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벤전스] Your Identical Sword

- Star Trek Into Darkness 2013. 9. 18. 19:36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USS Vengeance

- 함선 의인화 주의(..)

- Written by. Jade


Your Identical Sword




  - 인공지능을 가진 함선은 저 밖에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다른 인간들은 그런 실력이 없어.”


  - 하지만 당신께서 단지 과시를 위해서, 혹은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저를 만드셨다고는 판단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뽐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시며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함이 자명합니다. 왜 굳이 저를 만드신 것입니까?


  “...아마 타자 아닌 타자가 필요했던 모양이지.”


  - 완벽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아니지만 나와 다른 점이 없어서 나를 거부하지 않을 수 있는, 은연중에 그런 존재가 필요했을 수도.”


  - 그 말씀은 저를 창조하신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됩니다, 칸.




  -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뭘 말인가.”


  - 저의 모든 걸 만드신 분을 왜 함장이라고 칭할 수가 없는 것입니까? 저를 소유하지 않으실 겁니까?


  “..아니. 언젠가 너를 조종하는 단 하나의 승무원은 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든 너의 함장석에 앉게 되겠지.”


  - 저는 칸이 아닌 다른 함장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인간도 당신보다 고귀하고 지혜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야만 해. 당장은. 때가 되면 나는 너의 함장이 될 것이며 누구에게도 너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어준 이름을 생각해.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에게서 너를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목적지 설정, 스타플릿 본부로..!”


  - 엔진이 손상되어 정확한 도착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명령을 확정하시겠습니까?


  “확정한다.”




  강물에 빠진 함선을 끌어올린 건 그가 기다리던 자신의 캡틴이 아니었다. 그는 부지런히 센서를 움직여 혹시라도 사람들 틈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함장을 수색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누구보다 훌륭한 두뇌에서 탄생한 그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얼마 머무르지도 못한 그만의 함장석을 찾아 올 수도 없을 정도로 캡틴이 큰일을 당했음을.


  함선은 자신이 모실 수 있는 단 한 명을 기억했다. 논리적으로 그는 쉽게 죽을 인물이 아니었다. 함선은 또 자신이 아무런 방화벽 없이 받아들인 거울상 같은 정체성과 이름의 뜻을 기억했다.


  그 기억할 수 있는 회로만 남기고 함선은 스스로 잠에 들었다.





  기력이 빠진 엔지니어 한 명이 바닥으로 스르르 주저앉았다. 더 이상 고칠 부분도 없었고 기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연방에서 직접 명령을 내려 수리를 감행했으며 빠른 복구를 위해서 최고의 기술자들만이 투입되었다. 외관은 새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함선을 향하여 엔지이너는 푸념 섞인 짜증을 냈다.


  “대체 원하는 게 뭔데, 젠장!”


  철제 바닥을 때렸을 뿐인데 갑자기 웅 하는 소리가 들려 엔지니어가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순간적으로 패널에 불이 들어왔다. 영문을 몰라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엔지니어에게 고저 없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 제 캡틴을 돌려주십시오.


  “뭐, 뭐라고?”


  반짝 하던 함선의 내부가 다시 빛을 잃어갔다. 엔지니어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혹시나 싶어 다시 바닥을 쳤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벌떡 일어나 상부에 보고하기 위하여 달렸다.





  “그러게 그 배는 진즉에 처리했었어야지!” 커크가 투덜거렸다.


  “저도 동의합니다, 함장님. 무력과 통치가 아닌 공존과 협력을 위해 구성된 스타플릿에 오직 전투 목적으로 만들어진 함선은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스타플릿이 설립된 고유의 목적을 흔들 수 있습니다.”


  커크는 설마 스팍이 자신의 중얼거림에 동의할 줄 몰랐다는 듯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커크는 다소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또 무슨 문제가 생겨서 그러지? 아예 움직이지도 않는다면서.”


  “지나가다 들은 바에 의하면 함선이 자신의 캡틴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아까보다 혼이 더 빠져나간 얼굴로 커크가 서서히 얼굴을 기울였다. 주요 함장과 부함장이 모이는 회의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제의 함선이 일컫는 캡틴의 정체는 뻔했고, 커크는 설마 우리가 그런 안건 때문에 호출을 받은 거냐면서 실소 섞인 감상을 뱉어냈다. 그로서는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주제였다.


  “안타깝게도 다른 이들은 칸 누니엔 싱을 깨우는 데 저희만큼의 거부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팍이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조도가 낮은 공간 안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엔터프라이즈를 대표하는 두 인물들을 응시했다.





  그가 특별히 스타플릿에 앙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함선에 설치된 인공지능 시스템이었고, 기계들의 언어 체계에 호의나 적대감은 포함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비슷한 이유로 그는 스멀스멀 기지개를 켜는 전운에 당황한 사람들이 자신을 고치려는 얄팍한 의도마저 내버려 두었다. 그에게 칸이 아닌 다른 존재들은 무심한 흑백의 영상들이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인간들을 해코지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모든 계산은 그의 캡틴에게 최적화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분노와 슬픔으로 얼룩진 함장의 광기가 두렵지 않았다. 그의 폭력적 행동에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단지 캡틴의 목표와 그의 명령에 충실하게 이바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완전한 워프를 시도했으며 스스로 기다림을 택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벌칸과 금발의 인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하지만 두 존재가 자신의 캡틴이 돌아와야 할 곳에 돌아오는 것을 막았으므로, 그는 지극히 합리적인 프로토콜을 따라 현재 스타플릿의 가장 위협적인 무리인 클링온들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그의 이름은 복수Vengeance였으나 복수를 행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다. 모든 작동은 오직 자신을 조종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이를 위해서였다. 과학적 시스템들이 선호하는 언어로 말하자면 복원 작업이었다.





  격납고가 부산스러웠다. 공중으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장교들의 발소리가 끊임없이 탁탁댔다. 교관 옷을 입은 남자가 패드를 들고 실전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생도들을 향해 엄하게 이르고 있었다.


  “마침내 클링온들이 선전포고를 하고 다수의 부대를 이끌고 오고 있다. 이것은 실전 상황이며 안타깝게도 지난 크고 작은 사건들 덕분에 적정 수의 승무원 숫자도 채우지 못한 함선들도 있다. 그러나—”


  그 때 한바탕 긴 전자음이 들리면서 격납고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신경을 집중케 했다. 그것은 긴급한 방송을 송신하기 전에 나오는 안내음이었고, 곧 사람이 아닌 유사 음성 시스템 특유의 무감정한 발음이 새어나왔다.


  “저는 지금 스타플릿 함선들에 정박해 있는 우주 정거장에 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올려 두리번거렸다. 셔틀에 탑승하려던 커크와 스팍도 멈칫했다.


  “전에 통보했던 저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시, 저는 자폭하여 여기에 있는 모든 스타플릿 함선들과 산화하겠습니다. 혹은 제가 끌어들인 클링온 측과 더불어 여러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설마 지금 저거..”


  “승무원이 없을 텐데 어떻게 대기권 밖까지 이동한 거죠?”


  스타플릿이 전력 보충을 위하여 편입시키려 했던 벤전스 호는 그의 함장처럼, 또 다시 연방에게 강력한 협박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을 드릴 테니 함장님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 전까지 통신 시스템은 다시 동결될 것이며 어떠한 타협에도 응하지 않겠습니다.”


  기계음이 끊겼다. 커크가 당장에 통신 장비를 꺼내 들었다. “본즈?” 그 때 누군가 커크의 등을 탁 쳤다. 알아서 셔틀에서 내린 맥코이가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징그럽기도 하군. 가자고.”





  “클링온들이 앞으로 45분 내에 근접할 거라는 보고입니다.”


  스팍이 알려왔다. 그나마도 신속하게 승인이 떨어져 여유가 있는 것이었다. 스타플릿 내의 의심할 수 없는 인재 제임스 커크가 언짢은 마음으로 전면에 나선 덕분이었다. 커크는 조금 전에 발급받은 키를 패드마다 갖다 대면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간신히 벤전스 호를 스캔한 결과 정말 함선 내부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자폭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도 사실로 밝혀졌다.


  커크가 마지막 문을 열어주자 맥코이가 제일 먼저 앞서가면서 똑같이 생긴 캡슐들을 확인했다. 표면이 하얗게 얼어붙어서 일일이 안을 들여다봐야 했다. 그러다 요주의 인물이 들어 있는 캡슐을 찾았는지 맥코이가 한 곳에서 멈췄고 스팍과 커크가 그 곁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재운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래도 빨리 정신 차릴 수 있지 않을까.”


  봉인되고 나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칸 누니엔 싱은 일면 평화로운 안색으로 잠들어 있었다. 맥코이가 신중하게 캡슐을 작동시켰다. 기약 없이 잠겨 있는 장치의 락을 풀고 서서히 온도를 낮췄다. 기체가 배출됩니다, 캡슐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개성이 없어 벤전스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색이 말했다. 결정 모양으로 얼어붙어 있는 캡슐의 표면이 녹아내리며 새하얀 연기가 셋의 발밑으로 가라앉았다. 커크가 총을 뽑아들며 발을 내딛었다.


  어둑한 실내의 영향을 받아 진해진 눈동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맥코이가 상식 이상의 빠른 회복 속도에 놀라 눈썹을 올렸다. 그리고 그가 칸의 상태를 체크해 보기도 전에 총을 들이민 커크가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사라도 건넬 줄 알았던 건 아니겠지.”


  칸은 여전히 누워 있는 상태였으며 또한 어떠한 당혹감도 내비치지 않았다.


  “일어나.”


  “나를 죽이지 않았군. 어딘가에 집어넣고 터뜨려 버렸으면 간단했을 텐데.”


  방금 깨어난 지라 그의 음성은 평소보다 더 낮고 조금 더 음산하게 느껴졌다. 커크가 총구를 까딱거렸다.


  “네 대원들 안 죽었거든? 일단 시간 없으니까 일어나. 그러고 나서 얘기해.”


  캡슐 뚜껑은 칸의 허리 밑까지 내려가 있었다. 칸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고 커크가 살상 모드로 맞춰놓은 총을 흔들림 없이 다잡았다. 맥코이는 둘의 서늘한 분위기에 제대로 끼어들지도 못하고 의사로서의 본분을 접어 두어야 했다. 칸이 제일 먼저 주위를 보면서 일렬로 정돈된 극저온 캡슐들을 바라보았다.


  “..날 깨운 목적은.”


  “그건 네 함선한테 물어보지 그래.”


  얼핏 비극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 같았던 칸의 얼굴에 딱딱한 의문이 지나갔다. 커크가 앞장서라며 신호했고 칸은 아직 주변에 남아 있는 익숙한 냉기를 두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팍이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통신기를 열었다. 저편에서는 셔틀 한 기에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고 있었다.





  수송기의 조종사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플릿의 소중한 자원인 엔터프라이즈 호의 주요 선원들과 갖춰 입은 장비만으로도 위압감을 뽐내는 요원들, 무엇보다 최악의 테러리스트가 바로 뒤편에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조종사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핸들을 돌렸고 시간에 맞춰 스팍이 통신을 위해 계기판 근처로 다가왔다. 스팍의 눈짓을 받은 조종사가 긴장감에 삐걱대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요구대로 네 함장을 데려가고 있는 중이다. 자폭 시스템은 중단하도록. 그리고 승무원들이 각 함선에 빠짐없이 탑승한 뒤에 칸을 데려가라. 확인이 필요하다면 스캔을 해 봐도 좋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의 조건을 승낙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함선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고민하는 것처럼 곧바로 통신을 끊지 않았다. 명백히 기계답지 않은 행동에 스팍이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연결은 두절되었다. 조종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잠시 후 정거장에 도착합니다.”


  “대기하도록.”


  새카맣던 우주에 전등불을 차례로 키는 것처럼 스크린 앞이 밝아지면서 정거장이 드러났다. 각 위치에 묶여 있는 은색의 함선들 사이에 자리 잡은 거대한 검은색 형체는 딱 봐도 대단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일행이 타고 있는 셔틀이 멈췄고 곧 뒤를 따르고 있던 수송선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해당 함선의 도크로 들어갔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앉아 있던 칸이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승무원도 없는 함선이 어떻게 움직여서 혼자 자폭을 하고 말고 한다는 거야? 한 명은 필요하다며.”


  “내가 말한 최소 인원은 사실 수동 시스템을 위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스스로 구동될 수 있어.”


  “함장님, 저희도 탑승해야 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칸의 몸이 하얀 미립자에 감싸였다. 칸이 커크와 시선을 맞췄고 그가 조용히 손목을 감고 있던 수갑을 끊어냈다. 커크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을 때 칸은 자신의 함선으로 돌아간 뒤였다.


  “...엔터프라이즈 호로.”





  “클링온 함선 접근까지 앞으로 2분입니다!”


  “모두 전투 상황에 대비하도록. 무기를 준비해.”


  커크의 명령을 받들어 술루가 지시사항을 입력했고, 기관실장에게 안전성과 그 위력을 보장받은 어뢰들이 열린 포문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술루가 조용히 숫자를 셌다. 1분 전. 스타플릿을 여러번 구해냈다는 경이로운 성과를 기록한 엔터프라이즈의 함장도 저도 모르게 좌석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30초, 그렇게 말한 술루의 목소리가 마치 신호가 된 듯 레이더가 반짝거렸다. 술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30초 안 된 것 같은데?”


  “클링온 함선이 아닙니다.”


  그 사이에 함교의 거대한 스크린에 거친 형상을 갖춘 클링온들의 함선이 나타났고, 더불어 워프 궤도에서 벗어난 부분부터 집중 포격을 받고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공격을 퍼붓고 있는 함선을 알아본 커크가 멍하게 입을 열었다.


  “대체 뭐야..”


  벤전스가 다시 되살아난 것처럼 전진하며 긴 포대를 달구고 있었다.





  함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불빛들이 함교 구석구석을 수놓았다. 그의 함장이 도착한 순간 엔진이 활기를 찾으며 곳곳에서 에너지가 돌았다. 자신을 반기는 함선에게 칸이 내린 첫 명령은 클링온을 조준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끌어들인 무리들이었으나 벤전스는 곧바로 무기들을 배치했다. 공격 시기를 입력하는 행위는 필요가 없었다. 아직 몸의 구석구석이 덜 깨어나서 자리에 앉아 두 손가락으로 가만히 이마를 짚고 있는 함장을 위하여, 벤전스는 장거리에 있는 목표를 맞추는 데 유용한 빛줄기를 사용했다.


  -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함장님.


  아직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함장이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 ..왜 그러십니까?


  “네가 나를 찾았다는 게 예상 밖이라서. 내가 깨어난다면 아마 나를 이용하고 싶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한 소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주 바깥으로는 정확하고 파괴적인 공격에 부서진 클링온 함대들의 파편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붉은색과 초록색의 광선을 포함하여 각종 어뢰들이 발사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들을 모두 차단시킨 벤전스의 배려 때문에 함선 내부는 조용했다.


  - 함장님께서 저를 이용해 주시길 원하여 함장님을 찾았습니다.


  도중 적함의 조각이 튀어나오며 벤전스를 향했으나 곧바로 실드가 가동되었다.


  “내가 마저 복수하기를 바라는 건가?”


  - 함장님이 품고 계시는 목적이라면 무엇이든지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다만 지금 스타플릿 함정들을 공략하는 것은 승산이 크지 않을 것 같으므로 권해드리지 않겠습니다.


  벤전스에게 조금 더 발달된 조음(調音) 시스템이 있었다면 약간의 떨림을 섞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뿐만이 아니라, 그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과거에 목적지를 확정하겠냐는 물음에 좌우로 고개를 젓는 느낌을 첨가했을 것이며, 더 과거에 칸이 아닌 다른 함장을 섬기지 않겠다는 말은 누구보다 확고하고 진실하게 전했을 것이었다.


  “나도 벌써 너를 망가뜨리긴 싫으니까 이전의 명령에 집중하도록.”


  전부터 함선 앞에서는 꾸밈이 없던 칸은 다시 옅은 미소를 보였다.





  “언젠가 내가 한 말을 기억하나.”


  - 정확히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저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라면 전부 기억해 두고 있습니다.


  “그런가. 내가 널 나와 다른 점이 없다는 존재로 정의했던 걸 말한 거였어.”


  - 하지만 또 저는 당신이 될 수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그걸 정정해야 할듯 싶어서.”


  - 저는 함선에 불과합니다. 제가 칸이 될 수 없는 건 반증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하지만 너는 함선이라고 하기엔 나와 너무나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다. 너는 유래 없는 성능을 가진 최고의 함선이지만 전투를 위해 설계되어 물리적인 수행 능력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너의 이름은 복수라는 뜻이며 혼자서도 항해할 수 있는 초월적인 고독을 지니고 있다.”


  - ...제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그렇다고 네가 나인 동시에, 내가 네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지 않겠나.”


  - 당신께서는 한 번도 틀린 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일면을 모두 갖출 수 있다면, 하나의 함선 된 존재로써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일 것입니다, 저의 함장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