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James Kirk

- Written by. Jade




Chapter 8



  커크는 임시적으로 칸을 헤드쿼터의 빈 방에 데려다 주었다. 감옥마냥 창살이 드리워져 있지는 않고, 말 그대로 쓸모를 찾지 못해 텅 비어 있었다.


  “…의자라도 갖다 줄게. 일단 네가 저지른 일이 있어서 그럴싸한 곳에 못 놔둔다는 건 이해하겠지?”


  그러면서 커크는 결박된 그의 손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를 굴렸다. 조금 더 고민하면 수갑은 수거해 갈 수 있었을 텐데 칸은 조용히 커크에게서 떨어졌다.


  “닥터는 여기 없나? 그 역시 죄가 있어서 징계라도 받았나.”


  커크는 내심 칸이 맥코이를 찾는 것에 놀랐다.


  “당장은 정직 받고 쫓겨났어.”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군.”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요구를 던져 놓고, 칸은 휑한 벽을 무슨 영문인지 꼼꼼히 살피는 듯한 행세를 취했다. 주의를 최대한 분산시키려는 행동인 것도 같았다. 금방이라도 그를 추궁할 듯 달싹이던 커크의 입술이 툴툴거렸다. 


  “…기다려.”


  커크가 방에서 나갔다. 밖에 경비원 두어 명 정도는 서 있겠지만 방 안에서 칸은 혼자였다. 하나로 모아져 있던 그의 두 팔이 서로 떨어져 허공에 내려앉았다. 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천장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 * *




  칸이 짐작했던 것보다 맥코이는 훨씬 일찍 도착했다. 가볍게 맥코이의 거처와 스타플릿 본부 사이의 거리를 계산한 그는 맥코이가 비행정이라도 타고 왔거나, 아니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고 답을 내렸다. 


  의자는 도착하지 않았다. 바쁜 일이라도 떨어졌는지 커크가 명령을 내리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범죄자의 다리는 편하게 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스타플릿의 생도나 장교를 가정하는 건 신빙성이 떨어졌다. 이제 완벽히 맥코이가 헤드쿼터 주변에 있었음을 확신한 칸은 가느다란 의문을 느꼈다. 장교라는 타이틀도 뺏긴 의사가 본부를 어슬렁거릴 동기는 많지 않았다.


  맥코이는 벽에 가까이 붙어 서 있는 칸의 두 손을 곁눈질했다. 매끄럽지 않게 끊어진 수갑의 표면이 어두운 가운데서도 선명했다. 오싹한 흔적이었지만 맥코이가 한 뼘 정도 칸에게 다가서는 걸 막지는 못했다.


  레너드 맥코이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완전히 칸 누니엔 싱을 마주한 것이었다. 별이 태어나기도 하며 행성이 폭발할 수도 있는 우주처럼 복잡한 안구가 매끈한 청록빛을 띠었다. 그것은 맥코이가 찾아준 빛깔이었다.


  “나랑 할 얘기가 있다면서.”


  맥코이가 먼저 말을 텄다. 벽에 등을 붙인 칸이 가까스로 가시적인 밝기를 띠고 있는 맥코이의 얼굴을 훑었다. 


  “더불어 닥터 역시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지.”

  “나랑 기싸움 해서 뭐하게. 네 요구 사항은 짐한테 다 확인받았을 거 아냐.”

  “닥터의 속내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칸은 맥코이의 죄책감을 발생시키진 못했으나, 능수능란한 자의 언어는 늘 다른 공략지를 찾아내기 마련이었다. 비꼬지 않은 솔직함이 아직도 혼란에서 말끔히 벗어나지 못한 맥코이를 흔들었다. 맥코이는 순순히 자신의 질문을 꺼냈다. 


  “…왜 돌아왔어?”

  “복수를 완료하기 위해서.”

  “캡슐에 들어간다고 했잖아.”

  “내 기억을 지우는 데에 동의한 스타플릿의 인물들을 모두 심판대에 올리고 나서의 일이다.”


  맥코이는 자신이 상상하지 못한 경우의 수에 입을 다물었다. 


  “마음에 드나?”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가 물어야 하는 짧은 어구만이 번쩍였다. 크고 작은 떨림에 자세를 뒤척이고 있는 맥코이의 얼굴은 자주 불빛의 범위를 벗어났다. 


  “나라고 해도 나에게 동조할 무리가 없이 연방을 정복할 수는 없어. 그것이 내가 스타플릿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들의 욕망에 벌을 내리고, 사욕을 채울 수 있는 지름길을 끊어버리는 것.”

  “언제부터.”


  갑자기 진한 온도를 휘감은 흐름이 칸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칸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무슨 뜻이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그리고 맥코이만큼이나 칸은 맥락 없는 말을 건넸다. 


  “내가 닥터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였을 것 같나.”


  정교하게 조립된 저장 장치 같은 두뇌에는 미치지 못하는 맥코이는, 칸에게만 명백할 뿐 자신에겐 막막한 문맥을 잡아내 보려고 인상을 찌푸렸다. 칸이 담담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언제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칸 누니엔 싱은 자연스럽게 우세를 거머쥐는 인물이다. 그는 듣고 싶은 말을 뽑아내며 정작 자신은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맥코이의 집을 불시에 방문했을 때처럼 말이다.


  한순간 맥코이는 그가 보통 사람들의 방식을 의도적으로 벗어날 뿐, 대부분의 것에 반응하고 답한다는 걸 깨달았다. 


  맥코이가 다시 그의 얼굴과 불빛을 일직선상에 놓았을 때 칸이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가 본래대로 방향을 내렸다. 자신이 더 이상 설명할 건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가지 않을 건가.”


  칸은 자신의 거듭되는 동결을 모두가 반기지 않는다는 측면을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그것은 맥코이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맥코이가 등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 칸은 눈을 깜빡였다.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미동도 크게 필요하지 않은 육체는 드물게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 * *




  커크가 후련하다는 동작으로 맥코이에게 그가 전에 반납했던 의복과 패드를 돌려주었다.


  “정직 풀린 거 축하해.”


  맥코이가 찡그린 미소를 지으며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에겐 스타플릿의 젊은 지도자까지 격상된 제임스 커크는 굳이 노고를 들이는 발걸음을 감행했다. 맥코이는 제일 먼저 패드를 켜 보았다. 동료들이 언제 읽게 될지도 모를 메시지들을 수신함에 가득 쌓아둔 상태였다.


  “고마워.”


  커크가 의자를 넓게 당겨서 앉았다.


  “잠시 내가 맡고 있던 물건의 주인을 찾아준 건데, 뭐.”


  커크는 말하면서 손가락 마디로 눈가를 문질렀다. 종횡무진 날뛰기 일쑤였던 생도가 업무의 피로함을 토로하는 함장으로까지 발전한 것에 맥코이는 괜히 웃음이 났다.


  “법원 나올 때 제복 차려 입어야 하는 거 알지?”


  맥코이가 아, 하고 목소리를 흘렸다. 


  “…그 일도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정직 빨리 풀어준 건 아니야. 그니까….”

  “나 안 불편해.”


  맥코이가 의료 장교이자 엔터프라이즈의 메디컬 치프 직위를 회복한지 5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패드가 반짝이면서 수신음을 냈다. 하필 칸 누니엔 싱의 기억 삭제술과 관련해 증언을 하려는 명령서가 도착한 거라서 커크는 민망하게 눈살을 구겼다. 


  “아, 진짜 괜찮다니까. 어디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어? 갑자기 왜 그러시나 모르겠네.”


  맥코이는 패드의 액정을 끄고, 가끔씩 자신의 앞에서 풀죽은 강아지 흉내를 내는 함장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말이야, 본즈. 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

  “정말로 칸이 왔었어?”


  맥코이가 고개를 까딱했다. 


  “뭐랬어?”

  “그 놈은 별 말 안 해. 늘 떠들고 추스르지 못하는 건 내 쪽이지. 내 하소연 듣다가 그냥 갔어.”


  커크가 입을 비죽였다.


  “…그게 다야?”

  “칸이 있는 동안 내가 생명의 위협에 시달렸다는 거 빼고는 별 거 없었는데.”


  내심 맥코이가 칸의 심경 변화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던 커크는 김샌다는 표정으로 알았어, 라면서 중얼거렸다. 


  맥코이는 테이블 위에 방치되어 있던 자신의 물품들을 무릎 아래로 내려 조심스럽게 가져갈 채비를 했다. 아래를 보고 있던 그가 순간 입술을 안으로 말았는데, 그 모양새가 취향에 따라서는 살짝 독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냥 쌉쌀하지는 않은 계피가루라도 머금은 듯했다. 




* * *




  사람은 가득 들어찼지만 모두가 엄숙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절차가 부여한 권한으로 대질을 맡은 인물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 시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처음으로 대답하는 이는 레너드 맥코이였다.


  “기본적인 원리는 전류가 흐르는 유리막대를 가지고 기억을 활성화시키고 저장하는 세포를 죽이는 겁니다. 하지만 뇌의 각 신경들과 부위가 서로 맡는 분야가 다르다는 게 알려졌다고 해도 그것을 또 다시 세심하게 분류하기에는 기술의 수준이 그 단계까지 미치지는 못했지요. 그래서 기억 세포들을 선별적이 아니라 모두 다 없애버려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칸 누니엔 싱은 배정받은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과거를 잃어버리게 됐죠.”


  다음 차례인 스팍은 증인석의 무게감에 전혀 눌리지 않은 것처럼 평소대로 길게 말했다. 


  “레너드 맥코이 박사의 시술이 가지는 현실적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은 그를 대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을 매뉴얼 형태로 전달받았습니다. 칸이 스타플릿의 충성스러운 장교라는 사실을 주입하고 그의 정체를 본인이 알게 하지 못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법정에 울리는 구두굽 소리는 선서를 해야만 발언할 수 있는 단상 위 좌석에 오르는 이의 것이었다. 커크가 마지막으로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맥코이와 스팍이 했던 말들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이 알려야 할 진실을 골랐다. 


  “…그의 처분을 논하면서 문제의 기억 제거술을 비롯해, 결국 그를 스타플릿의 입맛에 따라 이용하기 위한 방법들에 지나지 않은 숱한 안건들을 반대한 건 저와 부함장 스팍뿐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커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증인이 칸 누니엔 싱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그런 셈이죠.”

  “어떻게 보면 증인의 선택은 스타플릿에 속한 함장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배반한 거라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단정적으로 말해볼까요? 전 스타플릿의 본질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부패한 스타플릿의 일부라면 모르지만요.”


  참관인들을 위해 마련된 좌석에 앉은 맥코이는 강인하게 굳은 얼굴로 커크와 법정에서 호흡하고 있었다. 이어 커크는 맥코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칸이 요구하지 않았어도 이 사건이 물밑으로 올라올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앞서서 했던 대답을 소리 없이 번복했다. 남자는 맥코이에게 손수 지우던 칸의 기억을 되살리기로 한 동기를 물었었다. 


  “내가 레너드 맥코이 박사의 계획에 동참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 사람인 이상, 반드시 가슴에서 머리를 쳐들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 * *




  샌프란시스코의 본부에서 우주 연방의 대법원까지 칸을 옮긴 인원들은 모두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그는 자신이 피고로서 출두해야 하는 날짜에도 구치소의 작은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칸은 앞을 봉쇄하고 있는 강화 물질의 철문 너머에서 접근하고 있는 인기척을 감지했다.


  군청색의 유니폼을 입은 남자의 손에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일찍 끝났군. 칸이 종이를 받았고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서 멀어졌다. 


  칸은 연방에 대한 깊은 불신과 언짢음 때문에 법정에 서길 거부한 게 아니었다. 그의 이유는 대개 효율적이면서 합리적이었다. 판사의 육성을 듣지 않아도 칸은 자신에게 떨어질, 곧 자신이 원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가볍게 판결문을 집어 읽었다. 형식상 그의 전과를 장황하게 서술한 많은 문단들은 뛰어 넘었다. 마침내 칸은 판결문의 끄트머리에서 기간을 정해 놓지 않은 동결을 명하는 문장을 발견했다. 소용을 다한 종이가 팔락거리면서 차가운 철제 바닥에 내려앉았다. 



Next Chapter will be the last chapter of this 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