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Spock
- Written by. Jade
The Solution
부함장 개인 일지, 우주력 2260.014
본 내용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할 정도로 중대하여 자세히 적는다. 더불어 이에 관련한 내용만큼은 상부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으므로, 그에 맞추어 제목과 형식 또한 바뀔 수 있음을 명시한다. 이것은 엔터프라이즈 호 부함장으로서 맡은 임무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몇 개째야.”
한 쪽짜리 유리창마냥 부서진 극저온 캡슐의 탄탄한 뚜껑을 바라보면서 맥코이는 혀를 찼다. 새벽이 한창 무르익을 시간에 깨어난 수석 의료장교의 얼굴엔 피곤이 가득했으나 긴장감도 있었다. 맥코이의 장비가 수면 상태와 흡사한 뇌파를 감지해 냈다. 역시 밤중에 날벼락을 맡은 대원들이 멀쩡한 캡슐을 끌고 왔고, 그들은 어떠한 배려나 조심성도 없이 살갗이 얼어붙을 정도로 싸늘한 캡슐 안에 범죄자를 다시 가두었다. 분명히 그의 뇌는 잠들어 있었으나 이따금 팔딱거리는 손발은 대원들을 때때로 굳게 만들었다. 맥코이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23세기에도 탈옥수가 골칫덩이이긴 마찬가지였다. 그 인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다시금 칸 누니엔 싱을 봉인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스팍이 손등으로 이마를 찍었다. 자신을 창조한 존재들을 뛰어넘은 전범에게 스팍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특효약이었다. 여기에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스턴건의 위력이라든가, 각종 첨단 장비와 근래에는 탐사 대원보단 전투원으로 활약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호 대원들이 뭉치면 그럭저럭 칸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 어떤 과학자와 의사들도 그가 반복해서 각성하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칸의 뇌파를 거듭 체크한 맥코이가 물러났다. 그래도 저번보단 더 빨리 기절하지 않았어? 내가 때 아닌 화학책을 파고 있는 결과지. 맥코이가 커크에게 말하고 있었다.
“장기 탐사를 나가기로 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커크가 중얼거렸다. 아직도 놈이 순식간에 꺾어 버렸던 손목이 저렸다. 꽤나 긴 항해를 준비해야 하는 승무원들이 복잡한 눈길로 캡슐을 바라보았다. 잠시 계산을 하던 스팍이 함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저 없이 갔다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함장님.”
—아직도 본인은 내가 함장님께 제시했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부함장은 얼마든지 다른 인재들이 맡을 수 있겠지만, 칸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물리적 능력을 보유한 존재는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함장님은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가 내놓은 대안에 대해서라면 열다섯 가지 측면으로 반박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함선 안에서 일지를 쓰고 있다. 함장님은 다시 깨어날 가능성이 농후한 칸을 막으려면 내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셨다. 그래서—
여러 사건 사고들을 겪고도 다시금 엔터프라이즈 호에 탑승한 승무원들이라면 분명히 데자뷰 현상을 체험할 수 있을 만한 광경이었다. 머리끝까지 무장한 특수 요원들이 빼곡히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가슴엔 특유의 배지가 없었으며 대신 손에 수갑을 찼다. 승무원들은 오래지 않은 과거를 기억해 내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처형도 동결도 소용없는 전범은 함장의 긴급 명령으로 보강된 감옥으로 안내되었다.
“함장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이번 일정이 일주일 정도만 걸렸어도 이러지 않았어. 나라고 저 미친놈을 배 안에 들여 놓고 싶겠어?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네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잖아. 캡슐 위에다 못질하는 것보단 차라리 움직이고 있는 배 안에 데려다 놓는 게 그나마 더 불안할 거야. 맨몸으로 우주 밖으로 튀어 나갈 수는 없을 거 아냐.”
칸은 막판까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함선의 두 주축을 발견했다. 스팍과 커크가 순간 입을 다물고 그를 각자의 방식으로 흘겼다. 이번에 그는 손이 묶인 채로 방에 갇혔다.
“기꺼이 날 승선시켜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 하나?” 커크가 재빨리 반응했다. “여기서도 문제를 일으켰다간 바깥으로 던져버릴 줄 알아.” 비정상적으로 투명한 칸의 눈동자는 은근한 조소를 담아 커크를 보았다가 스팍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몸뚱아리 혼자서 날뛰든, 계획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탈출을 감행하든 자신을 막아내는 적수를 익숙하고 즐겁다는 듯 바라보았다.
최대 삼 개월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엔터프라이즈 호의 항해에서, 스팍은 기존에 갖고 있던 직책 말고도 스타플릿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자를 감시해야 할 의무도 맡게 되었다.
*
부함장 개인 일지, 우주력 2260.018
당분간 사견이나 일과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등은 적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떠맡은 책임이 막중한 지금, 우선해 기록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항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칸 누니엔 싱이 탈출을 시도했다. 연방 측에서 최선을 다하여 제작했다는 수갑은 별 쓸모가 없었다. 그는 격납고가 아닌 서실에서 발견되었다. 주로 그 시설을 이용하는 승무원들과 그들의 자녀들은 무사했다. 설마 이런 유치한 책들만 가득한 줄은 몰랐다고 태연하게 둘러대는 그의 말과, 저항 없이 붙잡힌 행동 모두가 의심스러워 일지를 쓰기 직전까지 고민했으나 설득력 있는 가설은 떠올리지 못했다.
‘나를 재우지도 않을 거면 다른 수단으로라도 나를 잠잠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타당하지 않나?’ 감옥으로 돌아가기 전 칸이 했던 말이다. 함 내의 평안과 안전을 도모해야 할 부함장으로서 본인은 범죄자의 움직임을 최대한 다스릴 의무가 있다. 집무실에 있던 책 몇 권을 던져 주어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
“젠장, 스캔을 해 봤는데 없다고?”
“예. 함실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빠져나간 셔틀은 없습니다. 아직 내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니 커크도 차라리 스팍과 함께 칸을 지구에 내려다 놓고 올 걸, 하는 때늦은 생각이 들었다. 비상경보 좀 자주 내리고 감옥 문을 수리하느라 바쁜 엔지니어의 수고가 우주 연방의 괴멸을 막는 데에 필요한 대가라고 하면 사실 무척 싼 것이었다. 그걸 고려해 보아도 칸의 탈출은 꽤나 빈번했다.
“숨바꼭질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커크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스팍은 이미 자신이 행동해야 하는 순간을 눈치 채고 있었다. 함선의 곳곳을 비추는 영상이 스크린에 가득했고, 항해사들이 바쁘게 그것들을 훑는 중이었다.
“함장님, 함장님!” 스카티의 연락이었다. 우선적으로 화면을 채운 스카티의 얼굴은 거의 울상이었다. “함장님, 빨리 기관실로 오세요!” “무슨 일이야?” “그 놈이 워프 코어를 장악했단 말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내려오질 않아요. 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지 말입니다!” 스카티가 비켜서면서 돌발 사태가 벌어진 기관실을 비췄다. 옷감보다 복잡하게 얽힌 접합부들과 파이프의 중간에 앉아 있는 칸의 모습은 짜증날 정도로 한가로워 보였다. 기어코 짜증이 치솟은 커크가 끓는 소리를 내며 함교를 벗어났다. 스팍은 칸을 내려오게 할 방법과 커크를 진정시킬 방법을 동시에 궁리해야만 했다.
빨간 셔츠를 입은 엔지니어들이 하나같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칸이 태연하게 무게를 싣고 있는 기계가 약간이라도 어긋날 것을 생각하는 기술자들의 안색이 파리했다. 우악스럽게 걸어온 커크가 소리쳤다.
“당장 내려와!”
상당히 높은 곳에 올라서 있었음에도 칸은 커크의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물론 찰나의 반응을 보였던 것을 빼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지 않고 있었다. “저기까지 올라갈 수는 없는 거야?” “함장님은 저 미친놈이 아니잖아요.” 그 사이 스팍이 앞으로 나아갔다. 애를 쓴다면 코어를 밟고 밟아 칸을 쫓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논리에 맞지 않았다.
“내가 준 책은 다 읽은 건가?” 그러자 칸의 대답이 나왔다. “인상을 남기는 주제들이었지만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더군.” “..네 흥미를 끌 만한 게 무엇인지, 내려와서 답해 준다면 성의를 다할 의향은 있다.” 스팍의 제안에 곧바로 응한 칸이 비현실적인 운동 신경을 과시하며 땅을 딛었을 때, 스팍은 그의 우수한 논리가 나열할 수 있는 모든 가짓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칸이 원한 것은 전혀 뜻밖의 물건이었다.
*
스팍은 일부러 감옥의 입구를 고치는 일을 늦췄다. 순식간에 워프 코어를 점령하고 농성을 벌였던 칸은 곧은 자세로 스팍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그는 도망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스팍이 부서진 문 앞에 섰다.
“부함장으로서 함 내에서 발생한 일들을 적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그래서?”
“오래 미룰 수 없는 주요한 일 중 하나이니, 너에게 오래 맡겨둘 수 없다는 뜻이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없이 반환을 미룬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
칸은 됐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아주 언짢다는 의사를 드러내고 있는 미간을 풀지 못하고, 스팍은 다소 정돈되지 않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건넸다. 스팍이 작성하는 일지였다. 스팍은 그 순간까지도 일지의 어느 부분이 모든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전범의 눈에 들게 된 것인지 몰랐다. 스팍은 다만 그의 위치에서 표현해야 할 의사를 입 밖으로 꺼냈다.
“..당분간은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줬으면 좋겠군. 외부로 탐사를 나가야 하니.”
스팍이 뒤돌아섰다. 덕분에 그는 칸의 얼굴에 드물게 스치는 웃음을 보지 못했다.
*
부함장 개인 일지, 우주력 2260.024
범죄자와의 또 한 번의 거래를 통하여 이번엔 이 일지를 일정 기간 동안 그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일지에 적어두어야 할 사항은 후에 기입할 것이다. 무게감이 있는 사안들은 여기에 없어 일지를 손상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만족스럽다. 많은 내용을 적는 건 적합하지 못하단 판단이 들어 이만 줄인다. Spock out.
함장을 비롯한 소수의 대원들과 함께 행성에 대한 탐사를 마친 스팍은 가장 먼저 칸의 감옥에 들렀다. 남아 있던 승무원들은 기척도 없이 잠잠했다고 보고했다. 스팍은 유리벽 너머의 광경을 보고 잠깐 말을 잊었다. 그의 항해 일지를 볼모삼아, 영영 잠들 것 같지 않았던 그가 눈을 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외롭지 않은 세계로 짧은 산책을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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