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5/이단벤지] Mission: Impossible - Doe's Agency Prologue

- Anything 2016. 6. 23. 15:43 posted by Jade E. Sauniere

- Mission Impossible: Rouge Nation, Ethan Hunt & Benji Dunn

- Written by. Jade


Mission: Impossible - Doe's Agency

미션 임파서블: 도스 에이전시




[0. Prologue]



  놀랍게도 모든 것들이 정상에 속할 만한 궤도를 돌고 있는 시기였다. 정직하게 발전을 꾀하는 시민들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고 그것이 싫은 자들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와 비슷하게 눈 먼 열정은 테러리즘에 귀를 기울였으며 각 나라의 첩보 기관은 그것을 소탕하러 다녔다.


  이단 헌트는 그 일상적인 작용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온갖 언어들이 더운 공기에 섞여서 이단의 몸 구석구석에 붙어댔다. 이단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의 위치를 살짝 바로잡았다.


  “사람이 예상보다 많은데.”


  마닐라의 몰 오브 아시아 인근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붐비는 지역이라고 꼽힐 만한 곳이었다. 이단은 선글라스에 감지되는 수많은 열점들을 소거하지도 못하고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사방으로 빼곡하게 달라붙은 쇼핑센터와 관광호텔, 각종 음식점과 은행들이 도심의 혼란을 더했다. 


  —이쪽에서도 정확한 위치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어쨌든 관광객들하고 테러리스트는 여러모로 다를 테니까. 


  이단이 있는 곳으로부터 1만 4천 킬로미터는 떨어진 땅에서 벤지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실감나게 들렸다. 이단은 그동안 한 무더기의 관광객들을 피해 거대한 사무용 빌딩 근처에 섰다.


  정확히 어느 장소에서 사건이 벌어질지도 파악되지 않았음에도 이단이 필리핀까지 파견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된 명칭조차 알려져 있지 않아 정보부 사람들에게도 그저 ‘도스 에이전시(Doe's Agency)’라고만 불리는 정체불명의 무력 조직이 이번에는 필리핀의 반정부 세력을 도울 것이라는 첩보가 IMF 측에 도달했다. 그동안 계획적으로 각 나라의 반정부 세력들을 도우면서 내전과 국내외 테러를 조종하고 다녔던 도스 에이전시의 계획의 내막이 이토록 자세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고, 기회를 잡은 IMF는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요원을 현지로 급파했다. 임무 현장에서 이단 헌트보다 유능함을 발휘하는 이는 없었다. 


  과연 이단의 눈동자가 좁아졌다. 그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빌딩의 이름을 숙지한 뒤 스마트폰으로 그것을 검색해보았다. 빌딩 임대업체의 영업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였다. 


  “벤지, 알아봐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음? 뭔데?


  이단이 양손으로 선글라스를 잡으며 말했다. 


  “서브코프 오피스 솔루션이라는 빌딩을 임대하고 있는 기업체가 있는지, 몇 층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지 좀 알려줘.”


  빌딩의 유리면과 이단의 머리카락에 나란히 쏟아지고 있는 빛은 오후 7시를 앞두고 점차 가물가물해지는 하루의 황혼이었다. 이단은 이미 반쯤 빌딩에 잠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8층과 9층은 임대 본부고, 일단 아무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층만 불러줄게. 4층, 11층, 13층….

  “13층을 쓰는 데가 아무도 없어?” 

  —없어. 왜?

  “13층 창밖에 불빛이 한 번 지나간 걸 봤거든.”


  이단은 건물에서 한 차례 멀찍이 물러난 뒤 휴대용 적외선 장비가 발휘할 수 있는 범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아무에게도 팔리지 않은 층에 서너 명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닐라 지부에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어. 5분 내로 간댔으니 조금만 기다려.


  이단은 벤지의 충고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빌딩의 정문이 잠겼는지 아닌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었다. 이단은 순수한 의도를 담아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 꼭 이단의 그 단순한 손짓이 폭탄에 불을 붙인 것만 같았다.


  상점에 멀쩡하게 붙어 있던 쇼윈도들이 터져나갔고 호텔의 정문에 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벨보이들도 충격파에 몸을 휘청거리거나 아예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삽시간에 주인을 잃은 쇼핑백들이 거리를 굴렀으며 각 건물들에 설치되어 있는 방범 시스템이 놀라 경보음을 울려댔다.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폭발에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한편 목숨을 건졌음에 안도했다.


  오직 이단만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했다.


  —이단?


  0.1초의 오차도 없이 건너편의 상황을 전달해주는 이어플러그 덕분에 벤지는 폭탄이 터진 순간부터 떨리는 목소리로 이단을 부르고 있었다. 


  —이단, 괜찮아? 이단? 응답해. 이단!


  백화점은 아직 연기에 덮여 있었다. 마침 세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수도 경찰서로부터 경찰들이 허겁지겁 출동했다. 피해자 겸 목격자들이 황급히 경찰들에게 폭발이 일어난 지점을 일러주었다. 왼편에서는 소방관들이 폭탄이 일으킨 불길을 잡으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순간 마닐라의 심장부는 통째로 살아 있는 자가 동작을 멈춰서는 안 될 곳이 되었다. 미국 땅에 있는 벤지조차도 그 규칙을 존중하고 있는 마당에, 이단 헌트만이 죽음의 진공 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단!!


  이어플러그가 툭 떨어졌다. 벤지는 그 때까지도 이단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플러그가 폭발 현장을 벗어나려는 인파에게 짓눌리자 벤지는 이단을 위해서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마저 박탈당했다. 



* * *



  —필리핀 경찰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반정부 일원의 자살폭탄테러로 규정했습니다. 현장에서 반정부 단체의 문신을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대사관 측에서는 미국인 부상자는 8명이며 사망자는 없다고 집계했는데 부상자 명단에서도 그쪽 요원은 찾을 수 없었고 시신 역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경찰들이 모은 목격자들의 증언에 백인 서양 남성이 주변에 있었다는 얘기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인상착의가 그쪽에서 알려준 것과 동일합니다.


  브랜트는 의자에 편히 앉지도 못한 채 화상 통신으로 연결된 CIA 마닐라 지부의 보고를 들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벤지도 브랜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속 수색은 해보겠지만 끝까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폭발 지점에서 너무 가까이 있었던 나머지 시신을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거나, 어찌어찌 살아서 몸을 피했다는 거겠죠.


  “…필리핀 경찰은 폭발 지점을 어디로 보고 있습니까.”


  브랜트가 간신히 물었다. 


  —서브코프 오피스 솔루션 빌딩에서 동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길목입니다.

  “알겠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즉시 전해주세요.”


  화면이 꺼지고 벤지가 몇 분 전까지 들여다보던 인터넷 브라우저 창이 드러났다. 마닐라 테러 사건을 다룬 기사들이었다. 브랜트는 침묵했고 벤지는 조용히 의자를 돌렸다. 


  “10m면 살아 있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폭탄의 위력이 어마어마했잖아. 이단이라도 그걸 피해 살아남는다는 건 어려웠을 거야.”

  “그럼 이단이 죽었다고?”


  벤지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브랜트가 입매를 딱딱하게 굳히고 벤지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입술만 깨물었다. 


  “우리 쪽에서도 필리핀에 사람을 보내야 해.”


  브랜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벤지는 그가 자신의 말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국장이 해외로 출장 가는 건 현장 요원이 나가는 것보다 절차가 복잡하겠지? 내가 가볼게.”


  벤지의 뒤통수에 떠올라 있는 기사에는 하필 쑥대밭이 된 현장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브랜트는 눈썹을 움찔하는 것으로 우연에 불과한 그 불길한 조화를 떨쳐냈다. 


  한 시간 뒤 직원 한 명이 벤지의 책상 위에 마닐라 행 비행기 티켓을 올려놓았다. 



* * *



  눈을 뜰 때 개운함이 아닌 고통을 느낀다는 건 첩보 요원들에게 들러붙는 또 하나의 직업병과 같았다. 이단은 오랜 친구처럼 자신의 머리를 덮쳐오는 두통을 밀어내면서 눈을 떴다. 눈꺼풀의 움직임은 의외로 뻣뻣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머리나 이마에 부상을 입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 누군가가 대신 피를 닦아준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이단은 자유로운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아래를 바라보았다. 손과 발이 모두 침대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이단은 다시금 자신에게 조건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벤지나 브랜트, 루터 정도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두 팔을 몇 번 흔들어보다가 푸스스 흩어지는 숨을 쉬며 내려놓았다.


  때맞추어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들어오다가 눈을 뜬 이단을 보고는 근처의 전자시계로 다가갔다. 이단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20분 뒤에 시계가 울리도록 알람을 맞춰놓고 쌩 나가버렸다. 


  이단이 멍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고문 도구와 자신을 윽박지르는 소리가 없으니 미묘하게 껄끄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일단 정체 모를 20분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방에 들어올 것 같지 않았으므로 이단은 열심히 주변에 흩어진 정보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선 손과 발을 옥죄고 있는 수갑의 종류 자체는 남다른 것이었다. 이단 헌트라도 열쇠 없이 그것을 풀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이단은 자신을 잡아온 족속들이 색다른 속셈을 품고 있다고 추리하며 뒤이어 방의 내부를 살폈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카트 몇 개가 눈에 띄었는데 이단의 위치가 낮아서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공기 중에서는 깨끗한 냄새가 났다. 꼭 심혈을 기울여 소독된 병실이나 수술실에서 맡을 수 있을 법한 향이었다. 


  이단이 상체를 확 일으켰다. 그는 쇳덩이들이 자신을 부여잡는 힘을 허리의 근력으로 떨쳐내면서 제일 가까이에 붙어 있는 카트에 들어있는 물건을 보려 애썼다. 약병의 뚜껑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눈두덩에 걸렸다. 이단은 그것만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상황을 간파했다.


  시계의 액정에 떠올라 있는 숫자는 속절없이 줄어갔다. 이단의 몸짓도 그만큼 격해졌으나 수갑은 풀리지 않았고 그가 묶여 있는 침대도 뒤집어지지 않았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15분이 흘렀을 때 스마트폰보다 훨씬 정교해 보이는 장비를 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이단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그들을 쏘아보았다. 역시나 그들은 곧장 이단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직 5분 남았습니다.”


  이단의 시선이 목소리가 향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하얀 벽면만큼 무정한 동공은 이단과 그의 뒤쪽에 있는 사물을 똑같은 태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시작해.”


  그 짧은 한 마디로 인하여 이단은 본래 20분 동안 쥐고 있을 수 있었던 자신의 의식을 빼앗기고 말았다.



* * *



  터미널에는 여전히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필리핀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이 지역의 명소로 꼽히는 쇼핑센터 따위로 연결되는 통로들을 지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수준이었다. 벤지는 크로스백을 잡고 칫롬 역의 서쪽 출구로 나왔다. 


  마닐라의 관광지에 처음 와보는 벤지는 해외 관광객들이 테러 사건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대로 택시만 잡아 타면 25분 안에 이단 헌트가 그에게 남겨 놓은 마지막 위치를 들를 수도 있겠지만 벤지는 입을 다물고 방향을 틀었다. 그는 CIA 마닐라 지부에 가야 했다.


  벤지는 역에서 내린 즉시 자신과 협력할 CIA 요원과 한 차례 통화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므로 벤지는 당연히 그 요원과 건물 앞에서 만나 화상 통화로 전달하지 못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지부의 활동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조사를 해야 하는지 안내를 받을 거라고 짐작했다. 벤지가 특별히 잘못 추정한 구석은 없었다.


  수도의 핵심인 지역이라서 그런지 인도가 넓었고 그 형태 또한 단순했다. 걸음을 망설일 이유가 없는 벤지는 빠르게 목적지와 가까워졌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에 정보부 요원처럼 생긴 남자가 없는지 몇 번 고개를 휙휙 돌렸다. 동시에 그는 계속 걷고 있었다.


  벤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이단 헌트의 동료로서 길러진 감각이 세밀하게 무언가를 알려왔다. 벤지와 CIA 지부가 위치한 건물 사이의 거리가 400m 남짓 남은 무렵이었다.


  잠시 후 벤지는 오감으로 폭발을 느꼈다.


  세상이 순간 진동했고 귓구멍에는 끔찍한 소음이 들어찼으며 결백함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벤지는 몸을 웅크렸다. 달리던 자동차 몇 대가 화들짝 놀라 인도를 침범하기라도 했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옆걸음을 놓으면서 벤지를 밀었다. 벤지는 머리를 감싼 자세 그대로 반쯤 기울었다. 


  엉겁결에 벤지는 연기의 중심에서 비켜나게 되었다. 그는 마네킹 흉내를 내고 있는 것처럼 굳어버린 직원이 지키는 의류 매장을 한 번 쳐다본 뒤에 눈길을 돌렸다. CIA의 일부가 불에 타고 있었다. 그 강렬한 자극은 벤지의 머릿속에 들어와서 하나의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벤지는 마닐라에 오자마자 막연히 세계의 혼돈을 일으키는 문제적 조직이라고만 불려 왔던 악령 같은 조직의 목적을 알게 된 것이었다.


  벤지는 미국 중앙정보국을 노리는 자들이 그것이 키워낸 최고의 인재를 훔쳐갔다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몰랐다. 




Original Date 2015. 08. 25.



[M:I5/이단일사벤지] Recruiting

- Anything 2016. 6. 23. 15:42 posted by Jade E. Sauniere

이단은 끊임없이 수신음과 불빛을 내보내고 있는 통신기를 외면하지 못하고 귀에 이어플러그를 꽂았다.


  “왜?” 

  ―왜라뇨? 현장에 나가 있는 요원 귀에 찰싹 달라 붙어있어야 하는 게 제 일인데!


  벤지가 이단의 귓구멍에다 잔뜩 투덜거림을 부었다. 이단은 한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웃었다. 그가 코너를 돌자 드러난 길목에는 바깥에 의자와 테이블들을 빼곡하게 늘어놓은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어디 위험한 곳을 가는 것도 아니고, 친구 만나러 가는 거랑 똑같으니까. 그렇다고 가라는 건 아니야. 벤지, 듣고 있지?”

  ―그럼요. 제인에게 안부나 전해주세요.


  벤지의 목소리가 이단의 발걸음만큼이나 가벼웠다. 이토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임무가 어디 있었냐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벤지의 모습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단도 처음으로 자석이나 티셔츠 같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을 편안히 지나쳤다.


  의회에 의해 IMF가 강제로 해체되고 CIA로 흡수될 당시 이것에 불만을 품고 기관을 떠난 사람이 루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수의 고급 인력이 의회 결정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사표로 시위 아닌 시위를 했고, 그 결과 정작 부활한 IMF는 CIA 내부에 숱하게 깔려 있는 태스크포스 팀보다 적은 인원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윌리엄 브랜트 부국장이 남아 있는 요원들에게 내린 첫 번째 지시는 이른바 옛 동료들과의 재회를 통해 그들을 IMF로 다시 불러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단은 건물에 붙어 있는 파란색 도로명을 확인하다가 루브르의 피라미드와 연결되어 있는 성곽을 보고서 눈썹을 으쓱했다. 제인은 파리에서 사는 동안 가장 호화스러운 조깅을 즐겼을 게 틀림없었다. 이단은 그녀를 만나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전화는 안 해볼 거예요? 집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전화번호 불러줄까요?

  “나는 제인을 조금 놀래주고 싶었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요. 그러니까….


  이단은 별수 없이 걸음 속도를 약간 조정했다. 이단과 제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사이의 거리는 그가 열다섯 발자국만 걸으면 사라질 듯했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건재했을 때 폭발이 일어났다.


  깨진 유리가 흩날리고, 아파트와 바로 마주보고 있던 작은 엽서 가게의 쇼윈도가 무너져 내렸다. 폭발의 여파로 1층 노천카페에 놓여 있던 야외 테이블들도 뒤엎어졌다. 귀를 막으면서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던 이단은 폭발음이 잦아들자마자 불꽃이 어디서 타오르고 있는지 아파트의 충수부터 셌다.


  ―이단? 이단, 무슨 일이에요? 이단!


  굉음을 들은 이어플러그 너머도 파리의 거리만큼 어수선했다. 몇몇 사람들이 전화기를 두드리고 있었으며 용기 있는 남자들은 연기 속을 파헤칠 수 있는 구멍이 없는지 기웃대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이단은 다른 건물들과 밀착되어 바깥에서 창문의 개수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주거용 건물을 눈으로 계속 분할하고 있었다. 벤지가 또 한 번 이단을 불렀다.


  “…제인의 집이야.”

  ―네? 뭐가요?

  “누군가 제인의 집을 폭파시켰어.”



Mission Impossible: Rouge Nation - Ethan, Benji and Ilsa Faust

Written by. Jade


Recruiting



  경찰차와 구급차는 사건이 발생하고 6분 만에 나란히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차에서 내리는 대원들은 제복 차림에 가슴에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이단은 일부러 더욱 다급하게 건물 주변을 오가다가 표정을 가장 자연스럽게 굳히고 있는 남자를 붙잡았다.


  “제 친구는 무사한가요?”


  이단의 입술 사이에서 서툴지만 굳이 불어를 고집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발음이 술술 나왔다. 그러자 현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관광 명소의 치안 담당자가 발휘해야 하는 인내심 있는 태도가 튀어나왔다.


  “내부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잠시만 비켜주시죠.”


  경찰은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지만, 이단은 그동안 그의 이름을 외웠으며 허리춤에 달려 있던 무전기를 슬쩍 뺏어 자신의 재킷 안쪽에 숨겼다. 경찰은 그를 두고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면서 먼지와 그늘이 뒤섞인 지점으로 들어갔다. 이단의 얼굴이 순식간에 침착해졌다. 이단은 이어폰을 꺼내 무전기와 연결한 다음 그것을 옷에 달려 있는 가장 깊숙한 주머니에 넣었다. 이단은 루브르 박물관을 넓게 둘러싸고 있는 성곽 안쪽을 향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전해지는 통신에 조금씩 노이즈가 섞였다.


  ―이단?

  “잠깐만.”


  브랜트가 제인의 집이 날아갔다는 소리가 대체 무슨 뜻이냐며 저편에서 벤지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아래층은 확인했나?

  ―네, 사망자는 없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었습니다만 일단 구조대 측으로 보냈습니다.

  ―가스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군. 가스 폭발 사고인 게 확실하겠어.


  이단은 거기까지 듣고 이어폰을 빼버렸다. 그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다니면서 차도 끄트머리에다 무전기를 버렸다.


  “뭔가 이상해.”


  그 말에 벤지가 곧장 맞장구를 쳤다.


  ―그게 사고지만 사고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지금?


  “검시관이 오지도 않았는데 담당 경찰관이 가스가 폭발의 원인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가스 냄새가 심하게 났다면, 제인도 분명히 어디선가 가스가 새고 있다는 걸 알았겠지. 그랬다면 제인은 절대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을 거야. 며칠간은 파리에 있어야겠어. 벤지, 옆에 브랜트 있지? 그렇게 전해줘.”


  ―워어, 잠깐. 이단?


  벤지가 짜증 섞인 비명을 질렀다. 브랜트가 아마 벤지가 끼고 있는 헤드폰의 마이크를 그대로 잡아당기기만 한 모양이었다. 브랜트는 빠르게 이단에게 일렀다.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조건 연락해.


  이단은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플러그를 빼지 않았다. 이단이 지하철역도, 루브르 박물관을 감싼 테두리에서도 완벽하게 멀어지고 나서야 무전기를 잃어버렸던 경찰이 비로소 황망한 표정으로 길가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물건을 주웠다.





  솔로몬 레인은 눈이 피로했다.


  내부의 공기는 제대로 순환되지도 않았고 조명은 언제나 그의 옅은 동공을 괴롭혔다. 그러니 그는 자주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레인이 놓여 있는 곳은 그가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시선을 줄만한 대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모든 여러 가지 이유로 레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양복 입은 남자는 불쾌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정보를 숨긴다고 해서 당신에게 어떤 이득이 생기는지 모르겠군.”


  레인은 눈을 뜨고 앞을 응시했다. 레인을 마주하고 있는 남자는 레인이 단지 영국에 사형 제도가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운은 있으나 쓸모도 의미도 없는 존재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레인은 단호한 재단(裁斷)은 대개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남자를 비웃었다. 그는 그것을 이단 헌트에게서 가장 엄하게 배우긴 했지만, 그것은 이제 레인의 진실이고 무기였다.


  “그 때 이단 헌트가 당신들에게 모든 계좌번호를 다 알려줬다고 확신하나?”


  남자의 눈썹은 분명히 움찔거렸다.


  “그가 계좌번호를 두 개만 숨겼어도 1억 파운드가 넘는 돈이 당신들의 감시망을 벗어났다는 뜻이 돼. 그 정도 자금이면 한 두 사람이 여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

  “애틀리 전 국장이 말했던 26억 파운드는 모두 회수했다.”

  “그는 정보를 봉인한 이후에 한 번도 금액을 확인하지 못했어.”


  남자가 레인을 향하여 몸을 기울였다. 덕분에 레인은 남자의 눈동자에서 피어나고 있는 일말의 의심을 찾아냈다. 의심을 미덕으로 여기는 족속들의 문제점이란 그만큼 무엇을 의심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레인은 남자가 억지로 자신과 가까워지려 한 것을 간파했다.


  “누굴 숨겨주고 있는 거지? 널 대신해서 신디케이트를 부활시키려 하는 자가 대체 누구냐고.”


  남자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강인했다. 반면 레인의 태도는 전보다 더욱 부드러워졌다.


  “당신들에게 의심은 장려되는 덕목이지, 안 그런가?”


  그 시각 이단 헌트는 우편함에서 위조된 신분증을 꺼내고 있었다.





  제인의 아파트가 있던 곳에서 35분 정도 부지런히 걸으면 닿는 번화가에는 파리지앵뿐 아니라 온갖 국적들의 사람이 모이는 라파예트 백화점이 있다. 특히 그곳 1층에서 활동하는 점원들은 무채색의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미인들이라는 너무나 거대한 공통점으로 인해 가끔 외국인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일사가 그곳에서 평범한 인생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조용히 작은 화장품 매장을 돌아다니고 있던 그녀는 거꾸로 꽂혀 있는 립스틱들을 자세히 보고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일사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남성은 영국 출신이라는 것에 그녀는 이 브랜드의 베스트셀러 상품을 걸 수도 있었다. 과연 남성은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가 들려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물할 만한 걸 찾고 있습니다.”

  “어느 분을 위한 선물인가요?”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서 가급적 멋지고 훌륭한 걸 주고 싶군요.”


  남성이 전시용 제품 하나를 꺼내 밑부분을 돌렸다. 그가 신중하게 색깔을 뜯어보는 걸 보고 일사는 자신이 외우고 있는 지식을 다시 머릿속으로 밀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천이 남성에게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중에서 실제로 사용하시는 제품이 있나요?”


  일사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남성은 립스틱을 제자리에 집어넣느라 그녀를 보지 않고 있었다.


  이단이 책상의 측면을 쓸어내리면서 몇 사람을 지나쳤다. 그가 매만진 책상의 주인이 호출을 받고 대원들과 함께 출입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단은 특색 없는 복장에 누런색 파일을 듦으로써 깔끔하게 경찰서의 풍경에 녹아들었다.


  그는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의 안쪽에만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음을 미리 숙지한 덕택에 층계참까지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파일을 펼쳤다. 누출된 가스가 폭발의 주요 원인이라는 조사관의 소견은 뒤로 넘긴 채 이단은 사망자들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부분을 꼼꼼히 읽었다. 폭발에 휘말려 사망한 사람은 총 세 명이었고, 유독 한 사람의 시신이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했다는 서술이 적혀 있었다. 이단은 그가 폭발이 일어났던 근원지에 살고 있었던 세입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시신을 일부러 잿더미로 만들어서 기타 상흔을 가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가능성을 떨쳐내지 못했다.


  남성은 일사가 개인적으로 애용한다는 색깔을 골랐다. 소용돌이무늬가 그려진 원기둥 모양의 립스틱과 나란한 위치에 종이봉투와 끈이 준비되었고 일사는 리본을 묶어서 제품을 간단히 포장했다. 남성이 그녀에게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남성은 아주 예의 바른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일사가 눈을 깜빡였다.


  하얀색 테이블 위에는 일사가 포장을 하고 잘라낸 끈과 함께 지붕 모양으로 세워져 있는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출입구 쪽을 돌아보았으나 백화점 로비 중에서도 가장 관광객들이 붐비는 지점에서 유럽인 남성 하나를 콕 집어 찾아내지는 못했다. 일사는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뒤집어보았다.


  런던에 당신이 회수해야 할 것이 있음.

  일사가 그것이 오직 자신을 위한 메시지라는 걸 깨달았을 때에 라파예트 역 출구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모두가 귀를 막고 정류장을 삼킨 불꽃에 넋을 잃었다. 그 순간 가장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자는 이단이었다. 그렇지만 라파예트 백화점을 목표로 달리는 이단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고, 점원도 없이 텅텅 빈 어느 화장품 가게를 수상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었다. 인간은 그 감정의 기반이 무엇이든 재앙에 혼을 뺏기기 마련이었다.


  일사는 거의 뛰듯이 걸어서 생 라자르 역 근처에 있는 그녀의 작은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그녀는 스탠드를 받쳐놓는 용도로나 사용되던 서랍장을 전부 빼내서 바닥을 분리했다. 판자가 이중으로 덮여 있던 틈에서 여권이며 현금들이 쏟아졌다. 일사는 우선 파리와 최대한 멀어진 뒤에 차근차근 메시지를 파악하기로 하고 짐을 챙겼다. 그녀가 프랑스에 와서 단 한 번도 신지 않았던 검은색 단화가 현관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 그 무렵에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다는 것을 일사는 도저히 우연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사가 문을 확 젖혔다가 밀면서 누군가의 이마를 때린 다음 그를 안으로 잡아끌고 총을 꺼냈다. 언제나 소음기가 달려 있는 총이 한 남자의 등을 꽉 눌렀다.


  “쏘지 마요.”


  침입자가 양 팔을 들었다. 일사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기울였다.


  “…이단?”


  이단이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일사는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하라는 손동작을 짓고는 총을 집어넣었다.


  “사람 둘 태울 수 있는 비행기를 준비해줘. 목적지는….”


  이단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일사를 돌아보았다.


  “…런던이요.”

  “런던으로. 벤지, 너도 오는 게 좋겠어. 일이 커질 것 같으니 장비 잘 챙겨서 와.”

  —파리도 아니고 갑자기 웬 런던이에요?

  “파리에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해서 범인이 꼭 파리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잖아.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 줄 테니까 런던에서 봐.”


  일사는 어쩐지 웃음과 더불어 많은 것을 참고 있는 사람처럼 안면에 힘을 주고 있었다.


  “들었죠? 내가 벤지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일사가 웃음을 흘렸다. 정신없이 구겨 들어간 발의 위치를 똑바로 맞춘 뒤 도피를 위한 짐을 들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가면서 말해줄게요.”

  “좋아요. 아, 일사?”


  이단은 일사가 문을 다 잠그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건강해 보이네요.”

  “…당신도.”

  

  이후의 신속하고도 협동적인 동작들을 위하여 두 사람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작업은 그처럼 간결하고 솔직했다.





  “신디케이트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단은 영국 정보부의 새로운 국장 앞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솔로몬 레인의 뒤를 이으려는 자가 있어요. 이틀 전에 그는 일사를 찾아와서 그쪽에 잡혀 있는 레인을 빼내라는 요구를 하며 라파예트 역을 폭파시켰습니다. 일종의 경고로서 그런 일을 저지른 거겠지요.”


  하늘을 담고 있는 강변을 옆구리에 두고 나눌 법한 대화의 주제로는 상당히 과격한 것들만이 오르내렸으나 누구도 평정을 잃지는 않았다. MI6의 수장은 꼿꼿한 자세로 이단의 발언들을 소화한 뒤에 질문했다.


  “그 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이에 이단보다 일사의 대답이 빨리 튀어나갔다.


  “영국식 억양을 유창하게 구사했고, 제가 만났을 때는 검은 머리를 뒤로 넘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183cm에서 184cm, 30대 중후반의 남성이라는 것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정보로군.”


  일사는 입을 다물고 순순히 물러났고 국장이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이단은 국장이 움직이면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을 분석했다. 폐쇄회로 카메라가 부자연스럽게 눈동자를 돌리는 한편 멀리서 인공적인 반짝임이 발각되었다. 이단은 침착하게 한숨을 참았다. 그의 오른편에 서 있는 또 다른 카메라가 이단을 대신하듯이 건너편의 카메라에게 눈싸움을 걸고 있었다.


  “솔로몬 레인이 자네를 의심해보라고 귀띔했네.”

  “그것 역시 만만찮게 현 상황에 도움이 안 되는 헛소리로군요.”


  국장이 말없이 턱에 주름을 잡았다.


  “만약 레인이 갇혀 있는 MI6의 지하에서 일사의 지문이 발견되면, 그 때는 저희와 함께 일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일사가 놈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으로 레인을 구출하는 계획이 마무리될 리는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레인을 빼내려고 하겠죠. 그리고 그 짓을 일사가 한 것처럼 꾸밀 겁니다. 백화점에서 그 남자가 사간 물건은 겉면이 은색 금속인 립스틱이었고 거기서 일사의 지문을 뜨는 것쯤은 놈에게 일도 아닐 거란 것은 그쪽에서도 납득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일사가 모함을 받으면, 그것만큼 우리의 결백을 입증해주는 증거도 없을 겁니다. 애틀리에게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특기가 파편화된 정보로 두 세력이 서로를 오해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이단은 빠르게 말하면서도 햇빛보다 짧지만 밝은 반짝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국장이 자신의 눈길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읽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눈동자를 고정했다.

 

  “파우스트 요원, 남자가 자네에게 뭘 줬지?”


  빛이 밑으로 쏙 사라졌다. 이단이 속으로 반쯤 긴장을 놓았다.


  “폭발물의 가동 코드와 그것이 작동되어야 할 날짜를 가르쳐줬습니다.”

  “알려줘 보게.”


  일사가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냈다. 그것은 윗부분을 눌러서 사용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볼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꼭 일사가 펜을 꺼내는 행위가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일과 똑같은 것처럼 또 다시 연기는 터지고 말았다. 영국 정보부의 국장이 엉덩이로 의자를 밀며 황급히 일어나는 동작을 취했다는 것만으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감지한 이단이 일사를 바라보았다. 



Original Date 2015. 08. 08



[M:I5/이단벤지일사] Capability to Love

- Anything 2016. 6. 23. 15:41 posted by Jade E. Sauniere

- Mission Impossible: Rogue Nation, Ethan Hunt, Benji Dunn, and Ilsa Faust

- Written by. Jade


Capability to Love 





  “당신은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죠?”


  벤지가 이단에게 물었다. 정당한 이유 없는 거짓말을 하는 걸 무척 꺼려하는 이단은 속절없이 진실을 말했다.


  “…그래.”


  “그런데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나를 밀쳐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모른 척 내 관심을 아낌없이 흡수하면서 답을 해주지도 않았어요.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단은 벤지를 바라보았으나 오래 그 시선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가 벤지에게 속사정을 숨겨야 하는 명분은 존재하지 않았고, 벤지가 이단의 심리적 상태를 안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을 정도로 벤지가 하찮은 이인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이단에게 또 진실을 말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단은 재차 꾸밈없는 서술을 감행했다. 


  “나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 벤지.”


  벤지는 상당히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단에게 그것은 한편으로는 의문의 여지가 너무 많아서 그걸 다 풀려면 한 세월은 걸릴 것 같다는 표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벤지는 검지를 치켜들고 이단의 입을 막은 뒤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줄리아는요?” 

  “내가 그녀를 떠났다는 거 알잖아.”

  “그렇지만 지금도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잖아요. 그렇죠?”

  “…일종의 향수병 같은 거야. 내가 평범했던 시기, 가령 내가 처음 줄리아를 만나서 그녀와 약혼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워하듯이.”


  벤지가 한숨을 쉬었다. 이단은 약간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주 올곧은 모습이었다. 그것 때문에 벤지는 일순간 당황했다. 그의 옆에 아름답고 신뢰할 만한 여성이 견고한 위치를 가지고 서 있는 중이었고, 벤지는 그저 자신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마저 갖지 못하게 되어버리기 전에 입이라도 벙긋거려보자며 이렇게 이단을 부른 것이었다. 벤지는 이단이 방금까지 자신의 귓가에 흘려 넣은 모든 말들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니 벤지도 자신이 달달 외웠던 시나리오 안의 각종 대사들을 모두 집어던졌다.  


  “나는 당신이 사랑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벤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단은 그것을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그는 또 점점 빨라지고 있는 벤지의 목소리도 혼자서 오롯이 듣고 있었다. 


  “당신이 사랑을 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너무 많을 뿐이잖아요. 당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야만 당신만 누군가를 지켜야만 하는 짐이나 위험을 감당하지 않고, 두 사람이 그걸 서로 나눌 수 있으니까요.”

  

  “…벤지.”


  “이단 헌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일만큼 불가능한 임무도 없죠.”


  벤지의 입술은 다 다물어지지도 않은 채 부르르 떨렸다. 그는 웅변이나 연설을 늘어놓듯 이단을 앞에 두고 팔을 올리면서 발을 구르지는 못했다. 이 공간은 뜻하지 않게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정직한 장이 되었다. 벤지는 언어로 자신과 이단의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의 얘기잖아요. 그거 알아요, 이단? 이번에 당신은 정말로 운이 좋아요.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어요. 당신에게는 나와 일사가 있죠. 둘 다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현장 요원들이고요.”


  일사의 이름이 나오자 이단은 짧고 쓰게 웃었다. 벤지는 그것을 보았고, 잠시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당신은 사랑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이 선택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단.”


  자신의 발언권을 모두 소모한 듯했던 벤지의 눈썹이 올라갔다. 벤지는 그에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모호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이 다 알고 있었을 거예요.”


  벤지의 눈이 꼭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이단은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 외에 또 뭘 알고 있어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하길 바라는 거야, 벤지?”

  “거짓말도, 변명도 말고 당신이 읽어낸 걸 털어놔 봐요. 아직까지는 예측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그것들에 내가 사실이라는 딱지를 붙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부디 말해줘요, 이단.”


  벤지는 조금 길게 눈을 깜빡였다. 평소보다는 길지만, 그렇다고 아주 길지는 않은 그 어둠 속에서 벤지는 이단의 음성을 들었다. 이단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끝내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꺼내들고야 마는 그의 멋진 이를 보았다. 그의 뒤에는 긴 머리카락에 예쁜 물결무늬를 넣은 일사 파우스트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러나 벤지가 눈을 떴을 때도 이단은 침묵하고 있었다. 벤지는 뒤늦게 이단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였다. 이단은 벤지가 자신이 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난 아직 누구를 사랑할 수 없어.”


  그 말을 듣고서 놀랍게도 벤지는 웃었다. 이단이 처음으로 꺼냈던 문장과 뜻이 달라졌음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벤지는 그것으로 만족했고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건넸다. 이단은 작게 사라져가는 벤지를 바라보았다. 복도를 걷던 벤지는 고개를 갸웃하는 일사와 만났고,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복도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이단에게 두 사람은 너무도 멀었다. 이단에게는 정확히 누군가를 향하여 그 거리를 좁힐 만한 능력이 아니라 용기가 없는 것이었다. 




Original Date 2015. 08.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