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PART 2. PRESENT
12. Personal Encounter
캐롤은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집무실을 찾았다. 전에도 제독의 공적인 공간에 출입하는 일이 많지 않았던 그녀는 문을 열고서도 잠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다방면에서 발생한 피해 규모를 헤아림과 동시에 합동 장례식을 치르고, 그 다음에는 곧바로 크로노스로 파견을 보낼 함선과 호흡을 맞춰야 했던 스타플릿은 마커스 제독의 집무실까지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다. 오늘 오전에서야 파이크 제독이 그의 기록을 정리하고 접속 암호를 삭제했다. 캐롤은 내부가 차가워진 것 빼고는 변한 게 없어 보이는 마커스의 방을 천천히 더듬어갔다. 그녀는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건드리지 않고 그 앞에 놓인 액자라든가 명패만 수거했다.
캐롤은 품 안에 제독의 개인용품을 담은 뒤 책상으로 옮겼다. 액자 류가 많아서 가짓수에 비해 무게감이 컸다. 캐롤은 바닥에서 서류 상자를 끌어와 아버지의 이름이나 얼굴이 남아 있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받침대가 접힌 액자들 위에 마커스가 방에 두었던 단 하나의 가족사진이 올라갔다.
캐롤은 한동안 상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의자에 앉더니 컴퓨터를 켰다. 방화벽 때문에 마커스가 아니면 부팅하기도 어려웠던 컴퓨터는 너무도 쉽게 캐롤에게 배경화면을 보여주었다. 보안 장치를 제공하던 스타플릿의 네트워크가 마커스를 죽은 자로 인식해서인지도 몰랐다. 캐롤은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책상의 빈 면을 의미 있는 눈빛으로 응시하면서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녀는 생전에 마커스 제독이 꼭꼭 감추었던 하드 드라이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대위에 지나지 않는 그녀는 파이크 제독이나 커크가 주축이 되는 회의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이론 몇 개는 있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아버지가 존 해리슨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센티넬 말고도 역사적으로 살아남았다는 다른 강화인간들의 행방을 알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캐롤이 최근에 책으로 확인한 결과 끝까지 죽지 않아 캡슐 안에 동결해야만 했던 센티넬은 열 명이 살짝 넘었다.
스타플릿이 간부들에게 제공하는 보안 서비스는 상당히 질이 좋아 추가적인 보호막이 없어도 여간해서는 사이버 상의 공격을 막아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마커스는 해킹을 걱정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컴퓨터 내부에 침입자를 잡아내는 부비트랩과 같은 장치들을 깔아놓았다. 캐롤이 진지하게 엔지니어를 호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아버지가 세웠던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가슴이 뛰었다.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었으나 파이크 제독은 마커스가 벤전스라는 특급 함선에 대해 알고 있었을 거라고 추정하는 중이었다.
한참 마우스와 키보드를 오가던 캐롤의 손이 갑자기 모니터 앞에 달라붙었다. 그녀가 잠겨 있던 폴더 안에서 중요해 보이는 문서를 찾아낸 순간이었다.
‘추천 시설 명단.’
캐롤은 그 시설이라는 것이 강화인간들의 캡슐을 보관해둘 장소일 거라고 생각하고 파일을 열었다. 파일 안에 첨부된 사진에는 주변이 텅텅 비어있거나 미개발 지역에나 남아 있을 법한 낡은 건물들이 많았다. 모두 샌프란시스코와 멀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마커스는 컴퓨터 안에 어떤 곳이 적절할 것 같다는 답변을 남기지 않았다. 캐롤은 일단 파일에 있는 주소들을 적어놓고 펜촉을 두들겼다. 거리상 하루에 한 곳밖에 갈 수 없는데다가, 그녀가 발령받은 엔터프라이즈호는 언제든 우주로 출정해 전쟁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캐롤에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십분 가량을 고민하던 캐롤은 펜을 놓아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캐롤은 일단 혼자서 오클라호마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차피 진정으로 센티넬을 휘어잡을 수 있는 건 가이드였다. 그녀는 이미 한 번 실패를 맛본 가이드였지만 그것을 만회할 기회를 줄 또 다른 센티넬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종이가 가린 캐롤의 손바닥 위에 유품으로만 남게 된 그녀의 아버지가 내려앉았다.
⁂
캐롤이 박스와 비밀스러운 메모를 들고 빠져나간 마커스의 집무실로 이번엔 커크와 스팍이 들어왔다. 그들은 제일 먼저 마커스의 컴퓨터부터 찾았다.
컴퓨터를 조작하기 적합한 자리에는 스팍이 앉았고 커크는 책상 옆면을 붙잡고 스팍의 왼편에 붙어 섰다. 스팍은 컴퓨터를 부팅시키자마자 스캇이 준 USB를 꽂았다. 스캇은 클링온이 폭로한 함선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성능을 분석하기 위해 다른 기관실장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느라 여기에 오지 못했다.
“정말 클링온을 쳐부수자는 내용이 들어 있으면 곤란한데….”
오늘 점심시간에 클링온들의 선전포고가 날아와 꽂혀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현재 파이크 제독은 그 함선이 크로노스를 침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커크와 스팍이 제독의 자료에 손을 대고 있는 이유는 파이크의 항변이 본의 아닌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판명하기 위함이었다.
입술을 시켜 부지런히 안면을 돌아다니게 만들던 커크는 변함없이 조용한 스팍을 따라 모니터에 집중했다. 스캇의 프로그램이 암호가 걸려있거나 거추장스러운 방화벽을 깨끗하게 지워가고 있었다. 커크는 3분 안에 창이 사라질 거라고 짐작했다.
“응? 파일에서 이상 접속을 발견했다는데?”
커크가 눈을 깜빡거렸다. 스팍의 눈썹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찔했다.
“스캇이 준 그 프로그램 때문일까?”
“아닙니다. 접근 날짜가 다릅니다.”
“오늘이 아니라는 소리야?”
스팍이 창을 따라 문제의 파일을 뒤쫓아 갔다. 아이콘이 반투명한 것으로 보아 그것은 숨겨져 있다가 프로그램에게 발각된 파일이었다.
“…아무래도 제독의 컴퓨터를 일찌감치 손에 넣었던 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제독의 생전에요.”
커크는 방금 자신이 굉장한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마커스 제독이 그걸 몰랐다고?”
“표면적인 기록은 당연히 삭제되어 있었을 겁니다. 소령의 프로그램이 드라이브 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찌꺼기들까지 탐색했기 때문에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쩐지 의미심장한 증거를 캐낸 기분이 들어 커크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또 다른 창이 떴다. 프로그램이 그 사이에 수상한 기록을 더 잡아낸 것이었다. 안 그래도 작동을 잠깐 중지시키려던 스팍은 생각을 고쳐먹고 프로그램이 끝까지 제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놔두었다.
세 번째 경고 창이 나타났다. 컴퓨터는 바이러스에라도 걸린 것처럼 작은 창을 연속적으로 뱉어냈다. 그것은 허락받지 않았던 존재가 남긴 수많은 발자국들이었다.
“제독님께 보고를 올려야겠습니다.”
스팍이 넌지시 제안하면서 프로그램을 껐다. 독립적인 경고 창은 여전히 배경화면에 남아 있었다.
“여기서 파일 하나를 열어보면 안 되는 걸까?”
“누군가가 이미 손을 댄 적이 있는 자료 중에서 말입니까?”
“뭐가 털렸는지 이쪽에서도 알아야 할 거 아냐. 맨 처음에 나왔던 것부터 확인해보자.”
스팍이 오래간만에 커크의 논리에 동의했다. 스팍이 파일을 열었더니 길쭉하고 얇은 창이 등장했다. 그것은 축소된 음악 플레이어와 닮은 점이 많았다.
—들어오게.
과연 한 음성이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마커스 제독의 목소리였다. 이어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커크가 이맛살을 찡그렸다.
“뭐야, 이거?”
“집무실에서 있었던 대화 일부가 녹음된 겁니다. 좀 더 들어보면 이것을 녹음한 자의 정체도 추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독의 컴퓨터는 그들이 파헤치기도 전에 누군가 완벽하게 공략한 상태였다. 커크는 이 컴퓨터의 주인이 여러 명 있는 듯이 말하는 스팍의 태도를 이해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군. 하지만 스타플릿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보단 직접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네. 벤전스에 관해서는 스타플릿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 어쨌든 내일 아침에는 화성으로 출항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 주었네. 들고 가게.
—감사합니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린데.”
커크가 중얼거렸다. 파일이 작은 소음만 내보내고 있던 중이라 커크의 중얼거림이 크게 울렸다.
—벤전스는 완성 단계에 와 있습니다. 곧 있으면 정식으로 등록 절차를 밟고 승무원을 들여야 하는 함선이 왜 아직까지 기밀로 취급되는 겁니까?
—그것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네. 때때로 지나치게 선두적인 것들은 오해를 받기 쉽지.
—이제 와서 벤전스가 스타플릿이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한다는 증거로 오인되기 좋은 함선이라는 걸 의식하시는 겁니까.
—물론 전쟁이 난다면 아주 유용하게 쓸 수는 있겠지. 벤전스가 스타플릿 최고의 무기라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네. 그러나 그런 오해는 결국 입장 차이에 불과해. 우수한 것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일 뿐이지. 공격이든 방어든 불리한 쪽에 놓이는 놈들의 투덜거림이기도 하고.
미지의 목소리는 잠잠했다. 말수가 적은 상대방을 대신해 마커스가 대화를 마무리 짓는 역할을 맡았다.
—자네가 설령 배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벤전스호는 존 해리슨 중령이 탄생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실하게 알릴 테니까.
타이밍 좋게도 녹음된 대화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만일 재생이 종료되지 않았다면 커크가 스팍에게 일시정지를 누르라고 재촉했을 것이었다. 커크는 진즉부터 동요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리를 좀 해 보자고. 클링온에서 우리보고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며 그 증거로 내민 전투용 배를 존 해리슨이 만들었다는 거군? 마커스는 앞장서서 그걸 숨겼고. 듣자 하니 마커스가 그 벤전스호를 만들라고 시킨 장본인 같은데 말이지.”
“제독은 그 함선이 스타플릿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는 세력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조선을 강행한 듯합니다. 스타플릿에게는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는 사실이군요. 며칠 전까지 스타플릿의 우두머리였던 인물이 전쟁을 원했다는 것만 증명하게 될 뿐입니다.”
“아니, 스팍. 그게 아닐 수도 있어.”
스팍은 당황스러움에서 착잡한 침착함으로 선회한 커크의 표정을 보았다.
“만약에 해리슨이 이 모든 걸 애초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거라면… 그 놈이야말로 제일 스타플릿과 클링온 사이에 전쟁이 나길 바랐을 거야. 스타플릿 소속 중령이라는 명찰을 달고서.”
클링온은 당연히 자신들의 수중에 굴러 들어온 벤전스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벤전스가 과거에 마커스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어 주었다면, 이번에는 클링온이 자신감 있게 전쟁을 밀어붙이도록 격려해주고 있었다. 이 모든 일과 연관이 깊은 존 해리슨은 크로노스에 최근 둥지를 틀었다는 것 말고도 스타플릿에게 적대적이라는 점에서 클링온과 끈끈한 공통점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에 휩싸여 커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강행하게 될 지도 몰라.”
⁂
레너드는 불편한 꿈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습격한 쇳덩어리에 표정을 잔뜩 구겼다. 센티넬은 아무래도 밤을 새워 일을 한 모양이었고, 그 일에는 실험체를 묶어둘 만한 족쇄를 만드는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체, 어차피 도망갈 시도조차 못할 것 같은데 꼭….”
레너드는 작게 구시렁거리면서 옆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칸은 기계가 수행 중인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기계에는 레너드의 피가 꽂아진 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레너드는 턱을 무릎에 붙이고 센티넬과 비슷하게 기계를 노려보았다.
레너드는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자신의 피가 대체 어떤 용도로 쓰일 것인지 추론해봤다. 정확한 답을 들은 건 아니지만 레너드는 저 센티넬이 가이드에 대한 연구를 행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사람이 강화인간을 연구하여 탄생된 개념이 센티넬과 가이드라는 걸 따져보자면 어쩐지 묘한 구석이 있는 연구였다.
센티넬이 피를 뽑으려는 행동에 반사적으로 반항을 하긴 했으나 레너드는 자신의 혈액이 필요한 이유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이드를 만들어내는 건 하늘의 선택이 아니라 인공적인 물질이었다. 레너드는 시험관을 돌리고 있는 저 작업이 혈액으로부터 가이드라인을 분리해내는 게 맞을 거라며 속으로 강력하게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은 센티넬 스파이럴이 없는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요소였다. 레너드는 곰곰이 생각했다. 센티넬이 대체 가이드라인을 손에 넣어서 뭘 하겠다는 거지? 제 아무리 칸 누니엔 싱이라고 해도 가이드라인이 센티넬의 몸속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방도는 없었다. 단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계획과 분석이 레너드의 머릿속을 둥둥 통과하면서 다녔다.
센티넬 가운데서도 제일 특출한 탓인지 레너드의 이해력을 자꾸만 벗어나는 실루엣이 묵직하게 창문을 응시했다. 칸의 뒤통수가 움직이는 걸 보고 레너드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쫓았다. 그는 연구를 위해서 현재의 공간을 마련한 것 같은데, 레너드는 그가 과학자다운 태도로 책상에 앉아있는 걸 많이 보지 못했다. 레너드는 조금 전과 별로 이어지지 않는 물음을 멍하니 떠올렸다. 그는 척 봐도 황량한 바깥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더군다나 센티넬 주제에 칸은 가이드를 외면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아니고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거면 굳이 사람을 납치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그것까지 조사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레너드는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목을 내뺐다가 자신의 입술이 먼저 움직였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혼잣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창피함보다는 센티넬이 자신의 혼잣말에 답변을 던져줬다는 데에 고무된 레너드는 용기 있게 입을 열었다.
“뭘 했기에 센티넬이 촉박한 시간에 시달렸대?”
“그러고 보니 넌 지금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르겠군.”
“뭐, 뭐야. 큰일이라도 났어?”
“스타플릿은 클링온과 전쟁 중이다.”
센티넬은 너무나도 평온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지만 레너드는 펄쩍 뛰었다.
“뭐라고!”
그 때 어울리지도 않게 기계에서 땡 하고 완료음이 났다. 칸이 처음보다 내용물이 줄어 있는 시험관을 빼냈다.
“내가 지구에 있었을 때만 해도 둘이 사이가 좋지 않긴 했지만 전쟁을 하자는 폭언이 오고 갈 정도는 아니었어. 내가 잡혀온 지가 그렇게 오래된 거야?”
센티넬은 또 싸늘하게 굴었다.
“그것이 중요한가? 네가 입고 있는 그 제복이 위험을 불러올 불길한 물체가 되리라는 것은 전부터 예견된 바다.”
레너드는 학회장에 입고 갔던 유니폼 차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레너드는 안쪽 입술을 꾹꾹 깨물었다.
“아니, 당신이 조종한 거겠지.”
칸은 대꾸하지 않았다. 레너드는 가슴이 답답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력이 빠져나가는 걸 맛보았다.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는 상황에다, 바깥은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면 레너드가 이곳을 빠른 시일 내에 빠져나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한편으로 이것은 레너드 맥코이에게서만 그치지 않는 센티넬의 복수였다. 가이드도 보통 인간도 센티넬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레너드의 의문을 씻겨주지는 못했다. 센티넬이 자신이 써먹지도 못할 가이드라인을 손에 쥐려고 애쓰는 저의는 크로노스의 하늘처럼 칙칙한 암흑에 묻혀 있었다. 레너드 맥코이는 추출한 가이드라인을 들고 사라지는 센티넬의 잔인한 그림자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
시동을 끄고 캐롤은 차 안에서 목을 쭉 뺐다. 공터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주변에 나무밖에 없는 외진 구석이었다. 캐롤은 차를 최대한 그늘 쪽에 세워놓은 뒤 밖으로 나가 낡은 쇠창살을 만지작거렸다. 철문에도 자물쇠에도 먼지가 가득 끼어있었다. 캐롤은 미리 챙겨온 도구로 자물쇠를 잘라낸 뒤 안으로 들어갔다.
듬성듬성한 문짝에만 의지하고 있는 건물의 안쪽에는 아무런 경비 시설도 없었다. 캐롤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장소를 잘못 찾아왔음을 강하게 느꼈지만 건물 안은 살펴보기로 했다. 숲에서부터 들려오는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이유 없이 캐롤의 긴장감을 자극했다.
출입구는 잠겨 있었으나 캐롤이 몇 번 세게 흔들고 발로 차자 뜯겨 나가듯이 열렸다. 바깥만큼이나 내부도 황량했다. 봉인이 뜯긴 박스 몇 개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녹슨 사다리라든가 페인트통처럼 생긴 양동이 등 23세기에는 원시적인 물건들이 버려져 있었다. 아마 몇 십 년은 족히 방치되어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오랫동안 물러나 있어 마음대로 개조하기 좋은 시설을 찾고 있었을 마커스 제독의 마음에 들 만한 곳이라는 게 뻔히 보였다.
캐롤은 마지막으로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장애물이 없어서 워낙 탁 트여 있는지라 몇 발자국만 옮기면 되었다. 캐롤은 건물 모서리를 다 거친 다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오클라호마까지 운전해온 시간이 아까웠다.
캐롤은 뭐라도 건져보자는 생각에 떨어져 있는 박스를 집어 들었다. 특별한 표식은 없었다. 캐롤은 이에 낙담한 나머지 자신이 부수고 온 문을 척척 넘어 들어오고 있는 그림자를 눈치 채지 못했다.
“거기 누굽니까?”
캐롤이 놀라 몸을 틀었다. 세워져 있던 박스가 반 바퀴를 굴러 바닥에 내려앉았다. 캐롤보다 어깨가 넓었고 키도 큰 인영이 경계한 자세로 발을 떼고 있었다. 캐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 혹시 엔터프라이즈에서….”
상대방이 허리춤을 잡는데 캐롤은 미간만 더욱 좁혔다.
“맥코이 소령님을 대신해 의무실에 계셨던 분 아니세요?”
캐롤의 말에 그림자는 주춤했다. 두 사람은 이제 의혹은 있지만 긴장은 푼 걸음걸이로 서로를 마주했다.
“마커스 대위?”
캐롤을 부르면서 나타난 남자는 평범한 갈색 머리를 가진 매끈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동료를 만난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은 가만히 눈동자를 껌뻑였다.
“닥터 브라운 맞으시죠? 이런 곳엔 왜….”
“대위야말로 이렇게 먼 데까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캐롤이 옷자락에 손을 문질렀다.
“밝은 곳에 가서 얘기하는 게 어떨까요? 여기에는 보시다시피 아무 것도 없어요.”
두 사람은 어딘가 어정쩡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햇빛의 영역에 입성했다. 캐롤은 남자가 타고 온 차량을 발견했다. 그는 햇빛이 드는 곳에 차를 주차해두었으므로 캐롤은 자신의 차를 등받이삼아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닥터 브라운은 군말 없이 동의했다.
“여기가 적절하겠군요. 그럼 닥터 브라운,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
캐롤은 맥코이 소령의 빈자리를 임시로 채우게 된 닥터 폴 브라운의 직급이 대위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나이는 어떨지 몰라도 계급은 같았기에 캐롤은 꾸물대지 않고 곧장 물었다. 폴은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개인적이면서 공적인 일 때문에 왔습니다.”
“네?”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동기가 좀 더 강하기도 하지만 제 임무에 포함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보통 지역을 탐사하는 일에 스타플릿이 의사 선생님을 보내지는 않는데요? 어떻게 이 일이 닥터의 임무에 포함된다는 거죠?”
폴은 집요하게 캐묻는 캐롤의 화법을 적당히 피했다.
“…어쨌든 저는 거짓으로 대답한 게 아니니, 이번엔 제가 좀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캐롤이 눈썹을 팔(八)자로 구부렸다.
“제독님의 자료를 보고 온 겁니까?”
캐롤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앞으로 허둥지둥 튀어나올 뻔했다. 겉으로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의사는 캐롤이 모르고 있는 무언가를 굉장히 많이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숨기실 것 없습니다. 반쯤은 대답을 예상하고 묻는 겁니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당신이 본 자료는 비밀리에 진행시키려다가 폐기된 프로젝트가 진행될 장소를 추렸던 보고서와 내용이 같습니다. 이곳 말고 다른 데도 들러봤습니까?”
캐롤은 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물어볼 틈을 찾지 못하고 대답부터 건넸다.
“…아뇨. 여기가 처음이에요.”
“이런, 제 입장에선 조금 안타까운 소식이군요.”
“그건 무슨 뜻이에요?”
“서로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만난 거라면 양쪽에게 이득 아닙니까. 어쨌든 메인과 미네소타 쪽은 안 가도 됩니다. 이미 허탕을 치고 왔으니까요.”
“자, 잠깐! 그럼 대체 언제부터 알고 돌아다니고 있던 거죠? 아니, 그것보다 왜요? 나한테는….”
그러자 폴 브라운은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나라고 특별히 이유가 다르겠습니까? 우리 모두 센티넬을 뒤쫓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
닥터 폴 브라운은 레너드 맥코이보다는 두 살이 어린 스타플릿의 의료 장교였다. 그는 남을 치료하는 일을 보람차게 여기긴 했으나, 주변에서 딱딱하고 다가가기 어렵다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소리를 지나치게 많이 들어 의료 서비스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도중 스타플릿에 입대했다. 실력 자체는 좋았고 공부가 체질에 맞는 타입이었던 그는 스타플릿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실은 이번에 소령 임관과 더불어 다른 함선으로 옮겨가 그곳의 치프 메디컬 오피서로 승격될 예정이었다.
“맥코이 소령님과 많이 친하신 모양이네요?”
자세한 설명에 앞서 폴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캐롤이 고개를 움직거렸다. 폴은 입술을 옆으로 당겼다. 그는 지금까지 크게 움직임 없이 반듯한 얼굴을 고수하고 있었다.
“레너드는 고맙게도 그렇게 답해주겠지만… 사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소령님과는 어떻게 알게 되셨는데요?”
“스타플릿 소속 의료인들이 주기적으로 떠나는 봉사활동에서 한 팀으로 일했었습니다. 그 때 레너드를 처음 봤는데 꽤나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의사 일을 잘하기 때문에 이 직업에서 버티고 있는 거라면, 그는 정말 의사가 천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캐롤은 그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도 영리하게 추측해 밝혀내는가 하면, 어느 부분에 관해서는 부가적인 말을 붙이길 피한다는 걸 간파했다. 폴 브라운은 아마도 맥코이를 찾아내겠다는 목적 뒤에 감추어져 있는 사적인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당신과 내가 같이 센티넬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니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외로 폴이 먼저 캐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음 질문으로 무엇을 골라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녀가 폴을 돌아보았다.
“제 몸속에는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존 해리슨 이외에 전쟁에서 살아남았다고 알려진 센티넬들을 확보하고 나면 다른 가이드에게 협력을 요구할 작정이었습니다.”
“…저는 한 번 거부당한 가이드인데 괜찮겠어요?”
폴은 쓰게 웃었다.
“제 생각에 당신에게 문제는 없습니다. 센티넬 쪽이 유별난 것이겠지요.”
그는 오클라호마에서 더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차로 돌아갔다. 캐롤은 가이드인 자신보다도 센티넬에 대해 많은 걸 아는 듯한 닥터 브라운의 등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쩐지 타이밍을 자꾸 놓치게 되어 캐롤은 자신이 센티넬을 찾아내면 그를 존 해리슨과 대항하게 만들 거라는 의도를 밝히지 못했다.
⁂
속도는 조금 다를지언정 시간은 지구 바깥에서도 흐른다. 샌프란시스코와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느라 캐롤과 폴이 잠깐 스타플릿이 처한 위기에 대해 잠깐 잊어버린 무렵이었다.
—폭격을 시작하겠다.
블랙홀이나 워프 궤도 같은 깊숙한 곳에서 튀어나오듯 갑자기 등장한 거대한 함선의 앞부분이 환해졌다. 새까만 우주 가운데에서 모여드는 입자는 갈수록 하얗고 뜨겁게 빛났다. 함선의 포신은 멀리서 보이는 우주정거장에 설치된 시설들을 한데 모아주고 있는 이음새를 노리고 있었다.
함선에서 뻗어 나온 빛줄기는 하나였다. 허나 그것은 정거장과 착륙 시설을 정확하게 끊어놓았고 착륙장은 금세 무중력에 휩쓸려 오른쪽으로 부유했다. 뒤이어 전투기들이 앞을 다투어 나아갔다. 그동안 함선은 새로운 포문을 열었다.
스타플릿 특유의 마크가 그려진 중심부가 집중 타격을 맞았다. 붉은색과 녹색의 광선이 연거푸 정거장 곳곳을 때렸고 사방으로 파편이 떨어져 나왔다. 가장 덩치가 큰 함선은 부서진 조각들이 날아오지 않을 지점에서 묵묵히 빛을 쏴댔다. 전투기들은 신이 난 것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멈춰 있는 상태로 굵직한 포를 내뿜는 함선에 비하면 그 활약상이 적어 보였다.
정거장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둥근 비행선마저 함선이 보낸 미사일에 격추당하자 비로소 주변이 평화로워졌다. 이리저리 쪼개진 스타플릿의 마크가 방향도 없이 우주를 떠돌았다. 검은 함선은 그것에 냉소를 던지듯이 뱃머리를 돌렸다.
그대로 돌아갈 것 같던 함선은 방금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빛줄기와 미사일들을 쏟아냈다. 그것은 막 워프를 마치고 우주로 진입한 배에 내리꽂혔다. 더 망가뜨릴 것도 없는 정거장의 잔해를 춤추듯 돌아다니던 다른 전투기들도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적을 맞이했다.
검은 함선은 포신이 흘리는 열기로 우주를 일그러뜨리고 상대편 배를 두들겼다. 옅은 회색빛이 나는 배는 검고 묵직한 함선과 비교하면 너무도 초라해보였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회색 배는 사이렌과 선원들의 외침으로 혼란스러운 반면, 검은 배는 아무도 없는 듯이 조용하단 것까지 두 함선은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났다.
—알아서 정리하고 다음 목적지로 오도록.
—건방진 인간. 알겠다. 뒤따라가겠다.
검은 함선에 있는 유일한 승무원은 통신에 응답한 자의 말에서 틀린 부분을 고쳐주려다가 관두었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스타플릿의 우주정거장 하나를 박살낸 벤전스호는 엔진을 달구면서 다음 목표로 이동했다. 클링온들이 마구잡이로 이미 도주할 수 없을 지경까지 망가진 스타플릿의 함선을 공격했다.
⁂
“클링온들은 전에 실질적인 선전포고를 한 번 했었네. 딱히 여러분들에게 새로이 알려줄 것은 없어. 올 게 온 거지.”
파이크 제독은 정말로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걸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었다.
“화성 인근에 설치했었던 스타플릿의 우주 정거장 한 곳이 클링온들에 의해 박살이 났네. 여기서 중요한 건 생존자가 없다는 거야. 그쪽은 우리가 이를 갈면서 아량을 베풀 만한 여지조차도 막아버렸어.”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잘한 매입등들이 골고루 박혀 있는 형태라 원래부터 그다지 밝지 않은 회의실은 땅속으로 흡수될 것처럼 캄캄해져버렸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스타플릿은 클링온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바이네. 각 함장들은 주요 승무원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고 모두 출격 준비를 하게나. 순서에 차이는 있겠지만 스타플릿의 모든 함선이 동원될 걸세. 일들이 많을 테니 서둘러주게.”
함장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타플릿 소속 장교들이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터 수십 대가 동시에 빛났다.
이와 비슷하게 캐롤은 앞서 가던 차량이 직진 대로에서 불빛을 오른쪽으로 깜빡이는 걸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차량은 유지하고 있던 경로를 벗어나 아예 멈춰 섰다. 캐롤이 그 뒤에 차를 붙여 세우고 내렸다. 평범한 승용차가 자신과 몸집이 비슷한 차를 끌고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따로 운전을 하며 달리던 폴이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의 반대편 손에는 커뮤니케이터가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죠?”
“본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클링온 측의 선제공격으로 스타플릿의 우주 정거장 하나가 파괴되었다는군요. 진짜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폴의 표정은 일견 편안해보일 정도로 고요해서 캐롤은 하마터면 멍하니 그에게 긍정해버릴 뻔했다. 다행히 캐롤은 펄쩍 뛰며 놀랐다.
“맙소사, 그러면 우리도 빨리 가서 출항 준비를 해야죠!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요.”
그러자 폴은 고개를 저었다. 캐롤은 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싶어 입술을 내밀었다.
“이번에 당신은 엔터프라이즈에 오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캐롤은 벌써 두 번째로 폴이 한 말을 곱씹었다. 폴은 스팍만큼 딱딱하지는 않지만 워낙 사무적이고 자신의 의도가 정당하다는 태도를 내비치고 있었다.
“말도 안 돼요! 임시로 끼어들긴 했지만 어쨌든 나도 엔터프라이즈의 선원이라고요.”
“나는 맥코이 소령 대신 엔터프라이즈의 의무실을 책임지는 입장이므로 무조건 승선을 해야 하지만, 당신은 함교에 고정된 좌석이 있거나 엔터프라이즈의 출항에 있어서 필수적인 역할을 맡은 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엔터프라이즈에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아닙니다. 내가 여기에 남아있을 수 없으니 당신이 마저 센티넬을 찾는 일을 수행해 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폴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줄였다.
“해리슨이 왜 레너드를 데리고 갔는지 짐작 가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폴과 대화하면서 캐롤이 순간순간 맛보았던 다급함과 짜증, 당황스러움 등이 그 한마디로 날아가 버렸다. 캐롤은 믿을 수 없어 되물었다.
“네? 당신이 그의 꿍꿍이를 안다고요?”
“남들이 아직 생각하지 못한 가설 하나를 안고 있을 뿐입니다. 가능성이 꽤 높을 뿐 아직까지는 가설입니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면 어차피 함장님이나 다른 승무원들과 공유를 해야 하는 얘기지만, 당신은 지상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으므로 먼저 얘기를 해주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약속하세요.”
“뭐, 뭐를요?”
“때가 되면 당신의 가이드라인을 내게 제공해줘요.”
폴은 마치 캐롤의 가이드라인이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해결할 실마리로 여기는 것처럼 진중하게 말했다. 그런데 기실 캐롤의 가이드라인은 그녀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뭐에요, 그건 아주 쉬워요. 피를 조금 뽑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가이드라인이 왜 필요해요? 당신이 지금부터 할 얘기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폴은 캐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해답을 털어놓았다.
⁂
자료화면 하나 전송해 줄 여력도 없이 정거장은 그 안에 있던 셔틀이나 기타 장비들과 함께 우주로 흩날렸다. 그렇지만 스타플릿은 클링온의 부대에 벤전스호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전선으로 파견할 함선을 미리 업그레이드시켰다.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해 예전에 출격대로 점찍힌 배들은 어뢰를 더 싣거나 특수부대를 태우는 등의 준비를 했다. 캐롤 마커스를 대신해 유사시에 출동할 가이드는 다른 함선에 탔다. 물론 가이드가 없어도 스타플릿 부대는 엔터프라이즈 중심으로 움직였다.
“1분 뒤에 워프가 완료됩니다.”
커크는 마지막 1분의 여유 동안 승무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알고 있겠지? 벤전스가 보이면 무조건 그걸 때린다. 없으면 아쉬운 대로 클링온들을 때려야지. 하나만 남겨놓고. 어렵지 않잖아?”
의자 손잡이를 잡은 커크의 손은 그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말투를 구사하는 데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전부 떠안은 것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궤도가 서서히 끊기고 있었다.
“전장에 진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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