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셜록존] The Cruel Judgement

- BBC Sherlock 2013. 9. 18. 16:36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For the request

- Written by. Jade


The Cruel Judgement




  띵동. 존, 오늘은 마음이 바뀌었나? 알람을 삭제해도 될 만큼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수신음에 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액정을 끈 다음 묵묵히 외출 준비에 힘썼다. 언제부턴가 그의 핸드폰 상단에는 편지봉투 모양의 아이콘이 자리를 틀고 지워질 줄을 몰랐다.


  존은 요새 걷기 운동에 한참 몰두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다리를 지속적으로 놀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팡이는 오래 전에 그 쓸모를 다했고, 그가 진심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나날들도 역할을 벗어 던졌다. 그럼에도 존은 그 시간들에 자신이 바래지는 않았음을 걷는 행동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존이 플랫을 벗어났다.


  이제 베이커 가 주변은 훤히 꿰뚫게 되었으므로 존은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부지런히 걸으면서 이따금씩 눈으로 사람들이나 행인들을 힐끗했다. 도중에 존은 역사적인 양식을 띠면서도 쇼윈도를 첨단 디스플레이로 채운 특이한 건물을 발견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금색으로 똑같은 단어가 빛나고 있었고, 디지털로 복제된 유화들이라든가 예술 작품이 환한 색을 발했다. 위에는 고급스러운 붉은 깃발이 살짝 펄럭였다. 존은 의아함을 담은 눈동자로 건물을 훑다가 입구 즈음에서 그가 아는 얼굴을 만났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레스트레이드가 존이 이태까지 본 복장들 중에서 손꼽히게 멋을 낸 양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비슷하게 깔끔한 수트를 입은 남자들이 있었는데 존이 보기에 경찰은 아닌 듯했다.


  “요청이 있어서 경비를 보강해 주는 걸세.”


  “여기가 뭐하는 곳인데요?”


  “런던 크리스티 옥션하우스. 들어본 적 없나?”


  존이 눈썹을 굽히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도리질했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지야. 오늘은 특히 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나왔다고 해서 그 쪽 동네에서는 꽤나 떠들썩했던 모양이더군. 아마 신문에도 나왔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존은 근래 신문을 드문드문 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플랫메이트를 진정시키려고 이것저것 정보를 던져 주고자 열심히도 들여다봤던 신문이었다. 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근데 그런 그림들은 다 미술관에 있을 것 같은데, 경매에 나왔다고요?”


  레스트레이드는 자신은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존이 시선을 들어 건물을 살폈다. 마치 하나의 저택처럼 우뚝 선 옥션하우스는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내부를 허락하지 않는 콧대 높은 기품이 흘렀다. 예술에 대해 식견이 넓은 건 아니었지만, 이쯤 되면 인간적인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혹시 들어가도 됩니까?”


  넌지시 다가오는 존의 물음에 레스트레이드가 눈동자를 허공에 굴렸다. 이내 그가 존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설마 안에서 뭘 훔칠 의향은 없겠지?”


  “그럼요.”


  “총 가지고 있나? 안에 무기는 갖고 들어갈 수 없네.”


  존이 제 품을 뒤적거리다 총이 없다는 뜻을 표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레스트레이드가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며 고갯짓했고 존이 입꼬리를 당기는 미소로 화답했다.


 



  부풀리지 않은 꽃장식과 미술품을 취급한다는 장소라는 걸 드러내기라도 하듯 몇 점의 크지 않은 조각상들이 로비를 군데군데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양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재킷은 걸친 모습이었다. 존은 셔츠 차림으로 나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중앙 계단을 올랐다.


  마련되어 있던 좌석은 꽉 찼고 사람들이 빼곡하게 밀집해 있었다. 존은 사람들이 미술품 경매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어렵게 발을 내뻗었다. 다들 무언가를 단단히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존은 그들에게 차마 묻지는 못하고, 곧 중대한 발언을 할 것 같은 사회자를 주목했다. 그의 옆으로 와인색 천이 덮힌 네모난 물체가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품목입니다.”


  사회자가 천을 걷자 곳곳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존이 저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내밀면서 그림을 보려고 애썼다.


  “이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반 고흐의 세 번째 ‘별이 빛나는 밤에’입니다.”


  몸을 뒤틀고 아래에서는 발을 연신 비벼댄 끝에 존은 그림을 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지점을 확보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림을 꼼꼼히 훑다가 눈썹을 찡그렸다. 사회자가 내정가를 불렀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존이 중얼거렸다.


  “..이거 아무리 봐도 가짜 같은데.”


  목소리가 크지 않았음에도 모두의 시선이 존에게 쏠린 것은 그 때였다.


 



  “셜록 홈즈의 뒤를 이을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전혀 아닙니다. 전 셜록 홈즈 따위는 절대로 될 생각 없어요.”


  “그런데 어쩌자고 경매장에서, 그것도 그 날 가장 주목받는 작품을 가짜라고 말했나? 자네가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칠 줄 몰랐어.”


  “거기 분위기 흐리려고 한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존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 눈에는 그림이 가짜라는 증거가 보였습니다. 캔버스에 똑똑히 있는 걸요.”


  그는 꽤나 단호한 어투로 발언을 내뱉고 있었고, 레스트레이드는 하마터면 툭 웃음을 흘리려다가 표정을 다잡았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아나?”


  “예?”


  “셜록 홈즈가 힉센 박물관에서 베르메르 그림이 가짜라는 걸 밝혀냈을 때하고 묘하게 상황이 겹치는 것 같아서 말이지.”


  존이 입을 동그랗게 벌리면서 멍하게 대꾸했다.


  “..오, 정말 그렇군요.”



 


  레스트레이드의 말처럼 존은 이번만큼은 누군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의견으로서 셜록 홈즈가 떠오를 만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아직도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인 존 왓슨과 그의 전 플랫메이트를 기억하는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동시다발적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불명예를 입었던 셜록 홈즈는 이미 화려하게 부활한 바 있으므로 기자들은 아예 존의 이름을 헤드라인에 내걸었다. 가령,


  “...존 왓슨의 귀환? 맙소사.”


  우연찮게 신문을 집어 들었던 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부제는 한 술 더 떠서 ‘탐정의 충실한 동료, 스스로 탐정의 길을 걷다’ 정도의 넌덜머리나는 어구였다. 그의 플랫을 방문한 레스트레이드가 문가에 서서 덧붙였다.


  “자네의 활약이 의외로울 정도로 대단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거야.”


  “아니, 그렇다고 내가 무슨 탐정 노릇을..”


  “어느 누구도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별들에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네. 원래 그렇게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가?”


  “그거야 원래는...”


  존이 말꼬리를 흐렸다. 힉센 박물관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로 존은 알게 모르게 천문학 서적들을 읽어왔다. 태양계를 업신여기는 셜록에게 부족한 정보를 자신이 대신 떠안는다면 언젠간 그것이 도움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셜록 홈즈가 한 번 죽은 이후로 존은 더욱 우주에 빠져들었다.


  “내가 그 망할 인간의 천문학적 지식까지 감탄해 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끝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만 존이 소리 나게 숨을 내쉬었다. 레스트레이드가 눈을 크게 떴다.


  “아직도 둘이 화해 안 했나?”


  “제가 왜요? 절대 안 합니다.”


  존이 공연히 거슬리는 표제를 드러내 놓고 있는 신문을 뒤집었다.


  “어쨌든 자네가 이번에 법정에서 수고를 좀 해줘야 할 걸세. 증언을 해야 하니까. 의도야 어떻든 이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점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거야.”


  레스트레이드가 조금씩 그의 플랫에서 물러났다.


  “이틀 뒤, 오전 10시네.”


  레스트레이드가 문을 닫자마자 존이 험한 말을 중얼거렸다. 존이 탁자에 있던 핸드폰을 끌어당겼다. 한참 전에 두 자릿수를 돌파해 50을 넘긴 셜록 홈즈의 메시지가 숫자의 형태로 축약되어 반짝였다. 어쩔 수 없이 그가 떠올랐다. 사실 자주 그랬다. 존은 핸드폰을 아예 뒤집어버리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 그림이 가짜라는 건.. 사실 명백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촘촘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지는 않습니다만, 하늘 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일정한 띠의 형태로 묶을 수 있게 별이 배치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건 은하수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학계에서 HE 1543-0910이라는 번호를 붙인 걸로 압니다. 가장 오래된 은하수로 추정되고 있는 그것이 왜 결정적인 증거인가 하면..”


  굳이 극적인 효과를 꾀한 건 아니었으나, 존이 잠시 침을 삼키면서 말을 끊은 덕분에 배심원을 위시한 법정에 있는 사람들이 한층 더 존 왓슨에게 집중했다.


  “그게 완벽히 관측된 게 2000년대이기 때문입니다. 터무니없죠.”


  검사의 얼굴에 만족스럽다는 기색이 완연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왓슨 씨.”


  “저, 검사님?”


  존이 자신을 부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검사가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일단 가짜라는 사실이 판명되었을 뿐 범죄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죠?”


  “..아직은 그렇습니다만.”


  “그럼 제가 좀, 한 마디를 해도 되겠습니까? 개인적인 의견이긴 합니다만 기왕이면 여기서 말했으면 좋겠거든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검사가 승낙의 의사를 보였다. 존이 증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준비된 증거물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흩어져 있는 별들이 그의 시선에서 하나로 뭉쳤다. 셜록 홈즈도 읽어낼 수 있는 허점이었을 것이었다. 그는 어떤 이들보다 똑똑해서 사소한 것들을 모아 거대하고 놀라운 이론을 제련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존은 그것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셜록이 그 잘난 머리를 가지고도 단 한 가지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화가 났다.


  “범인을 만약 잡으시면요, 그런 망할 범죄자들은 어디에 확 가둬야 합니다. 냉장고에는 사람 머리통이랑 엄지손가락밖에 없는 그런 방구석 말이에요. 담배, 약, 니코틴 패치 같은 건 꿈도 못 꿀 곳에다가 신문도 넣어주지 말고, 인터넷도 끊어버리고! 귀찮다고 쓰지도 않는 노트북 따위는 부숴버려야 해요. 빌어먹을 사기꾼들은 그런 거지같은 곳에서 혼쭐이 나야 합니다. 아, 기왕이면 바닥에 벌레나 개미도 풀어 놓으면 좋겠네요. 이 정도는 되어야 범죄자들이 보통 반성을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존은 꼭 자신의 플랫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혹은 누군가를 콕 겨냥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검사가 얼이 빠져서는 존에게 눈동자를 고정했다. 존이 그에 맞춰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증언 마쳐도 되겠습니까?”


 



  존 왓슨은 다음날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기자들의 정보통은 존 왓슨이 증인석에서 정신 없이 늘어놓은 말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낼 정도로 유능하면서도 집착적이었다. 그는 갈수록 소설이나 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변해가는 헤드라인을 손수 내팽겨 치면서 머리를 짚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자신이 잘못했다면서, 당분간 베이커 가에 그림자도 비치지 않겠다고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띵동, 핸드폰이 소리 냈다. 순간 발끈한 존은 자신이 일부러 미확인 상태로 남겨 두었던 메시지함을 클릭해버렸다. 상단에 셜록 홈즈가 방금 보낸 문자가 떠올라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의미 없는 음성을 흘리는 모습이 연상될 것 같은, 그런 길고 두서없는 텍스트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이번에도 간결했다.


  내가 자네가 한 말 다 들어주면, 다시 돌아가게 해 줄 건가?


  셜록 역시 오늘 영국 구석구석으로 배달된 신문 중 하나를 읽은 게 분명했다.. 존이 거친 손길로 두 글자를 눌렀다. 아니.


  셜록 홈즈가 반강제적으로 베이커 가에 출입하지 못하게 된 이후로 존의 플랫은 전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그래서 존은 바로 문 밖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수신음을 들을 수 있었다. 존이 설마, 하면서 재빨리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아직 제 죗값이 무거운 걸 알고 있어 셜록 홈즈는 조금 더 때를 기다릴 모양이었다.



2013.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