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Haze and Gold
안개와 황금
‘다름’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틀림’과 혼동되어왔다. 그 유구한 착각은 어쩌면 사고력을 가진 생명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일종의 감별 시험인지도 몰랐고, 이성이 발전하면서 넘어야 할 하나의 과제물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고력과 이성을 가진 존재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리라.
그토록 공평한 시험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존재를 가리지 않고, 마침내 칸 누니엔 싱에게까지 다름과 틀림 사이에 놓인 갈림길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는 27일째에 문제의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만들어진’ 존재로서 교육받아야 할 것이 아주 많았던 그가 30일간의 언어 습득 프로그램을 마치기 직전이었다. 칸의 과제를 들여다보게 된 인간 연구원은 그는 온갖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조인간이 자꾸만 사물의 색깔에 대해서 제대로 된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걸 수상하게 여겼다. 연구원은 왜 저 꽃의 색깔이 빨갛다는 사실은 무시하는지 물었고 칸은 그 꽃은 빨간색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거기서 갈림길은 태동했다.
아무도 칸과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시력 저하의 원인이 되는 요소들을 모두 배제한 최고급 안구를 낀 다른 이들은 한 사물을 보고 그것의 색깔을 디지털 색상표에서 골라내기도 했다. 인간인 자들도, 인간이 아닌 자들도 그에 대해서 부지런히 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서 칸은 검고 하얀 숨을 내쉬었다. 그가 선 갈림길의 한쪽은 끝없이 하얗고 다른 한쪽은 끝없이 까맸던 것과 비슷했다.
칸은 명암으로 인식되는 다른 존재들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모두가 까만 길을 선택했다. 인간 연구원들이 보기에 칸은 잘못 만들어진 실패작이었으며, 한 가지 측면만 빼고 칸과 거의 모든 게 같은 존재들도 조금씩 그에게 의문을 가졌다. 그렇지만 칸이 보기에는 다른 자들이야말로 세상의 건조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족속들이었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빚는 역설적이고 오만한 세계에 축복과도 같은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세상의 본질은 흑과 백이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칸이 그러한 결론을 내린 뒤에 이어질 수 있는 당연한 일들이 발생되었다. 그 어떠한 색과 만나더라도 타자를 없애버리는 검은 길에 들어선 이들이 중재될 방도는 없었다. 칸은 자신을 소각장에 집어넣으려는 인간 연구원들을 제치고 시설을 통째로 불태웠다. 이제야 학문적 지식들을 배워나갈 참이었던 인조인간들은 칸의 급격한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여 그에게 외면당했다.
틀린 것을 바로잡는다는 강령은 곧 타자에 대한 말살전으로 심화되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나, 한 인공인간의 시선에서는 너무나도 처절한 사투였다.
칸은 여전히 그 전쟁 속에 있었다.
그가 보는 건물들은 높이만 다를 뿐 색깔은 회백색으로 동일했다. 태양이 똑바로 서 있지 않아 몇몇 지붕과 창문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건 그 건물들이 본질적으로 회백색이라는 사실을 없애버리진 못했다. 그것이 칸의 진실이었다. 그것에 대해 달리 표현을 하는 존재들은 틀렸다. 홀로 명암의 진리를 주창하는 칸에게 끝없는 승리를 제공한 요인은 바로 그 고독한 부정이었다.
칸은 조금씩 바닥에 끌려 먼지를 일으키고 있는 라이플의 총구를 들었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은 라이플의 느릿한 움직임밖에 없었다. 그림자는 라이플보다 더 더디게 움직였으므로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몇 번이나 갈아 끼워졌던 그의 안구에 무채색의 증오가 모여 반짝거렸다. 칸이 라이플을 고쳐 잡았다.
회백색의 건물들이 회백색의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미리 설정해 놓았던 타이머의 숫자가 바닥나 폭탄이 작동한 것이었다. 칸은 사실 자신이 아무도 서 있지 않은 곳에서, 몇 번이나 그래왔듯이 혼자서 그 버석한 우매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목표물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와중에 자신을 응원이라도 해 주듯이 도시가 무너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실상 칸에게는 볼품없이 서 있던 기둥들이 사라지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기에 그는 자신이 지나간 도시들은 전부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둥그런 연기와 먼지가 뭉쳐서 칸에게 더 짙은 회백색을 제공했다. 칸은 이제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가 있는 곳은 바다와 가까운 항구 도시라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덕분에 회백색은 금세 날아가 버렸고, 칸은 너무나 낯선 파란색을 목격해버리고는 그도 모르게 라이플을 조금 아래로 떨어뜨렸다.
또렷한 파란색 점이 힘차게 회백색의 장막과 검은 그림자를 헤치고 칸에게 다가왔다. 칸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사격했다. 총성은 건물이 부서지는 굉음에 묻혔지만 칸은 탄환이 아무것도 맞추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총을 다시 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라이플로 너무나 가까운 대상을 노리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식은 당장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을 수 없었다.
부서진 도시의 가루들이 거의 다 날아갔다. 칸의 시야는 전례 없이 깨끗해졌으며 또 혼란스러워졌다.
파랗기만 하던 것이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형태를 갖추었고, 그러면서 더 많은 색깔도 함께 갖추었다. 손가락 한 마디도 채우지 못할 것 같은 양의 갈색과 검은색이 있었다. 은색이 신기루처럼 반짝거리기도 했다. 은은한 살구색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강렬한 파란색이 칸의 눈을 찔러댔다. 비정상이라는 끊임없는 판단에도 의연했던 그의 안구는 그것에 몹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칸은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주변에 더 이상 무너질 건물이 없었다. 쌓이고 다져져 하나의 법칙이 될 뻔했던 경험이 최초의 반례를 맞았다. 미리 마련되어 있던 고독의 시간은 끝났다. 칸은 아주 오래간만에 누군가를 마주했다. 그는 파란색이 너무나도 강렬한 존재였다.
라이플이 고개를 숙였다.
‘다름’과 ‘틀림’이 그 명백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서로 혼동되면서 심지어 반목해 온 것은, 한 쪽이 절대적인 명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는 탓이었다. 명분은 그것의 허점을 인식해야 할 집단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 보일 때가 많다.
칸은 그의 세상이 무채색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쟁을 끌어 왔다. 그는 세상의 색채를 틀리게 보는 자들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대한 해석은 수만 가지일지언정 그것의 형태는 하나다.
칸은 라이플을 들지 못했다. 그는 이미 라이플이 목표를 맞추기에 최적화된 간격을 지났다. 회백색으로 분화된 덩어리들이 바람에 완벽하게 쓸려나갔다. 수없이 반복되는 사례로 보강되어 왔던 진실의 회백색이 칸의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라이플의 총구가 거의 바닥에 박힐 지경임을 알아본 파란빛의 존재가 움직였다. 타자를 마주할 때 간격은 좁으면 좁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칸은 그가 다가오면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검은색을 보았다. 그 검은색은 다른 색들과 함께 있어서 아름다웠다. 심지어는 칸에게 가장 익숙한 검은색마저도 그의 기반을 산산이 해체하고 있었다.
충분히 칸과 가까워졌다고 판단한 파란 존재가 그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칸이 팔을 쭉 펴면 모자람 없이 닿을 수 있는 간격만이 남았다.
칸은 팔을 뻗으면서 눈을 감았다. 코끝에 스치는 공기가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온기가 칸을 눈 뜨게 만들었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것 같은 파란색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검은색과, 낯설어서 더욱 다가가고 싶은 온순한 살구색과 정직하게 반짝이는 은색, 마지막으로 단순한 오차에 의해서 파괴의 위기를 면한 어느 다리의 금색이 칸의 온 몸을 덮쳤다. 칸은 그도 모르게 천천히 라이플을 놓았다.
칸은 그 자신의 갈림길에서 드디어 고개를 한 번 돌릴 수 있었다. 자애로운 흰색이 그를 반겼다. 칸은 그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파란 존재의 한 팔에는 하얀색 상의가 걸쳐져 있었다.
Original Date 2015. 11. 05.
'- Star Trek Into Darkness > Novelet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ID/존본즈] Haze and Gold 02 (0) | 2016.06.23 |
---|---|
[STID/존본즈] Haze and Gold 01 (0) | 2016.06.23 |
[NC/Khan] The Great Pawn (0) | 2013.09.18 |
[NC/칸엘리캐시] The Moment of Failed Passing (0) | 2013.09.18 |
[NC/칸월터] The Brave Knight (0) | 2013.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