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Sherlco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for cordial
- Written by. Jade
The Fifth Death
셜록 홈즈는 다소 어정쩡한 모습으로 누군가의 묘비 앞에 서 있었다. 시신보다 비석을 마주하는 것이 더 어려운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뱉는 동안 눈을 두 번 깜빡였다.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흡수하고 선별해야 살아갈 수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다소 비효율적인 행동이었으나, 그가 아무리 눈을 오래 뜨고 있어도 그에게 새로운 자극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셜록 홈즈는 보통 사람들처럼 눈을 깜빡이고 반사적으로 뛰는 맥박과 호흡을 내버려두었다.
바람이 불어 셜록 홈즈의 머리카락을 살짝 만졌다. 그러나 바람이 묘비의 어느 구석을 만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그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그 앞에서 셜록은 당연하게도 몇 개의 죽음들을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네 명의 사람을 죽였다. 첫 번째 희생자는 셜록 홈즈 자신이었다. 그는 건물 아래로 훌쩍 뛰어내려서 자신은 아무것도 흘리지 않되 그 진리와도 같은 몫을 남에게 전이시키는 참으로 독특한 살인법으로 그의 화려한 전과를 열었다. 두 번째는 대상의 지위가 꽤나 어마어마했다는 점과 기타 상황적인 요인을 빼면 방법론 자체는 평범했다. 셜록 홈즈는 찰스 어거스터스 마그누센을 총으로 쏴 죽였었다.
눈꺼풀이 인간의 한계에 따라 한 번 내려갔다가 올라가면서 셜록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까매졌다. 더불어 그의 사고도 잠깐 끊겼다. 셜록 홈즈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너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야가 휘청대면 사고도 덩달아 휘청대었고, 또 그것은 시선을 흔들리게 만들어 셜록은 그가 반 이상 외면하고 있던 묘비의 이름을 순간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충격은 셜록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었다. 셜록이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죽음들을 헤아리면서, 존 왓슨을 알맞은 차례에 놓는 것이 그토록 오래 걸렸음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존 왓슨은 셜록 홈즈의 묘비 앞에서 기적을 기원했다. 반면에 셜록 홈즈는 존 왓슨의 묘비 앞에서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모조리 해체하고 있었다.
존은 잘 계산된 사각지대도 없이 셜록과 스무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그 스무 걸음이라는 간격은 사람 하나 서 있지 않은 완벽한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당시 셜록은 텁텁한 화약 냄새나 먼지 쌓인 공기를 마시긴 했어도 머리를 찧으면서 넘어지지는 않았었다. 셜록은 깨끗한 의식 속에서 존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셜록은 존의 짧은 이름조차 부르지 못했다. 존만이 셜록을 불렀을 뿐이었다. 셜록, 도망쳐— 존 왓슨이 그의 마지막 생명을 산화시키면서 짜낸 말은 그것이었다.
아마도 존은 한 쪽 발을 바닥에 붙이면서 동시에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이상한 감각을 감지하였을 것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사라지거나 약화되지 않는 존 왓슨의 용맹한 경험을 촉발시켰을 테고, 존은 빠르게 자신이 처한 사태를 파악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분야에서는 셜록보다는 존이 앞서 있는 탓이었다. 셜록 역시 숨겨진 폭발물을 알아챘긴 했겠지만 존보다 빠르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었다. 폭발물을 건드린 게 셜록이었다면 그는 존을 살려 보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냉정하리만치 지극한 타당성에 의하여 살아남은 셜록은 그 날 네 번째 살인을 감행했다. 그것은 법적으로도 꼼꼼하게 증명된 사실이었다. 제임스 모리어티의 가슴에 박혀 있던 세 발의 총알은 셜록이 가지고 있는 총에 들어가는 탄환과 똑같았다. 셜록 홈즈는 제임스 모리어티의 공식적인 살인자가 되었다.
셜록 홈즈가 죽인 네 명의 사람들 중에서 존 왓슨은 유일하게 그 자신의 비석과 묏자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셜록의 입장에서 그것은 과학적인 명제만큼이나 지당했다. 그가 추모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존 왓슨뿐이었다. 셜록은 그의 눈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존의 묘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셜록은 자신의 멍청함에 혀를 찼다.
셜록 홈즈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오직 존 왓슨의 묘비가 탄생한 과정이었다. 존은 가짜로 죽지도 않았고,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니었으며 주변에 그를 기릴 수 있는 친구들을 가진 한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묘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셜록은 그것이 가진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팽창할 것인지 변화할 것인지 추정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돌머리에 손을 얹는 존을 뒤에서 지켜봤던 건 존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정당한 명분이라도 있었으나, 셜록은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멀쩡할 돌덩이 하나를 왜 보러 온 것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존 왓슨은 셜록의 발밑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폭발물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서 셜록은 불에 타 버린 존 왓슨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다.
셜록이 목을 살짝 들었다. 정말로 그는 입 속의 혀를 움직거리고 있었다. 혀끝에서는 쓴맛이 났다. 존을 위해서 셜록 홈즈와 찰스 마그누센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존이 두 사람 모두를 죽이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셜록의 부족한 부분을 뒤집어쓰고 희생을 하고, 다시 셜록 홈즈는 존 왓슨을 위해서 제임스 모리어티를 죽였다는 조건반사적인 논리가 그 쓴맛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나갔다.
셜록 홈즈는 자신이 모든 걸 감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그것은 인간을 좌절시키는 대개의 진리들처럼 씁쓸했다. 그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쓴맛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셜록 홈즈는 그런 것까지 다 견딜 정도로 인내심이 많거나 자신의 실존에 애착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이성이고 이성은 실존이라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셜록은 그렇게 생각했다.
셜록은 돌아섰다. 그러면서 주저 없이 자신과 맞지 않는 쓴맛을 내던졌다.
Original Date 2015.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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