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James Kirk
- Written by. Jade
The Finale
의료 실장 개인 일지, 우주력 2260. 55
항해 중인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니지만 문득 직위가 복원된 이후로 한 번도 일지를 작성한 적이 없다는 게 생각났다. 사실 배멀미만 제외한다면 스타플릿에서 일하는 건 꽤 괜찮은, 아니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짐이 행여나 이걸 읽는다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낄낄거리겠군.
확실히 오랜만에 일지를 쓰는 게 맞긴 맞는지, 그동안 적어두지 못한 많은 일이 있었다. 엔터프라이즈가 임명된 새로운 임무를 위해 의료 물품이나 추가되어야 하는 장비들을 승인했다. 주삿바늘에 도무지 정을 붙일 줄 모르는 대원들을 달래서 정밀 검진을 받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특별할 게 없는 업무고 당장 그걸 기록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래, 재판소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칸 누니엔 싱은 스타플릿이 자신을 착취하기 위해 벌였던 만행들을 남김없이 고발했고 이에 일부 책임이 있는 인물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자신의 진실을 꽉꽉 메웠다. 짐과 스팍, 내가 잇따라 지목되었고 모두가 증언하길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복수는 그가 설명했던 것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다. 다시금 욕심에 눈이 먼 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이제 스타플릿에 휘둘릴 만한 마지막 족쇄도 풀어진 자신을 제 손으로 냉동시켜 다시는 인간들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까지. 그리고 칸은 그가 그러한 결심을 내린 과정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췄다.
그가 피해자의 입장으로 스타플릿의 수뇌부를 심판대에 올린 것과는 별개로, 오늘 켈빈 기록 보관소의 폭발에 휘말려 사망한 희생자들과 다른 사망자들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제복을 차려 입은 이들이 스타플릿을 상징하는 엠블럼이 새겨진 하얀 기를 접었다. 절도 있지만 그렇다고 냉철하지는 않은 동작이 고요하게 엄숙함을 자아냈다. 장교들은 오늘만큼은 서로의 부서를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한 단체에 소속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단상에 선 제임스 커크 함장에게 모여 있었다.
“때로 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우리는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우리 자신의 악을 끌어내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레너드 맥코이는 행사에 참석하기 전에 본부의 통제 구역에 들렀었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소수가 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임무를 묵묵히 격려했다. 최후의 자유를 머금고 있는 칸 누니엔 싱이 그를 돌아보았다. 칸은 대법원 근처로 이송되어 감시를 받느라, 맥코이는 증언을 마치고 탐사 준비에 시간을 뺏기느라 둘은 이제야 재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대기하고 있던 과학자 하나가 조금은 안절부절하게 곁눈질을 하고 있어 맥코이는 그를 내보냈다. 이치대로 모든 걸 되돌리는 일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맥코이가 말없이 캡슐의 전원을 켰고, 칸이 누울 슬라이드가 위로 튀어나왔다. 그가 슬라이드 위로 올라갔다.
칸의 적법한, 혹은 잔인한 숙청으로 뼈대만 남은 스타플릿의 모든 구성원을 향하여 커크 함장은 그들이 본래 가져야 마땅한 가치를 역설했다. 동정 받아야 할 사람은 동정 받고, 잠들어야 할 사람은 잠든다. 맥코이는 커크의 말을 들으면서 의사이지만 또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유지하고자 했던 바를 회상했다.
“이제는 정말로 네가 깨어날 여지는 없을까.”
계기판의 버튼을 하나씩 짚어가는 맥코이의 움직임이 느렸다. 맥코이의 목소리도 느렸다.
“나에게 아무런 거짓 없는 자유를 주고 싶어 하는 인간이 생긴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절차만 거치면 영영 닫혀 버릴 칸의 청록색 안구가 평온하게 맥코이를 응시했다. 맥코이는 마지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러자 칸이 먼저 눈을 감았다.
이것은 죽은 이들을 위한 모임이자 연설이었으므로 박수나 함성은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미동을 멈춘 저마다의 눈동자가 더욱 성숙해질 스타플릿과 그 중심을 맡을 제임스 커크에게 신뢰를 보냈다.
칸은 그것을 끝으로 완전히 잠들어버렸으므로, 맥코이는 어둠밖엔 회상할 것이 없었다.
어떠한 정치적 맥락도 없이 엔터프라이즈는 탐사선으로서의 제 위치를 회복했다. 나를 비롯한 함선의 승무원들은 5년간 지구가 아닌 행성들을 디디며 우주의 수많은 생명체들과 공존할 길을 꾀할 것이다. 실상 그 여정은 칸의 요구를 포용하며 시작된 거나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불현듯이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의 자유를 인정할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5년이 누군가의 변화를 자극할 수 있을까.
…일지 기록 종료.
* * *
눈을 뜨는 행위는 오히려 그에겐 비정상적으로 다가온다. 300년 동안 어둠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 빛이 오히려 백색의 꿈같다. 캡슐 속으로 복귀하면서 이 동결 만큼은 죽음 뒤의 진공 상태가 될 것임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그는 다시 무언가를 응시할 수 있게 된 현실에 다소 의아해했다. 칸은 새파란 매입등을 가리는 인간의 그림자를 보았다.
세 번째로 맞이하는 각성은 유독 특이했다. 그는 맨 처음에 값어치 있는 유물을 발견한 듯한 마커스를 만났고, 그 다음은 자신이 소멸시키려 했던 스타플릿의 핵심 인원이 겨누는 총구와 직면해야 했었다. 칸이 남아 있는 몽롱함을 떨쳐내기 위해 눈을 닫았다가 열었다. 개폐장치가 기지개를 켜면서 바깥으로 퍼지는 서늘한 연기를 뚫고 따뜻한 손이 그의 코앞에서 왕복운동을 했다.
벌써 차원 높은 사고를 하기엔 버거운 상태인 그는 가만히 뿌옇게 번져 보이는 물체를 보기만 했다. 치료와 검사가 거의 불필요한 육체를 하얗고 동그란 것이 꼼꼼히 훑었다. 그는 오랫동안 굳어 있던 고개를 움직였다. 그를 묶어둘 구실이 될 수 있는 대원들의 캡슐은 모두 사라졌으며, 형식적으로라도 그를 위협하는 페이저건도 자취를 감추었다. 오로지 의료 기기를 닮은 하얀 제복이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칸은 그것의 이름이 트라이코더라는 걸 기억해냈다.
다수의 요소가 낯선 의식 속 작동하기 시작한 칸의 두뇌가 눈앞의 인물을 읽어냈다. 그는 칸이 세 번째로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기도 했다. 칸은 자신의 차가운 얼굴에서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조소를 마지막까지 발휘하며 그에게 단언했었다. 이것은 자신의 사형 선고다. 자신에게 최면 같은 복종이라도 강요할 수 있게 만드는 동료들마저도 사라졌으니 겁이 나서라도 인간들은 자신을 영영 봉인하리라. 누군가 순수하게 그의 자유를 소망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는 칸을 이용할 수 없을 거라는 예측에는 동의하는 것 같았었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깨운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기체가 다 배출되지 않았는데도 칸의 세포는 벌써 안광을 번뜩이며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불쑥 튀어나온 얼굴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강대한 지성을 가진 그에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냐는 눈빛을 보냈다.
“인간은 죽지 않는 이상 누구나 깨어나는 법이야.”
2265년, 엔터프라이즈가 장기 탐사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의 일이었다. 레너드 맥코이가 가리고 있던 정경이 훤히 드러났다. 공간은 평온하게 비어 있었다. 트라이코더가 전송한 수치들을 모두 읽은 맥코이는 여느 환자를 앞에 두었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세 번째라는 숫자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칸은 그 이후로도 잠들지 않았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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