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mazingSpiderman/해리오스본] From Narcissism

- Anything 2014. 5. 11. 11:57 posted by Jade E. Sauniere

- The Amazing Spider-Man 2, for Harry Osborn

- 급하지 않게 차분히.

- Written by. Jade

 

From Narcissism 

 

 

  그것은 하나의 멋들어진 교향곡이다. 제 1악장은 오스코프의 젊은 회장의 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하는 여비서가 회장의 하루 업무가 마감되기 1시간 전에 몇몇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날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표님 한 시간 뒤에 퇴근하세요.」

 

  비서의 그 한 마디가 굉장히 절실한 몇몇 이들이 있다. 뉴욕에서 크라이슬러 빌딩과는 다른 맥락의 랜드 마크로 굳게 자리 잡은 빌딩의 주인이자, 어느 위인의 기념관 같은 집에 사는 청년의 보금자리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고용인들은 그 때부터 자신들의 짐을 챙긴다. 오스본 회장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집을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넓은 집안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걸레는 없는지, 유리잔의 물기는 다 말랐는지 따위의 세세한 사항들을 확인하면서 고용인들은 작업복을 훌훌 벗어던진다. 그들은 곡 내에서 제일 바쁘고 민첩해야 하는 현악기의 무리들 같다.

 

  두 번째로 비서의 메시지를 받는 건 오스본 회장의 세단을 모는 운전사다. 운전사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앞좌석과 뒷좌석을 분리시키는 가름막을 내리고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제일 가까운 신문가판대를 찾아간다. 오스본 회장은 사무실에서 업무와 관련된 서류 이외에 다른 걸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그는 각종 결재서와 혹은 오스코프 특유의 고차원적이고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서적에 파묻혀 산다. 그래서 운전사는 오스본 회장이 차로 이동하는 시간만이라도 온갖 과학과 기술에서 벗어나, 신문이나 잡지 같은 가벼운 글을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운전사는 대개 뉴욕 타임즈를 구입하며 엠파이어 매거진 같은 유력 연예 잡지를 덤으로 얹기도 한다. 이래봬도 그의 역할은 꽤나 중요해서 교향곡 내 목관악기와 비슷한 책임감을 떠안고 있다.

 

  한편 오스본 회장이 앞으로 회사에 남아 있는 한 시간을 날쌔게 포착해야 하는 무리들도 있다. 비서로부터 카운트다운이 떨어지면 그들은 누구보다 빨리 짐과 재킷 등을 챙겨야 하는데 이 무리의 구성원은 고정적이지는 않다. 오늘 안에 프로젝트의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 팀장이라든가, 오스코프와 연관되어 있진 않으나 오스본 회장과 일대일로 몇 마디를 주고받아야 하는 전문가들이 이 자리를 맡는다. 아주 드물게는 프라다에서 파견된 직원이 그의 치수를 재기 위해 들르기도 한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비서가 오스본 회장의 마지막 1시간을 교향곡에 비유하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네들은 금관악기에 들어가면 딱 어울리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그들은 금관악기로 굳어졌다. 때때로 넓고 굵은 음색을 흘리면서 곡의 분위기를 움직인다는 점이 그럴싸하게 맞아들었다.

 

  오스본 회장은 그저 오스본 회장일 뿐이다. 그는 교향곡 밖에 있어 악기에 빗댈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서류에 펜촉을 갖다 댄 걸 마지막으로 오스본 회장은 오늘의 할 일을 마쳤다. 퇴근 시간에서 10분이 지나 있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의자 등받이에 걸어 놓았던 재킷을 휘릭 집어 들었다. 8분 전부터 그의 사무실 유리벽을 힐끗거리고 있던 비서가 떠나는 상관에게 웃음을 보였다. 

 

  헌데 곡 밖에 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이해도가 반드시 떨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오스본 회장은 자신의 주위에서 소리 없이 울리는 교향곡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오스본 회장은 그 속에서 나름대로 조심성 있는 지휘자 노릇을 한다며 애쓰는 비서에게 손을 흔들었다. 차는 당연히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악기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법이다.

 

  오스본 회장은 과속 방지턱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차 안에서 신문을 읽었다. 좌회전과 우회전이 이어져도 그는 꼿꼿했다. 운전사는 오스본 회장의 차를 맡을 때부터 그의 귀가 경로 사이사이에 있는 신호등의 순서라든가 간격을 외우고 있었다. 덕분에 오스본 회장은 매일 똑같은 시간을 소모하고 집에 도착했다.

 

  오스본 회장이 집에 돌아왔다. 고용인들이 퇴근하면서 놔둔 단 하나의 불빛이 그를 맞이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의 수장이라고 해도 집으로 돌아온 뒤에 하는 일은 비슷하다.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고 저녁을 먹는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오스본 회장은 옷을 갈아입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다. 그의 직함에 걸맞게 평상복조차 아주 고급스럽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가 거울을 보면서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할 때는 김이 서려서 유리가 맑지 않지만 드레스룸의 거울은 깨끗하다. 그가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몸을 제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오늘 그는 유독 자신의 몸을 오래 쳐다보고 있었다. 단추를 잠그지 않아 훤히 드러난 상체에 병든 땅에서나 볼 법한 오싹한 자국들이라든가 까만 상처가 피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국의 개수를 세었다. 썩은 줄이 아슬아슬하게 받치고 있는 다리를 건너듯 힘겹게 나아가던 손가락은 새롭게 생겨난 자국에서 멈췄다. 테두리에 녹색이 조금 섞인 거대한 동그라미였다. 그래서 구멍 같이 보였다. 

 

  오스본 회장은 그 나이대의 청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늙고 지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국을 만진 자신의 손가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얗고 매끄러운 그 살갗에 죽음의 가루라도 묻어있는 양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

 

  그는 자신이 뭐라고 소리를 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그것을 듣지 못했다. 그는 이것 역시 자신을 따라붙는 죽음의 징조는 아닐까 생각하다가 웃음으로 털어내 버렸다. 그는 단지 자신의 사고에 너무 집중해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낸 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고 난 후 그는 놀라워했다. 오감 중 하나가 자신의 인식 범위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자신의 음성이 직접 빚어낸 것이었다. 

 

  해리 오스본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 이렇게 몰두할 수 있음에 놀랐다. 십대 초반에 아버지의 관심이 끊긴 이후 그 역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던 자신이 드디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그를 아껴주었던 건 해리 오스본보다는 피터 파커였다. 그는 가장 소중한 이의 눈총과 걱정을 받은 사지와 상처 난 가슴, 목덜미 등을 경이로운 손짓으로 졌다. 그것은 해리 오스본이라는 그의 이름을 정성스레 부르는 것만 같았다. 죽음의 위기가 해리 오스본을 깨웠다. 

 

  그 때 해리는 불길하고 시커먼 그림자와 눈부신 샹들리에, 오스본들이 쥔 황금과 자신의 불꽃같은 집념이 연주하는 교향곡을 들었다. 파괴적이지만 단 하나의 주제부를 가진 노래는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는 거기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1년씩 나눠 가진 수십 명의 해리들이 말하는 것도 들었다.

 

  「오, 그동안 미안했어.」

  「네가 이렇게 다치게 될 줄은 몰랐어.」

  「그 때 바보처럼 위스키를 마실 게 아니라 창밖으로 내다 버렸어야 하는데.」

  「미안해, 해리.」

  「괜찮아. 그렇다고 나는 너희들을 원망하진 않아.」

 

  해리들은 서로에게 웃어주었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오스본 회장에게 손을 비비며 연주하는 철딱서니 없는 곡이 아니라, 그것은 진정 위대한 화음이었다. 미안해, 괜찮아, 의례적으로 들었고 내뱉었던 말들에 진심이 담겼다. 해리 오스본은 벌어져 있는 상의 사이로 찬 공기가 들어가 자신의 몸이 식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음악 속에서 느끼고 있는 자신의 몸은 매우 뜨거웠다. 

 

  해리 오스본은 자신의 전신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만을 돌보리라 결심한 자신의 의지와, 그 기반이 되어준 오스본의 운명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리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젖혔다. 




 

 

 

Beethoven Symphony No. 5 Conducted by Wilhelm Furtwangler

1st Mov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