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01.
쿠션을 툭툭 치는 존 왓슨의 뒤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있었다. 존은 경험상 그 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근래에 제일 자주 보는 타인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허드슨 부인.”
허드슨 부인은 존의 한눈에 보아도 휑해졌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게 비어버린 거실을 보고 얕은 숨을 내쉬었다. 존은 처음 베이커가 221B번지에 들어왔을 때도 많은 짐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그가 나가면서 들고 가는 짐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허드슨 부인은 다소 급하게 여기를 점찍어 두었던 곱슬머리의 남자가 들고 왔었던 괴상하면서도 복잡스러운 물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존 왓슨의 배려에 따라 그것들은 상당 부분 베이커 가에 남아있게 되었다.
“이 방은 내가 당분간 잘 관리해 두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우.”
존의 귀에는 그것이 공연히 자신이 언젠가는 베이커 가에 돌아올 것을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존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여길 산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에게 세 주셔도 괜찮아요.”
“아니야.”
허드슨 부인은 때때로 단호한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나도 도굴꾼 같은 놈들에게 방을 내주고 싶진 않거든.”
부인의 표현은 정확하면서도 어쩐지 시원한 느낌을 주는 구석이 있어 존은 짧게 웃었다. 그는 221B의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없어 빈손으로 나가면 되었다. 존은 자신이 열심히 닦고 정리한 집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았다.
“조만간 연락드릴 게요.”
어쩐지 안타까움이 어린 허드슨 부인의 배웅을 받으며 존은 베이커 가에서 나왔다.
2년 남짓 머무른 세입자를 위한 배려치고 허드슨 부인은 존에게 그가 내던 방값, 즉 본래 비용의 반만 내면 된다는 제안을 내밀었고 존은 그에 따라 베이커 가 221B에서 일 년 정도를 더 살았다. 그동안 존 왓슨의 집은 일주일 정도는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깔끔함을 유지해 왔었다. 실상 어지르는 데도 정리하는 데도 관심이 없으나, 전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존에게 자주 두통을 선사해 주었던 플랫메이트의 부재가 일궈낸 깨끗함이었다. 셜록 홈즈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결과물들은 대부분 그런 특징을 갖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편해 보이지만 그것을 누리고 있는 존에게 불현듯 쓸쓸함과 서늘함을 가져온다. 결국 존은 잠시간 베이커 가의 플랫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침임에도 바깥의 하늘은 그다지 환하지 않았다. 존은 우산을 가지고 오려고 몸을 돌렸다가 자신의 우산은 이미 이삿짐에 담겨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존이 베이커 가에 두고 온 것은 셜록 홈즈의 우산이었다. 존은 셜록의 우산도, 허드슨 부인의 우산도 빌릴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으나 그는 다만 걸음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행여나 보도블록에 빗방울이라도 떨어질까 존은 땅바닥을 보면서 걸었다. 주변의 풍경은 그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휙휙 지나갔다. 어떤 날에는 존이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며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산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목적지는 뻔히 정해져 있으니 별 특색도 없는 시가지의 건물들을 볼 이유는 없었다. 존은 걷고 걸어서 자신의 새 집에 도착했다.
존이 221B를 나와야겠다고 다짐했을 무렵에 그가 군복무 직후 들어갔던 플랫이 마침 비어 있었다. 잽싸게 계약을 하고 이삿날을 잡았다. 존은 셜록 홈즈가 옆에 없었던 시절의 방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짐은 대략 정리가 되어 있었다. 존은 마저 자잘한 물건들에게 각 자리를 지정해 준 뒤 안을 쭉 둘러보았다. 플랫에 구비되어 있는 책장이 썰렁해 보였다. 존이 자주 보았던 책장에는 먼지 낀 양장본들부터 지도책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적들이 꽂혀 있었고, 존은 무의식적으로 익숙함을 좇아 서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집을 나가면서 존은 미처 들여 놓지 못했던 신문을 현관 안으로 휙 던졌다. 더 이상 셜록 홈즈가 나오지 않는 신문이었다.
⁂
런던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힌 셜록 홈즈는 베를린의 허름한 아파트 안을 뒤지고 있었다. 근처에는 그가 발로 치워버렸을 게 분명한 남자가 의자에 두 팔을 고정당한 채 고개를 푹 숙이며 자고 있었다. 셜록은 책을 하나하나 꺼내 그 안을 넘겨보면서까지 내부를 단단히 수색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통과한 메모지나 종잇조각 등이 크로스백 안으로 쏙쏙 들어갔다. 그 안에 제일 먼저 들어간 건 셜록이 남자를 재우기 전에 끄집어냈던 말들이 녹음된 테이프였다.
셜록 홈즈가 다소 독특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인정하게 된 한 가지 진리란, 추적자의 입장에 세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부류는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뒤를 전혀 쫓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이가 유령처럼 나타나는 건 타깃에게 혼란을 주는 최고의 방법 중에 하나였다. 런던에서 화장까지 마친 셜록 홈즈가, 주사기를 들고 방문 앞에 서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지나친 상상력의 소유자들은 이태까지 없었다. 다신 없을 자문 범죄자의 선택을 받았던 악당들이라고 해도 그런 부분에서는 정상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그런 고로 셜록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투명 망토처럼 걸치고 다니면서 유럽을 누빌 수 있었다.
셜록이 한창 네 번째 서랍의 밑바닥을 조사하고 있을 때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암살자가 임시 거처에서 손님을 맞을 희박한 확률을 계산해 본 셜록은 이윽고 뒤도 안 돌아보고 대답했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하루의 사 할은 셜록 홈즈를 추적하는 일에 쏟아 붓고 있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래서 이 자가 마지막이니?”
“내 명단에서는.”
마이크로프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의 동생은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할 틈을 뒤지느라 먼지를 애써 내쫓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누가 보면 암살자 쫓는 탐정이라기보다는 화가로 착각하겠구나.”
셜록이 걸친 크로스백 바깥으로는 챙 달린 모자가 튀어나와 있었고, 등에는 사선으로 검은색 껍질에 둘러싸인 지관통이 매져 있으니 마이크로프트의 비유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암살자가 묶인 의자를 더 멀리 밀쳐내고 셜록의 옆으로 왔다.
“존이 베이커 가를 떠났다고 해.”
셜록은 대답 대신 날리는 먼지에 콜록거렸다.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아직은 안 돼.”
아예 눈살을 찌푸려야 할 만큼의 먼지가 휘날리자, 셜록은 어쩐지 암살자의 집을 청소해 주는 기분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셜록 홈즈만큼 변수를 염두에 두는 자가 아니고서는 손도 대지 않을 곳에 때 아닌 빛이 들어왔다.
“…내가 일부러 존에 대한 얘기를 아껴 왔다는 건 알고 있을 거야.”
“존이 나를 계속 추억하고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추억이라고 표현하기엔 모자를 지도 모르지.”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셜록과 하는 대화는 자주 끊겼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는 그의 표정에서 응답을 읽어내고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다.
00-1.
병원 안에서는 때로 기적이 일어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죽음도 발생한다. 유독 병원의 하얀색이 음산하고 파리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적갈색 머리를 묶은 얇은 체구의 여인을 보고 반가운 생명의 냄새를 맡을 지도 몰랐다. 아쉽게도 그녀는 죽은 사람을 다루는 데에 더 익숙했지만 말이다.
근무 중에는 대개 포니테일을 선호하는 그녀의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의 취향만큼이나 뻔뻔하게도 변한 것 없이 그 자신을 유지하는 듯한 남자가 있었다. 여인은 그가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놀라서는 고개를 퍼뜩 들고 목에 힘을 주었다.
자신이 스스로 추락했던 병원에 나타난 셜록 홈즈가 실은 죽지 않았음은, 지금 몰리 후퍼에게 굉장한 위안이 되고 있었다.
“…여, 여긴 어쩐 일이에요?”
“잠시 런던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잘 지냈는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셜록 홈즈는 그만의 고유한 코트를 버리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셜록이 자신을 대신해서 땅 밑으로 들어간 시신이 그것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걸 잊어버렸을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몰리는 오싹한 그의 옷차림에도 다른 이유가 있겠지 싶어 어영부영 넘겼다. 그 때까지도 몰리는 남자의 등장에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므로 별 영양가 없는 말을 꺼내며 시간을 벌었다.
“내가 오늘 당직인 건 어떻게 알고요?”
“전에도 화요일에는 대개 당직을 섰잖습니까.”
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사실을 당연하게 툭툭 내뱉는 것은 셜록 홈즈의 큰 특징이었다. 그가 자신의 포니테일만큼이나 변한 게 없음을 차츰차츰 깨달아가자, 몰리는 오히려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었다. 셜록은 발을 한 발짝 옮겨서 내부를 슥슥 살폈다. 머리가 조금 진정된 몰리가 겨우 입가에 웃음기를 얹으며 말했다.
“홈즈 씨가 내 안부를 물으러 올 때도 다 있네요.”
이에 셜록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여기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 안에 왓슨 선생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게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네요.”
거리낌 없이 말해놓고 몰리는 자신의 발언에 도리어 놀란 모양이었다. 끔찍하게 지루하거나 즐겁지 않은 이상 극적인 표정 변화를 연출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셜록 홈즈는 담담한 표정으로 몰리를 바라보았다. 몰리는 애매하게 웃다가 어느 순간 입꼬리를 확 내려버리고 말았다. 셜록이 의외로 몰리를 보고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그녀는 얼떨결에 용기를 얻었다.
“저는 사실 왓슨 선생님이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어슬렁거리던 셜록의 발걸음이 멎었다.
“왓슨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당신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죠. 지금도 셜록 홈즈의 역사가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해 화를 내세요. 런던에서 할 일이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를 만나러 올 정도면 베이커 가에 들를 여유 정도는 있었겠죠. 뭐든 잘 아시는 분이니 아마 눈치를 챘을 거예요. 그는 누구보다도 셜록 홈즈가 병원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걸 믿지 않아요.”
이상하리만치 셜록은 침묵했다. 몰리는 반쯤은 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입술에 약간 난처한 듯,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격려하고 싶어 하는 듯한 오묘한 미소를 만들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몰리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면서 셜록을 똑바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시신에 아무런 손도 못 댔어요. 얼굴이 땅에 엎어진 상태여야 했고 그래서 안면을 흉하게 망가뜨려 놨기 때문에, 왓슨 선생님이 그 시신을 셜록 홈즈라고 생각할 만한 단서는 기껏해야 당신이 자주 입는 그 코트나 목도리 정도였다고요. 그런데 왓슨 선생님은 저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검사도 요청하지 않으셨어요. 솔직히 털어 놓자면 저는 힌트라도 드렸을 거예요. 그 당시 왓슨 선생님의 표정에는 모르는 사람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당시 셜록은 그가 칭찬할 만한 정부 관료의 유능함을 보여주면서 그를 그림자 밑으로 숨겨 주었던 마이크로프트 홈즈에게 지나가는 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었던 것 같다. 셜록은 자신의 묘비를 찾은 존 왓슨을 살짝 엿보기도 했었지만, 그는 그 때 죽고 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플랫메이트를 볼 수 있었다. 셜록은 존의 곁에 당당히 존재할 수 있었던 산 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저는 여전히 홈즈 씨가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그걸 내어 드릴 의향이 있어요.”
몰리가 잠시 입술을 축이느라 방 안이 조용해졌다. 셜록은 이럴 때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생각했는데, 몰리가 그보다 빨랐다.
“빠른 시일 내에 돌아가세요. 저는 이 말이 홈즈 씨를 돕는 거라고 확신해요.”
몰리는 그렇게 말하고 켜져 있는 스탠드와 스위치가 켜져 있던 현미경 등을 하나씩 끄기 시작했다. 셜록은 그녀가 당직을 설 때 퇴근하는 시간도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그 무렵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몰리의 행동은 셜록을 내쫓기 위함이 아니었다. 셜록은 문을 조용하게 닫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나 셜록 홈즈는 그 날 베이커 가 주변도 지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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