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Amazing Spider-Man 2, Harry Osborn/Peter Parker
- 같은 장르를 다룬 두 글과 이어짐.
- Written by. Jade
3. THE LAST NAME
오스코프를 거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눈길을 주는 지점이 있었다. 숄더백을 매고 로비로 들어서던 펠리시아도 그곳을 힐끗 보게 되었다. 펠리시아는 저도 모르게 한 마디 했다.
“피터 파커?”
카드키를 대고 지나가야 하는 건물의 입구에서 배낭을 맨 청년이 경비원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비죽 솟은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흔들리면서 경비원들에게 저항했다. 펠리시아는 살짝 방향을 바꿔서 청년의 얼굴을 완전히 확인한 뒤에 곧장 앞으로 나섰다.
“잠깐만요! 그 손 놓으세요. 여기에 약속이 있어서 온 손님이에요. 피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같이 가요.”
피터는 면식이 없는 여인이 자신을 경비원들 틈에서 빼내주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펠리시아는 피터를 앞에 세운 뒤에 카드키를 꺼냈다. 피터가 주춤거리면서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보다 한발 늦게 발을 내딛은 펠리시아는 등을 돌려서 경비원들이 전부 해산했는지 확인했다.
“…고맙습니다.”
피터는 여전히 놀랍다는 듯 눈을 깜빡였으나 펠리시아에게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네는 걸 잊지 않았다.
“대표님은 여기에 없어요. 혹시 몰랐어요?” 피터가 눈썹을 크게 올렸다.
“제가 해리 때문에 온 줄은 어떻게 아시고….”
“당신을 만나야겠다면서 스케줄을 조정해달라는 대표님의 지시를 이행한 게 나였으니까요. 언젠가 회의 중에 찾아온 적이 있죠? 그 때도 당신 이름을 들은 적이 있지요. 대표님이랑 많이 친한가 봐요.”
펠리시아의 상관은 피터에게는 단지 해리였다. 그 때문에 피터는 펠리시아의 표현에 어색함을 느꼈다가, 자신과 해리를 친한 관계라고 다소 확신하는 투로 얘기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 뭐, 어렸을 때는 단짝처럼 지냈죠. 해리가 여기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해리의 행방을 수소문해보려면 여기부터 시작하는 게 맞으니까요.”
“대표님을 찾아요?”
정장을 입은 오스코프의 직원이 두 사람을 지나갔다. 펠리시아는 피터에게 손짓해 그를 건물 오른쪽으로 치우친 공간으로 이끌었다. 지붕도 아늑한 그림자도 없지만 그 구석에서 피터는 펠리시아만을 마주할 수 있었다. 피터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만나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아직까지 이 회사의 주인은 해리던데, 그렇다면 죽은 건 아니잖아요?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는 뜻이잖아요. 혹시 해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요? 아니면, 여기 그걸 알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피터는 금방이라도 펠리시아의 손목을 잡을 것 같았다.
“전 해리를 꼭 만나야 해요.”
그녀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던 해리라는 이름이 부지런히 귓가를 찔러댔다. 펠리시아는 피터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어딘지 거뭇하게 우울한 기운이 피어 있던 상관의 눈가에서는 찾을 수 없었으나, 해리 오스본이 충분히 가질 수 있었던 빛이 피터에게 묻어 있었다. 펠리시아는 한숨을 섞어 말했다.
“대표님이 회사 일을 처리하기는 하시지만 여기로 출근은 하지 않으세요. 늘 메일이나 서면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주시는 거죠. 저도 몇 달간 대표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연락은 주고받는다는 거잖아요.”
“제 메일 주소를 통해서요.”
“예?”
“대표님은 제 메일 주소를 통해서 지시 사항을 전달하세요.”
그 말을 들은 뒤 피터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한 번만 그 경로를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해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요.”
⁂
「해리, 나 피터야. 네 비서님의 도움을 좀 구해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 무사한 거니? 널 만나서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어. 아무리 멀어도 꼭 찾아갈 테니까, 부디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 피터로부터.」
⁂
나뭇가지가 투정을 부리듯 툭툭 울타리와 창가를 때리는 밤이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피터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피터? 나 펠리시아에요. 통화 가능해요?
피터는 즉시 보고 있던 책을 뒤집어 놓고 핸드폰을 바로 잡았다.
“무슨 일이세요? 혹시 답장이 왔나요?”
—맞아요. 내용이 짧아서 굳이 회사에 와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전화상으로 읽어줘도 괜찮겠어요?
“네, 물론이죠.”
피터는 만약을 대비해 가슴 앞으로 펜과 수첩을 끌어왔다. 안타깝다는 감상이 희미하게 입혀져 있던 펠리시아의 음성은 당장 그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피터가 펜의 끝부분을 책상에 쿡 찍었을 때 펠리시아가 메일을 읽었다.
—피터에게. 진실은 우리의 거리를 가중시킬 뿐이야. 그렇다고 거짓말도 반갑지 않아. 나는 그 날 너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펠리시아는 수화기가 떨릴 정도로 바람 소리를 냈다. —이게 끝이에요.
피터는 펜촉이 드러난 볼펜과 핸드폰 어느 것도 놓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의 힘이 두 물건을 쥐고 있는 손에 모조리 빨려 들어간 것처럼 피터는 입술을 열지 않았다. 잠자코 대답을 기다리던 펠리시아가 참지 못하고 그를 불렀다.
—피터?
“메일을 다시 보내겠어요.”
피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누구나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목소리였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표님은 당신을 보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해요. 메일을 또 보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해리의 말을 들을 수 있잖아요! 전 계속 시도해 봐야겠어요. 해리를 봐야 하니까요. 지금 대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몸은 괜찮은지, 죽어간다면서 어느 구석이 더 아프진 않는지 전부 다 확인하고 말 거예요.”
전화기 반대편에서 펠리시아는 피터를 말릴 만한 말을 생각하려다가 눈꼬리를 내리며 입을 다물었다. 피터는 표지가 천장을 향하고 있는 책에 잠깐 시선을 던졌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소화하기 위하여 피터가 두 번째로 읽고 있는 전문 서적이었다.
“저도 해리한테 거짓말은 안 해요. 대신 저와 해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실을 말하겠어요.”
피터는 그녀가 자세히 들으면 득이 될 게 없다며 한 번만 메일 계정을 통째로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피터는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
해리 오스본은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정신병원에 딸려 있는 독방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침대일지언정 그것은 오스본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강하게 침대 시트를 쥐었으나 형편없는 가구에 화풀이를 하기 위한 동작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을 뒤덮을 듯이 양 목선에서부터 올라오던 초록색 실핏줄이 사라졌다. 해리는 멀쩡한 안색으로 몸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직원 한 명이 그의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비서가 메일을 보냈습니다.”
해리는 고분고분하게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직원은 알림창을 보고 발신인을 비서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겠지만 해리는 그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자마자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표시줄에 떠오른 아이콘을 클릭했다. 「해리, 부탁이니 끝까지 읽어 줘.」붉은 가면의 친구가 소리 없이 그에게 이야기했다.
⁂
“펠리시아? 아직 해리로부터 답장은 오지 않았던데 무슨 일이에요?”
—대체 메일에 뭐라고 썼던 거예요? 기록을 지워서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더군요.
피터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맥락이든 그의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는 부분을 다루는 건 조심스러웠다. 피터처럼 어깨에 책가방을 걸친 대학생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터는 입모양을 우물거렸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펠리시아에게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어요. 그래서 숨기고 있는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로서는 도저히 파악이 안 되지만… 그게 대표님을 움직였던 모양이네요. 차량 한 대가 가고 있는 중이에요.
캠퍼스의 출구로 걸어가고 있던 피터는 타이밍 좋게 헤드라이트를 내미는 까만 차를 목격했다. 피터가 혼잣말을 하듯이 대답했다. “보이네요.”
피터는 핸드폰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각 어깨에 늘어져 있는 가방끈을 당겼다.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갈 준비를 하면서 펠리시아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 차에서 나온 몇몇 사람들이 캠퍼스의 문에 서서히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고마워요, 펠리시아. 지금부터는 나와 해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피터가 걸음걸이에 속력을 붙이더니 빠르게 차량을 향해 달렸다. 만일 누군가 해리 오스본이 있는 장소를 귀띔해준다면, 성실하고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그의 친구가 있는 곳까지 달려갈 듯한 뒷모습이었다. 피터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호흡으로 정장 입은 남자들에게 불쑥 인기척을 내비쳤다.
“해리한테 가는 거, 맞죠?”
답은 뒷좌석의 문이 열리는 형태로 돌아왔다. 피터는 약간도 주저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피터가 차에 탑승하자 운전사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안대를 받아들 줄 알았던 피터는 한순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앞좌석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오직 해리 오스본에 의해 움직이는 그들은 묵묵히 피터를 약속된 장소로 안내하는 데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무도 뒤에 앉은 피터를 힐끗거리지 않았으므로 그는 마음껏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학교와 다운타운, 그가 한 번쯤은 훌쩍 건너뛰었던 건물들이 잔영을 남기면서 멀어져갔다. 피터는 자신이 뉴욕을 벗어나고 있음을 간파했다. 거리 이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주는 몇몇 랜드 마크들이 사라져버리자 피터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뉴욕은 멀어졌고 지평선이 그의 곁으로 찾아왔다.
차는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숲에 들어가고 나서도 십 분을 넘게 달렸다. 다 똑같아 보이는 나무들이 가끔 유리에 부딪혔다. 피터는 그의 친구가 약속 장소를 정하는 일에서까지 속임수를 펼치지 않을 거라는 반복된 외침으로 불안한 속내를 눌렀다.
이윽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숲이 물러났다. 창백하고 추워 보이는 빛이 내리쬐었다. 피터가 석양이 질 때까지 붙잡고 있어도 새파랗기만 하던 해리의 얼굴색과 닮은 구석이 있는 빛이었다. 피터가 마침내 창문을 내리고 목을 앞으로 뺐을 때, ‘레이븐크로프트 정신병원’이라는 글씨가 적힌 석판이 그를 반기는 바람에 피터는 놀란 나머지 운전자 쪽을 돌아보았다. 그들에겐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차에서 내리고도 피터가 걸어야 할 길은 까마득하기만 했다. 닫혀 있는 문들은 매번 신속하게 열리긴 했지만 그것들이 숨기고 있는 복도와 어둠은 너무도 깊었다. 피터는 걸어가면서 양옆을 힐끗거렸다. 창살 뒤편에 갇혀 있는 환자들은 반듯한 면모라고는 전부 상실해버리고 벽을 긁으며 으르렁댔다. 해리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피터는 더는 환자들을 살피면서 걷지 못했다.
피터는 마침내 독방 한 칸에만 불이 켜져 있는 깊숙한 구역으로 입성했다. 그를 데려왔던 사람들이 말없이 돌아섰다. 피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바닥에 쇠창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걸 보면 그는 시원스럽게 자신의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었다.
피터가 내는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피터가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네가 정신병원에 있을 줄은 몰랐어.”
“그럼 별장에서 한가롭게 요양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달력에 붙어 있는 종이 다섯 장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피터의 친구는 더욱 혈색을 뺏긴 모양이었다. 해리는 하얗고 푸르고 심지어는 녹색 빛깔로 보이기도 하는 기묘한 얼굴을 기울이며 피터를 마주했다. 피터는 창살이 들어서는 곳에 가만히 섰다.
“으스스한 푯말이 세워져 있기는 해도 이곳 역시 오스코프가 소유한 시설이야. 내가 여기 있다는 건 기록에도 남지 않을 거고, 엄밀히 말해 여긴 병원Hospital이라기보다는 연구소Institution에 가깝지. 온갖 기형적이고 부조리한 것들이 여기에 다 모여 저마다 새로운 길을 찾아. 그게 본래 생으로 돌아가는 건지, 아니면 죽음인지는 하늘에 맡기는 거지만.”
그는 웃었다. 미소가 지독히도 어두웠다.
“나한테 주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서.”
“…오스코프가 거미를 연구하면서 남긴 자료가 있었어. 아버지가 지켜 오셨던 거지. 꼭 너를 만나서 알려주고 싶었어.”
“뒤늦게나마 날 살려주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또래보다는 늘 힘없는 웃음을 구사하는 친구의 낯빛은 그랬기에 피터가 생기를 나눠주고 싶은 구석이 있었다. 다섯 달 전만 해도 유효했던 사실이었다. 피터는 씁쓸하게 굽어지는 자신의 입꼬리를 만졌다.
“내가 피를 뽑아서 너에게 줬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부작용이 일어났을 거야. 연구를 위해 거미와 더불어 활용된 유전자는 아버지의 것이었어.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이 없으면 연구가 진행될 수 없다고 하셨지. 해리, 너는 유전적으로 내 아버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내가 거미에게 물리고도 흉측하게 변하지 않았던 건 내가 리처드 파커의 후손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아. 어차피 그 거미의 독은 너한테 맞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야.”
해리는 피터가 말을 끝내자마자 중얼거렸다. “오묘하군.”
“뭐라고?”
“오스본들에게 내려진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오스본 그 자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잖아? 네가 지금까지 설명한 걸 종합하자면 그래. 너는 파커였기 때문에 그 연구의 득을 본 거고, 나는 오스본이니까 이런 꼴이 된 거로군.” 해리의 표정이 구겨졌다. 억지로 웃으려다가 실패한 모습 같았다.
“그렇다면 부탁을 수정하지. 이번에도 날 외면한다면….”
“나는 너를 외면하려 했던 게 아니야! 말했잖아. 내가 그 때 네 말을 들어줬다면 너는 더 이르게 찾아온 고통을 맞이했을 거야. 어차피 내 피로는 네 병을 고쳐줄 수가 없었어.”
“내용을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하겠다는 건가, 지금?”
“해리.”
“나를 오스본이 아니라 파커로 만들어줘.”
피터는 저도 모르게 오른발을 안으로 내뻗었다. 그의 온몸은 그대로 해리의 두 팔과 치닫고 싶어 하는 것처럼 떨리기도 했고 딱딱하게 식어버리기도 했다. 그를 막은 건 해리 오스본이었다.
“…그게 무슨,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거야.”
“해리는 이미 죽었고, 스파이더맨도 한동안 죽어있었는데 오스본이라고 죽을 수 없겠어?”
세상의 모든 전깃줄을 끌어다 칭칭 감아 놓은 듯한 발전소에서 피터는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꽃이 지지 않는 무덤 아래에 잠들어 있는 그의 그웬 스테이시도 들은 바가 있는 한 마디였다. 그것은 피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움직였고, 피터는 오스본의 날카로운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 감옥 안으로 몸을 완전히 밀어 넣었다.
“아니야, 해리. 너는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어.”
해리의 두 눈과 입가가 뒤틀렸다. 어떠한 조화도 생겨나지 않았다.
“나는 왜 오스본이고 너는 왜 파커일까. 이름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거야, 피터. 태어난 순간부터 찍힌 낙인이니까. 그런데 너는 네 피도 주지 못했는데 네 이름을 과연 나한테 줄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해리, 제발. 나는 너에게 어떤 박탈감 같은 걸 주고자 여기에 온 게 아니야! 그래도 나는…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단 말이야.”
“해리가 들으면 가슴 뭉클할 말이군.”
“해리!”
그가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오스본임을 자청하면서 해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저 차갑고 그리운 얼굴을 피터는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 몰랐다. 머리카락이 조금 어수선하고 축 늘어진 옷을 입은 그는 더 다가오지 못하는 피터를 위해 대신 행동했다. 그가 피터에게 걸어가면서 말했다.
“오스본을 죽이면 해리가 돌아올 거야. 해리와 오스본은 더 이상 양립하지 못해. 순수하고 어딘가 치기어린 구석이 있던 해리는 오스본의 무시무시한 원망과 살아남겠다는 욕구를 견디지 못할 거거든. 오스본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피터. 네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자와 공유했던 추억이 너에게 가치를 갖는다면 너는 그 일을 해야 돼.”
그가 해리의 슬픈 미소를 선보였다. 피터의 시선은 흔들리고 있었다.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친구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의 마지막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피터의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해리가 영영 사라져버리면, 네 과거는 결국 죽음밖에 남지 않은 끔찍한 묏자리가 되어버리는 거야, 피터. 너를 위해서라도 오스본을 죽이고 해리를 살려내.”
얇은 팔이 피터를 안았다.
피터는 그것을 해리 오스본의 팔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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