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커크] People Help People, Only PEOPLE

- Star Trek Into Darkness 2013. 11. 30. 11:12 posted by Jade E. Sauniere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James Kirk

- Original Date 2013. 6. 15.

- Written by. Jade


People Help People, Only PEOPLE




  “정말로 아픈 데 없는 거지?”


  이제 그 말은 레너드 맥코이의 입버릇이 되었다. 수석 의료 장교인 그를 의무실로 내쫓을 수는 있어도 건강검진을 챙기자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막을 방도는 없어, 제임스 커크 함장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목덜미에 동그란 장비가 붙었다.


  “좀 성실하게 답해라. 나 좋으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 네 딴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네 몸 속에 들어간 혈청이 펼치는 꿍꿍이의 일부일 수도 있단 말이다.”


  커크가 인상을 찡그렸다. 가뜩이나 ‘그’의 피를 투여 받았다는 것도 찝찝한데, 거기에 의인화를 덧붙이니 팔에 소름이 돋았다.


  “소름 돋게 말을 뭘 그렇게 하고 그래! 진짜로 괜찮단 말이야.”


  살짝 수그러드는 말꼬리를 의사의 예리한 눈초리가 붙잡았다.


  “..두통이 생긴 것 빼고는.” 

  “두통?” 

  “옛날에는 전혀 없었는데, 이따금씩 머리가 아파.” 


  그 말에 맥코이가 타블렛을 집어 들더니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커크가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맥코이가 화면을 커크 쪽으로 돌렸다.


  “3일 뒤 정밀 검사야.”


  의무실에서만큼은 함장의 위엄을 능가한다는 치프의 권한을 담아 맥코이가 엄하게 전달했다. 커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신이 너무 표현을 단순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머리가 멍하고 아프다고 느껴지는 것을 두통이라고 일컬은 게 잘못된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이를테면 자신이 받아들이기에 벅찬 영상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커크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 * *




  맥코이가 선정한 세 번의 나날 안에, 지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주연방에 속해 있는 행성으로 이례 없이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다는 정보가 도착했다. 몇 안 되는 거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일에 긴급 투입된 엔터프라이즈는 주민들의 안전 확보와 더불어 그들의 문명을 지킬 수 있는 유산들을 거두는 중대한 작업을 맞이해야 했다. 커크 함장의 사소한 두통 문제는 저절로 뒷전으로 밀렸다.


  칠흑의 우주에 함선이 혜성처럼 뿌린 미립자들이 퍼졌다. 워프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커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포함한 별동대를 조직했다. 음속의 길을 만드는 푸른 알갱이들을 보면서 커크는 바로 저것이라고 생각했다. 얼핏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언제나 조악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커크는 돌아오면 꼭 맥코이에게 그 말을 들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운석이 떨어질 거라는 소식에 떨고 있던 주민들은 스타플릿 대원들을 보자마자 꼭 챙겨가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옷차림은 세련되지 않았고 복잡한 개념을 지칭할 수 있는 언어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뒤쳐진 주민들의 의식으로도 매력적이면서, 모든 것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미지의 오브젝트는 우주연방에 속해 있는 커크 함장과 그들의 동료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커크가 그 독특한 우주선에 손을 댔다.




* * *




  “함장님!”


  술루의 연락이었다. 커크는 잠에서 깨듯 정신을 다잡으면서도 손을 떼는 것을 잊었다.


  “운석이 낙하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서둘러 돌아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커크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보다 운석이 일찍 떨어질 것 같다는데. 스팍, 일단 주민들부터 수송선에 태워.” 

  “함장님은?” 

  “이걸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주민들의 집착이 옮은 듯 커크가 못내 아쉬운 눈길로 우주선을 바라보았다. 워프 시키는 방법밖에 없겠지만 유사시에 뒤처지는 수송선들을 모조리 끌어안아야 하는 엔터프라이즈로서는 한 뼘의 동력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스팍이 말했다.


  “아마 힘들 것 같습니다. 주민들이 왜 저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면모를 보나 저 물체는 이들의 고유한 문명이 아닙니다. 저희가 지켜야 하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스팍이 함장을 이끌었다. 두 발로 설 수 있는 생명체들이 모두 생존을 위하여 셔틀을 향해 전진했다. 엔터프라이즈는 혹시 운석이 주변에서 끌어들인 잔해나 위성들을 격추하기 위하여 포문을 열고 있었다. 커크는 스팍과 걸음을 맞추면서도 그 우주선을 지우지 못했다. 머리가 아팠다. 아니, 두통이라는 표현은 초보적이었다. 어떤 근본적인 인연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어두운 감정이 커크의 머릿속에 들어찼다.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운석에 대기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함장님, 곧 운석이 안전거리를 돌파합니다.” 

  “출발해!”


  커크가 입구를 닫았고 조종석에 앉은 스팍이 기어를 위로 올렸다. 불투명한 공기층을 뚫은 운석이 모습을 드러냈고 있는 힘껏 속력을 낸 셔틀이 밖으로 나아갔다. 무더기의 운석들이 대지를 강타했고 마치 대륙을 이루고 있던 판이 부서져 튕겨 나가듯 땅이 폭발했다. 수송선을 향하여 고도를 낮춘 엔터프라이즈가 새파란 빔을 내뿜었다. 망가지고 있는 고향을 보면서 주민들이 눈꺼풀을 떨었고 커크는 여전히 두통 아닌 두통에 사로잡혀 있었다.




* * *




  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조종사의 레이더에 또 다른 것이 감지됐다. 대상을 파악한 승무원이 함장의 의자에 앉아 있는 술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후방에서 함선 한 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일에 투입된 건 엔터프라이즈뿐인데?”


  의아하다는 분위기에 휩싸인 함선의 스크린에 포착된 것은 분명히 스타플릿의 표식을 달고 있었는데, 그것은 엔터프라이즈에게 교신을 하지도 않고 갑자기 트랜스워프 장치를 발동시켰다. 체콥이 놀라서 소리쳤다.


  “저 함선이 셔틀을 데려가려 해요!”


  개별 수송선의 속도와, 워프가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당황한 엔터프라이즈 내부가 상황 파악에 애를 쓰려고 하는 상황까지 모조리 계산한 듯 함선은 태연하고도 완벽하게 수송선을 데려갔다. 술루의 눈빛을 곧바로 읽어낸 우후라가 해당 함선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동안 술루가 함장석에 달린 버튼 하나를 눌렀다.


  “함장님, 응답하십시오. 스타플릿 함선이 방금 함장님과 다른 사람들을 워프해 데려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연결 되었습니다.” 

  우후라가 빠르게 전했다. 

  “스크린에 띄워줘.”


  몇 초 안에 드러난 타 함선은 기이하게도 함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 항해사 자리에서 이동한 듯한 승무원이 통신을 받기는 했지만 함장은 찾을 수 없었다.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술루는 일단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왜 아무런 언질도 없이 저희 측 승무원들과 행성 주민들을 데려갔죠?”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니, 연락이라기보단 협박에 가까운..”


  그 와중에 커크의 풀린 목소리가 함교에 퍼져나갔다.


  “...네가 여길 어떻게.”


  엔터프라이즈가 흩날리는 것과 똑같은 알갱이를 한 순간 몸에 두르고 나타난 인물의 옷에는 특이하게도 서리가 어려 있었다. 차가운 곳에 잠들어 있던 냉혹한 존재는 그 특질에 걸맞지 않게 투명하게 커크를 바라보았다. 두통은 아련해졌다. 익숙하다고 치부해 버려도 좋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칸 누니엔 싱의 신비로운 눈동자가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 * *




  커크는 대체 어떻게 깨어난 것이냐며 물어볼 생각도 못 했다. 전보다 더 핏기가 없어 보이는 하얀 얼굴과 다 녹지도 않은 얼음 알갱이들은 그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칸은 통신기를 꺼내면서도 커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귀환해.”


  스팍은 일단 기본적으로 들고 다니는 총을 뒤에서 슬그머니 꺼내고 있었다. 요란한 것은 커크의 통신기뿐이었다. 커크가 타고 있는 함선이 워프를 했다는 우후라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슨 속셈이지, 칸.”


  그는 목소리를 내는 대신 행동했다. 유리관 속에 얌전히 보관된 무기처럼 가지런한 칸은 그대로 등을 보였다. 단지 아름답다고 여겼을 뿐 왜 발생하는 건지 과학자들조차 관심을 가진 적이 없던 워프의 미립자마냥, 방향을 돌리는 그의 눈이 반짝이지만 순간적인 잔상을 그렸다. 커크는 그가 단지 자신을 구하고 싶었음을 느꼈다.


  맥코이가 반드시 실행하고자 벼르고 있던 커크의 정밀 검사는 무산되었다. 스타플릿에서 손꼽히게 유능하다는 엔터프라이즈 호의 의료 장교를 넘어서는 두뇌를 가진 자의 판단 덕분이었다. 문제의 두통은 칸의 혈청을 주입하여 생겨난, 부작용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부끄러운 하나의 증상이었다. 커크는 처음에 몸을 떨었다. 그에 의해서 보존된 생명이라는 걸 똑똑히 기록하고 싶기라도 한 듯이 커크에겐 의학을 뛰어 넘는 자국이 생겼다. 하지만 칸은 커크를 살리고자 해서 살린 게 아니었다. 그가 고칠 수 없다고 해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칸은 제임스 커크를 살리고 싶어 했다.




* * *




  광기라는 것은 굳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느 것에 몰두하고 열정을 발산할 때 사람들이 광기라는 개념을 언급하는 것이니. 대상을 자신의 보존보다 우선할 정도로 아끼는 것도 일종의 광기이다. 전쟁을 좋아하고 범죄를 즐기는 것과는 다른 종류이지만, 너무도 강력해서 어느 한 쪽을 불리하게 한다는 점에서 두 가지는 모두 광기였다.


  당장 커크가 목격한 것은, 잊어 가고 있던 칸이란 존재의 잔혹한 기운이었다. 순식간에 들고 있던 무기를 빼앗긴 커크는 칸의 손에서 마치 그의 신체처럼 강인하고 자비 없이 움직이는 총을 바라보았다. 볼썽사납게 다쳐오는 일이 많았던 엔터프라이즈의 젊은 함장은 이제 다치지 않았다. 그가 겨울처럼 차가운 바람을 느끼고 눈을 감으면, 그의 곧은 자세를 제외하고 모든 게 무력해졌다.


  “나는 여전히 네가 깨어난 이유를 모르겠어.”


  칸이 팔을 내렸다. 핏방울이 그의 움직임보다 늦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내 주위에서 이런 짓을 하는 지도 모르겠고.”


  “..너는 네 대원들의 목숨을 구하려 하지 않나.”


  이제 칸이 하는 말은 늘 그의 진실한 감정을 담았으므로 커크의 머릿속에 칸의 내면 일부가 정착해 있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가. 너와 같아야지만, 적어도 네가 공유할 것이 있어야만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가.”


  그리고 그가 소리 내지는 않았으나, 원망과 슬픔 중간 즈음에 위치한 칸의 가라앉은 상념이 커크의 정신에 도달했다. 칸의 마음이 자신은 바로 제임스 커크 때문에 깨어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커크는 그 말에 위치한 자신의 이름이, 칸의 피를 받은 자가 행여나 있다면 얼마든지 그 존재로 교체될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게 맞았다. 칸을 정의하는 방식은 그랬다. 그리고 어떤 풍화에도 쓸려 내려가지 않을 훌륭한 판에 새겨진 하나하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 무엇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가 표면 위로 떠오른 인간적인 감정까지도. 커크가 돌아섰다. 다른 존재의 피를 두를 수밖에 없는 칸이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분명히 커크는 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으나, 느낌은 벌어지고 있는 물리적인 거리를 무시했다. 못지않게 푸른 커크의 눈동자가 떨렸다. 커크가 살면 자신도 그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처럼 오로지 그를 살리고자 하는 칸의 선한 광기와, 차라리 두통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비좁은 씀씀이가 커크의 몸 곳곳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면 영원히 견디라는 듯 그랬다. 본래 영영 외로울 존재에게, 굳이 의식적으로 그 외로움을 상기하게 만드는 자신이 속 좁은 인간인 줄 커크는 이제 깨달았다.


  동시에 눈물을 흘린 두 푸른 눈동자는 다시 영원히 멀어질 길 위에 섰다.