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뛰어넘은 존재와 기억 그 이상이 된 존재 사이의 우열을 논할 수 있을까?

 

  전자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모든 이들은 아주 근사한 이름을 받는다. 지혜 그 자체를 의미하는 이름, 신을 찬미하고 그 축복을 얹은 수많은 성스러운 이름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역사상 최초의 인간이었던 자와 이름이 같고 심지어 천사들의 이름을 그대로 받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개개인의 이름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름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혜라는 개념 자체를 초월한 현자의 탄생을 의미할 수도 있고, 영리한 것보다 더 민첩한 기지의 소유자를 은유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신의 벗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나같이 굉장한 일들이다. 

 

  그렇다면 기억 그 이상이 된 존재는 어떨까? 먼저 기억이라는 게 나와 당신이 공유하는 사적인 역사라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도출되는 기억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당신이라는 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잘 팔리는 역사서가 아니라 머릿속에만 기록된 사적인 이야기라는 것. 그리하여 기억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곧 내 존재가 단지 당신과 당신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며 폐쇄적으로 한정되어 있던 나의 실존을 뛰어넘는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다수가 아는 이야기가 아닌 이상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은 많은 이들에게 추상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시 위대한 일처럼 보인다.

 

  아마 이 두 가지 중 무엇이 우월하고 더 추구할 만한 가치인지는 쉽게 정할 수 없을 듯 보인다. 만약 자기집중적인 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뛰어넘길 더 바라겠고 야심이 있는 자라면 기억을 넘어서길 바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 기억을 뛰어넘으면 나는 당신만이 독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된다. 그리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려 하는 건 야심 있는 자들의 특징이다.

 

  이 모든 말들은 사실 내가 한 사람을 추억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는 누군가가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곧장 이러이러하다며 대답하기 곤란한 축에 속한다. 그 덕분에 나는 단 한 사람을 말하고자 꽤나 복잡스러운 사고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지배자의 기표와 200년을 넘나드는 기억을 가진 자이니 조금은 내 느릿함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알렉산더 혹은 빌헬름 같은 이름 역시 큰 업적을 세웠던 왕들이 썼던 것이고, 이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지배자의 기표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는 그들보다 더 보편적인, 지배자라는 위치를 점유한 자의 이름이 알렉산더와 빌헬름, 라파엘이라도 상관없는 하나의 개념 혹은 지위를 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그는 정복이라는 맥락 그 자체를 타고나버렸다. 고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뛰어넘기란 정말로 힘든 일이다. 사전에 실려 있는 문제의 단어에 자신을 의미하는 새로운 의미를 추가시키는 양상이 가장 현실적이고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수로 보이기는 하는데, 사전을 뒤집어엎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 그리 쉽던가. 

 

  더군다나 그는 순식간에 200년을 뛰어넘었다. 만일 그가 기억을 뛰어넘겠다는 각오를 한다면 그는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일일이 자신의 장애물을 만들고 그것을 향해 도약하는 이중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200년을 건너 눈을 뜬 그에게는 ‘당신’이라는 게 없는 탓이다. 풀 한 포기와 나눠가졌던 기억을 초월하겠다고 해도 2세기를 버틴 식물은 많지 않을 거다. 기념물로 지정될 정도의 무생물, 혹은 자신과 그야말로 무관계한 사람들. 그가 넘어야 할 것들은 형체도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형체를 잡는 게 불가능할 지경으로 너무나 많은 개별자들이었다.

 

  그가 무엇을 선택했을 것 같은가? 놀랍게도 그는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두 가지 다 넘어서지 않았다. 지배자의 틀에서 빠져나온 건 그것을 상징하는 자신의 이름을 넘어선 행위가 아니며, 기억을 가꾸기로 한 결정 역시 그것의 초월과는 거리가 멀다. 

 

  200년 전의 그였다면 아마 이름과 기억 두 가지를 목표로 했을 것이고 충분히 그것을 깨부수고 발로 짓밟아 흔적도 없이 만든 다음 그 너머를 유유히 걸어갔을 게 분명하다. 아직도 그는 가끔 그러한 성향을 드러낸다. 그런데 태어난 직후부터 성물처럼 떠받들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간을 전복시킨 그가 누군가를 가두고 거느리는 익숙한 작업을 내려놓고 단순한 대표에 만족한다. 대의 정치라는 대단히 민주주의적인 낱말이 떠오를 정도다. 또 자신의 의도가 다수의 공리였기 때문에 오히려 타자나 당신이 필요치 않았던 그가 한 명과 나눌 수 있는 사사로움에 안착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뛰어넘은 것 같다.

 

  이 역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Inspired by the music 'More Than a Memory' of Hoobastank

Based on History of Independence by Jade Esslin Sauniere.

A Humanologist wrote this for The Great Sentinel, Khan Noonien Sin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