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PART 2. PRESENT
13. Humans are Trying
파이크 제독이 현장에 파견한 함선은 총 4대였다. 스타플릿을 어서 전투로 불러들이기 위해 툭 건드려봤다는 클링온의 꿍꿍이는 명백했으나 제독은 그들의 기를 꺾어놓길 원했다. 단단히 무장을 갖춘 네 대의 함선은 일개 전투기에 지나지 않는 클링온들을 손쉽게 처리해갔다. 정거장 파편과 광선을 동시에 피해야 하는 클링온 기체는 보는 사람이 어지러울 지경으로 곡예비행을 했고, 함선이 쏘아 붙인 어뢰가 날쌔게 적을 쫓아갔다. 기어코 폭발이 일어났다.
“저희가 이기고 있는데요, 함장님?”
“이기려고 왔는데 당연한 소릴! 하나만 남을 때까지 몰아붙인다!”
힘이 제대로 들어간 함장의 명령을 받들어 엔터프라이즈가 다시금 눈을 찌르는 빛을 내뿜었다. 우주를 직면하고 있는 함선의 메인 스크린은 때때로 그 빛에 하얘졌다.
“적의 기체 대부분이 활동 불능 상태입니다.”
“하나 남았습니다, 캡틴!”
커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기관실과 연결되어 있는 직통 회선을 열었다.
“스캇, 지금이야!”
―젠장!
짧고 굵게 탐험가에서 한참 벗어나 버린 자신의 위치를 한탄하면서도, 스캇은 커크의 지시대로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걸로 스캇은 엔터프라이즈가 두 번밖에 쓸 수 없는 쇼크웨이브(Shock Wave)를 쐈다. 존 해리슨이 처리하지 못한 찌꺼기 같은 자료를 긁어모아 스캇이 탄생시킨 걸작이 우주 바깥으로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전방에는 날개가 꺾인 기체와 그렇지 않은 기체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날개에 관계없이 기체들은 정지했다. 엔터프라이즈가 발사한 충격파 덕에 클링온의 기체 안쪽에서는 엔진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툭툭 꺼져가고 있을 것이었다.
“좋았어, 전송실이 나설 차례야!”
커크가 확보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입을 움직일 수 있는 클링온과 통신 장비가 고장 나지 않은 기체. 그가 다소 사소해 보이는 이것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게 된 건 어찌 보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
“…와우, 그것 참 대단한 발상이긴 하네…. 인간을 가이드로 만든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강화인간에게도 적용 되지 않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거지.”
커크는 반쯤 말아 쥔 손가락의 표면으로 머리카락을 슥슥 문질렀다. 머리카락을 문지르는 횟수는 점점 늘어가면서 커크의 사고가 엉켜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커크는 자신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던 인간학과 관련된 엄청난 이야기를 방금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커크가 마주보고 있는 상대방은 참을성 있게 그가 생각을 다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커크는 눈썹을 쭉쭉 올리면서 아직 귓가에 매달려 있는 문장들을 끌어올렸다. 존 해리슨은 센티넬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배정되었었던 가이드 캐롤 마커스를 떠났다.
“인간하고는 차원을 달리 하는 센티넬이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겠지요.”
커크는 이어서 생각했다. 그런데 데이스트롬 때처럼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지 않고 혼란만 일으킨 후에 레너드 맥코이만을 쏙 데려갔다.
“어쨌든 존 해리슨의 시각에서 머리를 굴려봤다는 거잖아. 대단한 거지. 음, 그럼 얘기로 돌아와서, 거추장스러웠던 가이드를 한 번 떼어낸 작자가 또 다시 가이드를 데려갔다면 그게 평상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거지. 게다가 본즈는 스타플릿 장교라서 일반인 가이드보다는 납치하기도 어려울 거고. 쳇, 이 말은 하면서도 부끄럽네.”
“통상적으로는 대령님 말씀이 정확하니까 넘어가지요. 또한 우리는 논리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센티넬과 가이드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사람은 아무래도 맥코이일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커크는 아하, 하면서 그 말을 이해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뜻이다.
“200년 전도 아니고 센티넬을 돌봐줄 가이드가 여기저기 세상을 돌아다니는데 그 놈은 먼 길을 돌아가는군. 나야 인간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센티넬이 가이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한 번도 연구된 바 없는 주제지요. 진화전쟁 이후로 센티넬이 처음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하지만 인간을 증오하면서 자존심이 높은 센티넬이라면, 가이드를 이용해서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칸이 세운 유사-가이드 관계를 보완해 보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해리슨이 본즈를 데려갔다고? 레비나스 맥코이의 후손을?”
“맞습니다.”
폴 브라운은 인간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커크에게 자신의 가설을 세세하게 설명해 놓고도 별로 힘든 기색이 아니었다. 커크가 조금씩 자신의 맥락을 따라오자 후련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커크가 폴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렇다면 그 놈이 아무리 우주 밖을 떠돌고 있어도….”
폴이 아래위로 살짝 고갯짓했다.
“크로노스에 가면 레너드를 찾을 수 있겠지요.”
⁂
폴 브라운은 일부러 의무실 문을 열어놓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 왼쪽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통신 장교를 끼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폴 브라운은 부드럽게 눈을 깜빡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연구를 위하여 해리슨이 레너드 맥코이를 데려갔을 거라는 것, 그래서 레너드 맥코이를 구하고 해리슨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크로노스의 대기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 엔터프라이즈가 믿을 수 있는 가이드 캐롤 마커스가 지상에서 동분서주해야 한다는 것 이 모두를 커크에게 건넨 건 폴 브라운이었다. 커크는 이에 따라 이번 전투에서 쇼크웨이브를 활용한 것이었다. 혈기왕성해 보이는 함장은 한편으로 신중한 구석이 있었다.
폴은 눈을 뜨고 언어적 형태로 그의 함장이 어떤 행동을 보여줄지 예상해보았다. 팔이든 다리든 찌릿찌릿한 신체의 어느 부분을 움켜쥐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 클링온에게 똑같은 눈빛을 쏘아주며 윽박지른다. 물론 그 행위는 통신 장교의 통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레너드 맥코이의 구출 여부가 걸려 있으므로 커크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클링온은 상황적 열세와 자신이 할 일이 의외로 쉽다는 것에 백기를 든다. 클링온은 벤전스호에 통신을 넣는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존 해리슨이 그 안에 있을 거라 추측하는 함선에 연락한다. 그리고 해리슨이 클링온을 지원하는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벤전스와 센티넬은 우주에 있다. 그런데 함장과 손발을 맞춰 두었던 함교에서는 케사 지방에 생체신호가 하나 잡힌다는 귀중한 정보를 알려준다.
레너드 맥코이가 크로노스에 있다는 게 확실해진다.
폴은 자신의 가능성 높은 상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했다. 조금 전에 그를 지나갔던 커크가 또 의무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번에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커크가 웃으면서 콧잔등을 찡그렸다. 폴은 자신이 맞았음에 만족해했다.
⁂
“내가 소위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다시 한 번 물어볼게.”
“확인했습니다!”
체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어눌한 말투에 자신감을 섞어 대답했다.
“케사에 해리슨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어요. 맥코이 소령님이 틀림없습니다!”
“정말 확실해야 할 거야. 왜냐면 우리는 지금 당장 크로노스로 뱃머리를 돌릴 거거든.”
자신이 두 눈으로 레이더에 잡힌 신호를 똑똑히 봤다며 성급히 외치려던 체콥은 커크가 뒤이어 한 말에 놀라는 눈치였다. 커크는 착석하지 않은 채 함교의 승무원들에게 고했다.
“제독님께 방금 보고를 드린 바, 은근슬쩍 클링온을 돕고 있는 칸의 뒤통수를 멋지게 때려주려면 신속하게 본즈를 데려오는 게 이득일 것이라는 합의가 나왔어. 뒤이어 도착할 후발대가 클링온들의 시선을 적절하게 끌어주면서 게릴라 부대를 상대할 거고, 우리는 그동안 중립지역에 함선을 멈춰둔 다음 본즈를 구해올 별동대를 크로노스로 내려 보낼 거야.”
“저번처럼 발각당하면 어떻게 하죠?”
모니터를 등지고 있는 파란 셔츠의 승무원이 물어왔다.
“그 때보다는 확률이 적어. 바깥으로 나가있는 인원이 훨씬 많으니까 크로노스는 상대적으로 비어있을 거야.”
커크는 생도 시절 어째서 적의 근거지를 기습하는, 노골적이고도 케케묵은 작전이 높은 성과를 올리는지 배운 적이 있었다. 아무리 적이 뒤를 찌를 걸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본진에는 전장에 돌아다니고 있는 병력보다는 적은 숫자가 남게 된다.
“존 해리슨을 흔들어 놓으면 전장에 벤전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적어진다. 그러면 아군이 훨씬 수월하게 싸울 수 있지. 이건 우리에게도, 스타플릿 전체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스팍이 스르륵 등을 돌렸다. 그것은 자신의 임무로 돌아가겠다는 제스처이며, 곧 함장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들 알아들었지? 그럼 크로노스로 가자고!”
조타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뱃머리를 돌렸다. 안정적인 워프 궤도를 뚫기 위해 파편이 없는 곳으로 묵직하게 움직인 엔터프라이즈의 후미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곧 선체는 사라지고 작은 은하수 같은 빛방울들이 검은 공터에 남았다.
스타플릿 함선에 갇혀버린 클링온 병사는 씩씩대면서 조종간과 통신 장비가 박살난 비행선을 보고 있었다. 제임스 커크 함장의 꿍꿍이를 알고 있는 클링온은 그밖에 없었다. 심지어 가장 우수한 센티넬도 엔터프라이즈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
센티넬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딱 한 번 적의 기지가 펼쳐진 땅을 밟았다. 두 팔다리로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존재는 200년이 지난 끝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로 돌아왔다.
칸이 되짚고 있는 기억은 바람직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피부병이 난 곳을 세차게 긁으면서 몇 초간의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 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나머지 소중한 물건을 깨뜨리면서 곧 후회하게 될 후련함을 얻을 때와 같다. 일시적이고 자극적이며 건설적인 효과를 낼 수 없는 얄팍한 불길만이 일렁이던 과거 속으로 그는 파고들고야 말았다. 칸은 지상에서도 비행선을 두 동강냈다.
어쩌면 그는 눈도 다 깜빡이지 못하는 시간에 사라져버릴 짜릿함마저 그리웠던 것인지도 몰랐다. 센티넬에게 가장 안락한 휴식처를 옆에 두고 그것을 끊임없이 외면하면서 센티넬의 정신은 다시금 깎이고 병들어갔다. 캐롤이 짧게나마 달래놓았던 칸은 자신과 동족들이 200년 전에 아무런 소용도 없음을 발견했던 쾌락 아닌 쾌락으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벤전스의 그림자는 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와 가까운 것은 온갖 것들을 꿰뚫으면서 달아오르고 있는 무기였다.
이곳은 벤전스가 스타플릿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약간의 게릴라만 펼치고 내버려두려고 했던 지역이었다. 하나 세워져 있는 보급 시설이 그나마 공격할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다. 처음엔 벤전스도 적당히 고도를 낮춰 그 시설만을 격파한 뒤 우주로 빠져나가려고 했었다. 현재 칸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에 먼저 세웠던 계획 이후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센티넬이 스스로 자신을 몰아붙여 가이드에 대한 접촉을 정당화하려는 수작이 아니냐는 궤변도 당장 그의 귀에는 그럴싸한 설득력을 갖고 흘러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이드? 누가 나의 가이드란 말인가? 레비나스 맥코이?
세뇌에 가깝게 레너드 맥코이를 자신의 실험체라고 되뇌고 다녔던 칸은 피에 젖어 무거워지고 있는 뉴런의 깜빡거림들 속에서 희미한 의문 하나를 피워 올렸다. 칸은 아직 레비나스 맥코이를 말하고 있었다. 그 때 그의 머리를 때리듯 캐논이 불을 뿜었다.
칸은 자신이 쏜 불빛의 도움으로 족쇄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가이드를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 가이드는 죽어 있지도 않았고 책만 남기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의 레너드 맥코이는 크로노스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라이플의 붉은빛이 모래 바닥을 때리는 바람에 공중으로 모래가 날렸다. 더 이상 그의 공세에 타격을 받을 것도 없었다.
칸은 굳은 듯 서 있다가 들고 있던 무기를 버렸다. 그는 옛날에도 칼이라든가 총탄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는 한 번 거칠게 휘두른 총과 캐논이 다음에도 자신을 만족할 화력을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여기고는 미련 없이 시선을 옮겼다. 멀게만 느껴졌던 벤전스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칸은 왜인지 모르게 크로노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
레너드 맥코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자존심을 세워 끝까지 바닥에 드러눕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아니면 범죄자 따위가 나를 불편하게 할 점이 무엇이 있겠냐며 태평함을 드러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확실한 것은 두 가지 중 무엇을 따르더라도 칸이 근처에 있는 이상 레너드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칸이 없어야 겨우 잠을 보충할 수 있는 그의 고개가 휘청거렸다.
반면에 크로노스의 하늘, 아니 그보다 더 높은 크로노스의 우주는 부산스러웠다.
클링온이 스타플릿과 전쟁을 벌이고 있음은 명백하기에 레너드를 데려올 구출대는 사복 대신 강화슈트를 입었다. 크로노스로 워프해 오기 전에 격납고로 내려가 셔틀을 점검 중인 선원이 보고만 하면 그들은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커크는 임시 함장을 맡게 될 술루에게 저번과는 다른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그들의 동료는 모래와 천둥이 몰아치는 행성 어딘가에 있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는 그를 구하러 갈 채비를 모두 마쳤다. 후발대가 교전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으며 케사 지방에서는 여전히 하나의 생체 신호가 잡힌다는 건 엔터프라이즈에겐 희소식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간다는 분위기가 엔터프라이즈의 함교에 내려앉고 있을 그 때였다.
“함장님, 레이더에….”
눈썹을 굽힌 체콥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커크는 크게 비틀대면서 함장석의 등받이를 붙잡았다.
“뭐, 뭐야!”
중앙 스크린에 우주와는 다른 암흑을 두른 무언가가 나타났다. 커크가 신음했다.
“…저거 설마 벤전스야?”
예고도 없이 엔터프라이즈의 후미를 친 검은 함선은 더욱 열을 올려 배를 때리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표면이 까맣게 깎여 들어가고 승무원들은 앉은 자세에서 거칠게 흔들렸다.
“어뢰를 준비해! 이쪽도 대응한다!”
간신히 함장석으로 복귀한 커크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스팍이 재빠르게 의자를 돌려 말했다.
“그건 무립니다, 함장님. 지원군이 있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판에 엔터프라이즈 혼자 전투에 최적화된 함선을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두드려 맞았는데 워프가 가능할 리가….”
“아닙니다. 워프는 할 수 있습니다.”
함교가 또 다시 흔들렸다. 몇몇 승무원들은 벌써 양 어깨를 벨트로 고정시키고 필사적으로 컴퓨터 앞에 붙으려 애쓰고 있었다. 커크는 팔걸이를 붙잡은 채 이마를 손바닥 끝으로 짚고 있는 술루를 바라봤다. 머리를 호되게 찧었는지 술루는 표정을 풀지 못했다.
“워프 코어 쪽은 타격을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선내의 격납고 주변입니다.”
술루의 말을 들은 스팍의 안면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우리가 본즈를 구하려 왔다는 걸 눈치 챈 듯한 솜씨군요. 크로노스로 셔틀을 파견할 수가 없습니다.”
통신을 걸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묵묵히 광선만 쏘아붙이고 있는 벤전스는 전쟁 중에 적군을 만나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벤전스는 그야말로 엔터프라이즈를 우주 이곳저곳에 펼쳐 놓기로 작정한 게 틀림없었다.
“…워프할까요, 함장님?”
커크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술루가 끙끙대며 레버를 위로 올렸다. 엔터프라이즈가 워프 궤도에 진입을 했어도 충분히 쫓을 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벤전스는 묵묵히 하얀 함선이 빛을 뿌리며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날카롭게 패널을 두드리고 있던 칸이 손바닥을 펴 그대로 패널 위에 붙였다. 클링온들은 엔터프라이즈가 가까운 곳에 정박해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지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칸은 아무 것에도 화나지 않았고 후련함 역시 느끼지 못했다. 센티넬의 우수한 머리에 혼란이 그득했다. 칸은 단 한 가지 의심 없는 일을 처리하듯이 항법 시스템에 자신의 연구소가 있는 좌표를 입력했다. 그의 지시를 받드는 함선은, 일견 레너드 맥코이를 빼내려고 온 그들을 쫓아낸 것만으로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함장을 존중했다.
늘 울어대는 천둥을 제외하면 크로노스의 하늘은 평온을 찾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레너드 맥코이의 고개는 얼떨결에 출구가 있는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레너드는 뒤통수를 벽에 대고 목은 한 방향으로 꺾인 상태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마른 폭풍 속에서도 레너드의 눈꺼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흘러 레너드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칸이 걸어왔다. 그는 그림자만을 드리우며 잠든 가이드를 응시했다.
⁂
지구에서는 장시간의 운전으로 찌뿌듯해진 다리를 펴는 그림자도 있었다. 차문을 열어놓은 채 캐롤은 온 몸을 위아래로 펼쳤다. 캐롤은 팔꿈치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부드러운 눈길을 받았을 자연이 녹색 팔을 흔들며 맑은 소리를 냈다.
몬태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숲이 샌프란시스코의 방문자를 반겼다. 시원한 바람이 캐롤의 머리칼을 씻겼다. 그녀가 차에서 나왔다.
몬태나는 국유림과 국립공원이 모여 있는 주(州)였다. 그것은 보호해야 할 지역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고, 지역 주민은 많지 않고 대신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땅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그런 고로 수완 있는 누군가가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에 괜찮은 요건을 지녔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폴 브라운 역시 자신이 먼저 가본 곳을 지도에서 지워가면서 아마 몬태나에 가면 수확이 있을 거라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캐롤 역시 폴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그렛 팔스라는 곳이었는데, 그녀는 여기에 수송선이 이착륙할 수 있는 공항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근거지를 둔 제독에게도 가끔 시설을 시찰할 경우는 있을 터였고 그렇게 되면 주변에 공항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캐롤은 지도를 쥐지 않은 손을 허리춤에 밀착시키며 나아갔다.
캐롤은 지도에 적힌 길 이름에 의존해가며 발을 내딛었다. 어쨌든 그녀가 있는 숲은 그렛 팔스에 속하지 않아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시를 남길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지도를 들여다보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 캐롤은 지도를 집어넣고 총에 의지하기로 했다.
숲에서 부는 바람이 한바탕 캐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캐롤은 너그럽게 바람을 맞았다. 바람보다는 햇빛을 가리고 있는 울창한 나무가 물러나는 데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그녀는 이따금씩 머리 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공터가 나와야 했다.
공터를 중얼거리고 있던 캐롤은 갑자기 쏟아지는 햇볕에 눈을 감았다. 울타리 대신 숲이 막아주고 가려주고 있는 빈 공간이 캐롤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가운데에는 언뜻 창고로 쓰기엔 애매해 보이는 크기의 건물이 서 있었다.
캐롤이 돌진하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에 속력을 붙이면서 몸통으로 문을 들이받은 그녀는 자세를 추스를 틈도 없이 페이저건을 쥔 두 팔을 내뻗었다. 눈앞에 불쑥 수상한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총을 쏘지는 못할 정도로 그녀는 쌕쌕거리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녀를 쏘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캡슐 안에 누워 있는 센티넬들이 파리한 빛을 내면서 캐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돌개바람이 불면 벽이 뜯겨 나갈 듯한 볼품없는 건물에서 센티넬들은 어디서 공급받는지 모를 동력을 받아 얼어붙어 있었다. 내부에는 더운 호흡 대신 냉매의 연기가 감돌았다. 캐롤은 눈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 캡슐들을 보고만 있다가 겨우 그것에 다가갈 마음을 먹었다.
캐롤은 다리를 접고 캡슐을 한 바퀴 돌았다. 극저온 캡슐 자체는 23세기의 엔지니어들이 만든 게 아니라서 그녀는 잠깐 자신이 고고학적 유물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며 볼을 부풀렸다. 버튼 위의 글씨들이 영어로 쓰여 있긴 했으나 캐롤은 섣불리 캡슐을 조작하지 못했다.
“지금 동결을 풀어버리면 안 되려나…?”
캡슐 표면을 손으로 만지작대며 캐롤이 중얼거렸다. 배출 버튼은 너무나 명백하게 튀어나와 있어 그녀를 자꾸 충동질하고 있었다. 입술을 이리저리 오물거리고 온갖 표정을 지어내던 캐롤은 한숨을 쉬며 똑바로 일어섰다. 평범하게 생긴 남자의 얼굴이 덮개를 통해 뿌옇게 캐롤의 눈에 들어왔다.
캐롤은 단지 그 얼굴을 보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하늘에 맹세코 그녀는 버튼 한 개 누른 일이 없었다.
그랬기에 캐롤은 눈을 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센티넬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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