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대단원 1. 센티넬의 탄생

01. 센티넬의 시발점

 

 

  이번 장에서는 여러 인물과 주제를 가볍게 훑어볼 것이다. 센티넬의 장이자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칸 누니엔 싱(Khan Noonien Singh)과, 그의 탄생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인 오필리아 밀레이스(Opheila Millais)가 등장한다. 

 

  먼저 센티넬이라는 명칭은 인류와 센티넬 간의 ‘진화전쟁(Evolution War)’이 끝나고 센티넬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생겨난 뒤에야 등장했다. 정확히 센티넬이라는 표현을 누가 사용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봉인당한 그들이 평생 인류의 양심과 과학을 감시할 것이라는 레비나스 맥코이(Levias McCoy)의 말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게 다수가 믿는 추측이다. 그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므로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나 센티넬이라는 개념에 반응하여 나온 것이 ‘가이드’이므로, 센티넬들이 태어났을 당시에 그러한 낱말이 없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곧 센티넬이 없었음은 가이드도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전후하여 작성된 몇몇 문구들에서는 센티넬을 단순히 ‘강화인간’이라고 칭할 뿐이다. 그들이 가진 특별한 신체적‧지적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 필수적이며, 또한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부재를 떠안아야 했던 강화인간들의 상황을 기억한 뒤 이어지는 내용을 읽기를 권장한다.

 

  가이드라는 안전장치도 없이 센티넬들은 영국의 골턴 연구소(Galton Institute)에서 깨어났다. 신(新)인류를 만들어 혁신적인 진보를 이뤄내겠다는 목적 아래 각국에서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초청받아 연구소로 몰려들었다. 1차적으로 추천을 받은 수만 1만 명을 넘어갔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1,00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숫자가 연구소에 입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쟁 당시 연구소 자체가 깨끗이 소멸되어 정확히 누가 센티넬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는지는 알기 어려운 상태이다. 참여 여부가 확실하게 알려져 있는 과학자로는 오필리아 밀레이스 정도다. 그녀는 강화인간의 우두머리였던 칸 누니엔 싱의 전담 박사였으며, 캐서린 헤이스팅스(Katherine Hastings)에게 많은 편지를 보내 센티넬 관련 학문에 큰 사료를 남겨주기도 했다. 

 

  한편 헤이스팅스는 전쟁 후기에 강화인간들을 뒤흔들 수 있는 묘책을 마련한 천재, 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왕 정도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헤이스팅스가 분명히 창의적이면서 뛰어난 방법으로 강화인간들을 공략한 것은 맞지만, 밀레이스와 나눈 서신을 보면 헤이스팅스는 막판에 골턴 연구소로 들어가길 포기한 데다, 외부 고문 자격으로 몇 번 연구소에 출입을 했었다고 한다. 헤이스팅스는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강화인간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생화학적인 방법으로 강화인간들을 대다수 소탕한 것은 밀레이스의 정보와 몇몇 과거가 크게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서전을 비롯하여 강화인간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남긴 헤이스팅스와, 칸의 담당자로서 제일로 우수한 센티넬을 꿰뚫고 있었던 밀레이스의 기록까지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유 또한 불분명하다. 다만 밀레이스가 편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인큐베이터를 다 채우긴 했지만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존재들을 한꺼번에 실험하지는 않고 있어. 검사와 테스트를 위해 오전 시간에는 잠깐 깨웠다가 이후에는 다시 인큐베이터에 넣고 안정화 작업을 거치지. 솔직히 털어놓자면 아직도 실험체들을 배양하고 있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밀레이스의 기록을 바탕으로 추측을 확장해보자면 강화인간들은 생명활동이 가능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지 못했던 듯하다. 인큐베이터에 꽂힌 튜브를 통해 약물을 집어넣어 강화인간의 신체를 정돈했을 수도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필리아는 강화인간들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는데, 강화인간들이 현재 일컬어지는 이른바 ‘센티넬적 요소’들을 완전히 체화하기까지는 6개월가량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인류보다 우월해진 강화인간들이 인큐베이터 신세를 벗어난 시점이 이 때다. 그리고 이는 골턴 연구소 소속의 과학자들이 생존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오필리아는 공연히 자신의 명찰을 만지작거렸다. 엄지와 검지에 잡혀 위아래로 기울어지길 반복하는 얇은 판에 새겨진 이름이 변화무쌍하게 반짝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깜빡임마저 억제하려 애쓰는 눈동자에 담긴 것은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인큐베이터였다.


  —배출을 시작합니다.


  오필리아 대신 시스템에 내장되어 있는 오퍼레이터가 건조한 목소리를 냈다. 삼 일에 한 번씩은 그녀도 한 걸음 물러나서 들었던 익숙한 안내 사항이 흘러나온 즉시 인큐베이터 아래로 기체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정해진 시간마다 본체를 점검하고 모니터를 확인했던 오필리아도 인큐베이터 안에 누가 어떤 모습을 하고 누워 있는지는 몰랐다. 오늘은 오필리아가 맡은 강화인간이 처음으로 깨어나는 날이었다.


  직사각형의 계기판에 떠올라 있던 바(bar)가 차츰 채워져 갔다. 오필리아와 옷을 똑같이 입은 학자들이 몸을 내밀면서 인큐베이터를 가까이 보려 애썼다. 오필리아는 남은 시간동안 인큐베이터의 측면을 보았다. HFX-1500이라는 일련번호를 외우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오필리아는 자신이 얼굴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피조물의 이름을 단번에 지어낼 수 있을 정도로 교만하지 않았다.


  “곧 열리겠어.”


  오필리아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듣고 눈길을 돌렸다. 한 조각의 빈칸만을 남겨두고 있던 사각형이 까맣게 변했다. 인큐베이터에서 유일하게 투명한 부분이 양 갈래로 갈라졌고, 오필리아는 부스러기 같은 희뿌연 기체를 손으로 내쳐가면서 자신이 핀셋으로 꼼꼼하게 작업한 강화인간의 얼굴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이후 오필리아는 과학자들이 주변을 완벽하게 휘감을 때까지 발을 떼지 못했다.


  오필리아는 배출이 끝나기도 전에 강화인간이 눈을 뜨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도 손 댄 적 없는 피부와 머리카락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빛마저 압도한 청록색 안구가 무엇도 낯설어 하지 않고 오필리아를 마주했다. 게다가 그것은 오필리아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노련하게 그녀의 이름을 읽듯이 명찰을 오래 바라보았다. 앞서 진행되었던 배출에서도 오필리아는 이런 상황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다른 학자들 역시 실험체가 이렇게 눈을 빨리 뜬 경우는 없었다며 수군댔다.


  그리고 그 속삭임에 인큐베이터 안의 강화인간이 반응했다. 미간을 살짝 좁히며 입꼬리를 들썩인 것이었다. 간신히 손을 꿈틀댈 여유를 찾고 있던 오필리아는 다시 한 번 놀라 옆에 끼워져 있는 차트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뭐 때문에 웃은 거죠?”


  강화인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필리아는 이제 막 일어난 실험체가 언어를 구사할 수는 없다는 걸 뒤늦게 기억했다. 강화인간들의 초반은 말을 배우는 데 지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오필리아는 일부러 세차게 고개를 돌렸다. 


  “…HFX-1500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합니다. 바이탈 사인 정상. 규정에 명시된 6시간의 휴식 이후 1차 정밀 검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트 곳곳에 체크 표시를 남기고 오필리아가 펜을 집어넣었다. 아직도 오필리아의 피조물을 보기 위해 몰려든 무리는 해산되지 않고 있었다. 


  “눈이 예쁘네요. 어떻게 저런 색을 뽑았어요?”


  한 여성이 강화인간을 흥미롭게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강화인간이 눈을 깜빡이는 빈도가 높지 않아 인간들은 마음껏 그의 눈동자를 뜯어볼 수 있었다. 오필리아는 예의가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모르겠네요. 특별히 눈 색깔에 신경 쓰지는 않았었는데.”

  “어서 일으켜 세워 봐요. 다른 곳도 봐야죠.”

  “정신도 일찍 차렸는데, 나오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까?”


  여기저기서 요구와 추측이 쏟아졌다. 오필리아는 동료들과 등을 지고 다시 강화인간을 바라보았다. 요란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인간들을 무심하게 응시하던 그는 오필리아가 다가오자 눈빛을 조금 바꾸는 것 같았다. 오필리아는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인큐베이터 안으로 두 팔을 넣었다. 이태까지 모든 과학자들은 자신의 강화인간을 직접 일으켜 밖으로 꺼내주었다.


  그의 뒷목으로 향하고 있던 오필리아의 손이 강화인간에게 휘감긴 건 그 무렵이었다.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아 차가운 피부가 오필리아를 붙잡았고, 오필리아는 손을 빼지도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인큐베이터 옆에 붙었다. 주변의 과학자들만이 초반부터 비범한 이 실험체의 행동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강화인간이 자신을 만든 여인의 손을 부드럽게 고쳐 잡았다. 그러더니 오필리아를 끌어당기면서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필리아의 상체가 가깝게 당겨진 순간 강화인간은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험체.”


  오필리아가 눈썹을 움찔했다. 어떻게 깨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기도 전에 강화인간은 서늘한 공기를 흘리면서 오필리아를 지나쳤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하얀 다리가 인큐베이터에서 하나씩 나왔다. 질서 없이 서 있던 인간들이 그가 설 자리를 마련해주고자 뒤로 물러났다.


  화학 약품이 흘러나올 것 같은 피조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필리아는 그가 조금 전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큐베이터에서 처음으로 배출된 강화인간들은 3일간 깨어 있는 상태를 지속하며 각종 검사를 받게 된다. 검사는 다양했고 그 분야를 전공한 박사들이 맡지만, 그 모든 현장에 따라 붙으며 강화인간의 전반적인 사항들을 점검하는 건 담당 학자였다. 오필리아는 적어도 오늘은 잠을 오래 자지 못할 걸 예상하고 커피를 타 왔다. 


  두툼한 유리벽 너머에서 오필리아의 강화인간은 한창 뇌파를 읽히고 있는 중이었다.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알아서 강화인간의 자세를 조정하고 여러 패드를 붙이고 뗐다. 그러한 취급에 강화인간은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 오필리아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를 주시했다.


  오필리아의 옆에 있는 프린터는 쉬지 않고 인쇄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담당자가 손쉽게 볼 수 있도록 검사실 컴퓨터와 연결된 장비였다. 오필리아는 프린터 앞에 쌓여 가는 종이들을 곁눈질로만 읽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만들어낸 강화인간에겐 다른 점이 많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이번에 강화인간은 하얗고 둥그런 장치에 누웠다. 그를 깊숙이 안으로 집어넣은 동료가 오필리아에게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보였다. 오필리아는 입술을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