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The Truth is Enlightening
“…아직도 안 갔나? 볼일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셜록 홈즈가 멋들어지게 구부러진 파이프를 입에서 빼며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셜록 홈즈가 입술을 살짝 비죽였다.
“약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지.”
“그 말이 약을 해야만 나를 만날 수 있는 걸로 착각하는 뜻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홈즈는 날카롭게 말하면서 셜록을 곁눈질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지.”
홈즈는 아무에게나 의자에 앉을 걸 권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그도 결국엔 셜록 홈즈이기 때문이었다. 셜록은 자신의 플랫에 있는 것보다 화려하고 크기도 좀 더 큰 것 같은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나한테서 뭘 ‘찾고’ 싶은 건지 말해봐.”
셜록은 그 표현이 반만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더 올바르게 말하자면 확인하고 싶은 거야.”
“어쨌든 당장 네 자신에게는 희미하게 느껴지거나, 혹은 아예 없다고 느껴지는 거겠지. 좋아, 불편한 얘기를 먼저 하는 게 편한가?”
“얼마든지.”
셜록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홈즈는 그를 힐끗 보았다가 파이프를 완전히 원형 탁자에 내려놓았다.
“너는 절대로 모리아티를 지워낼 수 없어.”
셜록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셜록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알고 있었고, 홈즈는 그러한 셜록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앎과 행동은 구별된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아는 것을 몸과 목소리에 불어넣어야 하는 순간이 꽤나 아주 많다는 것을 셜록 홈즈는 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자기 자신의 목숨으로 너를 죽일 수 있는 자는 모리아티밖에 없을 거야. 그는 최초이자 최후의 충격이고 그렇기 때문에 강력하지. 모리어티는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목숨을 소비했지만, 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그는 너를 압도했지.”
홈즈의 말은 일종의 진술이었고 서술이었다. 셜록은 조용히 그것을 들었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너를 공략해. 어떤 때는 네 스스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던지기도 하고, 그 자신이 일찌감치 뿌려놓은 유산으로 너의 뒤통수를 치지. 그는 영원히 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여차하면 직접적으로 네 의식에서 폭죽을 터뜨려. 그는 그렇게 해서 많이 이겨봤거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겨볼 작정이지. 너를 상대로.”
셜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본 홈즈가 갑자기 어조를 바꾸었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해, 셜록 홈즈. 입 밖으로 말해봐.”
“…모리어티는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어째서?”
“그는 나 혼자 해결하고 없앨 수 없는 무엇이니까.”
“어째서?”
“내가 컴퓨터라면, 그는 형태를 바꾸면서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유영하는 바이러스와 같으니까.”
“그리고?”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상대하지 못해.”
19세기의 셜록 홈즈는 21세기의 디지털 언어를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그는 셜록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말을 하면서 불필요하게 입술을 씹고 단어를 신경질적으로 끊어놓는 걸 지적하지 않았다. 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셜록이 눈을 떴다.
“꼭 마이크로프트처럼 말하는군.”
“나는 일부러 셜록 홈즈로서 너에게 말하고 있는 거야. 마이크로프트는 너와 동등하지 않으니까.”
셜록은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홈즈가 잠시 말을 쉬었다가 물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더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지?”
“물론.”
셜록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보다 똑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의 일면을 표상하는 데 이용당하고 만다는 것은 셜록 홈즈가 외면하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홈즈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존 왓슨도 어떤 의미에서는 모리아티와 비슷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져야 해.”
셜록이 눈썹을 찡그렸다.
“존을 왜 그런 놈이랑 비교하지?”
“네 자신이 그 두 사람을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비슷한 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잖아.”
“내가 존은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그걸 최대한 피하려고 하지. 존은 너에게 도움을 주지만 너는 존에게 피해를 주니까.”
홈즈의 목소리는 너무도 따끔했다.
“내가 그 두 사람을 함께 언급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그들은 네가 외면하거나 무시한다고 해서 무력해지는 존재들이 아니야. 생각해 봐. 누가 너 같은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고 옆에 있어주려고 하지? 그런 사람은 딱 두 종류야. 모리어티처럼 너를 무너뜨리려 하는 자들, 그리고 존 왓슨처럼 너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자들. 그들은 너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너보다 강력해.”
셜록은 이번엔 눈을 질끈 감았다. 홈즈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홈즈는 모리어티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보다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은 태도로 셜록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가 너를 오만함으로부터 구했지?”
“…존 왓슨.”
“너를 죽였지만 동시에 살린 사람이 누구지?”
“존 왓슨.”
“진정으로 모리아티를 이긴 게 누구지?”
셜록은 맹세코 그 대답을 회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홈즈가 그보다 더 답변을 빨리 말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답은 셜록 홈즈로부터 나왔다.
“존 왓슨이지.”
홈즈가 다시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셜록이 반쯤 눈을 떴다.
“진실이 언제나 따분한 건 아니야, 셜록. 진실은 때론 우리를 일깨워.”
진실이 따분하다는 건 셜록 홈즈 안의 모리아티가 했던 말이었다. 셜록은 거기에 완벽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진실의 가치는 그것 자체가 아닌,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홈즈의 발언이 거짓인 건 아니었다. 셜록 홈즈는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한 마디를 직접 소리 내었다.
“그게 진실의 본래 목적이니까.”
셜록은 완벽하게 눈을 떴다. 천천히 커지고 넓어지는 시선에서 그는 한결 차분해진 셜록 홈즈의 표정을 보았다.
공기가 부드럽게 뒤로 쏠렸다가 앞으로 고르게 퍼지는 걸 느끼며 셜록은 눈을 깜빡거렸다. 차량은 멈춰 있었고 존이 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존이 이리저리 셜록의 동공을 살폈다.
“정말 병원 안 갈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셜록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빨간색 간판이 달린 작은 식당과 철문, 색이 바랜 금색 손잡이가 하나씩 보였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그것은 따분함이나 지루함이 아니라 셜록 홈즈가 언제나 깨닫고 있어야 하며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진실의 일부였다. 셜록 홈즈는 바로 그곳에 있어야 했다.
“아니, 난 집에 갈 거야.”
셜록이 차에서 내렸다. 존은 몸이 무거운 메리를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하고 굳이 셜록이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가는 그 짧은 거리를 함께 했다. 존 왓슨은 그런 식으로 셜록에게 도움을 주었다. 셜록은 그걸 밀어내기보다는 지키는 게 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Original Date 2016.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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