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Spock
- Written by. Jade
Ode to This Universe
현자들에게 지혜의 칭호가 붙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들은 맨 처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찬미하다가, 그것을 위협하는 인간의 영악함을 경고했다.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판단이 밑바탕에 깔렸기에 더욱 수정이 불가능한 그들의 욕망을 지적했다. 앞 숫자에 2도 붙지 않았을 무렵에 살았던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들이 처음에 이루고자 생각했던 것들이 언제까지나 견고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누군가에게 하나씩 주입한 목적 역시 영원할 수 없음을.
6월을 바라보는 대지의 날씨는 너무나도 추웠다. 그것은 이 땅에 강림한 지배자가 나약한 생물들에게 내리는 첫 번째 벌이었다. 과거 그 자신이 경험했던 무력한 사슬이었지만 이제는 그가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는 무기로 전락했다. 강인한 육체를 잠재우기도 했던 차가운 공기는 이제 나뭇잎과 유리창 하나하나에 맺혀 연약한 인간들을 하나씩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하늘을 우습게보듯 치솟은 건물의 창가 너머로 추위에 못 견딘 사람들이 하나씩 쓰러져가는 풍경이 보였다. 오로지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잔인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존 해리슨이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은 그는, 자신의 고귀한 동료들이 한낱 동사한 인간들을 치워내는 일에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단백질 인형처럼 심부름만 시켜 먹기에 딱 좋은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절대자 존 해리슨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잠깐 창밖을 내다보고, 그가 즐겨 찾는 곳으로 걸어가는 순간에도 존 해리슨은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이 친히 지배력을 행사하기에도 모자란 인간들을 걸러내는 작업이 얼마나 더 걸릴 것인지 계산해 보기도 했다. 23세기의 기술로도 간신히 견딜 수 있는 매서운 한파에 심하게 얼어붙은 유리면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존 해리슨을 조합한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무래도 그에게 아름다운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존 해리슨에겐 금이 갈 것만 같은 벽과 지독하게 적막한 거리 모두가 꽤나 예쁘게 느껴졌다. 물론 오만하고 잔인한 절대자의 미적 감각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좁은 방에는 의자 하나와 크지 않은 테이블 하나가 있었다. 그 위에 놓이는 와인은 대개 완전히 비워지지는 않지만 매번 새 것으로 바뀐다. 그것은 매일매일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의 상징이다. 존 해리슨은 가볍게 나이프로 코르크를 감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낸 다음 소용돌이를 닮은 날을 마개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네.”
그가 아직 눈길도 주지 않고 단지 말만 던진 상대는 존 해리슨의 냉혹하고 기이한 가치관을 전부 반영하고 있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투명한 공간에 달린 유혹적으로 허술한 문짝 하나, 그러면서 그 안에 갇힌 존재의 목은 묶어 두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레지스탕스 집단이 형성되고 있다더군.”
해리슨은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능히 풀 수 있는 밧줄만을 유심히 바라보던 포로도 눈동자를 굴렸다. 존 해리슨에게는 복잡한 논리를 즐기는 그 까만 눈이 한순간 여러 가지 계산과 감정으로 흔들리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존 해리슨이 스팍을 잡아둔 것은 그가 비로소 자리를 되찾은 절대자에게 가능성 있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갇히기 전까지 스팍이 행한 저항은 나열하기도 어려웠으나 지금 그가 잠자코 있는 것은, 존 해리슨에 덧붙여 그와 비등한 힘을 가진 72명의 수하들을 혼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해리슨에게 붙잡히는 동안 어디로 흩어져 버렸는지 모를 동료들의 안전도 고려 대상이었다. 아직까지 두 존재 사이를 맴돌고 있는 것은 논리뿐이다.
“이성에는 배신이 없어, 그렇지 않나?”
잠시 스팍을 쳐다보고 해리슨은 잔에 와인을 따랐다. 유려한 답안을 내놓을 수 있는 스팍의 입은 이태까지 열린 일이 거의 없었다.
“단지 오류라고 칭해지는 것이 있을 뿐이지.”
섬세한 글라스 하나를 마치 지지대로 쓰는 양 아슬아슬하게 비틀린 절대자의 육체는 사소한 부분에서 그 완벽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팍은 해리슨을 보았지만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궤변과 비정함과 벌칸들에겐 너무도 매력적인 이성으로 무장한 적을 읽어보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아마 그들은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이 난관에 굴복할 인간들은 아니겠지. 인정할 만한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어. 다만 네 더럽혀진 이성은 그들의 능력을 옳게 평가하지 못할 거야.”
해리슨이 와인을 살짝 맛보았다. 이상하리만치 달았다. 스팍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머리를 굴렸다. 짐 커크를 필두로 주저 없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저항군의 일원들이 떠올랐다. 적어도 인간들보단 훨씬 정확할 스팍의 두뇌가 판단한 그들의 용기와 유대감, 상상 이상의 잠재력은 그의 범위 밖으로 벗어나 빛나는 일이 잦았다. 도저히 반박할 길이 없는 우월함을 가진 우주의 지도자가 자신의 논리를 깎아내린 말을 순간적으로 떠올린 스팍은, 거기에서 그만 생각을 멈춰버리고 해리슨을 외면했다.
“그들이 여기까지 자네를 구하러 올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지만 때로는 증명이 필요한 명제도 있는 법이니.”
유리알 같은 눈동자는 고정시킨 채 해리슨은 입술로만 웃었다. 스팍은 그 휘어진 입술이 목소리를 내는 듯한 환청을 들었다. 논리적으로 짐 커크에게 희망이 없다면 그를 포기하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이 존 해리슨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조금 유순한 재판을 내려줄 지도 모르지. 스팍은 언제든 자신이 끊어버릴 수 있는 목줄을 가만히 손에 쥐었다. 그보다 우월한 이성과 그보다 부족한 감성을 가진 존 해리슨의 눈이 스팍을 관찰했다. 그 때 스팍은 존 해리슨이 이곳을 인간들이 발자국 하나 낼 수 없는 요새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기억해 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100% 이상의 필패를 의미했다. 오늘도 존 해리슨은 아주 재밌는 광경을 감상했다고 여기며 사라졌다. 해리슨이 한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붉은색 와인은 비틀린 장난처럼, 불순한 자비처럼 스팍의 시야를 채우며 멈춰 있었다.
* * *
기묘한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의 눈동자는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색깔이었다. 약간의 파란색, 다수의 초록색, 어두운 환경에도 민감하고 주변의 빛깔을 잘 받아들인다. 주인의 성미만큼이나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눈동자가 맑은 수면에 밀려나면서 투명한 눈물이 범람했다. 스팍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면서, 심오한 서사시에나 등장할 법한 존 해리슨의 비현실적인 눈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가?”
해리슨이 그대로 고개를 돌려 스팍을 응시했다. 해리슨의 움직임으로 생긴 순간의 진동에 그의 눈물이 스팍의 눈앞에서 빠르게 떨어져 바닥을 때렸다. 약하게나마 울고 있으면서 해리슨은 눈썹 하나 떨고 있지 않았다. 석고상에서 물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스팍은 그것이 꽤 타당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존 해리슨은 인간이 처음 손댔으나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떠오르는 감상이 없나, 스팍?”
유리 감옥에 바짝 접근한 해리슨의 검고 긴 실루엣이 앞을 어지럽혔다. 그 와중에 살짝 얼굴을 기울인 존 해리슨의 오른쪽 눈동자로부터 다시 눈물이 새어나왔다. 손가락 하나마저도 무기와 다르지 않은 잔인하고 위력적인 전투병기가 울면서 스팍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당신의 어떤 감정이 눈물을 지어 내는지 추리하게 되는군.”
스팍의 딱딱한 대답에 해리슨의 표정이 점차 변했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의 눈가가 찡그려지면서 해리슨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함선에 있었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해리슨이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저것들 열 개가 모이면 인간을 살해할 수도 있으며, 이미 스팍의 머리를 강력하게 짓누른 적도 있었다. 매일같이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모색하는 스팍에게 가장 성가시고 난해한 변수로 작용하는 존 해리슨이 스팍에게 말했다.
“나는 죽어버린 동료들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흘릴 수 있어.” 그가 덧붙였다.
“자네가 가장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일 텐데.”
인간의 기술이 빚었으나 그들의 피는 섞이지 않은 존 해리슨은 여러모로 스팍의 앞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냈다. 완벽한 근거 위에 쌓아 올린 부도덕한 주장과 궤변, 이따금씩 강조하여 스팍을 흔들어 놓는 그 자신과의 공통점, 그가 허락하는 말과 공기를 들이 마시고 있는 동안 스팍은 제임스 커크의 열세와 존 해리슨의 이성을 자꾸 저울질하게 되었다.
해리슨은 어느새 위압적이고 당당한 지배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스팍을 힐끗거렸다. 해리슨은 그에게 해가 되지 않는 감정과 그를 굴복시킬 수 있는 논리만을 제공한다. 눈물이 마른 차가운 눈이 집요하게 스팍을 쫓았다. 고향의 멸망을 떠올린 스팍의 입술이 거세게 떨렸다. 그리고 그에게 조금씩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는 기분에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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