱거려서 쉽사리 휘청거리고 어지러움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이마를 손바닥 아래로 누르면서 머리를 휘휘 털었다. 머리가 흔들리는 바람에 어지러움은 더 커졌다.
레너드 맥코이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옛날보다 훨씬 높게 뻗은 건물 때문에 상대적으로 좁아보였다. 레너드 맥코이가 본 것은 실제였다. 몇 십 년 전부터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던 모습이었다.
문득 변화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것만 같던 행성의 표면이 떠올랐다. 레너드 맥코이는 발로 모래먼지가 나게 땅바닥을 긁었다. 바닥에 그의 신발 자국이 남았다. 필멸자의 행성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변했다.
레너드 맥코이는 책 한 권을 쥔 팔을 흔들어대면서 길을 걸었다. 그가 들고 있는 책과 비슷하게 생긴 네모난 것이 조금씩 보였다. 레너드 맥코이는 자신이 알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엔 감히 불멸자 행세를 한 사람들이 없다. 필멸자의 속도대로 흘러간 시간은 레너드 맥코이에게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했다.
Fundamental ideas and problems of the theory of relativity
레너드 맥코이는 죽은 지 약 500년이나 되어버린 물리학자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6 o'c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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