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1. Walking
저녁을 조금 과하게 먹은 모양이었다. 입술을 말면서 잠시 고민하던 존 왓슨은 문가에 놓아 두는 장우산 하나를 챙겼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꼭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우중충했다. 존은 밤공기를 쐬러 나갔다.
여름밤의 서늘한 기온을 즐기고자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다. 음악도 없이 혼자서 걷고 있는 그는 익숙한 풍경에도 하나하나 시선을 주면서 걸었다.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는 고무 신발을 신은 아이가 치맛자락을 팔락이면서 폴짝였다. 세일 현수막으로 쇼윈도를 가린, 다소 특이한 배치를 유지하고 있는 옷가게가 눈에 띄었다. 가다 보니 그가 이따금씩 찾는 빵집의 아이보리색 간판이 어두컴컴하게 꺼져 있었다. 임시 휴일인데도 아무 쪽지도 붙여 놓지 않은 걸 보니 주인장에게 계획에 없던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음식점 앞에 세워둔 보라색 유모차의 위치를 조절하는 여인이 있었다. 존 왓슨에게도 눈에 익은 유모차였다. 손잡이에 아기가 볼 수 있도록 매달린 인형이며 방울이 달랑거렸다. 멀쩡한 위치에 주차되어 있던 은색 볼보가 머리를 틀더니 반대쪽이라는 것만 다를 뿐 똑같은 자리에 다시 멈췄다. 덕분에 늘어서 있던 차들을 눈여겨보았는데 검은색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주황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운전자는 안에 없는 듯 했고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어느 건물의 경비원쯤으로 보이는 남성이 존과 눈이 만나자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뿐 그가 맡고 있는 건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이었지만, 예의 있게 고갯짓으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존 왓슨이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맞은편에서는 정류장에 홀로 앉아 있던 여자가 버스를 탔다.
존은 걸으면서 어떤 것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어떤 건 조용한 맨홀들을 지났다. 유일하게 피트니스 센터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뼘의 창문도 지났다. 가로등 하나가 유독 나태하게 불이 꺼졌고, 이태까지 영업하는 걸 제대로 보지 못한 한 카페는 오늘도 문을 닫았다. 임대중이라고 푯말을 붙여 놓았는데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빛나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던 하늘은 구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짙어졌다.
베이커 가에서 꽤 떨어져 있는 사거리가 나오자 존은 자신이 생각보다 오래 걸었음을 알았다. 속은 더 이상 더부룩하지 않았다. 존 왓슨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서 방향을 틀 생각으로 신호를 기다렸다.
그는 대게 산책을 하면서 그토록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지 않았다. 오늘 관찰이라는 걸 시도해 본 존은 자신이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셜록 홈즈와 같이 어떤 사실을 읽어낼 수 없으며, 세상은 더 이상 그와 함께 보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Moving
정착할 수 없어 떠돌게 된 이후로 셜록 홈즈는 더더욱 방 정리를 하지 않았다. 그가 때때로 장소를 바꿔가며 체크인을 하는 건 그가 하루 종일 밖에만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날씨가 궂을 때도 있고 인터넷 접속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셜록 홈즈는 이따금씩 방값을 냈고 아무렇게나 사용한 뒤 사라졌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은 언제나 지루하다. 장을 보거나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거나 선반 위의 먼지를 닦는다든가. 그는 애초부터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난해해 보이는 사건들에 집중하고 있을 때 지루하지만 인간적인 일상들에 관하여 신경을 써 줄 파트너가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셜록 홈즈는 예나 지금이나 동거인이나 친구를 곁에 둘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대부분 신문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들여다보았다. 흥미가 도는 사건을 찾기 위해 끝없이 지루하고 사회적이며 인간적인 밖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공평했다. 셜록 홈즈가 세상을 마치 그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수단으로 여기면서 훑어 내리는 냉정한 시선을, 그 거대한 유기체 역시 아무런 감정 없이 돌려주었으므로.
그가 이 호텔방에 머문 지 삼일이 지나고 있었다. 여분의 수건은 모조리 동이 났으며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모든 공간이 난잡했다. 그는 물건들에 깊이 눌려있던 메모 하나를 겨우 끄집어냈다. 종이 한 장을 다 채워 적었던 호텔들의 이름이 상당수 지워져 있었다. 당장 주소가 없는 셜록 홈즈는 곧 자신이 머물 만한 예비 호텔의 명단을 새로 작성해야 할지도 몰랐다.
셜록 홈즈가 책상 바로 앞에 있는 창문을 살짝 밀어 열었다. 런던에서 꽤나 떨어진 지역이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바깥 풍경이 탐정의 사건 현장이 될 여지는 조금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셜록 홈즈는 객실 담당 직원이 아니면서 그의 주변을 정리해주고, 팁을 받지 않는 대신 잔소리를 늘어놓는 이가 있었던 런던의 어느 거리를 떠올렸다. 그 곳이 셜록 홈즈가 살던 곳이었었다.
2013. 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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