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PART 2. PRESENT
16. Premise of Harmony
크로노스 공방전에 참가한 장교들은 다 캐롤 마커스의 한 발이 마지막 전투를 좌우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총알을 뽑아내기만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수 있는 센티넬을 겨냥하긴 했지만, 그 센티넬이 상처를 치유할 의도가 없다면 충분히 위력적인 일격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녀의 타깃은 알게 모르게 클링온들의 전략적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일단 가을바람에 무기력하게 휘날리는 낙엽처럼 스러지던 지상군을 붙잡아준 게 캐롤의 사격이었다.
제임스 커크 대령이 자신이 구심점이 되었던 스타플릿 함정 부대로 클링온들의 전투선이 배치되어 있는 주요 격납고를 점령하자마자 남은 장교들을 지상으로 급파했다는 점도 물론 무시할 수 없다. 대령의 영리한 전술로 스타플릿 군은 양방향에서 클링온들을 압박할 수 있었다. 여기에 가이드의 지원을 받으며 효율적으로 적을 공략했던 모리스의 역할이 더해지자 승기는 스타플릿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스타플릿은 이겼다. 승전을 선언하면서 행사도 크게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파이크 제독의 안색은 밝지 않았다.
스타플릿 내부에서는 센티넬 하나가 전쟁을 촉발시켰다는 의견이 정설로 꼽히고 있었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전쟁에 관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스타플릿 안에서만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칸이 전쟁을 일으킬 명분과 전투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온갖 요소들을 들고 크로노스에 협력한 일은 바깥에 알려진 적이 없었다.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 그는 아직도 전쟁 때문에 대중의 뇌리에서 운 좋게 잊혀진 테러리스트 존 해리슨이었다.
파이크 제독은 겹겹이 쌓여 있는 칸의 정체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칸을 존 해리슨으로 남겨둘 수가 있다는 게 제독이 갈등하고 있는 주된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센티넬 한 명이 가이드를 거부하더니 전통대로 인간들을 공격했다며 공표해버리면 200년 된 사료처럼 취급되던 존재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제독은 동결되어 있는 센티넬을 폐기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게 될 것이다. 여론은 전쟁의 원흉이 될 수 있는 자들이 10명이 넘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총알 하나에 순순히 힘을 내려놓았던 칸이 분노할 테고, 무엇보다 스타플릿을 가로막을 수 있는 명분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는 모리스의 압박이 엄습할 것이었다.
모리스는 센티넬이 인간 가이드를 두기를 거부하고 더더욱 인류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면 어떻게 하냐는 의견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반례이다. 엔터프라이즈에 소속되어 캐롤 마커스와 함께 행동했던 만큼 그에겐 조작할 수 없는 기록들도 많이 남아 있는 전쟁 영웅이기도 했으며 적으로 돌린다는 상상을 하기 싫은 인재였다.
파이크가 미간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그다지 시끄러운 동작은 아니었는데도 제독은 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그 때 처음 들었다.
“제독님, 바쁘십니까?”
파이크는 속으로 놀라면서 대답했다.
“아니네. 들어오게.”
빠른 동작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폴 브라운이었다. 눈두덩을 꾹꾹 누르면서 착잡한 내부를 다스려보려던 제독은 다소 멋쩍게 손을 내렸다.
“안에 계신다고 하셨는데 답이 없으시더군요.”
“내가 내 생각에 너무 몰두했던 모양이군. 미안하네. 일단 앉겠나?”
파이크 제독이 책상에서 벗어났고 폴은 왼쪽 소파에 앉았다. 제독의 이모저모를 살핀 그는 대화에 기름칠을 할 수 있는 미사어구들을 아예 배제하기로 했다.
“전후 처리할 사항들이 많으실 줄로 압니다.”
제독이 씁쓸하게 웃었다.
“실은 그것 때문에 머리가 좀 아프다네. 쉬운 게 하나도 없어.”
“다행히 제가 도울 수 있는 분야군요.”
파이크가 눈을 크게 떴다. 폴이 용건을 꺼내는 속도와 그가 한 말의 내용 모두에 놀란 제독의 동공이 눈꺼풀에 닿을 정도로 팽창했다. 파이크는 앉은 자세를 고친 다음 평온해 보이는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위를 주시했다.
“자네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귀담아 듣겠네. 어떤 해결책이 있다는 건가?”
제독의 질문에 폴은 질문으로 응했다.
“인간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정치와 군사학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던 제독은 느닷없이 자신에게 과학적 지식을 묻는 대위에게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제가 제독님께 드릴 수 있는 방안이 인간학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여쭤본 겁니다. 제독님이 인간학에 대해 아시는 바가 전무하다면 제가 몇 가지 기초적인 설명을 드려야 합니다.”
파이크가 옆머리를 긁적였다.
“센티넬과 가이드에 관해서 묻는 거라면 최근에 공부를 좀 해봤네. 입문서 정도는 읽어본 수준이 아닐까 싶네만.”
“충분합니다. 인간학 입문서에 센티넬과 가이드의 1:1 대응이라는 주제가 빠져있을 확률은 없으니까요.”
“자네가 어떤 얘기를 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 어서 말해보게.”
이후 파이크 제독은 비(非)가이드 중에서는 상위권의 학식을 자랑하는 인간학자 겸 의사로부터 작은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지막에는 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칭찬했다.
⁂
폴은 그것을 카빙(Carving)이라 칭했고, 더 쉬운 표현으로는 각인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서문을 열었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가이드에 대한 센티넬의 카빙은 가이드가 주는 안정과 평화를 센티넬이 영속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발생한다. 이것은 센티넬이 다수의 가이드를 맞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레비나스 맥코이의 이론 중 하나인 센티넬-가이드에 관한 1:1 대응을 더 구체화시킨다. 이 때 제독은 물음표를 피워 올렸는데, 폴은 센티넬과 가이드는 카빙을 통하여 서로가 유일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거라고 설명했다.
“내가 봤던 책에는 없었던 내용이었는데.”
“당연합니다. 이건 제가 첫 번째로 주장하는 개념이고 책이나 논문에 실은 적도 없습니다.”
폴은 경악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제독의 안면근육을 외면하고 말을 이었다.
가이드가 센티넬에게 줄 수 있는 여러 편의를 생각해 본다면, 센티넬이 가이드가 주는 정신적 보금자리를 거부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인간학자들이 센티넬과 가이드의 대응 공식에 굳이 손을 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걸 탓할 수는 없다. 폴은 칸 누니엔 싱이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각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모리스와 캐롤 마커스의 사례는 일반적인 경우에 센티넬과 가이드는 첫 접촉 직후 카빙과 1:1 대응 관계를 동시에 성립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폴은 이 일반론을 벗어날 자는 칸밖에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는 유사-가이드 관계를 독자적으로 이룩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캐롤 마커스와 일대일 관계를 형성하길 거절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칸이 또 다시 카빙을 피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건 센티넬이 가이드를 만났을 경우 발생하는 자연스럽고도 과학적인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가이드를 포기하고 자폭해버릴 가능성은 없다는 소린가? 그의 상태가 꽤 위태롭다고 들었는데. 솔직히 나는 전후 사태를 다 수습하기도 전에 큰 사건이 또 일어나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네.”
“칸은 자신의 손으로 선택권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센티넬이긴 합니다. 분명히 그는 폭주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폴은 그 시점에서 나란히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두 명의 존재를 그렸다.
“하지만 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가이드가 그에게 외면 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폴 브라운이 일반적인 센티넬이라고 분류한 모리스의 행동은 정말로 상식적인 수준을 걷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도자를 지키는 중이었다.
전쟁의 공공연한 주역이자 자신이 실천해야 마땅한 도리를 따르고 싶다는 센티넬을 막아설 정도로 담이 큰 사람은 없었다. 또 어떤 식으로든 조용하게 말릴 방법이 없어 보이는 강화인간의 문지기 역할을 자청할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모리스도 조금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모리스는 문을 열지 않는 이상 아무런 생명의 징후도 느낄 수 없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위대하지만 실패한 센티넬이 지식을 먹고 있었다.
모리스는 약간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고 그의 지도자가 지식을 먹고 있다고 간주했다. 비단 음식이 들어 있는 식판이 아니라 책만 요구하고 있는 칸의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리스는 약 200년 전에, 학자들이 분류하기로는 진화전쟁의 판세를 바꿔 놓았던 휴전기 때 비슷한 모습을 본 바 있었다. 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논리를 해석하고 변형하는 자의 행위는 쉽게 잊혀질만한 것이 아니다.
모리스는 잠시 눈을 감고 뒤편에 집중했다. 아무 것도 전해져 오지 않았다. 그는 칸의 기척을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편안하게 생각을 하고자 눈을 더 감고 있었다. 시각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앞에 펼칠 수 있게 된 그가 띄워 올린 건 차가운 대륙에서 만났던 과학자들이었다. 칸이 감옥에서 파헤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삽시간에 깊어져가는 모리스의 사고를 흔들어 놓은 건 역시 감각이었다. 정확하게는 바닥에 붙어 있던 발바닥이 감지한 작은 진동이었다. 모리스는 자신에게 용건이 있는 고위급 장성이 보낸 심부름꾼이 오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의 리더는 중요한 순간마다 혼자였었다.
그 모든 걸 깨뜨리기 위하여 레너드 맥코이는 다가오고 있었다. 레너드가 결연히 입술을 열었다.
⁂
커크는 다시는 여기에 오고 싶지 않다며 투덜거렸다. 스팍은 한 번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될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함장의 투덜거림을 무시했다. 그러자 커크는 지나치게 경제성을 따지는 스팍의 침묵에 불평하다가 패드에 서명을 했다. 선원은 패드를 받아든 뒤에 동료에게 앞으로 가라며 손짓했다.
누가 봐도 어뢰 혹은 폭탄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법한 무채색 덩어리들이 수송선 안으로 들어갔다. 식량을 짊어지고 굴로 이동하는 개미를 연상케 하는 행진이 사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칸에게서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클링온이 생산하던 군사적 물자들이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마무리 작업이었고 스타플릿 마크를 단 함정들을 크로노스로 불러들인 마지막 빌미였다. 클링온에게 다시 한 번 붙어보자는 호승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요소를 남겨둘 수는 없었거니와, 스파이가 남긴 전쟁의 잔해를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파이크 제독은 본 작업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광고하기라도 하듯이 엔터프라이즈호 외 1척의 함선을 크로노스로 파견했다.
작업은 수레에 실린 물건이나 무기들을 꼼꼼하게 확인한 스팍이 커크에게 신호를 보내자 커크가 수송이 정상적으로 접수되었다는 사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오직 함장만이 서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탓이었다. 커크의 왼편에서도 함장과 부함장이 짝을 이루어서 물품을 체크하고 들여보내고 있었고 차례를 기다리는 선원들의 숫자가 그에 비례하여 줄어갔다.
이번엔 빨간 유니폼을 입은 선원이 패드를 옆구리에 끼고 스팍의 점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커크는 눈을 굴리다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라이플 한 자루를 들어 올리는 스팍의 표정이 전과 조금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왜 그래, 스팍?”
“맥코이 소령을 구하러 갔을 때 본 적이 있는 물건들이군요. 케사에 다녀왔나?”
“저희 조가 존 해리슨의 아지트를 수색하는 일에 지원했었습니다. 얼핏 보기엔 다 평범해서 그냥 안에 있던 것들을 챙겨왔습니다.”
호기심이 동한 커크가 몸을 옆으로 빼서 수레를 살폈다. 총기류 사이사이로 유해해 보이지는 않는 기계 장치들이 끼어 있었다.
“정말 별 거 없네.”
스팍이 뒤로 가볍게 물러나며 선원에게 말했다.
“바닥에 어질러져 있던 것들은 가져오지 않은 모양이군.”
“예? 아, 예. 종이쪼가리랑 책, 깨진 접시 조각처럼 보이는 유리들이 다수였기에 쓰레기인 줄 알고 놔뒀습니다.”
“알겠다. 서명하셔도 좋습니다, 함장님.”
그러자 선원이 패드를 내밀었다. 커크가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에 서명을 남겨 주었다.
“혹시 놓친 게 있을 까봐 그래?”
“아닙니다. 저도 칸의 거처에는 특별한 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누가 전쟁에서 이기든 상관없이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다시 찾지 않을 곳에 중요한 걸 놔두지는 않습니다.”
“칸이 아지트를 버렸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 건데?”
놀랍게도 스팍은 머뭇거렸다. 벌칸이 애매하지 않고 명료한 대답을 생각하는 데 애를 먹는 건 드문 모습이라 커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어만으로 그걸 묘사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함장님도 그곳에 들어가 보셨다면 아셨을 겁니다.”
스팍의 설명은 그게 전부였다.
⁂
모리스가 천천히 문을 개방했다. 칸이 끊어지는 동작으로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칸은 모리스가 누군가를 대동했음을 문이 열리기 전부터 눈치 챘다. 학자의 지적이면서도 광기어린 집착이 모여 형성된 것 같은 센티넬은 마른 눈동자로 입구를 응시했다.
칸은 레너드 맥코이를 보면서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레너드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해했는데 모리스는 칸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듯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레너드가 바람 소리가 나게 시선을 떼서 모리스의 얼굴에 붙였다. 모리스조차 말이 없었다.
레너드는 크로노스에서처럼 칸을 오롯이 마주하게 되었다.
“당신을 골탕 먹이려고 사실을 숨기고 있던 건 아니었어. 당신이 무엇에 매달리고 있는지 추측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으니까.”
칸의 눈동자는 분명 레너드가 서 있는 지점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레너드는 칸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당신이….”
“너무나 명백했다.”
맥락이 도려내진 조각이 레너드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레너드는 그것을 단번에 받아들었다.
“뭐가?”
접히고 엎어진 책들을 건강함을 잃어버린 깃털처럼 양쪽에 펼쳐 놓고서 칸은 말했다.
“가이드라인과 센티넬 스파이럴의 관계. 가이드라인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 레비나스 맥코이가 은연중에 정의하고 있었던, 조화라는 것의 전제. 내가 앞서서 알지 못했던 것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습기만으로 적셔지고 있는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비가 오지 않는 크로노스의 밤을 닮아 있어 건조하고 서늘했다. 레너드는 그것에 압도되고 있었지만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잊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가 입 안에서 연습하고 있는 말은 오래되고 마른 공간에 잘 어울렸다.
“왜 그 전에는 당신이 그것들을 몰랐을까?”
“제대로 안정되지 못한 채 강제로 배출되어 가이드 없이 마커스에게 이용당했다는 상황이 모든 걸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맞아.”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지는 못해.”
레너드는 고개를 저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이 그 전에 생각하고 있었던 게 뭐였지? 당신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절대 잊지 않으려 했던 것.”
“나의 동족들이 인간 가이드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겠다는 목표.”
“다시 말하면?”
“가이드에게 고하는 센티넬의 위대한 독립.”
“당신의 안에서 그건 너무나도 확고했어.”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그걸 잊어버리라고, 버리라고 말하진 않겠어. 이제 머릿속에 그거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인간학이 주장하는 조화의 전제라는 건 뭐야? 레비나스의 책들이 당신에게 어떤 해답을 주었는지 얘기해봐.”
“피곤하군.”
“지칠 정도로 혼자였던 적 있었어? 인간 식으로 말하면 다들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나는 늘 할 일이 있어서, 양심에 찔려서 집에 남아 있는 거야. 처음에는 괜찮아.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중엔 그게 점점 힘들어지고, 마침내는 내 청각을 건드리고 내 주변을 어지럽히는 방해물이 없다는 것에 피곤해하게 돼. 그건 독신자의 권태야. 당신의 권태야.”
진리만큼 뚜렷하거나 감정만큼 추상적인 무언가로 치달아가는 것 같았던 대화는 칸이 입을 다물면서 잠깐 끊겼다. 그의 손에 바닥에서 떨어졌다. 흩어져 있던 책이 살짝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당신 대신 내가 목소리를 내 볼게. 인간학의 중심은 센티넬과 가이드 모두에게 조화는 나와 나 사이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걸 알려주는 거야. 나 혼자서 무슨 조화를 꾀할 수 있겠어. 조화의 기본적인 전제는 언제나 둘이야. 나와 한 가지라도 다른 누군가, 나와 마주보는 대상, 타자.”
“자아가 아닌 것.”
“그래. 그래서 타자지.”
“나의 타자는 센티넬이 아닌 존재라는 건가.”
레너드가 웃으며 말했다.
“맞았어.”
레너드는 이제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고 칸과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그런데 칸은 웃지 않았다. 레너드는 언제든 모리스를 불러서 복도로 탈출할 수 있는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나 조화는 지배도 억압도 아니다. 나의 타자가 오로지 가이드여야 한다면, 인간이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센티넬과 가이드는 평행하지 않아. 역전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는 결코 조화가 될 수 없다.”
“누가 당신을 억압하고 지배하려고 했는데?”
“알렉산더 마커스, 골턴 연구소의 수많은 박사들.”
“물론 당신에겐 그런 운 나쁜 사례들이 있었어. 그런데 당신이 아는 인간들이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당신의 첫 번째 가이드가 될 뻔했던 오필리아 밀레이스, 레비나스 맥코이, 캐롤 마커스는 어땠지?”
칸은 잠시 쉬었다가 대답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나를 강력하게 짓누를 수 있었군.”
“그리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
그 말을 하는 레너드의 어조는 부드러웠다. 칸은 반발심을 느끼지 못했다.
“독립은 기본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쫓는 행위야. 독립이라는 멋들어진 말이 붙은 건 그게 대개는 내 타자일 자격이 없는 누군가를 떨쳐내는 일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지. 보통 어떨 때 독립이라는 말이 붙더라? 인정사정없이 나를 무력으로 밟고 내 정체성을 하나씩 뺏어가려는 자들에게 저항을 선포할 때야. 당신의 독립은 그래서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어. 양립하는 게 옳은 대상에게 독립을 하겠다고 한 거잖아.”
칸은 느린 호흡으로 눈을 깜빡였다. 영영 레너드를 보지 않겠다면서 눈꺼풀에 붙어 버릴 수도 있었던 청록색 안구는 제 자리를 지켰다. 그는 사고했다.
“센티넬과 가이드는 그런 거야.”
레너드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칸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여기고 발뒤꿈치를 뗐다. 죽어버린 깃털 같던 책 더미들은 이제 투박한 이정표처럼 보였다.
가이드가 센티넬을 만나 인사했다.
추상성+급전개+분량미달 삼종 세트구만 으하하하하 비러머글... 힘들다 힘들어
아, <드래곤 라자>와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저서에서 나온 개념을 변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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