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셜록존] The Truth is Enlightening

- BBC Sherlock 2016. 6. 23. 15:19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The Truth is Enlightening




  “…아직도 안 갔나? 볼일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셜록 홈즈가 멋들어지게 구부러진 파이프를 입에서 빼며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셜록 홈즈가 입술을 살짝 비죽였다.


  “약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지.”

  “그 말이 약을 해야만 나를 만날 수 있는 걸로 착각하는 뜻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홈즈는 날카롭게 말하면서 셜록을 곁눈질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지.”


  홈즈는 아무에게나 의자에 앉을 걸 권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그도 결국엔 셜록 홈즈이기 때문이었다. 셜록은 자신의 플랫에 있는 것보다 화려하고 크기도 좀 더 큰 것 같은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나한테서 뭘 ‘찾고’ 싶은 건지 말해봐.”


  셜록은 그 표현이 반만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더 올바르게 말하자면 확인하고 싶은 거야.”

  “어쨌든 당장 네 자신에게는 희미하게 느껴지거나, 혹은 아예 없다고 느껴지는 거겠지. 좋아, 불편한 얘기를 먼저 하는 게 편한가?”

  “얼마든지.”


  셜록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홈즈는 그를 힐끗 보았다가 파이프를 완전히 원형 탁자에 내려놓았다. 


  “너는 절대로 모리아티를 지워낼 수 없어.”


  셜록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셜록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알고 있었고, 홈즈는 그러한 셜록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앎과 행동은 구별된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아는 것을 몸과 목소리에 불어넣어야 하는 순간이 꽤나 아주 많다는 것을 셜록 홈즈는 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자기 자신의 목숨으로 너를 죽일 수 있는 자는 모리아티밖에 없을 거야. 그는 최초이자 최후의 충격이고 그렇기 때문에 강력하지. 모리어티는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목숨을 소비했지만, 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그는 너를 압도했지.”


  홈즈의 말은 일종의 진술이었고 서술이었다. 셜록은 조용히 그것을 들었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너를 공략해. 어떤 때는 네 스스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던지기도 하고, 그 자신이 일찌감치 뿌려놓은 유산으로 너의 뒤통수를 치지. 그는 영원히 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여차하면 직접적으로 네 의식에서 폭죽을 터뜨려. 그는 그렇게 해서 많이 이겨봤거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겨볼 작정이지. 너를 상대로.”


  셜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본 홈즈가 갑자기 어조를 바꾸었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해, 셜록 홈즈. 입 밖으로 말해봐.”


  “…모리어티는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어째서?”


  “그는 나 혼자 해결하고 없앨 수 없는 무엇이니까.”


  “어째서?”


  “내가 컴퓨터라면, 그는 형태를 바꾸면서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유영하는 바이러스와 같으니까.” 


  “그리고?”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상대하지 못해.”


  19세기의 셜록 홈즈는 21세기의 디지털 언어를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그는 셜록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말을 하면서 불필요하게 입술을 씹고 단어를 신경질적으로 끊어놓는 걸 지적하지 않았다. 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셜록이 눈을 떴다.


  “꼭 마이크로프트처럼 말하는군.”

  “나는 일부러 셜록 홈즈로서 너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마이크로프트는 너와 동등하지 않으니까.”


  셜록은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홈즈가 잠시 말을 쉬었다가 물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더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


  셜록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보다 똑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의 일면을 표상하는 데 이용당하고 만다는 것은 셜록 홈즈가 외면하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홈즈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존 왓슨도 어떤 의미에서는 모리아티와 비슷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져야 해.”


  셜록이 눈썹을 찡그렸다.


  “존을 왜 그런 놈이랑 비교하지?”


  “네 자신이 그 두 사람을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비슷한 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잖아.”


  “내가 존은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그걸 최대한 피하려고 하지. 존은 너에게 도움을 주지만 너는 존에게 피해를 주니까.”


  홈즈의 목소리는 너무도 따끔했다.  


  “내가 그 두 사람을 함께 언급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그들은 네가 외면하거나 무시한다고 해서 무력해지는 존재들이 아니야. 생각해 봐. 누가 너 같은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고 옆에 있어주려고 하지? 그런 사람은 딱 두 종류야. 모리어티처럼 너를 무너뜨리려 하는 자들, 그리고 존 왓슨처럼 너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자들. 그들은 너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너보다 강력해.”


  셜록은 이번엔 눈을 질끈 감았다. 홈즈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홈즈는 모리어티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보다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은 태도로 셜록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가 너를 오만함으로부터 구했지?”


  “…존 왓슨.”


  “너를 죽였지만 동시에 살린 사람이 누구지?”


  “존 왓슨.”


  “진정으로 모리아티를 이긴 게 누구지?”


  셜록은 맹세코 그 대답을 회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홈즈가 그보다 더 답변을 빨리 말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답은 셜록 홈즈로부터 나왔다. 


  “존 왓슨이지.”


  홈즈가 다시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셜록이 반쯤 눈을 떴다. 


  “진실이 언제나 따분한 건 아니야, 셜록. 진실은 때론 우리를 일깨워.”


  진실이 따분하다는 건 셜록 홈즈 안의 모리아티가 했던 말이었다. 셜록은 거기에 완벽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진실의 가치는 그것 자체가 아닌,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홈즈의 발언이 거짓인 건 아니었다. 셜록 홈즈는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한 마디를 직접 소리 내었다.


  “그게 진실의 본래 목적이니까.”


  셜록은 완벽하게 눈을 떴다. 천천히 커지고 넓어지는 시선에서 그는 한결 차분해진 셜록 홈즈의 표정을 보았다.


  공기가 부드럽게 뒤로 쏠렸다가 앞으로 고르게 퍼지는 걸 느끼며 셜록은 눈을 깜빡거렸다. 차량은 멈춰 있었고 존이 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존이 이리저리 셜록의 동공을 살폈다.


  “정말 병원 안 갈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셜록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빨간색 간판이 달린 작은 식당과 철문, 색이 바랜 금색 손잡이가 하나씩 보였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그것은 따분함이나 지루함이 아니라 셜록 홈즈가 언제나 깨닫고 있어야 하며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진실의 일부였다. 셜록 홈즈는 바로 그곳에 있어야 했다.


  “아니, 난 집에 갈 거야.”


  셜록이 차에서 내렸다. 존은 몸이 무거운 메리를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하고 굳이 셜록이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가는 그 짧은 거리를 함께 했다. 존 왓슨은 그런 식으로 셜록에게 도움을 주었다. 셜록은 그걸 밀어내기보다는 지키는 게 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Original Date 2016. 01. 02.


[Sherlock/셜록존] A Place Where One Can Say Hello

- BBC Sherlock 2016. 6. 23. 15:18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To cordial

- Written by. Jade


A Place Where One Can Say Hello




  존은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셜록 홈즈와 가장 가까운 벗이자 동료인 존 왓슨이라도 살인을 저지른 자가 법률에 따라 연행되어가는 과정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존은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자신의 동생을 감옥에 집어넣고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일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그의 고충 또한 이해했다. 존은 알아서 행인들이 조금 지나다니는 길목까지 나온 다음 택시를 잡아탔다.


  존과 그의 부인이 같이 사는 작은 목조 주택은 캄캄함을 덧입고 있었다. 존은 문을 넘어가면서 집에 불이 꺼져있음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가 목소리를 냈다.


  “메리?”


  집의 내부는 창문을 열어놓지 않았는데도 바깥처럼 고요하게 식어 있었다. 거실의 전등을 밝힌 존은 너무나도 극적인 위치에 놓여 있어 오히려 그 충격을 감소시키고 만, 탁자 위의 편지를 발견했다. 


  존은 호흡 한 번 고르지 않고 편지봉투를 열었다.



  몇 분 전에 셜록이 전화를 걸어서 제 과거가 남들에게 알려질 위험은 더 이상 없다면서 안심하라는 말을 해줬어요. 마그누센은 그의 기억력을 이용해서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그를 죽였으니 마그누센이 알고 있던 것들도 모두 사라졌다면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크게 한 번 놀랐고, 그 다음에는 놀라운 걸 한 가지 깨달았어요. 내가 놀란 이유는 셜록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그는 정말로 별난 사람이지만 자신이 해결하는 사건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추적자가 아니라 쫓기는 자가 되고 만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랑은 어울리지 않는 묘한 현실성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나는 그가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을 꽤 신뢰했죠. 살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으니까요. 당신도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거라고 봐요.


  그런데 그 셜록 홈즈가 누군가를 죽였어요. 그것도 흠잡을 데 없이 이타적인 이유로 인해서 말이에요. 당신도 알겠죠. 셜록이 나를 보호하고, 나아가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그누센을 쐈다는 걸요. 그 사실은 일종의 깨달음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어요. 나와 당신이 아니었다면 살아있는 인간을 쏘지 않았을 사람이 최초의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게, 나에게는 내가 얼마나 경솔했는지 일러주는 단호한 외침이었어요.



  존은 무의식적으로 계속 눈동자를 내리고 있다가 자신이 편지지의 맨 끝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걸 간신히 눈치챘다. 존은 편지지를 바꿔 잡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메리의 언어들에 공감하고 있을 뿐, 분명히 이별의 메시지인 이것에 크게 반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신기하게 느꼈다. 메리는 옳았다. 그녀의 두 번째 진리가 이어졌다.



  우리 사이에는 아주 먼 거리가 있었어요, 존. 이걸 부정하진 못할 거예요. 우리 모두가 총을 들고 있었다 하더라도 당신은 전쟁터에 있었고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었잖아요. 이건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차이에요. 그 차이점과 거리는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게 옳았어요. 그런데 내가 함부로 당신에게 발을 뻗은 덕분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죠. 당신의 친구는 피할 수도 있었던 변화를 떠안아야 했고, 당신은 아내에게 속임을 당했고 그 아내가 당신의 소중한 친구를 공격한 일로 상처를 입었다고요. 지금 당장은 시간이 답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 시간이 당신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치유를 가져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완벽한 해소는 어느 남쪽지방의 따뜻한 햇살이 선사하는 쪽잠에 불과하죠.


  이제 나는 그 거리를 다시 제 자리에 놓을 거예요.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죄를 짓지는 않아요. 나를 위해서 하죠. 그러니 그만큼 부족한 나는 당신의 반대편에서 가끔씩 혼자 당신의 안부를 물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존. 하지만 곧 내가 저지른 일이 당신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을 날이 있을 거예요. 


정말 진실하게, 이 순간은 당신의 아내인 메리가



  존은 평소처럼 소리 없이 흩어지는 숨을 내쉬며 편지지를 봉투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치 그 때를 기한 듯이 존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날세.


  존은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를 듣고 살짝 놀랐다.


  “벌써 끝났어요?”

  —원래 현행범을 처리하는 데에는 이 정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 결과를 듣길 원하나?

  “…그럼요.”

  —국내 교도소로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여기저기를 돌며 크게 고생할 예정일세. 내일 곧장 셜록을 비행기에 태워 보낼 거야. 그가 런던에 오래 있는 건 이쪽에서도 큰 부담이니까. 공항에서 잠깐 인사는 나눌 수 있도록 해주겠네. 

  “지금 셜록과 얘기할 수는 없다는 뜻이겠죠?”

  —그렇지.


  존은 수긍하면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지금 말을 한다면 발음이 우수수 흩어져 내릴 게 뻔했기 때문에 존은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마이크로프트가 먼저 전화를 끊으려 할 것이었다. 그런데 마이크로프트가 딴 얘기를 꺼냈다. 


  —셜록이 아까 내 핸드폰을 빌렸는데, 기록을 보니 자네가 아니라 메리에게 전화를 걸었더군. 그가 메리에게 무슨 얘길 했는지 아나?


  마이크로프트는 메리가 당연히 존의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존은 그것이 약간 씁쓸했다. 


  “…그냥, 자기가 마그누센을 죽였으니 마음 놓으라고요.”

  —그렇군.

  “네.”

  —그럼 쉬게. 내일 시간 맞춰 다시 연락을 주지. 


  존이 불빛이 꺼진 핸드폰을 탁자에 놓았다. 매끈한 면 위에 미끄러지던 핸드폰은 메리의 편지의 왼편 귀퉁이를 누르면서 정지했다. 존은 핸드폰을 그대로 두려다가 내일 마이크로프트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걸 상기하고 핸드폰과 더불어 메리의 편지를 같이 집었다. 정확히는 핸드폰과 밀착해 있던 편지가 저절로 따라온 것이었다. 존은 잠깐 동작을 멈췄으나 이내 두 개의 물건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침실에 면해 있는 욕실을 들어가려면 침대를 지나야 했다. 그 침대 위에는 물론 두 개의 베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존은 오늘 그것을 치우지 않기로 했다. 메리가 존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의 아내라는 위치를 고수했던 것을 동등하게 돌려줄 필요가 있었다. 존은 오늘 밤까지 메리의 남편이었다. 


  15분쯤 몸을 씻은 존이 침대에 누웠다. 그는 금세 잠이 들었다. 메리는 길 위에, 셜록은 전등마저 잠든 어느 방 안에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다음 날 자신의 자리를 바꾼 건 메리밖에 없었다. 




Hello from the outside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to tell you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But it don't matter, it clearly doesn't tear you apart anymore


밖에서 당신에게 안부를 전해요

적어도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려 했어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겠지요

그것이 더 이상 당신을 찣어놓진 않을 테니까


'Hello' by Adele


Original Date 2015. 10. 24.


[Sherlock/셜록존] Expired Pancake

- BBC Sherlock 2016. 6. 23. 15:17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for cordial

- Written by. Jade


Expired Pancake





  존이 셜록과 한 플랫에서 살게 된 지 네 달쯤 되던 시기였다. 급한 연락을 받고 새벽부터 병원에 나갔다가 귀가하고 있는 존은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서 당과 수분을 달라는 애원을 묵묵히 무시하며 걷고 있었다. 셜록은 절대로 마트에 가거나 음식을 해 먹는 일이 없었기에 플랫에는 고작해야 먼지와 종이만이 흩날리고 있겠지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뛰어나온 존에겐 냉장고에 약간 남은 마지막 우유가 절실했다. 모든 것은 그 우유를 다 마신 뒤에 해결해야 했다.


  존은 플랫에 들어가자마자 냉장고를 향해 직진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냉장고를 열었고 5초도 안 되어 인상을 크게 찡그렸다. 배고픔과 갈증에 시들어가는 존의 희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셜록, 냉장고 안에 있던 우유 못 봤어?”


  존의 시선은 아직 냉장고 안쪽을 향해 있었다. 사실 그는 셜록이 자고 있는지, 거실에 나와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방금 썼는데.”


  셜록의 대답은 존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 즉 존의 바로 왼편에서 들려왔다. 존은 빠르게 냉장고를 닫고 한 발짝 물러나 셜록 홈즈를 멀찍이서 조망했다. 그것은 실로 조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다. 존은 셜록이 현미경이 아니라 불 위에서 달궈지고 있는 프라이팬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설마 요리해?”

  “응.”


  그와 동시에 셜록이 완성된 반죽을 프라이팬 위에 부었다. 커스터드 빛이 나는 반죽은 천천히 시럽 향이 섞인 팬케이크 특유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더 입을 크게 벌릴 수 없었던 존의 몸은 아예 어깨까지 늘어뜨리면서 놀라움을 표현했다.


  “주스는 조금 남아 있던데.”


  셜록이 프라이팬을 잡은 손목을 살짝 흔들면서 말했다. 슬금슬금 반죽을 뒤집을 타이밍을 재는 몸짓이 몹시 신기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다. 존은 셜록 홈즈가 팬케이크를 익히는 과정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며 주스 병을 꺼냈다.


  “먼저 먹어.”


  그 날 존은 이른바 고기능 소시오패스도 자신과 거실을 나눠 쓸 용기를 발휘해준 플랫메이트를 존중할 줄 안다는 매우 유용한 교훈을 배웠다. 셜록은 존의 팬케이크 위에 우아하게 메이플 시럽을 뿌려준 뒤에는 곧장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졌다는 사실도 그것의 충격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그 뒤 다시 몇 달이 지났을 때에는 셜록 홈즈가 팬케이크를 만들었다는 사건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거대한 일이 벌어졌다. 물이 가득 찬 수영장을 옆에 두고 존은 폭탄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셜록은 아무런 장비 없이 오직 권총 하나를 들고 보이지 않는 저격수와 눈앞에 보이는 폭탄을 상대해야 했다. 


  반드시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져야만 끝날 것 같았던 그 밤은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종결되었지만, 존은 남 몰래 하나의 확신 같은 이론을 갖고 있었다. 셜록은 그 때 분명히 바닥에 떨어진 조끼를 보며 자신이 그것을 쏘았을 때 사방으로 퍼져나갈 충격과, 다소 탈진 상태인 존이 발휘할 수 있을 최대한의 속력 등을 계산하고 있었다. 반면 존은 셜록이 떠안고 있는 모든 것이 상수가 없이 미지수로만 이루어진 방정식이라는 걸 직관했다. 그렇기에 존은 두 사람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셜록에게 보낸 것이었다. 


  존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셜록은 그것을 존중했다. 세상에서 유일한 자문 탐정의 곁을 지키며 쌓인 존 왓슨의 경험이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존은 이번에는 그것을 언어를 통해 시험도 해 보았다.


  “욕실은 내가 먼저 쓸 거야.”


  셜록은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그래.”


  팬케이크와 욕실로 따뜻하게 증명되었던 셜록 홈즈 식 존중법이 깨져나간 것은 그로부터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싱크대 옆을 연 존의 시선에 테이프로 연결된 팬케이크 믹스 2개가 들어왔다. 존은 틀림없이 한 개를 사면 동일한 제품을 하나 얹어준다는 매우 합리적인 이유로 그것을 구매했다. 존은 몇 분의 시간을 투자해 그 기억을 어렵게 떠올려냈다.


  잠시 후 존은 테이프를 제거하고 팬케이크 믹스를 하나 뜯었다. 묶음 상품들의 특성은 유통기한이 짧다는 것이었다. 존에게는 서둘러 그 팬케이크 믹스를 해치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존은 새로운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셜록 홈즈는 하필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존은 몹시도 이기적이며 산 자보다는 오히려 죽은 자에 관심이 있을 때가 훨씬 많은 셜록 홈즈에게 아침을 대접받기도 했고, 먼저 씻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고 그보다 더 많이 서로를 지켜주었었다. 존은 그렇게 특별한 경험을 갖춘 자신이 어째서 셜록의 최후를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자리에서 그의 머리가 형편없이 짓이겨진 걸 바라만 보는 위치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존 왓슨은 셜록 홈즈의 제대로 된 죽음을 볼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것을 셜록 홈즈만이 부정했다. 존은 셜록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반죽이 질어졌다. 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우유를 조금 남길 걸, 하고 부질없이 생각했다. 남은 우유를 그냥 털어 넣은 게 잘못이었다. 셜록 홈즈가 가끔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할 때는 우유의 양도 협조적으로 구는 모양이지만 존이 자신의 끼니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흔했다. 존은 일부러 가벼운 동작으로 혀를 찬 뒤 프라이팬을 달궜다.


  존은 그렇게 일상적으로 팬케이크를 구웠다. 


  한편 바다의 수분이 느껴지는 영국의 대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동쪽의 차가운 공기가 도는 땅에서는 이번엔 형태를 지키는가 싶던 편지 하나가 또 찢어졌다. 편지는 그렇게 두툼하지도 않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짧았다. 그것은 아주 먼 곳을 겨냥하는 편지도 아니었다. 시차가 크게 나지 않아 충분히 비슷한 시점에 태양과 달을 공유할 수 있는 어느 섬나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작은 쪽지일 뿐이었다.


  셜록은 마지막 미련처럼 쓰레기통이 있는 바닥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책상에 붙어 있는 종이쪼가리들을 응시했다. 셜록은 존 왓슨이라는 이름 앞에 플랫메이트라는 수식어, 괴팍한 성격의 자문 탐정을 가장 오래 버틴 친구라는 어구가 다 떨어져버린다 하더라도 그를 존중하고 있음을 전하지 못했다.




Original Date 2015. 10. 23.


[Sherlock/셜록존] The Fifth Death

- BBC Sherlock 2016. 6. 23. 15:17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cok, Sherlock Holmes/John Wat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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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fth Death





  셜록 홈즈는 다소 어정쩡한 모습으로 누군가의 묘비 앞에 서 있었다. 시신보다 비석을 마주하는 것이 더 어려운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뱉는 동안 눈을 두 번 깜빡였다.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흡수하고 선별해야 살아갈 수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다소 비효율적인 행동이었으나, 그가 아무리 눈을 오래 뜨고 있어도 그에게 새로운 자극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셜록 홈즈는 보통 사람들처럼 눈을 깜빡이고 반사적으로 뛰는 맥박과 호흡을 내버려두었다.


  바람이 불어 셜록 홈즈의 머리카락을 살짝 만졌다. 그러나 바람이 묘비의 어느 구석을 만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그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그 앞에서 셜록은 당연하게도 몇 개의 죽음들을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네 명의 사람을 죽였다. 첫 번째 희생자는 셜록 홈즈 자신이었다. 그는 건물 아래로 훌쩍 뛰어내려서 자신은 아무것도 흘리지 않되 그 진리와도 같은 몫을 남에게 전이시키는 참으로 독특한 살인법으로 그의 화려한 전과를 열었다. 두 번째는 대상의 지위가 꽤나 어마어마했다는 점과 기타 상황적인 요인을 빼면 방법론 자체는 평범했다. 셜록 홈즈는 찰스 어거스터스 마그누센을 총으로 쏴 죽였었다.


  눈꺼풀이 인간의 한계에 따라 한 번 내려갔다가 올라가면서 셜록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까매졌다. 더불어 그의 사고도 잠깐 끊겼다. 셜록 홈즈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너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야가 휘청대면 사고도 덩달아 휘청대었고, 또 그것은 시선을 흔들리게 만들어 셜록은 그가 반 이상 외면하고 있던 묘비의 이름을 순간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충격은 셜록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었다. 셜록이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죽음들을 헤아리면서, 존 왓슨을 알맞은 차례에 놓는 것이 그토록 오래 걸렸음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존 왓슨은 셜록 홈즈의 묘비 앞에서 기적을 기원했다. 반면에 셜록 홈즈는 존 왓슨의 묘비 앞에서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모조리 해체하고 있었다.


  존은 잘 계산된 사각지대도 없이 셜록과 스무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그 스무 걸음이라는 간격은 사람 하나 서 있지 않은 완벽한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당시 셜록은 텁텁한 화약 냄새나 먼지 쌓인 공기를 마시긴 했어도 머리를 찧으면서 넘어지지는 않았었다. 셜록은 깨끗한 의식 속에서 존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셜록은 존의 짧은 이름조차 부르지 못했다. 존만이 셜록을 불렀을 뿐이었다. 셜록, 도망쳐— 존 왓슨이 그의 마지막 생명을 산화시키면서 짜낸 말은 그것이었다. 


  아마도 존은 한 쪽 발을 바닥에 붙이면서 동시에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이상한 감각을 감지하였을 것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사라지거나 약화되지 않는 존 왓슨의 용맹한 경험을 촉발시켰을 테고, 존은 빠르게 자신이 처한 사태를 파악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분야에서는 셜록보다는 존이 앞서 있는 탓이었다. 셜록 역시 숨겨진 폭발물을 알아챘긴 했겠지만 존보다 빠르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었다. 폭발물을 건드린 게 셜록이었다면 그는 존을 살려 보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냉정하리만치 지극한 타당성에 의하여 살아남은 셜록은 그 날 네 번째 살인을 감행했다. 그것은 법적으로도 꼼꼼하게 증명된 사실이었다. 제임스 모리어티의 가슴에 박혀 있던 세 발의 총알은 셜록이 가지고 있는 총에 들어가는 탄환과 똑같았다. 셜록 홈즈는 제임스 모리어티의 공식적인 살인자가 되었다.


  셜록 홈즈가 죽인 네 명의 사람들 중에서 존 왓슨은 유일하게 그 자신의 비석과 묏자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셜록의 입장에서 그것은 과학적인 명제만큼이나 지당했다. 그가 추모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존 왓슨뿐이었다. 셜록은 그의 눈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존의 묘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셜록은 자신의 멍청함에 혀를 찼다. 


  셜록 홈즈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오직 존 왓슨의 묘비가 탄생한 과정이었다. 존은 가짜로 죽지도 않았고,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니었으며 주변에 그를 기릴 수 있는 친구들을 가진 한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묘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셜록은 그것이 가진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팽창할 것인지 변화할 것인지 추정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돌머리에 손을 얹는 존을 뒤에서 지켜봤던 건 존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정당한 명분이라도 있었으나, 셜록은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멀쩡할 돌덩이 하나를 왜 보러 온 것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존 왓슨은 셜록의 발밑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폭발물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서 셜록은 불에 타 버린 존 왓슨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다.


  셜록이 목을 살짝 들었다. 정말로 그는 입 속의 혀를 움직거리고 있었다. 혀끝에서는 쓴맛이 났다. 존을 위해서 셜록 홈즈와 찰스 마그누센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존이 두 사람 모두를 죽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셜록의 부족한 부분을 뒤집어쓰고 희생을 하고, 다시 셜록 홈즈는 존 왓슨을 위해서 제임스 모리어티를 죽였다는 조건반사적인 논리가 그 쓴맛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나갔다.


  셜록 홈즈는 자신이 모든 걸 감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그것은 인간을 좌절시키는 대개의 진리들처럼 씁쓸했다. 그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쓴맛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셜록 홈즈는 그런 것까지 다 견딜 정도로 인내심이 많거나 자신의 실존에 애착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이성이고 이성은 실존이라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셜록은 그렇게 생각했다.


  셜록은 돌아섰다. 그러면서 주저 없이 자신과 맞지 않는 쓴맛을 내던졌다. 




Original Date 2015. 10. 21.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Interpretations on Pragmatism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셜록은 아무런 사고도 하지 않으면서 어중간하게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세차지 않았고 물방울은 모자를 뚫어버릴 것처럼 굵지도 않았다. 셜록은 무언가의 스위치를 켜듯 한 번 눈을 깜빡였다가 자신이 긴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우산을 펼쳤다. 바깥쪽으로 2분쯤 우산을 펼쳐두고 있었는데도 천이 찢어지거나 뼈대가 부러지지 않았다. 셜록은 몇 초 뒤에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물방울을 비라는 형태로 인지했고, 그 사실로부터 자신이 있는 장소를 파악해냈다. 


  셜록이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시애틀의 빗방울은 부드러웠다. 


  시애틀의 잿빛 하늘은 셜록의 감각 중 어느 한 부분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비를 뿌릴 듯 말듯 어두운 색깔은 셜록에겐 아주 익숙한 것이라 그의 눈을 따갑게 하지도 않았고 모종의 성가심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문제인 것은 그 하늘이 하필이면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감싸고 있다는 자연적 사실이었다. 셜록 홈즈는 시애틀에 있었다.


  습기 있는 날씨와 잘 어울리는 카푸치노의 향기가 빗방울보다 더 자주 그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종이컵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셜록은 핸드폰을 꺼냈다. 방금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 모종의 일을 끝내고 거리로 나온 지 6분 정도가 지난 시각이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메시지를 읽고 즉시 지워버렸다.


  셜록이 보기에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이 대개 보유하고 있는 사고방식을 똑같이 입력해두고 있는 인물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수정할 필요가 없는 일처리를 좋아했으며 그런 일이 가능한 인재를 가만히 놔두는 것은 국가적인 손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이크로프트 개인의 영리함에서 감당할 수 있는 양을 항상 넘어서는 업무가 그에게 밀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이크로프트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끌어들여 그에게 과제를 쥐어주어야만 했다. 공무원 딱지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현실적인 실용주의였다.


  셜록은 택시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걷기로 했다. 이 정도의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나같이 불을 켜지 않은 간판들이 도시를 미묘하게 칙칙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셜록의 머리를 귀찮게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 부근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풍기고 다녔던 커피향의 발원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셜록은 스타벅스 간판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팔목에 장우산 손잡이를 걸친 채 두 개의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있었다. 셜록은 걸으면서 저절로 남자가 들고 있는 컵 안의 내용물을 알아맞혔다. 아메리카노와 핫 초콜릿이 분명했다. 남자에게서 핫 초콜릿을 받아갈 상대는 너무도 뻔했으므로 셜록은 일말의 흥미를 위해 머릿속에서 연상 놀이를 준비했다. 핫 초콜릿으로부터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했다.


  셜록은 표정 없이 우산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그는 어느새 택시 정류장에 서 있었다. 셜록은 순간 택시 정류장에 떨어져 있는 금박의 초콜릿 껍질에 묻어있을 수 있는 각종 물질들을 생각해보았다. 마이크로프트의 실용주의 하에서 그것은 한 인재가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흘려보내는 짓에 불과했으나, 셜록은 그것에도 의미가 있음을 알았다.


  시애틀과 여덟 개의 벽을 사이에 둔 런던에서 존 왓슨은 보편적인 의미가 있는 초콜릿의 껍질을 만지며 누군가에게 고마워했다.


  존은 바깥에서 가져온 종이 봉지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는 출근하기 직전에 허드슨 부인이 가져다준 초콜릿 뭉치 옆에 포장된 상자를 붙였다. 존은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혹시 집 안에서 녹지는 않았을까 하며 허드슨 부인의 초콜릿을 뒤적거렸다. 존은 어떤 사상이나 목적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정과 호의로부터 탄생한 달콤함을 풀어진 표정으로 관찰했다. 존이 초콜릿을 우물거렸다.


  존은 한 번에 선물 꾸러미들을 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의 새 집만큼이나 한산해진 냉장고 안은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한 무더기의 초콜릿을 받아들였다. 이제 존은 씻을 준비를 했다.


  셜록은 공항 터미널에서 내렸다. 그동안 셜록이 진행한 연상은 400개가 넘는 고리들로 촘촘하게 채워졌다. 그는 공장 구석에서 정신없이 단 음식을 먹고 있던 아이들도 떠올렸었고 초콜릿 향이 나는 목구멍에서 소녀가 내지른 비명도 기억해냈었다. 그러고 보니 공항은 하늘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셜록 홈즈는 런던에 가까워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초콜릿과 관련 없는 생각이 끼어들자 셜록은 혼자 눈썹을 찡그렸다.


  사고하기를 멈춘 자의 비극이 볼썽사납고 한심하다는 건 런던에 시간의 중심점인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확고하고 진실했다. 셜록이 생각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러한 비극과 영영 멀어지기 위한 한 가지 방책이었고, 이를테면 그만의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도 가능하다면 내버려두지 않는 게 좋다는 마이크로프트의 실용주의가 선불폰에 도착하는 문자 메시지로 대변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만히 있는 일이란 집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그 외의 공간에서는 익숙하지 않기 마련이며 사고력은 언제나 날카롭게 벼려두는 게 좋은 법이었다. 


  셜록은 자신도 모르게 모리어티에게 중독되어 있던 아이들을 계속 떠올렸다. 그 꼬리가 아슬아슬하게 존 왓슨의 주변을 휘감고 돌려 할 때 즈음, 셜록은 공항 내 광고판을 보고 자신이 초콜릿과 밸런타인데이를 연관 짓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밸런타인데이 기념 초콜릿, 향수 할인]


  첫 문자로 셜록이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은 모두 전달한 마이크로프트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셜록은 연상하기를 중단했다. 


  존 왓슨은 샤워 가운의 앞을 묶었다.


  아직 침대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으므로 존은 미리 아침에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했다. 그는 토스트를 눈에 띄는 곳에 꺼내 놓았으며 그 옆에 접시와 잼 바르는 나이프를 배치했다. 열려 있는 창문이 있는지 확인했고, 내일 갈아입을 옷을 미리 의자에 걸었다. 짧은 시간 안에 집안 대부분을 돌아다닌 존은 발에 무언가가 걸리는 일도 없이 무사히 침실에 당도했다. 조용한 밤이었다.


  존은 숙면을 위해 엄선한 두꺼운 책을 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확실히 단조롭고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읽으면 잠이 잘 왔다. 자문 탐정의 동료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을 때는 전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수법이었다. 존은 작은 전등을 키고 책을 읽었다.    


  존도 조금씩 죽은 사람에게 평생 자신의 감정과 믿음을 쏟아 부을 수는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을 매번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사라졌으므로 그는 자신을 조금은 피로하게 만들어줘야 했고, 자신과 아주 많은 사람을 함께하던 사람이 돌아올 수 없으므로 순식간에 붕 떠버린 자신의 시간을 같이 꾸릴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 했다. 생존 전략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은 실용적인 설득력 아래 존은 천천히 책 속의 문장을 따라갔다. 


  런던은 밤이기에 캄캄했고 시애틀은 오전이었으나 저녁처럼 어두웠다. 존이 눈을 껌뻑거리는 사이 셜록은 탑승 게이트를 찾아가며 조명을 밝힌 면세 상점들에게 약간씩 시선을 주었다. 빗방울과 커피 냄새에 이어 화장품들의 잔향이 그를 건드리려 애썼다.


  셜록은 존을 생각했다. 존은 그에게 논리적으로 풀 수 있는 질문이나 문제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존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서 그의 사고력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점은 없었다. 베이커 가가 아닌 다른 곳에 새 집을 마련했다는 전직 군의관은 홈즈 형제의 실용주의에 부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셜록은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이 존을 생각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진 않을 거라는 걸 알았고, 시애틀의 하늘과 초콜릿이 빚어낸 뜻밖의 자극에 자신이 필사적으로 대항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하여 셜록 홈즈는 가장 순수한 의도로 존 왓슨의 편안한 밤을 그렸다.





Valentine's Day by Linkin Park


I used to be my own protection

But not now

I never knew what it was like, to be alone


나는 나 자신의 보호장치이곤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혼자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일지 나는 전혀 몰랐어



[Sherlock/셜록존] The Doctor's Correction (for Cordial)

- BBC Sherlock 2015. 2. 11. 11:19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The Doctor's Correction

 



  존 왓슨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하여 플랫메이트를 맞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런 세상에.”


  존은 일어나자마자 무척이나 선정적인 모습으로 누워 있는 셜록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아침부터 기대하지도 않은 남자의 맨살을 본 그는 표정을 찡그리면서 대부분이 바닥으로 내려와 있는 담요를 던지듯 끌어올렸다.


  “아니야, 존.”


  그러자 잠꼬대와 의식적인 중얼거림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말투로 셜록이 말했다. 존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춰 섰다.

 

  “…응?”

  “담요 덮어주지 말라고.”


  존이 눈썹을 올렸다. 세상에서 유일하다는 자문 탐정은 그 희귀성에 걸맞은 괴팍한 잠버릇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셜록이 낮잠이 아니라 밤중에 숙면을 취한 걸 본 적이 없던 존은 셜록이 슬그머니 밀어낸 담요를 다시 끌어올렸다.


  “옷도 안 입었는데 그러다 감기 걸려.”


 존은 최대한 셜록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이전보다 더 꼼꼼하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셜록은 몸짓으로 찌푸린 얼굴을 표현하듯이 뒤척였다. 존은 아예 셜록의 등 뒤로 담요 자락을 쑤셔 넣은 다음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찻잔을 들고 나온 존은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셜록의 맨 몸을 보고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존과 셜록에게는 각자의 침실이 있었다. 그래서 존은 대개 셜록의 깜짝 누드를 보고 험한 소리를 내뱉지 않아도 되었지만, 비범한 방식으로 남을 괴롭힐 줄 아는 재주를 가진 이 탐정은 불시에 거실에 누워 잠을 청함으로써 정상적인 미의식을 가진 플랫메이트에게 익숙해질 수 없는 쇼크를 안겨주곤 하는 것이었다.

 

  “젠장!”

  “아, 좀!”

  “셜록, 제발!”

 

  그 때마다 존은 이마를 짚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셜록의 괴상한 버릇에 저항했다. 베개를 던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셜록이 잠들 때까지 기다린 존이 그의 침실 앞을 막아놓은 일도 있었다. 다음 날 존이 깰 때까지 방에서 나가지 못했던 셜록은 그 날 밤, 존의 방문 앞에 잠자리를 펼쳐 놓고 당당히 배를 비롯한 갖은 부위를 내놓은 채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화창한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플랫메이트의 전라를 감상한 존의 열정적인 반응은 기어코 아래층의 허드슨 부인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존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 셜록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미동도 없이 모종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척 봐도 일찍 끝나지는 않을 듯했다. 존은 차라리 자신이 거실의 소파를 차지해버린다면 어떨 것인지 생각해봤다가 셜록이 소파 바로 밑이나 건너편에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해버렸다. 그리고 존은 다시는 그처럼 근거리에서 자신을 반기는 셜록의 맨몸을 보고 싶지 않았다.

 

  “…셜록.”

 

  셜록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왜.”

  “오늘은 방에서 잘 거야?”

  “들어가기 귀찮으면 안 가.”

 

  존은 지금 당장 일어나 셜록이 앉아 있는 의자를 걷어차 버리라는 악마의 속삭임을 조금씩 귀담아들었다.

 

  “있지, 셜록.”

  “뭐.”

  “자네가 잠자는 장소까지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사실 좀 우습기도 하잖아. 그런데 말이야, 음, 굳이 거실에서 잘 거라면 잠옷은 입지 않아도 좋으니까 뭐라도 좀 덮고 잤으면 좋겠어. 자네는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일어나자마자 여자도 아니고 남자의 알몸을 본다는 게, 으음, 아주 유쾌하지는 않은 일이거든. 사실 아주 꼴 보기 싫은 광경이지.”

 

  셜록은 반응이 없었다. 존의 귓가에서 서식하는 악마는 이제 돌림노래를 부르면서 셜록 홈즈에게 한 방 먹이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존은 심각하게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후에 존이 말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셜록은 현미경의 배율을 조정하고 있었다. 다음날 거대한 폭풍이라도 불어 닥칠 것처럼 거실은 조용했다.



 


  과연 플랫을 집어 삼킬 불안정한 공기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거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존은 거실을 보기 직전 눈을 감고 하룻밤의 기적이 셜록 홈즈에게 깨달음을 주었기를 진실로 바랐다. 존이 차근차근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앞으로 걸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존의 시선에 셜록의 하반신이 담기기 시작했다. 가지런한 발과 꼭 붙인 두 짝의 다리에서는 어떤 섬유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존은 그걸 보고도 마치 커튼을 걷으러 가는 사람처럼 평화로운 걸음을 유지했다. 다만 그의 발바닥은 점점 더 세심하게 바닥에 닿았고, 신중하게 전쟁터를 누볐던 군의관의 수법은 잠에 빠진 탐정이 감지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셜록은 존이 소파에 다다를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셜록.”


  셜록은 당연히 눈을 뜨지 않았다.


  “네 놈의 망할 아랫도리를 뭉개버리기 전에 옷 입어!!”


  몇 달간 마음 놓고 거실을 나와 본 적이 없는 존 왓슨의 발이 힘차게 그 원흉을 응징했다. 존의 발차기는 정확히 셜록의 배에 꽂혔고 셜록은 숨이 막힌 소리를 내면서 소파 밑으로 떨어졌다. 폭풍의 중심에 휘말린 것처럼 셜록이 소파와 탁자 사이의 좁은 공간을 굴렀다.

 

  “컥, 맙소사, 존!”

 

  셜록이 잔뜩 구겨진 자세로 숨을 몰아쉬며 존을 돌아보았다. 반사적으로 셜록은 고통과 짜증에 찌푸린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압도하는 흉흉한 기운이 느껴지자 갖은 사건으로 단련된 자문 탐정도 움찔했다. 아마 이 시간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일지도 모르는 전직 군인이 경고했다.


  “다음에도 옷 안 입고 자면 배가 아니라 다른 데를 걷어찰 줄 알아.”

  

  존은 여전히 배를 부여잡고 있는 셜록의 곁을 유유히 떠났다. 주방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셜록은 조심스럽게 부상에 준하는 충격을 받은 복부를 살폈다.


  잔을 들고 거실로 돌아온 존은 오늘따라 아주 달콤한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Sherlock/셜록존] Detective's Murmuring

- BBC Sherlock 2014. 6. 11. 22:58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2014/1/17
- Written by.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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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ective's Murmuring


  새로 입힌 은회색의 벽면에도 낡은 흔적이 엉겨 붙고 있는 병원의 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시각이었다. 몰리 후퍼는 복도에서 서성이고 있는 존 왓슨을 만났다. 

  “왜 나와 계세요?”

  그녀는 존에게 성 바스톨로뮤 병원에 무슨 볼일이 있어 찾아왔냐고 묻지는 않았다. 의원 기능보다는 하나의 랜드 마크로서 자리 잡은 오래된 건물에 개인 병원을 가지고 있는 실력 있는 의사가 찾아올 이유에 관해 몰리는 친숙한 편이었다. 과연 존은 몰리가 예상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셜록이 안에서 좀 험한 짓을 하고 있거든요. 딱히 구경하고 싶은 광경이 아니라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존이 손가락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닫혀 있는 문 사이로 셜록의 탄성이 들려왔다. 시신이 누울 수 있는 딱딱한 들것과 날 선 은색 물건들만 즐비한 곳에서, 한 줄기 의미심장한 음성을 흘리고 있는 자문 탐정이 자아내는 현장이라면 상식을 넘어선 비범함이 흐르고 있을 것이었다. 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존이 기대고 있는 창턱 쪽으로 다가왔다. 

  “신문에 두 분이 나란히 찍힌 사진이 실린 걸 봤어요. 무사히 화해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존이 흔들림 없이 서 있던 자리에 들어오는 빛이 크기를 키워갔다. 덕분에 셜록 홈즈의 일침을 계기로 수염이 사라지면서 옛날처럼 말끔해진 결이 빛줄기를 머금고 환해졌다.

  “그 과정이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일단은 그렇게 됐습니다. 약 오르기는 해도 목숨을 구해준 사람한테 끊임없이 화내는 것도 이치에 맞는 일은 아니잖아요.”

  “두 분이서 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반가운 것도 있어요. 왓슨 선생님이 옆에 계신 게 확실히 더 나아 보이고요.”

  몰리는 웃음을 섞어가며 말하다가 존의 표정을 살피고는 재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아, 두 분 사이를 오해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가 잠깐 홈즈 씨의 동행인 노릇을 했었거든요.”

  “동행인이요?”

  공중을 휘젓고 있던 몰리의 손이 내려가자마자 존의 얼굴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몰리에게 한 뼘 다가왔다. 몰리는 입술로 애매한 크기의 원을 그렸다.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일하고 비슷한 걸 어떻게 지칭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홈즈 씨와 같이 행동하는 일이니까 동행인이라고 대충 이름을 붙여 봤을 뿐이에요.”

  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손에 잡히는 확대경을 열었다 닫히는 소리까지 들릴 리는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존은 몰리의 말을 듣고 반응을 만들어 내느라 미간을 좁히면서도, 방 안에서 셜록 홈즈가 대략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셜록이 당신을 데리고 다녔다고요? 본의 아니게 제가 후퍼 양을 고생시켰었군요.”

  그러자 몰리가 찡그린 얼굴에 미소를 덧씌웠다. 

  “아뇨, 그런 점은 없었어요. 저한테 상냥하게 대해주신 점도 있고.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건 어차피 홈즈 씨인걸요. 할 일이 없었으니 힘든 점도 많지 않았지요.”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사실 후퍼 양에게는 셜록이 잘 해야죠.”

  존은 그러면서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잠시 시선을 돌렸다. 몰리는 대단히 총명한 축에는 속하지 않았어도, 마치 셜록 홈즈를 눈앞에 둔 자신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존의 심정을 그럭저럭 추측했다. 존 왓슨이 속이 좁은 인물은 아니니 아직도 2년간 동료의 진실에 관해 소외되었던 처지를 언짢게 여기고 있지는 않을 테였다. 몇 초간 입가에 쓴맛을 발라 놓는 추억을 처리하듯 존의 눈동자가 돌아온 게 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도움을 준 것과 받은 것 모두 공평하게 대하시는 분이니까요. 하지만 홈즈 씨가 선생님께 보여주는 태도는 하나뿐이라고 생각해요.”

  돌을 깎은 차갑고 편평한 면까지 등을 바짝 붙인 몰리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지, 혹은 생각에 잠겨 있을지 명확히 잡히지 않는 셜록 홈즈의 경계를 응시했다.

  “홈즈 씨랑 현장에 나갔을 때였어요. 그럴듯하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 조작된 현장이었죠. 그 때 홈즈 씨가 말을 꺼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시끄럽다고 중얼거리거나 손짓을 하는 일이 있었어요.”

  “셜록이 혼잣말을 잘 하는 편이긴 합니다.”
 
  “그건 다 왓슨 선생님을 향하는 동작들이었어요.”

  그 즈음에 와서 존은 몰리가 치달아 가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몰리는 희미하게 웃었다가 금세 입꼬리를 내렸다. 머릿속에 할 말이 줄을 서고 있었으나 몰리는 의미 없이 발을 움직였다.

  “선생님이 없는 자리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며 가버릴 때에도, 홈즈 씨는 자신의 실수를 몰랐어요. 물론 제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한 말은 절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제가 꼭 선생님처럼 될 필요는 없다고 또렷하게 일러주기까지 했는걸요.”

  몰리에게 셜록 홈즈의 성격이란 적어도 그의 방대한 지식만큼이나 헤아릴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미지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순간의 난감함에 인상을 찌푸리는 셜록 홈즈도 알았고, 대부분이 받아들일 수 있고 누군가는 반기며 고마워 할 수도 있는 진지함을 입은 셜록의 몇 가지 모습까지 알았다. 그래서 몰리는 셜록에게 따지지 않고 존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홈즈 씨는 자신이 얼떨결에 저지른 실수처럼 모를 뿐이에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시잖아요. 사람의 감정 같은 거.”

  존은 길게 이어지는 몰리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가 움찔거리면서 나타내는 반응이 셜록과 아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왓슨 선생님이 대신 가르쳐주세요.”

  존은 이 대화에서 자신이 물음표만 찍어대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 감지하면서도 의문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뭘 말입니까?”

  “홈즈 씨가 그 자신도 모르게 선생님을 찾았다니까요. 의식적으로는 제가 몰리 후퍼이길 바랐으면서도 그랬다고요. 그게 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어요?”

  도리어 질문을 떠안아 버린 존이 머리를 굴리기 전에 셜록이 방에서 나왔다. 문짝과 코트를 비슷한 모양새로 가르면서 나온 탐정이 흘린 소리가 진동했다.  

  “존, 갈 곳이 생겼어.”

  문을 열자마자 습관적으로 존에게 말을 걸었던 셜록은 몰리를 보고 가볍게 아는 체를 했다. 몰리는 주로 셜록 홈즈를 향하게 되는 불균형한 미소를 답례로 꺼내들었다. 

  그러고 나서 셜록은 곧장 발을 내딛었는데, 그것은 영락없이 존을 병원 바깥으로 인도하는 몸짓이라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럼 나중에 봐요.”

  옆에서 셜록이 손을 흔들었다. 존이 음성으로 담아낼 수 있는 예의를 먼저 발휘해서 셜록은 입술을 열지 않았다. 몰리의 눈은 2년 전과 변한 것 없이 아래로 휘었다. 둘은 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존은 셜록에게 행선지를 묻는 절차도 건너 뛰어버리고 걸으면서 고개를 올려야 닿을 수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기를 해야 할 순간을 맞지 않은 탐정의 표정은 무심했고 평온했다. 존은 거기에서 2년간 자신을 배제해 놓고서는 겨우 돌아온 셜록 홈즈가 무의식중에 자신을 담고 있다는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런 걸 단순히 안면 구석에서 발견해낼 수 없는 게 당연한데도 그랬다. 결국 셜록이 목소리를 내어 존의 반사적인 시도를 흩어 놓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어, 아니야. 그냥.”

  존은 황급히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하고는 또 생각에 빠졌다. 그는 눈을 깜빡이면서 셜록에게는 지루할 정도로 명백한 사고의 자세들을 마구 흩뿌려댔다.

  “어디 가는지 물어보지 않는군.”

  “…오, 내가 그랬나?”

  그것은 셜록이 기대하던 의문문이 아니었다. 파트너가 자신의 흐름에 동참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재확인한 셜록은 눈길을 옮기고 말없이 발을 내뻗었다.

  생각 끝에 존은 많은 경우에 자신이 셜록의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먼 청자를 부르는 그의 중얼거림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존은 이상하게도 그것이 어설프게 뻗어 나가는 자신의 고민을 정리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여겼다.

  셜록이 성 바스톨로뮤 병원의 마지막 문을 젖혀 열었다. 곧 병원 안에서 존에게 쏟아지던 햇볕이 셜록의 머리칼 위에도 내려앉았다. 


[Sherlock/셜록존] What's Next?

- BBC Sherlock 2014. 6. 11. 22:55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2014/2/17

- Written by. Jade

 

What's Next?


 

  마이크로프트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베이커 가 221B번지에 발을 내밀었다. 그를 불렀던 셜록 홈즈가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언젠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시간은 체중 관리를 해야겠다는 존의 의견을 반영해 왓슨 부부가 운동을 하는 무렵이었다. 이태까지 그것은 꽤 철저히 지켜져 왔다. 곧 존이나 메리가 기습적으로 베이커 가에 모습을 드러낼 확률이 없는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중대한 사안을 들고 셜록을 찾아가는 반면, 셜록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자신의 형을 불러낼 때가 많았다. 마이크로프트는 하던 대로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두고 있는 셜록을 바라보았다. 그를 우습게 보는 유서 깊은 셜록 홈즈의 태도만큼이나 노련한 마이크로프트는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맞은편에 앉았다. 존 왓슨이 나타날 리가 없는 시간적 배경 자체만으로도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데 셜록은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누군가에 대해 자신이 가진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도 높은 육체적 접촉일 수 있어.”

 

  셜록의 눈동자가 살짝 돌아갔다. 바이올린은 하필 벽에 딱 달라붙어 있는 소파 위에 올려져 있었다. 셜록은 속으로 짜증을 부렸다. 한편 마이크로프트는 아직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정도의 직접적인 행위를 겪어본 뒤, 내가 문제시되는 타인에 대해서 어떠한 느낌이 드는지 판단해 보는 거지. 경우는 두 가지야. 그토록 강렬한 사건 이후 예상치 못하게 공허함이 찾아온다면? 한 마디로 말해 그 타인과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거야.”

 

  셜록은 갑자기 팔을 쭉 내뻗었다.

 

  “더군다나 절차상 겪었던 그 행위가 다분히 성적이었다면 공허함은 더 커질 수 있어. 냉정하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노골적이고도 원초적인 일이잖아? 그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소리야. 서로를 위해서 죽어줄 것도 아닐뿐더러 그런 상황을 만난다는 것도 쉽지가 않지. 강렬한 자극 이후의 허탈함과 무기력함, 그건 당사자가 문제의 타인과 당장 헤어져야 한다는 하나의 신호인 셈이지. 다른 한 가지는 이것보다는 긍정적이야.”

 

  셜록이 대뜸 입을 다물었다. 그가 날카롭게 마이크로프트를 살폈다. 딴청을 피우고 있지도 않았고, 놀랍게도 스마트폰까지 무릎 위로 뒤집어 놓고 있었음에도 마이크로프트가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탓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콧잔등을 조금 찡그리며 입술을 올렸다.

 

  “듣고 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를 한 번 흘긴 뒤 말을 이었다. 

 

  “자극 뒤 찾아오는 감정의 종류가 달라지지. 흔히 하는 말로 설렘이라든가 충만함, 혹은 또 다른 소망과 욕구가 샘솟을 수 있어. 이런 경우는 개인의 감정적 안정을 위해 그 타인을 옆에 두는 게 좋아. 한편으로는 그와 함께 다니고 붙어 있었던 이유가 일정 수준의 행위가 아니라는 뜻도 되는 만큼 둘의 관계는 더 건강해질 수도 있고. 괜찮은 이론이야. 겉으로 보면 꼭 충격 요법이 떠오를 것 같군.”

 

  “그래,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말이구나.”

 

  마이크로프트는 건조하게 대꾸한 후 고개를 약간 옆으로 꺾었다. 그의 사무실 책상이 앞에 있다면 안성맞춤일 자세였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으면 출판사 직원을 불러야지, 굳이 내가 와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셜록이 그제야 마이크로프트를 제대로 보았다. 

 

  “그 개인이라는 글자가 사실 너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 말을 듣고도 셜록의 눈썹과 동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일반적인 단어들의 뒤편을 알고 있었던 영특한 형제들에게 놀라울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를 불러내기 훨씬 이전부터 놀람을 거듭했을 것이고, 마이크로프트에겐 단지 몇 마디의 대사를 준비하면 그만인 정도의 자리였다. 

 

  바이올린을 들고 싶어 했던 셜록의 손은 빈 상태로 가라앉았다. 결혼 이전에 보유하고 있던 몸무게 기록을 되찾겠다는 존의 열의는 대단해 그의 뜀박질이 끝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홈즈 형제의 답안은 그 안에 나올 것이다.

 

 

 

* * *

 

 

 

  마이크로프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서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는 차량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길어지기는 했지만 둘은 제 시간에 이야기를 마쳤다. 

 

  셜록의 눈동자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애매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귓바퀴에 대고 트럼펫을 불지 않는 이상 셜록은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고 기척도 느끼지 못할 텐데도, 마이크로프트는 느리게 엉덩이를 뗐다. 셜록은 반응하지 않았고 배웅을 해 주지도 않았다. 물론 마이크로프트는 그를 이해했다.

 

  셜록은 자신이 혼자라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 * *

 

 

  

  “그래, 아끼는 내 동생아. 이런 쪽에 있어서는 내가 너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걸 너도 이제 인정을 한 모양이구나.”

 

  “존재했던 경험까지 부정하지는 않아. 그리고 언제부터 형이 내 앞에 그런 수식어를 붙였다고.”

 

  “너만 네 위치를 모르는구나. 네가 아무리 내 동생이라지만 내가 누군가의 아둔함까지 감싸주는 성격은 아닌데 말이다.”

 

  셜록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안색을 악화시킬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잠깐 안타까워했다가, 빠르게 진지해졌다.

 

  “일단 네가 그러한 이론을 펼치게 된 배경부터 살펴봐야겠다. 그런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일 거야. 방법론을 펴는 건 너에겐 익숙한 일이다. 이번에는 그게 누군가의 알리바이나, 알 수 없는 곳에서 묻어온 흙의 정체가 아닐 뿐이지.”

 

  셜록은 침묵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것을 긍정적인 답변으로 알아들었다. 

 

  “네가 앞에서 제시한 방법을 적용하게 될 대상을 분석하기에 앞서, 일단 네 상태를 좀 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 네가 걱정하는 건 네 자신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그래?”

 

  “너의 마지막 목적지가 성적인 의미가 담긴 행위일 리가 없잖니.”

 

  셜록은 마치 자신이 업신여기는 무언가를 만난 것처럼 인상을 좁혔다. 그럼에도 한 쪽의 의견을 부정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조음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그럭저럭 대화가 가능한 두 사람일지라도 드물게 겪는 경우였다. 

 

  셜록은 또 입을 열지 않았고, 마이크로프트는 슬며시 말하는 속도를 줄였다.  

 

  “두 사람이 그 방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이미 결정이 났다. 너의 욕망이 어디까지 연장될 수 있는 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 남은 한 쪽이 문제겠구나. 정말로 큰 문제지. 네가 죽어 있던 사이에 존 왓슨은 메리 모스턴의 약혼자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의 발언권을 끝마쳤다. 그 이후로도 셜록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 두 사람은 조용한 거실에 각자 앉아 있었다. 건물 밖으로 차가 도착하고 마이크로프트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221B번지는 극도로 고요하기만 했다. 그동안 셜록 홈즈가 고민한 것은 하나였다. 

 

  2년이라는 건 누군가에겐 많이 늦은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Sherlock/셜록존] Bloody Washing

- BBC Sherlock 2014. 4. 2. 22:41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Original Date 2014/3/28

- Written by. Jade

 

Bloody Washing

 

 

  런던의 숱한 오전 중 한 조각에서 피어났던 일이다. 셜록은 느즈막히 일어나 몸을 씻는 중이었다. 그는 구석구석 거품을 묻히고 샤워기를 잡았다. 그 때 워시 타올이 떨어졌다. 물을 한 번밖에 끼얹지 못한 셜록이 타올을 집고자 몸을 구부렸을 때, 물이 묻은 거품이 꼭 피가 흘러 내리듯이 어정쩡하고 진득하게 등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는 거품을 왜 굳이 피라고 생각했는지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그것은 탐정에게 잼이나 시럽보다는 피가 익숙해서인지도 몰랐다. 느릿하게 흘러 내리면서 허리의 곡선을 덮는 하얀 거품, 혹은 붉은 피. 셜록 홈즈는 자신의 상상력을 다 차지하는 혈액이라는 것에 관해 이번엔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신의 피를 본 적은 많지 않았다. 그가 만져보고 냄새를 맡았던 피는 전부 다른 이들의 것이었다. 자문 탐정보다 행동이 빠릿하지 못한 야드의 경위는 당연히 피를 흘리지 않았고, 늘 누군가에게 임무를 던지는 런던 정보부의 누군가도 그러했다. 다행인 것은 경찰이라는 직위나 강력한 권력, 심지어 탐정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지도 못한 탐정의 조수 격이자 친구인 존 왓슨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피를 뽑아내는 데 기막힌 재주를 갖고 있었다. 가령 머리 한 구석이 단단히 잘못된 택시 기사라든가, 더러운 유희 생활을 즐기는 언론 재벌이라든가, 셜록 홈즈라든가.

 

  셜록 홈즈가 존 왓슨을 위하여 흘린 피가 런던의 보도블록 사이를 지나갔다.

 

  셜록은 자신의 등 뒤를 따뜻하게 적신 피를 오래 전처럼 하얀 거품으로 착각하며 바닥에 누워 있었다. 탐정의 몸을 씻기면서 흘러 내렸던 워시는 그의 혈액과 닮은 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거짓으로, 그 다음에는 누군가를 대신 앞세웠던 그가 존 왓슨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놓았다. 공기방울 대신 코를 찌르는 향기를 가진 붉은 씻김이 셜록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따뜻한 물을 끼얹을 때와 얼핏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뿌연 김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고 예민해진 피부 어딘가가 따끔거리는 것도 같은 감각마저 그랬다.

 

  셜록이 방탄 조끼도 없이 자신을 대신해 총을 맞을 줄 몰랐던 존은 허겁지겁 그의 옆에 붙었다. 존의 머리카락과 다리와 시선 모두가 엉켜 있었다. 존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면서 소리를 질렀다. 셜록은 그 울림 속에서 자신의 등과 가슴을 어루만지는 존의 손길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존이 뭐라고 더 얘기를 한 것 같았는데 셜록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끼익대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플랫메이트와 바이올린을 괴롭힌 일부터 시작된 잡념이 주르륵 퍼져나갔다.

 

  셜록 홈즈는 대부분 존에게 이기적으로 굴었던 것 같다. 존 왓슨이 무척이나 신경쓰는 우유와 콩 옆에 죽은 피부 덩어리를 놓아두는 게 그의 투덜거림을 제대로 촉발시키지 못할 정도였다. 욕실에도 때때로 일상적인 예의에 무감한 셜록이 닦아 놓지 않은 세안제가 묻어 있기도 했다. 그 순간 셜록은 자신의 사고가 또 다시 무언가를 씻고 닦는 일로 향한다는 걸 알았다. 그의 자각은 그가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느릿했다. 이상하게 셜록은 존 왓슨과 관련하여 어떤 것을 지워내거나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마냥 물과 거품에 젖어 있었다. 

 

  마침내 셜록은 자신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마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행위처럼, 오직 자신을 위한 행위라는 걸 인정했다. 셜록 홈즈는 진실로 존 왓슨을 구하기 위하여 숨을 거두었다. 

[Sherlock/셜록존] Old Routine

- BBC Sherlock 2014. 1. 6. 22:21 posted by Jade E. Sauniere

* BBC 셜록의 시즌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바일 환경이신 분들은 주의하세요. 셜록 301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SHERLOCK S3 SPOILER 



Old Routine



  베이커가 221B에 먼지가 흩날린다. 더럽고 불쾌해 보일 정도는 아닌 양이지만 베이커 가에 찾아드는 햇살은 늘 먼지를 떠안고 있었다. 세상에서 유일하다는 자문 탐정과 그의 플랫메이트였던 전직 군의관이 세들어 살 무렵에는 워낙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던 게 첫 번째 이유였고, 그 두 사람이 떠나고 나서는 집을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둘째였으며, 가장 앞에서 언급되었던 두 사람이 돌아오면서 베이커 가 221B를 찾아올 사람이 생겨 다시 생기를 담은 먼지가 방구석에서 피어올랐다. 


  그 곳에서 창문 바깥을 내려다 보면 듬성듬성 셀 수는 있을 수준의 기자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위와 아래가 적당히 시끄럽다는 것은 베이커 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일으킨 먼지 말고도 흔하게 찾을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것의 저편에서는 가정부 노릇은 하지 않는다면서 입주자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마른 체격의 안주인이 돌아다녔다. 자문 탐정은 핸드폰을 붙잡고 있고 심심찮게 그곳을 찾는 경찰 한 사람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사람들이 팔을 움직이고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온기와 먼지가 함께 나풀거렸다. 


  전직 군의관은 방문객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문 탐정의 정상적인 벗으로서 사람들을 맞았다. 그나마 탐정과 말싸움을 할 실력이 된다는 그의 형이 무슨 주제를 들고 왔는지 탐정은 목소리를 내면서 손을 휘둘렀다. 의사는 그 속에서 나름대로 싹싹한 표정을 지었다. 플랫 앞에서 진을 치는 기자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었다. 


  탐정이 전화기 너머에서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형제를 매몰차게 쫓아낸 즈음에는 베이커 가에서 흔하게 등장하지는 않는 샴페인이 손님들의 손을 도는 중이었다. 탐정은 잔을 잡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최선을 다해 돌보는 몇 안 되는 친한 여인이 데려온 남자와 악수를 주고받았다. 곁에 그의 플랫메이트가 있고 반가운 사람들이 있고 편안한 풍경이 있어서인지 탐정은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자문 탐정의 벗은 경험을 잘 쌓은 인물이었고 기억력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 지금쯤이면 얼마 정도의 기자들이 모여서 마이크와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을지 대충 짐작할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맞는 또 다른 손님인 셈이었다. 둘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다지 싹싹하다고 할 수 없는 내용이 담긴 대화를 나누었다. 거북할 정도의 따스함과는 거리가 먼 낱말들에 날카로움은 없었다. 전적이 있어 벗의 주먹을 한동안 맞아주었던 탐정도, 그에게 화를 내며 고운 소리를 던지지 못했던 의사도 자신들의 시간을 제멋대로 붙이고 조합해서 2년이라는 틈을 한껏 줄이는 데 합의를 본 것만 같았다.


  탐정은 계단을 다 내려와서 짧게 웃었다. 그는 사람 대하는 데 재주가 없고 때때로 감정을 괄시했지만 웃음까지 말라버린 인물은 아니었다. 탐정은 의사와의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힐끗 옆을 보았다가 자신이 예전에 쓰던 모자를 발견했다. 그는 221B로 돌아오면서 가지고 온 게 새 코트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갖다 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 모자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탐정은 버릇처럼 의문문을 떠올렸다. 뒤에 서 있는 벗은 대답이 없었는데 아마 그 또한 모자에 관한 사항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때 자신이 싫어했던 모자를 가볍게 집어 들었다. 자네는 자네가 셜록 홈즈인 걸 좋아해, 라고 의사의 코로부터 나온 숨소리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탐정은 확실히 자신이 셜록 홈즈라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자신이 베이커 가 221B라는 괜찮은 플랫에 살고 있는 것도 만족했고, 런던에서 꽤 괜찮은 집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도와준 플랫메이트도 마음에 들었다. 그 플랫메이트가 존 왓슨이라는 사실에 관해서 탐정은 정말이지 조금도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탐정이 그만의 동작으로 문을 열었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은 다시금 그들의 자리에 설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