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대단원 3. 인간학의 탄생
06. 한 과학자의 양심
레비나스 맥코이는 전쟁 이전까지는 평범한 의사로 활동했다. 대학에서 만나 결호했다는 두 부모님의 일반적이고도 헌신적인 배려 속에 의대를 졸업한 뒤 모교의 부설 병원에서 신경 외과의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다만 늘 수술 일정으로 바쁜 외과의 치고 학술지에 종종 자신의 이름을 올렸으며, 높은 지위를 노리는 속물은 아니었어도 자신이 어떤 중요한 임무를 맡으면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인간적인 야망 정도는 갖고 있었던 듯하다.
어느 날 그는 헤이스팅스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맥코이는 원래 미국인이고, 헤이스팅스는 전쟁이 터졌던 시기에 운 좋게 시카고에 있었기 때문에 다소 원활하게 전갈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맥코이가 1년간 유학을 가 있었던 대학이 헤이스팅스의 모교였다는 걸 유념하면 두 사람이 알고 지냈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서 맥코이가 밀레이스와도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밀레이스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모두 헤이스팅스와 함께 다녔기 때문이다.
딱 잘라 말할 순 없으나 헤이스팅스는 연구를 하면서 맥코이의 도움을 꽤 크게 받은 모양이다. 전쟁 이후 헤이스팅스가 맥코이에게 제공해 준 두 가지는 그만큼 컸다. 한정된 인물들만 참관할 수 있었던 1차 공판 현장에 맥코이를 들여보내준 덕에 그는 칸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고, 아예 칸이 갇혀 있는 감옥에 드나들 수 있는 권리를 주어 그와 교류하지 않고서는 발전 자체가 불가능한 맥코이의 주장과 이론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맥코이는 초반에 연구적인 목적을 가지고 칸과 접촉하기를 원했다. 이는 남은 강화인간들을 관리하는 일로 곤란함을 겪던 헤이스팅스에겐 좋은 일이었다. 그녀는 설마 맥코이와 사이가 틀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사료를 쥐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맥코이는 1차 공판 직후부터 센티넬을 옹호할 거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
휴정 시간이 되자 기자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왔다. 그들은 벽에 딱 붙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모여 앉아 속닥거렸다.
“…어떻게 할 겁니까?”
“내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사실 지금은 머리가 하얗습니다.”
“여기까지 뽑혀 들어오는 게 쉬운 일도 아니었는데 취재한 내용을 내보내지 않는 건 억울합니다. 적어도 내 편집국장은 길길이 날뛸 게 분명해요.”
“그렇다고 저기서 들은 걸 가감 없이 뉴스에 싣기엔 걱정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팽팽한 논의가 이어질 것 같았던 분위기는 한 남자의 발언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기자들로서도 사형을 선고받으러 온 거나 다름없는 전범 대표가 한 증언에 왜 이렇게 마음이 혼란스러운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강화인간이 쉽게 얘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와준 꼴이 된 검사의 태도와, 막연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일 줄만 알았던 족속들의 진실 등 기자들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번 건 있는 그대로 실었다간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단 말입니다.”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취재 내용에 손을 대지 않는 게 도리어 전범들 편을 드는 모양새로 받아들여질 것 같았다. 머리와 턱 끝을 긁으며 고민하는 저널리스트들 틈에서 누군가 언제쯤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고 보니 판사는 재판이 재개될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 때 어떤 남자가 기자들을 톡톡 건드렸다.
“혹시 전범 재판을 취재하러 오신 분들인가요?”
남자는 앞주머니에 볼펜이 꽂아진 가운을 입고 있었다. 연구원들의 하얀 옷자락은 캐서린 헤이스팅스의 활약 이후 대단히 위상이 높아졌고, 법원에서 돌아다니는 가운 입은 인물의 위치가 보잘 거 없지는 않을 것이어서 기자들은 조금 놀란 눈치를 보였다.
“예, 그런데 그 쪽은….”
“레비나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무려 헤이스팅스 박사가 뒤에서 남자를 부르고 있었다. 남자가 빠르게 기자들과 눈빛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적어도 심정지 실험에 관한 건 꼭 기사에 넣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게 있다면 연락하세요. 여분이 없어서 일단 아무나 한 장 가지고 계세요.”
레비나스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자에게 명함을 쥐어주고 재빠르게 등을 돌렸다.
“안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캐서린.”
기자들은 낯선 이름을 가진 사내가 인류의 구원자를 끌고 홀연히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곧이어 순서를 정할 것도 없이 모두가 하나뿐인 명함에 있는 연락처를 옮겨 적었다.
⁂
“좋아요, 여기가 제일 조용한 장소 같군요.”
레비나스는 마지막까지 좌우를 돌아보며 행여나 지나다니는 그림자는 없는지 체크했다. 캐서린이 팔을 내리며 물었다.
“재판이 금방 속개되면 어쩌려고 이렇게 멀리 왔어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그녀가 뒤를 돌아보는 목적은 레비나스와 전혀 달랐다. 캐서린은 제스처에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섞어서 레비나스를 재촉하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레비나스가 곧장 꺼낸 주제는 신속하게 마무리가 될 만한 성질의 것이 못 되었다.
“골턴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을 당신이 잘 알 거라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당신은 거기에 들어가길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캐서린은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혔다가 표정을 굳혔다. 기자들보다도 먼저 동료에게 그러한 질문을 받게 될 줄은 심중에 두지 못한 기색이었다.
“…오필리아가 불렀어요. 정확히 말하면 오필리아의 의견을 연구소 측에서 수용한 거지만.”
“오필리아가 불렀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실험체들의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했어요. 돌발 행위도 잦아지고, 내성이라도 생기는 건지 약물 요법도 갈수록 듣지 않는다고요. 연구소 내부에서는 그 상황에서 일종의 컨설팅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오필리아가 나를 추천한 거죠. 그 쪽도 내가 괜찮은 자격을 갖췄음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거기에 오래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틀 만에 결론을 던져주고 나왔어요.”
캐서린은 어쩐지 자신의 입에서 설명이 아닌 변명을 닮은 주절거림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레비나스의 눈빛이 주는 영향이 컸다. 포커페이스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외과의가 쏟아내는 의혹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캐서린을 은근히 자극했다.
“칸이 잠깐 언급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요. 오필리아와 연락하면서 연구소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캐서린이 두 팔을 올렸다가 툭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지금 당신이 왜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내가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나요?”
“연구소에 갔으면 그들이 겪은 실험의 내용을 다 전달받았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 땐 나한테 연락하지 않은 겁니까? 나중에라도 도와달라고 한 걸 보면 내가 강화인간과 관련해서 분명 쓸 만한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거라는 걸 당신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어요.”
캐서린을 공격하는 듯한 언어들이 또박또박 울려 퍼지고 있는 공간은 꼭 법원 곳곳의 소란과 분리된 것만 같았다. 레비나스는 명백히 캐서린을 추궁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거기서 뭘 했죠? 심정지 실험 같은 건 반드시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까?”
“내가 그 실험을 주도한 게 아니잖아요. 대체 나한테 왜….”
레비나스가 고개를 저으면서 캐서린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아는 오필리아의 성격을 생각해 보자면 그녀는 절대로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당신은 확실히 오필리아보다는 냉철한 구석이 있으니까, 오필리아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겠냐며 당신의 조언을 구했겠죠. 골턴 연구소가 그랬던 것처럼.”
캐서린은 그동안 자신이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너무나 익숙해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했다. 전범이 공격적으로 제련한 증언을 듣고서 레비나스가 달라졌다고 치부하기엔 두 사람이 달성한 업적이 너무도 반짝거렸다. 캐서린은 다시 한 번 그가 던지고 있는 비난을 의심했다. 그러나 레비나스가 그녀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당신은 결국 한결같이 침묵한 셈입니다.”
미세하게 굽은 그의 눈썹이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캐서린을 질책했다. 캐서린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난 그들에게 실험을 중지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었어요.”
“내 생각에 강화인간들을 더 적극적으로 돌봤다면 전쟁조차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태까진 과학자와 의사의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나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당신은 이 재판이 옳다고 봅니까?”
기어코 캐서린은 얼굴을 살짝 돌려 탄성을 흘리고야 말았다.
“굉장히 어이없는 질문이네요. 칸과 그 동족들은 전범이에요. 오필리아를 죽였고 수많은 마을을 짓밟은 살인마들이라고요! 그들의 과거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강화인간에게 그 누구보다 슬프게 난도질당했던 여인의 이름이 등장하자 레비나스도 입술을 깨물었다. 그에게 인류의 존망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부탁을 거절할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해도, 오필리아의 이야기는 분명 레비나스가 더 빨리 발바닥을 뗄 수 있도록 독려했었다. 그는 캐서린이 대중이 예상하는 것처럼 독한 성미가 아니었기에 현재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걸 알았다. 레비나스는 더 캐서린을 꾸짖지 않았다.
“그를 만나게 해 줘요.”
삽시간에 캐서린의 흥분이 가라앉았다.
“칸을요? 제정신이에요?”
그러자 레비나스는 그녀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당신의 연구를 거들면서 도와준 점이 두 가지입니다. 속 좁다는 면박을 들어도 할 말은 없겠지만, 나도 당신에게 두 가지 호의를 받아내고 싶습니다.”
캐서린이 눈짓으로 그에게 도리질치고 있었다. 사실 캐서린은 자신 말고는 더 이상 칸 누니엔 싱을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당신은 그들의 과거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죠. 그런데 내 눈으로 보기에는 아닙니다, 캐서린.”
레비나스가 걸음을 옮겼다. 캐서린이 초조하게 바라보았던 복도 쪽으로 방향을 잡은 그가 부드럽게 캐서린을 잡았다.
“칸의 증언은 비단 그의 죄만을 털어놓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걸 당신도 잘 알 거라 믿습니다.”
캐서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쟁이 끝난 이 무렵, 얼어붙어 있던 땅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여인의 동요를 유일하게 엿볼 수 있게 된 의학자는 미안해하면서 그녀의 눈빛을 뒤로 했다.
휴정된 재판은 그 날 재개되지 않았다. 이후 캐서린은 임시 수상에게 불려갔고 레비나스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실에서 그는 김이 오르는 컵과 핸드폰을 한참이나 응시하고 있었다.
8시간 뒤 레비나스는 캐서린에게 메시지와 함께 특수 감옥으로 출입할 수 있는 코드를 받았다.
⁂
캐서린 헤이스팅스에게 부여받은 키는 과연 효과적이었으나 감옥에 도달하기 위하여 거쳐야 하는 절차를 줄여주지는 못했다. 자가용으로 가는 건 불가능해 얼떨결에 배정받은 운전기사부터 코드를 요구하더니, 건물 안에 발 한 짝 들여놓지 않았는데 레비나스는 벌써 세 번의 검사를 받았다. 그의 입술에서 저절로 후 하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얌전히 안내인을 뒤따르고 있는데 레비나스의 핸드폰이 반짝거렸다. 캐서린의 짧은 전언이 도착해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왜 그를 보고 싶어 했는지 얘기해줘요.
동시에 안내인이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물러납니다. 저 안은 전부 감금 시설입니다.”
레비나스가 코드를 입력할 때마다 사용 내역을 전달받기라도 한 듯한 타이밍이었다. 어느 정도 숙고한 뒤에 답장을 보내려던 레비나스가 안내인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잠시만요.”
액정이 인식하지 못하는 손톱으로 톡톡 전화기를 두드리고 있던 레비나스의 손가락이 서서히 움직였다. 레비나스는 진실을 전하기에 적합한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거지 거짓을 지어내려는 건 아니었으므로 빠르게 답을 작성했다.
나는 두 종이 저지른 죄를 모두 연구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평생 등지지는 않을 겁니다.
핸드폰을 집어넣은 레비나스가 안내인과 눈빛을 교환했다. 캐서린의 코드가 마지막으로 작동했다. 코드가 완전히 인식되는 것을 확인한 안내인이 조용히 사라졌다.
드디어 감옥 안으로 들어섰을 때 레비나스는 둥글게 배치된 감방들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칸은 다른 강화인간들과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은 그에게만 허용된 공간이었다. 그런데 한 명의 죄수만을 가둬두는 곳치고는 감방이 많았다. 맥코이는 한 칸마다 감시자들이나 무장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리를 굴리다가 곧 앞에 집중했다. 내부가 제법 어두워 면과 사물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눈을 찌르는 빛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꼭 조촐하게 꾸며진 연극 무대 위로 내리쬐는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거기서 레비나스는 쇠로 만든 가시덤불을 양 손목에 감고 있는 누군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주위로 가름막 하나 없는 터에 자리 잡은 침대 매트리스와 책걸상, 캐서린이 회수하지 않은 링거 걸이대가 좁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빛이 부족한 감옥에서 보는 전범의 실루엣은 훨씬 위압적이었다. 레비나스는 어쩐지 그 검은 곡선으로 인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칸 누니엔 싱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으니 레비나스의 직감이 영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강화인간은 아무래도 먼저 아는 체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레비나스는 정식으로 기척을 내기 전에 힐끗 위를 올려다봤다. 적어도 그의 시야에 잡히는 또 다른 시선은 없었다. 고통스럽게 묶인 강화인간이 레비나스가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증언하느라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나랑 얘기 좀 하지 않겠어요?”
레비나스는 최대한 온화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에 반응하여 강철이 찰랑이는 소리가 났다.
“처음 듣는 목소리군.”
강화인간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자 팔을 들었다. 그랬더니 감겨 있던 가시가 그를 찌르려고 했고, 이에 본능적으로 눈꺼풀을 움찔한 건 인간이었다. 인간의 피와 흡사한 농도로 비릿한 냄새가 나는 강화인간의 체액이 구속물에 묻어났다. 칼날에 베여 갈라진 피부에는 누구보다 익숙할 외과의의 안색이 금세 불편해졌다.
오히려 평온한 건 강화인간이었다.
물론 순간마다 그의 눈동자의 일부는 붉어졌다가 통째로 하얗게 변하기도 했고, 자신의 육체마저 뜯어 먹을 듯한 이빨이 불쑥불쑥 빛을 냈다. 증인석에서 질문보다 몇 배는 자세하고 소름 끼치는 말을 해댔던 형색이 실리콘 덩어리라는 궤변이 설득력 있게 들릴 지경이었다. 혼자 가시와 빛을 다 받고 있는 처지 말고도 강화인간의 우두머리를 괴롭히는 요소는 너무도 많아 보였다.
레비나스가 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레비나스가 노리는 것은 강화인간의 낡은 의자였다.
“사실 재판장에서 당신이 했던 말은 좀 부족했습니다.”
강화인간의 머리가 점점 옆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레비나스가 움직이는 모양새를 정확히 뒤쫓고 있었다.
“온 세상이 갈라지고 뜯겼어요. 특히나 그 광경을 연출해낸 장본인인 당신들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관여를 했던 세계는 아예 흔적도 남지 않았지요. 비로소 인간들이 성찰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들이 없습니다. 강화인간이 자신에 대해 세세하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레비나스가 칸을 꾸준히 살피면서 의자의 뒷부분을 잡았다. 레비나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에 앉아 한 시간은 보낼 심산이었다. 다행히 강화인간의 눈동자는 본래의 빛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당신의 과거를 알려줘요.”
“성미가 급하군. 차차 듣게 될 텐데.”
강화인간의 답이 상상 외로 빨라 맥코이는 주춤했다.
“누구든지 여기에 들어오려면 캐서린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보아하니 그녀가 아무한테나 출입을 허락한 것 같지는 않군요.”
“…내가 당신이 무슨 술수를 썼는지 궁금해 해야 하나.”
“나는 당신이 경험해 본 적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고백을 하는데 누군가를 조사해야 한다는 일이 역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겠지만요.”
레비나스는 나름대로 표현을 부드럽게 골랐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올바른 효과는 내지 못한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레비나스가 그럭저럭 견뎌 왔던 칸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기로 돌변하더니, 먹잇감을 가늠하는 것처럼 끓어올랐다. 레비나스는 감옥에 들어온 지 10분도 되지 않아 칸의 증오를 샀다. 미워하는 대상은 족족 죽이고 말았던 강화인간의 온 몸에서 차르륵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아무리 인간들을 죽여도, 나는 영원히 연구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나 보군.”
레비나스에게 코드를 전송하며 캐서린은 하나의 고백도 같이 담았다. 그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칸을 챙기는 작업을 두려워했다. 칸의 입장에서는 인간에게 대단히 고통을 주면서 죽인다고 하는데, 인생에서 한 번 맞는 죽음을 인식조차 없이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가능성 탓이었다. 레비나스는 그런 캐서린을 이해했다. 캐서린은 죽기 직전 거리낌 없이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것을 떠올리며 레비나스는 자신의 유언이 되도 그럴 듯한 한 마디를 던졌다.
“나는 이태까지 누구를 살려왔지 죽이지는 않았어요.”
입을 다물고서 레비나스는 어딘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받았다. 레비나스는 손을 내밀지는 못하고 상체를 강화인간에게 슬며시 접근시켰다.
“레비나스 맥코이입니다. 당신의 또 다른 연구원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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